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 - 베를린 공존 모델에서 한국 사회 갈등 해법 찾기
이광빈.이진 지음 / 이은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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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한 분열사회가 된 대한민국, 해법은 있을까?

 

힙스터 성지가 된 베를린에서 한국 사회의 방향을 찾다!

 

오늘 소개할 책은 이은북에서 출판한 이광빈 기자님, 이진 소장님의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이다. 책을 펼지는 순간, 특별한 장정에 먼저 눈길이 갔다. 책의 중간이 활짝 펼쳐지게 했다. 이유인즉, 독일에서 1945년에서 통일에 이르는 주요한 사건을 담은 사진 화보들을 활짝 펼쳐 볼 수 있도록 노출제본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고 양쪽으로 1945-1990, 1945-? 가 눈에 들어온다. 독일이 분할되고 통일에 이르는 년도와 한국이 분열된 시기와 언제 통일이 될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책 가운데 타공은 이 창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실을 관통해 미래의 비전을 찾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상징이라고 한다.

 

남과 북이 분단된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은 분단이 고착화된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문득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대로 평화조약을 맺어 서로 자유로이 왕래하고 각자 정치체제를 인정하는 이웃 국가로 남기를 바랬던 이기적인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과거 학창 시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자주 불러 몸으로 체화된 통일은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인 이광빈 기자는 2004년부터 연합뉴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정치부 기자로 세 번의 대선과 세 번의 총선, 정당·국회 활동 등을 취재하며 세력 간 갈등 문제, 정치체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키웠다. 베를린 특파원(2017.8~2020.11)으로 분단기 ‘서서갈등’을 발굴해 처음으로 소개했다. ‘서서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저자는 이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우리도 통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남남갈등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막대한 통일비용은 안그래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는 국가 부채를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부채를 발행해야 감당할 수 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의 신뢰가 회복돼야지만, 남북 외교 현황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이용되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의 밧줄과 같다. 최근 남북 연락선이 다시 개통되고 정상 운영된다는 뉴스에도 앞으로 위기가 닥칠 거란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건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진 소장은 현재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Direktor, Institut Politik+Kultur).

재독 정치철학자이자 문화학자. 법과 제도 이면의 정치문화와 기억문화를 연구한다. 베를린 훔볼트대, 자유대, 바이마르 니체학술원 등에서 민주주의의 성패는 공정한 경쟁과 생산적 갈등의 문화에 달렸음을 역설해 왔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간파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 쟁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공정한 경쟁과 생산적 갈등의 문화에 달려있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베를린 하면 먼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이 먼저 떠오른다. 베를린은 과거 대한민국과 북한이 동시에 대사관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은 동독 지역에 있지만, 연합국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베를린을 분할 통치했다.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시작돼 베를린은 양 진영이 대치하는 특수한 곳이 되었다.

 

68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불어닥치기 이전이 1967년 국가정보원은 ‘동백림 사건’을 조사해 간첩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이응로, 학계의 황성모·임석진 등 194명이 대남 적화 공작을 벌이다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동백림은 동베를린의 한자 이름이다.

 

국정원에 의해 기획된 사건이었다는 점이 밝혀졌지만, 베를린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베를린을 둘러싼 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게 되는 사건은 1960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시점이다.

 

통일 이전 서독을 삐라를 통해 체제의 우수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정부가 벌인 행위를 위장하기 위해 아이들까지 동원했지만, 진실이 드러난 이후에는 여론은 악화하였다.

 

이런 위기를 무마하게 된 큰 사건을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방문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을 때이다. 차가운 바닥에 무릎이 닿은 순간 나치의 만행에 사죄하는 브란트의 진심이 폴란드인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브란트가 힘들게 추진하던 신동방정책에도 볕이 들었다.

 

브란트 총리는 당선된 후 최우선 과제로 동독과의 관계 개선을 목표했다. 그는 동독과의 협상에 앞서 소련에 먼저 다가섰다. 서독과 소련이 관계가 정상화되면 동독도 서독과의 협상장에 떠밀려서라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서독은 소련에 공을 들인 끝에 모스크바 조약을 체결했다.

 

상호 무력 행위 금지와 국경 문제 해결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우리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원인 중 하나인 동독 정보 담당 서기이니 샤보프스키의 기자 회견에서의 실수를 주목한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서독 주민의 끊임없는 신동방정책의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다. 동독과 서독의 지속적인 교류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더불어 독일 통일의 기폭제가 되었다.

 

베를린은 ‘차이에 대한 인정’이 도시의 정체성으로 자리한다. 여타 도시들이 자랑스러운 면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수치스럽고 개탄할 수밖에 없는 기억도 용기 있게 드러낸다.

 

저자는 수많은 현장을 답사하고 중요한 인물을 인터뷰하며 관련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통일을 준비하며 서독에서 있었던 ‘서서갈등’을 주목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무력도발 금지와 평화 조약을 체결한 후 남과 북의 민간 교류를 시작으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이질감을 없애면 우리의 통일도 언젠가 다가올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힙베를린갈등의역설 #이광빈 #이진 #이은북 #베를린 #독일 #동독 #서독 #통일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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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리더 세종 - 대한민국 천년의 미래를 묻다
양형일 지음 / 밥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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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천년의 미래를 묻다

 

밥북에서 출판한 양형일 교수님의 <시대를 초월한 리더 세종>은 나라의 미래를 밝힌 지도자로 세종을 지목했고, 그를 돌아보는 책이다.

 

저자인 양형일 교수님은 조선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맨손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주립 오하이오대학에서 행정학과 국제행정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주립 휴스턴대학에서 행정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서섹스대학에서 개발행정을 연구했다.

조선대학교 행정학부에서 교수로 출발하여 부총장을 거쳐 40대 후반에 총장을 맡았다. 총장 임기를 마치고는 17대 국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 시대를 초월한 리더 세종 책날개 중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성군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임금으로 유명하다. 한글의 우수성과 창제가 너무 훌륭한 업적이다 보니 세종의 다른 업적이 묻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인문과 과학, 천문과 지리, 농업과 국방, 의약과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이자 스승이다.

 

세종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배움을 좋아했다. 수많은 책을 읽었다. 세자가 되기 전 충녕이었을 때도 세자인 양녕을 부러워한 한 가지는 서연관 교육이었다. 이는 세자만을 위한 교육기관이었고, 당대 최고 학자들이 서연관 빈객으로 세자를 가르쳤다. 세자인 양녕은 이들 빈객을 피하기가 일쑤였지만, 충녕은 그들을 찾아다니면서 배웠다.

 

충녕의 나이 열일곱에 이르자 학문에서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경서나 역사서 등에 관해 누구와 토론해도 밀리지 않을 실력이었다. 경서는 물론이고 서예나 그림, 거문고나 비파와 같은 악기에도 재능이 있었다.

 

세종 때는 훌륭한 인재가 많았다. 인재는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이들을 찾아내 빛을 내도록 이끄는 것도 성군이 자질이다. 많은 서책을 접한 세종은 놀라울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지식을 쌓았다.

 

유학은 물론이고 정치와 행정, 역사와 종교, 법과 율례, 지리와 천문, 운학과 문학, 수학과 화학, 음악과 문화, 농사와 경제, 군사와 병법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는 각 분야의 지식을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알아보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실록을 자세히 보면 세종 시절 만들어진 각종 저서, 기구, 시설, 병기, 음악 등에서 세종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구체화했다.

 

<시대를 초월한 리더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세종대왕 시절은 우리가 생각하듯 태평성대의 시기는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업은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기우제를 지내지 않았던 해는 재위 동안 3년뿐이었다.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흙을 먹었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했다. 도적질이 발생했고 굶주림으로 아사하는 자가 나타냈다. 세종은 종로에 있는 흥복사에다 구료소를 설치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나누어주게 했다.

 

남녀가 유별하고 남녀 7세 부동석이라 같이 자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유교 예법에 따라 여성들의 질병 치료를 위해 여자 의원들이 필요했다. 세종은 부녀자를 위한 의녀 제도를 시작했다.

 

 

세종 시절에는 유독 많은 인재가 활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은 인재에 대한 갈망이 컸다.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서는 역량 있고 참신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았기에 사람을 찾는 일을 계속했다. 찾는 대로 집현전, 예문관, 홍문관 등에 수용했다.

 

세종이 아낀 인재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고금의 학문에 출중했다.

둘째는 경륜과 소신을 갖추었다.

셋째는 개혁적이며 미래 지향적 사고를 지녔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세종의 통치 철학이나 애민 사상에 공감했고 그 구원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세종이 인재를 키우는 과정과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결과를 도출하는 모습을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한번 믿었던 사람은 끝까지 신뢰하고 심지어 그 신하를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세종이 성군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룰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세종은 위대한 업적 외에도 이처럼 600년 전 군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지도자로서 자질과 품성을 갖추었다. 그가 시대를 초월한 지도자로, 대한민국 천년의 미래를 물어야 할 지도자로 그를 주목해야 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시대를초월한리더세종 #양형일 #밥북 #세종 #세종대왕 #역사 #리더십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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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킹 - 빅사이즈 햄버거의 기적
제임스 휘트먼 맥라모어 지음, 김재서 옮김 / 예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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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산업의 성공 공식을 만든 버거킹 창업자 짐 맥라모어 이야기

 

오늘 소개한 책은 예미에서 출판한 제임스 맥라모어의 <버거킹>이다.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즐겨 찾는 브랜드가 있을 텐데, 나는 개인적으로 버거킹을 좋아한다. 버거킹의 와퍼는 두툼한 크기의 패티와 다양한 채소가 들어있고 전체적으로 햄버거가 크다.

 

햄버거를 자주 먹지 않기에 한 번 먹을 때 와퍼를 먹어줘야 왠지 먹은 느낌이 난다. 버거킹은 먹을 때마다 맥도날드는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형제를 만나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키는 영화 <파운더>를 통해 익숙한데 버거킹의 창업자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굳이 버거킹이 이슈가 되었던 때는 신정아 스캔들과 변양호 대표가 운영하는 보고펀드가 인수한 후, 직영체제에서 가맹점 사업으로 전환했다는 정도였다.

 

<버거킹>은 버거킹은 창업한 짐 맥라모어의 인생 이야기와 그가 어떻게 버거킹과 함께 프랜차이즈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버거킹 이후 그의 행적과 사회 활동을 다루고 있다. 짐 맥라모어의 자서전에 가까운 책이고 가장 큰 업적인 외식산업을 정착시켰다는 점과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인 제임스 맥라모어는 데이비드 에저튼과 함께 1954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버거킹을 창업하고 회사를 세계 최대 QSR(Quick Service Restaurant)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시킨 기업인이다. 1967년에 버거킹이 필스버리에 인수된 후에도 5년간 CEO로 일하다가 회사를 떠났지만, 그 후에도 25년간 버거킹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회사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은퇴한 후에는 여러 기업과 단체의 이사회에서 일하며 남부 플로리다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했다.

[ 버거킹 책날개 중 ]

 

성공한 창업자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다. 그러한 성공을 성취하기까지 숱한 도전과 고난을 극복하고 실패를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맥라모어는 개인적 삶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성실함과 진실함을 업계에서도 정평이 났었고 솔직한 경영 방식을 선호했다. 그의 생각은 이 책에도 잘 투영되어 있어 개인의 일상도 솔직하게 공개한다.

 

짐은 1926년에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1926년은 미국의 호황기였고 1929년 미국의 주식시장 붕괴와 더불어 나타난 대공황은 모든 미국인의 삶을 바꿔놓았고, 맥라모어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맥라모어는 책에 빠져들었다. 1800년대 미국 역사의 업적을 남긴 이들의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행한 적성검사 결과 그는 영업이나 마케팅 업무가 어울린다는 조언을 들었다.

 

코넬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등록금이 없었던 짐은 담당 교수에게 부탁했고, 교수는 그에게 학업과 병행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소개했다.

해군에 입대에 군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는 성공을 향한 분명한 열정이 없다면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어떤 과제나 일을 시작해서는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는 매 순간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안내 낸시는 마이애미 출신의 아주 매력적인 학생이었다. 그가 마이애미와 인연을 맺는 순간이다.

 

아내와 결혼한 후, 아내의 고향인 마이애미에서 장인이 새로 건축한 빌딩의 일층에 맥라모어는 식당을 창업하기로 한다. 그는 데이비드 애저튼을 만나 동업했다. 당시 맥도날드 형제의 즉석 서비스 시스템은 큰 인기를 얻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이 짧았다. 데이비드는 빨리 조리되는 시간을 활용해 셀프서비스 드라이브인 방식을 생각했고, 짐은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방식을 생각했다.

 

두 사람은 지난 몇 년 동안 사업으로 모았던 모든 자금을 투자해 인스타버거킹을 시작했다. 1954년 3월 1일 마이애미에서 인스타버거킹 매장을 열었다.

당시에는 셀프서비스라는 개념을 도입해 운영하는 식당은 거의 없었다. 매장에서 고객이 직접 주문하고 돈을 지불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음식을 받은 사람들은 이 방식을 낯설어했지만 한 가지 장점은 자신이 먹고 싶은 곳에 가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맥라모어가 버거킹을 창업한 1954년 이래로 패스트푸드 사업은 수많은 경쟁자가 사업에 진입하고 경쟁했다. 그는 동업자인 데이브드 에저튼과 버거킹을 운영한 점주들과 열심히 일했다.

 

두 사람은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버거킹 매장 두 곳을 더 열기로 했다. 회사의 재무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재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야 했고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버거킹에 관한 소유권을 나눠줌으로써 투자자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재정 상황은 조만간 다시 나빠졌다.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잭슨빌 매장 인근에 새롭게 들어선 햄버거 가게는 손님이 북적거렸다. 짐은 그 가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관찰했다. 사람들이 먹는 햄버거의 크기가 더 크고 햄버거 빵 사이에 패티와 상추, 토마토, 마요네즈, 피클, 양파, 케첩이 들어있었다.

 

그들은 마이애미로 돌아오는 길에 크고 맛있는 버거에 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짐은 새로운 메뉴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떠오르게 하는 와퍼 whopper로 지었고, 버거킹 간판 아래 ‘와퍼가 시작된 곳 Home of the whopper라고 새겨넣었다.

 

와퍼라는 메뉴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사업 활동과 매출은 놀라운 속도로 늘었다.

 

1958년은 가맹점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선에서 TV 광고를 시작했다. CM 송과 함께 나오는 TV 광고는 아이들과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사람들은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떠올리면 버거킹이라고 생각했다.

 

짐과 데이비드는 버거킹의 상표권과 프랜차이즈 권리를 확보하기로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인 다른 회사와의 합병 혹은 매각이 순조롭다.

 

이와 관련해서는 1961년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형제에게 상표권과 프랜차이즈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270만 달러를 지불했다.

 

레이 크록과 당시 맥도날드의 사장 해리 손 번은 회사의 성공과 비약적인 성장에 크게 공헌하게 될 부동산 금융 아이디어를 구상해냈다.

 

부동산 소유자나 개발자가 직접 자신들이 마련한 토지에 건물을 지은 경우에는, 맥도날드가 이를 임차하여 가맹점주에게 재임대했다. 이 과정에서 맥도날드는 상당한 차액을 챙길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는데, 가맹점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재임대 비용은 보통 맥도날드가 원소유주에게 지급해야 하는 임차료보다 40%쯤 높게 책정되었다. 게다가 계약서상에 약정된 임대료와 전체 매출의 몇 퍼센트(대개 8.5%)라고 정해져 있는 수수료 가운데 후자가 높은 경우에는 임대료 대신 후자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았다. 따라서 매장의 매출이 높으면 그만큼 맥도날드의 수입도 늘어났다. 또 매장 임차인이 부동산에 대한 모든 세금과 보험 그리고 유지비를 지불해야 했으므로, 이러한 방식의 매장 임대를 통해 맥도날드는 실질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창의적인 금융 기법 덕분에 맥도날드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 부동산 소유주가 된다.

 

짐과 레이 크록은 사업 초장기부터 서로 알고 격려하는 사이였다. 레이는 올해의 외식사업 경영인으로 선정된 해, 짐은 사회를 보았고 레이는 짐을 존경한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국, 우리도 짐을 흉내 내서 뒤늦게 크기가 큰 샌드위치를 새로 개발하고 빅맥이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짐은 버거킹의 상표권과 프랜차이즈 권리를 255만 달러에 벤 스타인으로부터 확보했고, 필스버리사에 매각했다. 물론 짐은 필스버리사의 최대 주주이고 계속해서 버거킹의 운영에 관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외식사업에 열정을 쏟아부은 후 은퇴하는 삶은 공허했다.

 

그는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으로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고, 플로리다 지역사회를 위한 기금 마련과 학교를 후원했다.

 

마이애미대학교와 유나이티드웨이, 페어차일드 열대식물원, 오렌지볼 위원회에서 의장을 지냈다. 여러 해 동안 투자자로서 풋볼팀 마이애미 돌핀스의 성장에 관여했고, 그를 키워준 마운트헤르몬학교와 코넬대학교의 발전에 기여했다.

 

성공을 이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성공을 내려놓기는 더 어렵다.

 

짐 맥라모어는 성공한 사업가가 은퇴 후 가져야 할 바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성공한 기업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버거킹>과 함께 짐 맥라모어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버거킹 #제임스맬라모어 #김재서 #예미 #경제 #경영 #햄버거 #사업가 #경제경영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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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공부, 스스로 끝까지 하는 힘
김성효 지음 / 해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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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자기주도학습을 완성하는 8가지 솔루션

 

해냄에서 출판한 김성효 선생님의 <초등공부, 스스로 끝까지 하는 힘>은 초등학생의 공부법을 총정리 한 책이다.

 

한국의 오늘날 경제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교육이다. 학부모의 교육열은 어느 나라보다 높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은 내 아이가 뛰어난 부분만 눈에 들어온다. 아이의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지만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잘하길 바라는 것은 어느 학부모가 같은 마음일 거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1학년, 2학년을 지나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에 관한 공부에 걱정이 시작된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가는 등교수업보다 집에서 공부하는 비대면 수업 시간이 많아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걱정은 태산이다. 우리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고 읽지 않아 국어, 사회 과목이 걱정되고,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만, 숫자 계산이 느리면 수학 과목 걱정과 어떻게 하면 수학 실력이 향상될까 걱정이 된다.

 


 

 

저자인 김성효 선생님은 글 쓰는 엄마이자 17년간 초등학교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를 가르친 교사이다. 현재는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스피치라이터 장학사로 있으며 전국에서 학급 경영과 수업 개선, 진로 교육 등을 강의하고 다양한 교육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성효샘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담긴 공부법으로 타고난 공부 머리보다 스스로 끝까지 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교육 현장에서 증명해 왔다.

[ 초등공부, 스스로 끝까지 하는 힘 책날개 중 ]

 

저자는 오랜 시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자기주도학습’에 익숙해지면 학습 성과도 올라가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아이가 자기주도학습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공부라는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길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자신의 노하우를 집약한 8가지 솔루션을 제공한다.

 

첫 번째 솔루션 : 공부의 정체를 밝혀라

 

공부의 사전적 정의는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무엇이든, 언제 어디서든 배우고 내 것으로 익힌다면 공부이다. 공부는 문제집을 풀고 교과서를 익히는 것과 더불어 부모에게 배우고 밥상머리에서도 배운다.

 

부모는 아이에게 어린 시절 공부를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려줘 공부에 친숙해지고 좋아할 수 있도록 하자.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공부를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아이다. 공부의 과정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주 멀고 긴 여정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두 번째 솔루션 : 공부자존감을 높여라

 

자존감은 근육과 같다. 노력하면 높아지고 내버려두면 낮아진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자아존중감이 높을수록, 가정에서 적절한 인지적 자극을 자주 줄수록, 학교가 민주적이고 긍정적일수록 성적이 점점 오르는 상승형 집단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공부자존감은 높이기 위해서는 평소 수준보다 살짝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되 끝까지 하는 것이다. 결과와 관계없이 끝까지 해내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넘어지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보다 “괜찮아. 다음에 잘 할 수 있어”라고 말하자.

 

 

세 번째 솔루션 : 공부머리 신화를 깨라

 

공부에 대한 가장 오래된 신화는 지능이다. 공부머리는 타고난다는 신화를 내려놓은 순간 진정한 성장도 시작된다.

 

초등학생 자녀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배우자의 머리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 다음은 혹시 나를 닮아서 아이가 공부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닌지 슬며시 걱정된다.

 

아이는 부모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생각과 철학, 가치관을 흡수하여 깨끗한 백지 위에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아이의 학습 속도가 느린 경우 학습 속도가 빠른 아이에게 계속 뒤 처지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배우는 속도가 빠른 아이는 초반에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운다. 학습 속도가 빠른 만큼 더 많이 공부할 수 있고, 그만큼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크다. 빠르게 배우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누적 학습량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습 속도가 느리더라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공부하면 초반에 치고 나간 빠른 아이의 학습량을 따라잡을 수 있다. 느리다고 자꾸 야단치는 것보다 아이의 학습 속도에 맞게 천천히, 꼼꼼히, 성실하게 공부하도록 지도하자.

 

 

네 번째 솔루션 : 메타인지를 키워라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메타인지를 활용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부족한 점을 보충하기 위해 노력한다. 메타인지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가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을 다시 설명하게 하고, 수학 문제를 틀리면 왜 틀렸는지 설명해 보게 하는 것이다.

 

고학년이 되면 집에 화이트보드를 준비해서 아이가 언제든지 자신이 공부한 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하자. 아이가 선생님이 되어 배운 것을 설명하게 하는 방법은 메타인지를 기르는 좋은 방법이다.

 

 

다섯 번째 솔루션 : 공부 습관을 잡아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은 대부분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습관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해하고 공부 습관을 들이는 방법을 알아보자.

 

학습 습관을 잡는 가장 첫째는 정리 정돈이다. 아이가 집에 오면 책가방을 먼저 정리하게 하되 필요 없는 물건은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게 한다. 장난감이나 딱지, 쓸데없는 종이들을 넣어 다니는 경우도 매일 정리 정돈하는 지도를 반복하는 게 좋다.

 

습관은 우리가 원하면 바꿀 수 있다. 습관은 작은 행동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자. 공부를 평소 안 해본 아이에게도 작고 시시해 보이는, 만만한 것부터 도전하게 하자. 문제집을 풀기 싫어하는 아이라면 하루에 딱 세 문제만 풀게 하자. 세 문제 푸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다음은 다섯 문제, 그다음은 일곱 문제처럼 매주 조금씩 늘려가자.

 

 

여섯 번째 솔루션 : 호기심을 높여라

 

호기심은 인간이 지닌 본성이자 공부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왜 그럴까 궁금해서 하는 공부는 아무리 오랜 시간 해도 지겹지 않다.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아이의 호기심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자. ‘왜 그럴까’라는 질문은 공부의 시작이다. 기초 지식의 암기와 철저한 이해, 깊은 원리 탐구와 개념 이해야말로 아이의 호기심을 기르는 첫걸음이다.

 

 

일곱 번째 솔루션 : 더 오래 기억하라

 

공부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잘 기억하는 것이다.

공부한 것을 잊어버릴 때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사실 망각은 덜 괴롭고 덜 힘들게 살 수 있도록 신에게 받은 선물이다.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인간의 망각곡선을 발표했다. 배우고 20분이 지나면 뇌에 남아 있는 것은 58.2%에 불과하다. 1시간이 지나면 기억하는 것은 44.2%까지 떨어진다.

망각하지 않고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복습이다.

학습하고 10분 뒤, 하루가 지난 뒤, 다시 일주일이 지난 뒤, 그리고 한 달 뒤 복습하면 장기기억으로 남는다.

이는 망각곡선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복습 주기이다.

 

 

여덟 번째 솔루션 :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하라

 

자기주도학습의 핵심은 피드백이다. 어떤 것이 부족한지,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짚어보고 함께 걷는 것이야말로 자기주도학습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온라인 수업은 학교 수업보다 질이 좋기는 힘들다. 어떻게든 학교 수업에 가까운 형태로 피드백을 제공해야 학습 공백을 막을 수 있다.

자주, 즉각적으로, 정확하게 피드백하기 위해 노력하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김성효 선생님의 자녀 공부법이 가득한 <초등공부, 스스로 끝까지 하는 힘>을 통해 공부 걱정을 덜어보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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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공부, 스스로 끝까지 하는 힘
김성효 지음 / 해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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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자기주도학습을 완성하는 8가지 솔루션으로 자녀 공부 걱정을 덜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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