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외식의 역사 - 음식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윌리엄 시트웰 지음, 문희경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2월
평점 :
음식과 레스토랑에 관한 특별하고도 맛있는 인문교양서
소소의책에서 출판한 윌리엄 시트웰의 <외식의 역사>는 역사라는 흐름은 외식이라는 주제로 돌아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는 가족의 또 다른 말로 식구라고 하듯이 같이 식사하는 행위는 생존의 의미 이상을 가진다. 강력한 결속력과 문화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과 같이 식사하는 것이다.
‘외식한다’라는 의미는 권력의 분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행위는 권력의 층위가 나누어졌거나 화폐의 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외식의 역사>는 인간이 외식을 시작한 증거를 찾아 로마 제국의 폼페이를 시작으로 현대의 채식주의 식당에 이르기까지 외식을 산업적인 관점에서 돌아보고 혁신을 이루었던 식당과 요리사를 알아본다.
Photo by Nick Karvounis on Unsplash
외식사업은 열정으로 시작해서 광기에 휘말릴 수 있다. 성공한 사람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지만, 파산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먹는 것은 인간으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행위이기에 외식 산업을 고대로부터 전해진다.
폼페이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과 최근의 발굴 작업은 로마 제국의 외식 산업은 광범위하게 성행했음을 알려준다. 마치 오늘날 런던의 옥스퍼드 스트리트나 뉴욕의 5번가처럼 술을 마시고 식당이 갖추어진 1Km로 뻗어 있는 거리에서 식사와 음주를 즐길 수 있었다.
오늘날 오스만제국은 ‘몰락’한 것으로 인지하지만 그들의 문화는 세계 곳곳에 전해 내려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커피’문화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또는 예멘에서 유래했지만, 커피를 마시고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한 것은 오스만제국의 팽창과 관련 있다.
Photo by Michael Browning on Unsplash
문화의 연결과 확산은 제국을 통해 팽창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체계 속에서 번창했듯이, 커피 문화는 오스만제국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졌고, 이는 살롱 문화와 더불어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외식이 정치력을 의미하는 것은 역사에서 자주 엿볼 수 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 시대에는 주방 하인이 160명이었다. 슐레이만 1세가 즉위한 1520년에는 그 수가 250명이 되었고, 셀림 2세가 즉위한 1566년에는 600명이었으며, 무라드 3세 말년에는 주방 하인이 약 1,500명에 달했다.
당시에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불평한 사람도 있었다. 식료품 저장실 한 곳에서만 남자 하인 286명이 일했기 때문이다. 술탄은 왕궁에 방문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음식을 대접했다. 손님을 맞아 음식을 대접하는 의미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코 폴로를 이어 뒤늦게 알려진 이븐 바투타의 여행을 돌아본다. 그는 마르코 폴로가 사망하기 1년 전(1324년) 갭이어(학업을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진로를 탐색하는 기간)를 무려 32년 동안 사용했다. 그는 오늘날 기준으로 40여 개국을 여행하며 단 한 번도 돈을 내고 식사를 하지 않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가는 곳곳마다 음식 문화를 전하고 있어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자체가 당대 이슬람 제국의 음식 문화를 알려주는 기록이 되었다. 바투타는 혼자 식사한 경우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없었다. 항상 주변인과 함께 식사하고 그가 여행한 이야기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에게 흥미로운 안줏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Photo by Jakub Kapusnak on Unsplash
커피하우스 문화가 발달한 곳은 영국이었다. 정치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의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커피하우스는 후일 살롱처럼 17세기 영국의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자신의 의견을 활발히 주고받았다.
커피하우스 문화가 잠잠해진 것은 18세기 후반 영국 상류층에서 불기 시작한 차문화를 즐기는 시설이 생길 때였다.
오늘날 프랑스 고급 식당이 탄생한 배경에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관련 있다. 프랑스 혁명은 귀족 제도의 몰락을 가져왔다. 또한 뜻하지 않게 귀족 제도의 몰락은 고급 식당의 시대를 예고했다.
귀족의 수발을 들었던 요리사는 단두대로 인해 몰락한 귀족의 그늘을 벗어나 레스토랑을 열었다. 1820년대의 파리는 지구상에서 최고급 레스토랑을 가장 많이 보유한 도시로 명성을 쌓았고, 이후 100년 넘게 다른 어느 곳도 그 왕좌를 넘보지 못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을 지나 미국은 레스토랑이 혁신이 이루어진 곳이다. 자본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 식당이 성업했다. 뉴욕은 특히 가정 내에서 음식을 조리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일본식의 회전 초밥이 선보였고, 맥도널드 형제의 햄버거 식당은 길 맞은편에서 글렌 벨이 타코 식당을 여는 자극제가 되었다.
유명 요리사가 개업하는 식당은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었고, 미슐랭 별에 얽힌 레스토랑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식당은 소비자의 소통을 중시하다 보니 새로운 권력의 도전에 직면했다. 소비자가 평가하는 블로그의 한 줄이 식당의 사활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자기가 거주하는 도시에서 세계 곳곳의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갈 수 있다. 물론 여행을 떠나 현지 식당에서 그곳의 맛있는 음식과 함께 여행지를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 지역의 대표 음식은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고, 가장 잘 요리로 표현하는 레스토랑은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역사를 외식이라는 키워드로 바라보는 <외식의 역사>는 먹는 음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흥미를 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외식의역사, #역사와문화, #리뷰어스클럽, #서평단모집, #네이버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서평단, #소소의책, #윌리엄시트웰, #문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