-
-
제2차 세계대전 :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 되다 ㅣ 세계통찰 시리즈 14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제2차 세계대전
솔과나무에서 출판한 한솔교육연구모임의 <세계통찰 미국 :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 되다>는 유럽 대륙을 초토화한 유럽 전쟁과 일본 제국의 패망과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을 굳힌 태평양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곳곳에 들어찬 전쟁의 단면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한솔교육연구모임으로 역사연구모임의 책에는 일종의 기대감이 있다. 아무래도 그룹으로 논조를 정해 책을 저술해 집단지성으로 여러 의견을 모은 관점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개인이 필자로 참여한 책은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지만 모임에서 저술한 책은 그런 점에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임에서 저술한 책에도 편향된 관점을 전달하긴 하지만 좀 덜하다는 느낌이다.
한솔교육연구모임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주요 대륙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국가인 미국에 관한 책이고, 총 16권 중 14권에 해당하고 전쟁 편 4권 중 두 번째 책이다.
가장 큰 특징은 도감과 사진 자료를 많이 수록하고 있어 글로 읽었을 때 궁금한 시각적인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그랜트 장군, 리 장군 등 평소 접하지 못한 인물의 사진도 다수 수록되어 있어 미국사에 관심을 가진 분에겐 만족할 만한 책이다.
1918년 독일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뿐 아니라 승전국인 연합국에도 엄청난 물적·인적 피해를 주었다. 베류사유조약으로 독일은 해외 식민지를 모두 잃고 본국 영토의 8분의 1을 승전국에 나눠 주게 되었다. 더구나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부과해 압박을 이어갔다.
당시 영국 협상단 대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런 가혹한 응징은 독일인의 좌절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켜 또 다른 전쟁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던 케인스의 말은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스 정당으로 사실로 드러났다.
히틀러는 다수결의 원리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취약점을 알고 있었다. 하층민을 상대로 빈민구제를 역설하고 자신의 우상화 과정을 동시에 수행했다.
1939년 히틀러는 존경하던 무솔리니와 강철조약을 맺고 전 세계를 함께 정복하기로 약속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도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함께 침공하기로 약속했다.
독일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공격하기로 했으나 무솔리니는 주저했고 독일군 단독으로 프랑스를 공격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영화관, 목욕탕까지 갖춘 마지노선을 믿고 있었지만, 독일은 마지노선의 끝자락인 아르덴고원을 공격했다.
프랑스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는 독일의 상황을 지켜보던 무솔리니는 1940년 참전을 선언하고, 30만 명의 이탈리아 군인에게 프랑스 남부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프랑스군은 북쪽에서는 독일의 위세에 눌렸지만, 이탈리아군을 맞아서는 압도적인 전투력을 과시했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이탈리아 병사는 제대로 한 번 싸우지도 못하고 프랑스군의 공격에 떼죽음을 당했다. 프랑스 공격에 실패한 무솔리니는 북아프리카, 그리스 등 이곳저곳을 침략했지만 다니는 곳마다 패전을 거듭하며 국제적 망신을 샀다.
그리스를 침공한 이탈리아 군대는 민간인들로 급조된 민병대에도 크게 패해 몰살 위기에 처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 군대가 위기에 처할 때 구출해야 했다.
농담이지만 독일이 이탈리아와 연합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전쟁의 승패는 어떻게 흘렀을지 모른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이탈리아는 독일은 배신했기에 히틀러 군대의 용맹함을 보고 적극적으로 무솔리니가 독일군과 함께 참전한 것은 오히려 동맹군이 아닌 돌봐줘야 할 패잔병을 붙인 것 같다.
히틀러의 독일 군대는 거칠 것이 없었다. 영국의 런던대공습과 기점으로 공군과의 대결에서 영국의 공군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 공중전에서 독일 비행사는 추락하면 적진으로 추락하는 것이지만, 영군 공군 비행사는 자기 땅에 떨어진 것이다. 공군에 있어 비행기만큼 중요한 전투 요소는 비행사였다.
독일군의 패착은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으로 침공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희생은 독소전쟁에서 나타난다.
독일군의 침공을 예상하지 못한 소련군은 처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완전무장하고 나선 소련군은 스탈린의 대기명령에 따라 꼼짝도 못 한 채 그대로 몰살당했다.
스탈린은 독일과 적대관계에 있던 영국이 소련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1930년대 자국민을 상대로 과도한 숙청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나라의 인재들이 대거 사라졌다. 소련군은 막강한 독일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 잘 훈련된 개에 폭탄을 설치하고 개가 전차 밑으로 들어가면 원격조정 폭탄을 터트려 독일군의 전차를 폭파했다.
독소전쟁의 분수령을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다. 거칠 것 없었던 독일군은 소련의 맹렬한 추위에 주춤했다. 전차, 전투기와 병사의 발이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 이와 동시에 독일군은 처음으로 소련의 여군을 맞아 전쟁을 치른다.
소련이 채택한 전략은 무제한 소모전이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록 독일은 불리했는데 소련의 명장 주코프는 이를 제대로 파악했다.
소련에서 총을 들 수 있는 모든 남성과 여성도 징병 대상으로 삼았고 이들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물밑 듯이 스탈린그라드로 모여들었다.
저격병으로 활약한 여군과 세계 최초로 여성 조종사만으로 이루어진 588연대는 큰 전과를 올렸다.
독일군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당시 동부 전선에서는 소련군이 독일군을 연전 연파하면서 서쪽을 향해 진군하고 있어 미국을 긴장시켰다. 소련은 독일군이 지배하던 동유럽을 점령함과 동시에 공산화했기 때문에, 소련군이 연합군보다 먼저 서유럽에 진입하게 되면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 전체가 공산화될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연합군은 하루빨리 유럽으로 진군해야 할 상황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수많은 극적인 요소가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상륙에 성공한 연합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독일 본토를 향해 진군했고, 이를 막아낼 수 없었던 독일은 패전의 길로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류는 731부대의 생화학무기 개발과 유대인, 집시, 장애인 학살을 지켜보았다. 가장 끔찍한 개발은 오펜하이머 주도로 이루어진 맨해튼 프로젝트로 발명된 원자폭탄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을 평생 후회했다. 2개의 폭탄에 의해 희생된 사람을 꿈을 매일 꾸며 수소폭탄 개발 계획에 거부하여 공산주의자로 몰려 청문회에 나간 후 모든 공직에 내려와 63세에 후두암으로 사망한다.
그가 죽을 무렵 전 세계에는 1만 개가 넘는 핵폭탄이 만들어져 인류를 위협하고 있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세계통찰미국 #강대국중의강대국이되다 #한솔교육연구모임 #솔과나무 #제2차세계대전 #미국 #책과콩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