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 - 베를린 공존 모델에서 한국 사회 갈등 해법 찾기
이광빈.이진 지음 / 이은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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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한 분열사회가 된 대한민국해법은 있을까?

 

힙스터 성지가 된 베를린에서 한국 사회의 방향을 찾다!

 

오늘 소개할 책은 이은북에서 출판한 이광빈 기자님이진 소장님의 <힙 베를린갈등의 역설>이다책을 펼지는 순간특별한 장정에 먼저 눈길이 갔다책의 중간이 활짝 펼쳐지게 했다이유인즉독일에서 1945년에서 통일에 이르는 주요한 사건을 담은 사진 화보들을 활짝 펼쳐 볼 수 있도록 노출제본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고 양쪽으로 1945-1990, 1945-? 가 눈에 들어온다독일이 분할되고 통일에 이르는 년도와 한국이 분열된 시기와 언제 통일이 될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책 가운데 타공은 이 창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실을 관통해 미래의 비전을 찾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상징이라고 한다.

 

남과 북이 분단된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은 분단이 고착화된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문득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대로 평화조약을 맺어 서로 자유로이 왕래하고 각자 정치체제를 인정하는 이웃 국가로 남기를 바랬던 이기적인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과거 학창 시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자주 불러 몸으로 체화된 통일은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인 이광빈 기자는 2004년부터 연합뉴스에서 기자로 일했다정치부 기자로 세 번의 대선과 세 번의 총선정당·국회 활동 등을 취재하며 세력 간 갈등 문제정치체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키웠다베를린 특파원(2017.8~2020.11)으로 분단기 서서갈등을 발굴해 처음으로 소개했다. ‘서서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저자는 이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우리도 통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남남갈등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당장 막대한 통일비용은 안그래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는 국가 부채를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부채를 발행해야 감당할 수 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의 신뢰가 회복돼야지만남북 외교 현황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이용되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의 밧줄과 같다최근 남북 연락선이 다시 개통되고 정상 운영된다는 뉴스에도 앞으로 위기가 닥칠 거란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건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진 소장은 현재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Direktor, Institut Politik+Kultur).

재독 정치철학자이자 문화학자법과 제도 이면의 정치문화와 기억문화를 연구한다베를린 훔볼트대자유대바이마르 니체학술원 등에서 민주주의의 성패는 공정한 경쟁과 생산적 갈등의 문화에 달렸음을 역설해 왔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간파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 쟁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공정한 경쟁과 생산적 갈등의 문화에 달려있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베를린 하면 먼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이 먼저 떠오른다베를린은 과거 대한민국과 북한이 동시에 대사관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였다그도 그럴 것이 2차 세계대전 직후베를린은 동독 지역에 있지만연합국 승전국인 미국소련영국프랑스가 베를린을 분할 통치했다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시작돼 베를린은 양 진영이 대치하는 특수한 곳이 되었다.

 

68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불어닥치기 이전이 1967년 국가정보원은 동백림 사건을 조사해 간첩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이응로학계의 황성모·임석진 등 194명이 대남 적화 공작을 벌이다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동백림은 동베를린의 한자 이름이다.

 

국정원에 의해 기획된 사건이었다는 점이 밝혀졌지만베를린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베를린을 둘러싼 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게 되는 사건은 1960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시점이다.

 

통일 이전 서독을 삐라를 통해 체제의 우수성을 전달하고자 한다정부가 벌인 행위를 위장하기 위해 아이들까지 동원했지만진실이 드러난 이후에는 여론은 악화하였다.

 

이런 위기를 무마하게 된 큰 사건을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방문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을 때이다차가운 바닥에 무릎이 닿은 순간 나치의 만행에 사죄하는 브란트의 진심이 폴란드인에게 전달됐다그리고 브란트가 힘들게 추진하던 신동방정책에도 볕이 들었다.

 

브란트 총리는 당선된 후 최우선 과제로 동독과의 관계 개선을 목표했다그는 동독과의 협상에 앞서 소련에 먼저 다가섰다서독과 소련이 관계가 정상화되면 동독도 서독과의 협상장에 떠밀려서라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서독은 소련에 공을 들인 끝에 모스크바 조약을 체결했다.

 

상호 무력 행위 금지와 국경 문제 해결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우리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원인 중 하나인 동독 정보 담당 서기이니 샤보프스키의 기자 회견에서의 실수를 주목한다하지만 그 배경에는 서독 주민의 끊임없는 신동방정책의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다동독과 서독의 지속적인 교류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더불어 독일 통일의 기폭제가 되었다.

 

베를린은 차이에 대한 인정이 도시의 정체성으로 자리한다여타 도시들이 자랑스러운 면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수치스럽고 개탄할 수밖에 없는 기억도 용기 있게 드러낸다.

 

저자는 수많은 현장을 답사하고 중요한 인물을 인터뷰하며 관련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통일을 준비하며 서독에서 있었던 서서갈등을 주목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남남갈등을 해소하고무력도발 금지와 평화 조약을 체결한 후 남과 북의 민간 교류를 시작으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이질감을 없애면 우리의 통일도 언젠가 다가올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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