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경제 - 양자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인공지능, 팬데믹, 기후위기 이후의 세상
앤더스 인셋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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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인공지능, 팬데믹, 기후위기 이후의 세상

 

흐름출판 앤더스 인셋의 <양자경제>는 양자적 관점으로 바라본 다양한 분야를 조망한다. 2019년부터 시작한 코비드 19는 우리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고 체계를 지지한 고전 역학의 세계는 현재의 사회,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몇몇 학자들은 새로운 해석 틀을 찾았고, 양자경제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되는 소비와 혈액과 같은 화폐는 갈수록 고도화되고 아원자의 성격을 띤다. 20세기 초반의 양자물리학은 새로운 해석을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저자는 더 늦기 전에 부유함을 통장 잔액에 한정 짓지 말고 지성과 생명을 중시하고, 행복과 사랑을 공급하는 탈물질의 약속과 법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탈물질 경제 체제를 양자경제(Quantum Economy)라고 이름 붙였다. 양자경제를 명명한 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일전에 데이비드 오렐도 양자경제에 관한 집필과 경제학을 새로운 틀로 분석했다.

 

행여나 지금 벌어지는 혼란을 방치하거나 기술이 인류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은 다수의 대중예술이 다루는 디스토피아가 벌어질 것이다.

 

저자 앤더스 인셋은 <양자경제>를 통해 양자적 관점을 통해 사회 현상 전반에서 일어나는 오류와 양자과학을 통한 양자 유토피아를 전망한다.

양자 유토피아에 따른 인류의 미래는 생태, 사회, 경제, 과학 시스템의 기반으로 한 생명체가 존중받는 세계로 향해간다.

 

양자경제를 기반으로 한 연결과 흐름으로 이어지는 순환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제모델은 기계적이었다. 그러나 양자경제의 접근방식은 직선적이거나 인과적이지 않다. 오히려 양자물리학처럼 겹침과 확률을 다룬다.

양자경제에서는 돈과 자본흐름도 포괄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분배와 사용의 통합을 새롭게 숙고할 것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은 경제의 균형을 유지하고 합리적으로 최적화된 지원을 이용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 추구를 지원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행복감도 파괴하고 있다.

 

저자는 양자경제가 추구하는 순환경제의 모델은 돈, 화폐개혁, 과세, 소비,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례로 사유 재산과 소비를 들면, 지금까지 경제모델에서는 소비자가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양자경제의 이용자들은 아무것도 소유할 필요가 없어 오히려 부담이 준다.

 

일부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제품을 디자인학 생산방법을 순환경제의 요구에 맞춰 소비자가 구매하고 사용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대신에 대여하여 사용한 후 반납한다. 소비자들은 사용자로 변하고 구매하지 않고 대여하는 사람은 소유재산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된다.

 

한국의 사례를 들면 서울시의 ‘따릉이’ 같은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은 자전거를 소유하지 않지만, 사용권을 구매할 수 있다. 이를 확대 적용하면 자율 주행 자동차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는 결코 효율적이고 공정하고 안정적이지 않고 오히려 복잡하고 복합적으로 얽혔으며, 창조적이고 언제나 불평등하고 불안정을 야기하고 유한한 모델을 확장한다. 현실 세계와 가깝게 해석하기 위한 양자경제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저자의 주장은 양자경제학으로 생태의 붕괴를 막고 기술의 적절한 통제를 통한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양자물리학의 우리 세계를 해석하는 유용한 방법이라는 점에는 이론은 없다. 사회, 경제의 분석에서도 고전역학의 모델이 아닌 양자경제학을 생각할 시간이 되었다.

 

미래를 해석할 새로운 방법으로 떠오른 <양자경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선사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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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준의 나주 수첩 1~2 세트 - 전2권 - 송일준과 함께 하는 즐거운 나주 여행 ㅣ 송일준의 나주 수첩
송일준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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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준 PD ‘제주도 한 달 살기’에 이어 ‘나주 오래 살기’에 도전하다.

 

스타북스에서 출판한 <송일준의 나주 수첩>은 나주에 대한 안내서이다. 그는 전작인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통해 제주도 구석을 친절하게 소개했다. 이번 ‘나주 수첩’은 제주에 이어 고향인 나주에 대해 구석구석 탐방하여 현지인을 만나며 고향 친구, 나주에 뿌리내린 사람을 소개한다.

 

나주는 중요도와 비교해 많이 알려지지 않는 도시다. 전라도라는 명칭이 전주와 나주에서 유래한 지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나주의 ‘부목군현’의 20개 목중 하나였다. 또한 백제에 복속 당하기 전까지 마한의 중심지였고 고려 혜종 때 나주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지 천년이 넘은 고도다 보니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고려 시대, 조선 시대 핵심행정구역 단위가 목이고, 관찰사가 목사에서 직접 협의하는 행정 체제를 유지했기에 나주목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입시와 관련한 나주의 이슈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 개교다. 나주를 에너지 중심지역으로 키우기 위한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와 KTX 개통, 켄텍의 개교는 나주가 에너지 산업의 미래 중심지로 거듭나는 방안이었다.

 

<나주 수첩>에서는 전기 전문가 이순형 박사와 이야기를 통해 에너지 밸리 조성 계획과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안을 이야기하지만, 이 박사가 느끼기에 서울과 나주의 격차가 너무 크고 자신이 노력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나주는 나주 배, 나주평야, 홍어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조선을 개국한 혁명가 정도전, 거북선을 만들어 이순신 장군과 왜적을 물리친 나대용 장군, 한글 창제의 일등 공신 신숙주, 표류문학의 금자탑인 표해록의 저자 최부, 항일독립투사 아나키스트 나월환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송일준 PD는 영암에서 태어나 나주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다. 그의 고향은 나주다. 혁신도시에 거주하며 나주에 오래 살기로 한 이유에는 고향에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주에서 자라다 그의 부모는 나주에서 농사를 지어 자식을 제대로 공부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해 아버지 먼저 상경해 옥수동에 자리를 잡고 가족을 모두 불렀다. 엄청 가난했다가 서울의 불야성을 처음 바라본 날, 그의 여동생을 서울역에 처음 내려 택시를 탈 때 신발을 벗어놓고 타서 신발을 잃어버렸다.

 

오늘 나도 아버지를 만나 어린 시절 부산의 전차를 탈 때 사람들이 신발을 벗어놓고 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시절은 이런 일이 간혹 일어나는 일이었나 보다.

 

송 PD는 <인간시대>, <PD수첩>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광우병 위험 미국쇠고기수입 무제한 허용 방침을 비판한 방송으로 오랫동안 고초를 겪었다.

 

2018년 광주MBC 사장을 취임했고, 작년에 은퇴하여 평소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곳에서 한 달 살기와 오래 살기를 실천하고 있다.

 

책의 중간중간 그의 인생이 전환한 중요한 지점을 소개하고 있다. 학창시절 서울로 상경한 이야기, 대학에서 있었던 일, MBC에 입사하고 PD로 활동한 이야기, 광우병 파동에 얽힌 이야기 등등.

 

<나주 수첩>에는 현지인이 전해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듬뿍 실려있다. 나주의 유명한 금성산에 얽힌 구렁이 이야기, 금성산의 토지관 행세를 하다 제주도로 쫓겨온 뱀 이야기도 신화처럼 전해진다.

 

인구 8만 명이 무너졌던 나주에 혁신도시로 새로운 이주민이 들어와 이제는 12만 명이 넘는 도시로 거듭나는 나주에는 새로운 콘셉트를 가진 식당과 카페, 공원이 생기고 있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나주향, 박태후 화백이 꾸민 정원인 죽설헌, 빛가람동 호수공원, 혁신도시의 카페 ‘릴케의 정원’ 등등…….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에는 조선 창업의 주역 중 한 명인 정도전이 유배를 왔다. 권력에 떠밀려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술을 빚어 그에게 대접하는 지인도 있었고, 천민들이 모여 사는 부곡마을인데 농부와 노인의 경륜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은 고려를 세울 때 반대했던 백제의 유민 후손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정도전은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권문세가들에 착취당하는 농민들의 현실, 지혜로운 백성을 보고 배웠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정치는 왕이 아닌 엘리트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신념을 키웠다. 삼봉의 민본사상의 발원지는 이곳 나주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주에는 여행지로 방문할 곳도 많은 곳이라는 점을 <나주 수첩>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음에 가족과 함께 전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주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전국 여행과 나주에 관심을 가진 분은 <송일준의 나주 수첩>을 통해 나주의 매력에 빠져보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송일준의나주수첩, #송일준, #스타북스, #나주, #여행에세이,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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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나의 인생(人生) 에피소드
최민희 지음 / 삼사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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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 전 의원의 인생 에피소드

 

삼사재에서 출판한 최민희 전 의원의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사부곡과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는 에세이다. 아버지는 192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4살 때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20살에 귀환했다. 당시 일제 식민지 시대 오사카 일대로 많은 한국인이 징용갔을 때, 저자의 할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 오사카로 갔다.

 

일제의 조선 노동자 충원방식은 중국침략 전후로 달라졌다. 중국침략 전에 조선 노동자를 모아 토목공사나 광산 등에서 집단 노동을 시켰고, 중일전쟁 (1937)이후에는 강제징용이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머리가 좋았던 거로 보인다.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지만, 할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집안을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귀국 후, 1년이 지난 면서기 시험에 합격했다. 다음 해, 사법시험 1차 시험에 합격한 저력을 보였다. 주관식으로 이루어진 2차 시험은 너무 어려웠고, 서울에서 3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국방부 소속으로 오랜 시간 근무했다.

 

저자의 형제들은 아버지의 말을 잘 따라 공부도 잘했고 좋은 곳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집안에서 그녀만큼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헌신했다. 1979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해 사회의 부조리를 알게 되었고, 민주화 운동에 빠져들었다. 학창 시절 학생운동으로 구속되어 곤란함을 겪었다. 본인의 사정으로 사촌 동생이 저자와 남편의 전력으로 정보기관 시험에 1차를 통과해도 2차 시험에 떨어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1985년 ‘말’지의 1호 기자가 되었다. 2호 기자는 저자의 남편인 정수웅, 3호 기자는 정봉주 전 의원이었다. 이후 사회 운동에 전념하다 2012년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남양주 병 지역에 출마해 2위로 낙선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미디어특보단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녀의 최근 행보를 보고 있으니, 책 속에 드러난 그녀의 성정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아버지와 같이 강직한 성격에 올곧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그녀의 행보는 자칫 ‘모난 정’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 사이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친구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선생님 처지에서 친구들에게 거침없는 이야기를 해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친구가 없더라도 그녀는 책 속의 주인공과 함께할 수 있었다. ‘데미안’, ‘장길산’, ‘토지’를 읽으며 보수적인 집안의 어른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우회적인 표현이 상대의 충격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성향대로 단도직입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그런 연유로 자신의 표현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줄 알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듯하다.

 

저자의 아버지가 한 길을 오래 걸었던 것처럼 저자 역시 사회 운동으로 한 우물을 팠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났을 때 나라를 잃어버렸던 다사다난했던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로 <아버지>는 의미 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아버지, #최민희, #삼사재, #에세이, #한국문학,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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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의 역사 - 음식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윌리엄 시트웰 지음, 문희경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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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레스토랑에 관한 특별하고도 맛있는 인문교양서

 

소소의책에서 출판한 윌리엄 시트웰의 <외식의 역사>는 역사라는 흐름은 외식이라는 주제로 돌아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는 가족의 또 다른 말로 식구라고 하듯이 같이 식사하는 행위는 생존의 의미 이상을 가진다. 강력한 결속력과 문화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과 같이 식사하는 것이다.

 

‘외식한다’라는 의미는 권력의 분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행위는 권력의 층위가 나누어졌거나 화폐의 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외식의 역사>는 인간이 외식을 시작한 증거를 찾아 로마 제국의 폼페이를 시작으로 현대의 채식주의 식당에 이르기까지 외식을 산업적인 관점에서 돌아보고 혁신을 이루었던 식당과 요리사를 알아본다.

 

                Photo by Nick Karvounis on Unsplash

외식사업은 열정으로 시작해서 광기에 휘말릴 수 있다. 성공한 사람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지만, 파산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먹는 것은 인간으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행위이기에 외식 산업을 고대로부터 전해진다.

 

폼페이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과 최근의 발굴 작업은 로마 제국의 외식 산업은 광범위하게 성행했음을 알려준다. 마치 오늘날 런던의 옥스퍼드 스트리트나 뉴욕의 5번가처럼 술을 마시고 식당이 갖추어진 1Km로 뻗어 있는 거리에서 식사와 음주를 즐길 수 있었다.

 

오늘날 오스만제국은 ‘몰락’한 것으로 인지하지만 그들의 문화는 세계 곳곳에 전해 내려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커피’문화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또는 예멘에서 유래했지만, 커피를 마시고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한 것은 오스만제국의 팽창과 관련 있다.

 

             Photo by Michael Browning on Unsplash 

 

문화의 연결과 확산은 제국을 통해 팽창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체계 속에서 번창했듯이, 커피 문화는 오스만제국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졌고, 이는 살롱 문화와 더불어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외식이 정치력을 의미하는 것은 역사에서 자주 엿볼 수 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 시대에는 주방 하인이 160명이었다. 슐레이만 1세가 즉위한 1520년에는 그 수가 250명이 되었고, 셀림 2세가 즉위한 1566년에는 600명이었으며, 무라드 3세 말년에는 주방 하인이 약 1,500명에 달했다.

 

당시에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불평한 사람도 있었다. 식료품 저장실 한 곳에서만 남자 하인 286명이 일했기 때문이다. 술탄은 왕궁에 방문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음식을 대접했다. 손님을 맞아 음식을 대접하는 의미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코 폴로를 이어 뒤늦게 알려진 이븐 바투타의 여행을 돌아본다. 그는 마르코 폴로가 사망하기 1년 전(1324년) 갭이어(학업을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진로를 탐색하는 기간)를 무려 32년 동안 사용했다. 그는 오늘날 기준으로 40여 개국을 여행하며 단 한 번도 돈을 내고 식사를 하지 않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가는 곳곳마다 음식 문화를 전하고 있어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자체가 당대 이슬람 제국의 음식 문화를 알려주는 기록이 되었다. 바투타는 혼자 식사한 경우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없었다. 항상 주변인과 함께 식사하고 그가 여행한 이야기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에게 흥미로운 안줏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Photo by Jakub Kapusnak on Unsplash

 

커피하우스 문화가 발달한 곳은 영국이었다. 정치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의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커피하우스는 후일 살롱처럼 17세기 영국의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자신의 의견을 활발히 주고받았다.

 

커피하우스 문화가 잠잠해진 것은 18세기 후반 영국 상류층에서 불기 시작한 차문화를 즐기는 시설이 생길 때였다.

 

오늘날 프랑스 고급 식당이 탄생한 배경에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관련 있다. 프랑스 혁명은 귀족 제도의 몰락을 가져왔다. 또한 뜻하지 않게 귀족 제도의 몰락은 고급 식당의 시대를 예고했다.

 

귀족의 수발을 들었던 요리사는 단두대로 인해 몰락한 귀족의 그늘을 벗어나 레스토랑을 열었다. 1820년대의 파리는 지구상에서 최고급 레스토랑을 가장 많이 보유한 도시로 명성을 쌓았고, 이후 100년 넘게 다른 어느 곳도 그 왕좌를 넘보지 못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을 지나 미국은 레스토랑이 혁신이 이루어진 곳이다. 자본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 식당이 성업했다. 뉴욕은 특히 가정 내에서 음식을 조리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일본식의 회전 초밥이 선보였고, 맥도널드 형제의 햄버거 식당은 길 맞은편에서 글렌 벨이 타코 식당을 여는 자극제가 되었다.

 

유명 요리사가 개업하는 식당은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었고, 미슐랭 별에 얽힌 레스토랑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식당은 소비자의 소통을 중시하다 보니 새로운 권력의 도전에 직면했다. 소비자가 평가하는 블로그의 한 줄이 식당의 사활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자기가 거주하는 도시에서 세계 곳곳의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갈 수 있다. 물론 여행을 떠나 현지 식당에서 그곳의 맛있는 음식과 함께 여행지를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 지역의 대표 음식은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고, 가장 잘 요리로 표현하는 레스토랑은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역사를 외식이라는 키워드로 바라보는 <외식의 역사>는 먹는 음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흥미를 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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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의 역사 - 음식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윌리엄 시트웰 지음, 문희경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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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외식과 식당‘ 이라는 키워드로 바라보는 흥미로운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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