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의 태동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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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30주년 기념작 <라플라스의 마녀>의 프리퀄*인 <마력의 태동>은 시간적으로 <라플라스의 마녀>의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부터 첫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대략 1년여에 걸친 시간을 묘사하고 있는 단편 소설이다.

 

*프리퀄 : 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기본적으로 화자는 스승의 고객들을 이어받아 제법 굵직한 유명인들을 상대로 침을 놓는 침구사 '구도 나유타'이다. 그의 고객들은 다들 어딘가 조금씩 문제를 겪고 있는데 구도 나유타는 이러한 고객들의 고민이나 문제점들을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소녀 '우하라 마도카'와 함께 해결하게 된다.

 

 

슬럼프에 빠진 스키 점프 선수,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와 그것을 잡지 못하는 포수, 뇌사상태에 빠진 중증 장애아동을 아들로 둔 부부, 동성 애인을 잃고 곡을 쓸 수 없게 된 시각장애인 작곡가 등 저마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빠진 이들은 우하라 마도카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특별한 능력으로 '기적'을 만나게 된다.

 

일단 <라플라스의 마녀>의 프리퀄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손에 들었는데 의외로 단편집이라 놀라고, 화자가 전혀 전작과 연관이 없는 인물이라는 데에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또 각각의 단편이 화자인 구도 나유카나 우하라 마도카가 아닌 중심이 되는 인물이 따로 있고, 그에 따라 나유타나 마도카는 사건 및 상황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일 뿐 결국은 각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완결되는 것도 좋았다. 단편 자체는 보통의 휴먼 드라마에 마도카의 능력이 약간의 양념이 되는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라플라스의 마녀>와 따로 떼어놓고 봐도, 또 한 편 씩 따로 놓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한 편 한 편 제법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다. 그런데 또 은근하게 이것이 <라플라스의 마녀>와 연결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에서 중립을 지키고 각 이야기의 주인공과 마도카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 정도를 했던 나유타가 중심이 되는 에피소드에서는 여태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며 모든 조각이 달칵!하고 맞물리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라플라스의 마녀>와도 확연하게 이어지는 순간이- 짜릿했다. <라플라스의 마녀>가 솔직히 기대 이하라서 이 책은 아예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오히려 <라플라스의 마녀>보다 훨씬 즐겁게 읽었다.

 

<마력의 태동>은 프리퀄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가장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단편이라는 형태를 통해 그냥 한 편의 이야기로 봐도, 한 권의 장편으로 봐도,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봐도, 후속 작품으로 봐도 그 어느쪽이라도 손색이 없는 책이 되었다. 의외로 이 책에서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가진 특징은 표지에서도 잘 알 수 있는데 <라플라스의 마녀> 표지를 보면 배경에 수식이 눈에 확 띄게 드러나는 반면 이 책은 정말 자세히 봐야 배경의 옅은, 그리고 <라플라스의 마녀>와 동일한 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배경에 <라플라스의 마녀>와 같은 소재, 등장인물을 깔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배경이자 일부일 뿐, 이 책만이 가진 매력은 또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표지부터 내용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진짜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고 '만족했다!!'는 감상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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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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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플라스의 마녀>. 이공계 출신 작가답게 이번 책은 그의 이과적인 지식을 아낌없이 보여주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작!" 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비해 은근히 평이 좋지 않았던 책이라서 계속 미루고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다 이 책의 프리퀄인 <마력의 태동>이 출간되고 은근히 궁금해져서 손에 들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평이 어느 정도 맞았다는 느낌이다.

 

이야기는 '우하라 마도카'가 어머니와 같이 할머니댁에 갔다 우연히 발생한 토네이도로 어머니를 잃으며 시작된다. 마도카의 아버지는 그 날 한 소년의 뇌수술 일정이 있어 사고를 피하게 된다. 이윽고 8년 후 시점은 바뀌어 전직 경찰인 '다케오 도오루'는 과거 자신이 경호 일을 할 때 알게 되었던 '기리미야 레이'를 다시 만나 마도카를 경호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즈음 황화수소로 인한 두 건의 사망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이 사건에 대해 알게된 마도카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도주를 감행한다. 한편 이 사건에 무언가 다른 내막이 있다고 여긴 형사 '나카오카 유지'는 사고 검증을 맡은 지구화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아오에 교수는 두 건의 사고 현장에서 우연히 마도카의 모습을 보게 되며 그녀에게 의문을 품게 된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답게 몇 줄의 줄거리로는 그 내용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사실 그 한계가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다소 부정적인 의미인데 소설에 곁가지가 많고 이야기의 결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느낌이 있어 어느 쪽에 중심을 두고 설명해야 할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뒷표지의 소개글만 봐도 '8년 전의 그날로부터 시작된 두 세계의 대결'이라며 8년 전 토네이도로 인한 사건을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언급하지만 과연 이곳을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 맞는지부터 의문이 생긴다. 소설 속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은 '황화수소 중독'인데 이 사건의 시작점은 절대 저 토네이도 사고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사건에서 마도카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는데 비해 그녀에게 무언가 중대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너무 무게중심을 두고 소설을 전개하다보니 메인 사건에 대한 무게감이 오히려 떨어지고 소설의 갈래가 나누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그로 인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 쪽에 무게중심을 온전히 두고 전개가 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쓸데없는 아쉬움도 조금 생겨났다.

 

또 한 가지,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감정 이입을 하기에는 어딘지 다들 애매한 점이 있다. 그것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성격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개개인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데에서 그들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다. 보통은 이야기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역할을 하는 형사도 자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려 온전히 행동하지 못하고 극초반에 등장해 무언가 한 건 할 것만 같았던 경호원 다케오도 이렇다 할 활약이 없다. 심지어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도 사건을 저지른 데에 대한 타당성을 온전히 찾기 어렵고 하다못해 트릭까지도 문제가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그래도 어딘가 명쾌한 결말이 있겠거니 하고 꿋꿋하게 읽었는데 결말은 실로 아쉬움만을 남겼다. '라플라스'도 가져오고,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도 가져오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는 좋았는데 방정식 자체가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라서 그런지 소설 속에서도 이에 대한 해답은 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써먹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소설 속 트릭에 대한 해답으로는 한없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역자 후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이면서도 태작이 드문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여기에서 '태작'은 '졸작'을 말한다. 어찌 보면 이만큼 히가시노 게이고를 꿰뚫는 말도 없는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진짜 거의 모든 작품이 평균 이상은 한다.(솔직히 이번 작품도 실망하긴 했지만 온전히 재미만을 놓고 보자면 중간 (아주 약간) 이상은 간다) 그렇지만 '태작이 드물다'라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대작이 많다'고 표현하기는 아쉬운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기도 하다. 뭐 모든 작품에서 평균 이상을 하는 작가와 대작과 졸작을 오가는 작가, 평균을 내어보면 전자가 우세할 듯도 한데 (대작과 졸작의 중간이라면 그야말로 평균 수준일 테니까) 독자로써 매력을 느끼는 작가는 어느쪽일까?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아쉬워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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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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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선 작가의 책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을 때, 초반 몇 장을 넘기며 막연하게 어떤 내용일지 상상을 해본다. 띠지와 뒷표지에 책 내용의 정보를 담고 있는 종이책과는 달리 전자책은 정말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책을 볼 수 있게 만든다. 이번에 읽은 <사형에 이르는 병>은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읽기도 했지만 초반 분위기와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도 달라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던 책이다.

 

화자인 마사야는 어릴 때는 신동으로 불릴 만큼 똑똑한 아이였지만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우수한 학생들 사이에서 점점 뒤쳐지다 결국 삼류 지방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의 모습으로 우울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던 마사야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어린 시절 즐겨 찾던 동네 빵집 주인이자 희대의 연쇄살인마인 하이무라 야마토가 보낸 편지를 받은 마사야는 고민하게 되지만 결국 그를 찾게 되고, 그로부터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지만 마지막 아홉 번째 살인만은 누명이니 이를 벗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마사야는 학업을 제쳐두고 그의 과거 지인들, 이웃들, 심지어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까지 찾아다니며 조사를 하게 된다.

 

마사야가 하이무라를 찾아간 이유는 참 단순한데 아직 신동이던 자신의 모습만을 알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의 그는 자기 주관이 모호하고 주변에 휩쓸리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이무라의 의뢰를 받아들여 조사를 진행하면서 점차 자신감 있고 대외적인 성격으로 변화하게 되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잠시 잊고 있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이무라는 위에서는 아홉 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건 여덟 건이지만- 하지만 실제로 그의 손에 희생된 피해자는 스무 명이 넘는다. 검찰에서 어차피 아홉 건만으로도 사형 판결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아 확실한 사실만으로 기소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그가 피해자를 선정하고 범행을 저지르는데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와 성범죄는 너무너무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잔인한 묘사가 많지는 않지만 일단 묘사했다하면 너무 끔찍하고 그 대상이 너무 힘 없는 어린 아이라서 끊임없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마사야는 왜 하이무라가 굳이 어린 시절 손님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러한 조사를 하게 하는지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긴 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조사를 거듭하면서 자신과 하이무라 사이의 어떤 관계에 대해 알게 되며 더 이상 제삼자의 입장에서 덤덤하게 조사할 수 없게 된다. 이 시점에서 독서를 한 번 멈췄는데 정말이지 하이무라의 끝없는 악의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이코패스라지만 설마,, 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적자면 그의 악의는 나의 상상 이상이었다.

 

하이무라라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작가가 그리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명한 사이코패스의 모습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러면서 사이코패스의 특징도 그의 범행에 대한 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조사하다보면 그에 대한 평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웃들은 한결같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그의 위험성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온화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지만 그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 실제로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증언들이었다.

 

<사형에 이르는 병>은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처럼 마사야라는 화자를 내세워 하이무라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지나 어떻게 처음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연쇄살인으로까지 이어졌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에게 매혹당하고 심지어 그와 동화되어 갔는지까지. 연쇄살인범에 대한 섬뜩한 심리묘사가 백미이긴 하지만 -정서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그만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국내에 출간된 '구시키 리우' 작가의 첫 작품인데 꽤 충격적이었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쉽게 손에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이러한 이야기가 소설 속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잔인하고 뒷맛이 씁쓸한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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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2 -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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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나름 기분 좋고 통쾌하게 읽었던 한자와 나오키의 후속작 "한자와 나오키2 :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 1권에 대한 약간의 네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출판사의 책소개 -심지어 1권의 소개에서도- 이 정도의 내용은 만날 수 있으니 적어보자면, 1권에서 통쾌하게 복수에 성공하고 도쿄 본부 영업 2부의 차장이 된 한자와가 다시 한 번 큰 벽을 맞닥뜨리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한자와는 갑작스럽게 은행으로부터 2백억의 융자를 받았음에도 적자를 내서 부실 채권으로 분류될 위기에 처한 '이세시마 호텔'에 대한 조치를 담당하게 된다. 금융청에서는 은행에 대한 감사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세시마 호텔을 부실 채권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자 위기를 느낀 은행에서 지난 융자 사건에서 활약한 한자와에게 이 어려운 임무를 맡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에는 자신의 책임이 일부나마 있었던 일이었던데 반해 이번에는 오로지 다른 쪽에서 터진 문제를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인데 한자와에게 지어진 책임의 무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은행 내의 파벌 싸움에의 여파까지 더해져 한층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된 한자와. 과연 이번에도 통쾌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이번 한자와 나오키 2권은 좋게 말하면 지난 1권의 성공 요인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어 확실히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어느 정도의 흥행이 보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나쁘게 말하면 1권의 성공에 안주해 이를 답습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다. 시리즈물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한자와 나오키는 한층 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도 스토리를 일직선으로 늘어놓는다면 거의 평행선 수준으로 비슷하지 않을까? 한 가지, 은행의 합병에 따른 파벌 싸움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일본 소설에서 배경이 회사든 은행이든 경찰서든 신문사든 이런 파벌 싸움은 너무 많이 접했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대학생 때 취업캠프에서 모의 면접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대기업 인사 담당 직원 등 실제 실무를 담당하는 분들과 다른 친구들 앞에서 세 명씩 면접을 했었다. 그 때 내 옆 자리 친구가 받은 질문이 "만약 상사가 업무적으로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부당한 요구를 하고 당신이 그것을 거절하지 못해 일조했는데 이 사실이 들통나 감사팀으로부터 이 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친구는 "상사의 요구였다고는 해도 자신이 결재문서를 올린게 맞다면 모두 제 책임이라고 하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것이 그 담당 직원으로부터 굉장히 모범적인 -어찌보면 당연한?- 답변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 때는 내가 아직 어리고 세상을 잘 몰라 이러한 답변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나 싶었는데 지금 다시 떠올려도 아니, 그건 좀 부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이가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왜 그 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생각해보니, 한자와 나오키는 지난 번 저 상황을 그대로 겪었고 실제로 자신이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이 자신의 책임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이러한 일들이 실제 회사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나도 회사에 다니며 비슷한 일을 겪는 다른 직원을 본 적이 있고, 스스로 겪은 적도 있다- 정말 억울하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울분을 삼키는 것이 요즘 직장인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할 말은 하며 상사의 입을 막고 감사팀과 싸우는 한자와 나오키를 보면 대리 만족이랄까, 통쾌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

 

이번 2권은 '이세시마 호텔' 재건의 임무 외에 1권에서 안타깝게 '파견'을 나간 '곤도'의 이야기가 한 축이 되는데, 곤도가 파견을 나간 '다미야 전기'가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권에서 단순히 파견된, 그래서 이제 은행원으로서는 거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곤도가 이번에 힘겹게 그리고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게 다미야 전기에서 자신의 은행원으로서의 프라이드를 되새기는 모습에 한자와 나오키가 통쾌하게 복수하는 모습 이상으로 희열을 느끼게 된다. 2권의 부제인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는 이번만큼은 곤도에게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리뷰를 쓰기는 다소 부정적으로 썼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가 없는가 생각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1권에 비해 속도감도 있고 여전히 판타지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한 한자와 나오키의 모습이 주는 카타르시스 역시 부족하지 않다. 어찌되었건 팍팍한 삶, 팍팍한 회사 생활 속에서 어깨 펴기 힘들고 바른 목소리 내기 힘든 직장인들은 이렇게라도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데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강력하게 한 방 날리며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한자와에게 다시 한 번 시련이 닥칠 것을 암시하는 결말은 다음 권 역시 기대하게 만든다. 과연 3권은 2권처럼 즐거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주게 될지 아니면 일격필살!의 만족감을 주게 될지 결국 또 궁금해하며 책을 손에 잡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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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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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책을 아주 많이 읽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가가 주는 '특징'이라고 할 만한 점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작가의 읽다보면 '음, 미쓰다 신조의 책이군' 하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호러 작가라는 점도 있고, 적어도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이 작가가 공통적으로 자아내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미쓰다 신조의 책이라고 알고 읽지 않았으면 그의 책이라는 것을 몰랐을 지도 모를 책을 만났다. 바로 "검은 얼굴의 여우"이다.

 

전후의 불안정한 상황, 건국대학의 졸업생인 '모토로이 하야타'는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우연과 더불어 '아이자토 미노루'와의 만남으로 일본 내에서도 아주 힘든 일에 속하는 탄광에서 일하게 된다. 힘들고 익숙하지도 않고, 소위 '먹물 좀 먹은' 자신을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선에도 나름대로 적응해서 일하던 그였지만 갑작스런 갱도의 낙반 사고와 이어지는 죽음으로 마을의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마을을 휘감은 어두운 기운과 탄광촌에 전해지는 '검은 얼굴의 여우'의 존재. 과연 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참 신기한 소설이다. 미쓰다 신조 답게 호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는 하는데 자못 그 느낌이 다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로 인한 공포가 없지는 않지만 그 존재가 크게 도드라지지 않고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미쓰다 신조가 써내려가는 그 당시 상황의 암담함이 주는 공포이다. 심지어 그것이 일제 강점기 하에 일본이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하고 그들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사실 '다뤘는지'라고 쓰는 편이 더 맞을 듯 할 정도이지만,,)에 대한 부분이라서 더욱 길이 와닿는 면이 있다. 미쓰다 신조는 이러한 어두운 역사의 단면을 '모토로이 하야타'라는 다소 이질적인 지식인의 눈을 통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이 비극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소설 전반의 분위기는 호러의 느낌을 띠고 있지만 미쓰다 신조의 책 답지 않게(?) 이 책은 사회파 미스터리에 훨씬 더 가까운 책이다. 그것이 현대의 어두운 면이 아닌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담고 있고 이를 일본인 작가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솔직히 감탄스러웠다. 그 당시의 상황이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잔인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불합리했다는 것을 우리 역시 잘 알고 있지만 이를 일본인 작가의 글로 만났다는 점에서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 이 말 역시 한국과 일본에 모두 해당하는 말이겠지 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상당히 사회파적인 면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다고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가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했느냐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다. 소설 속에서는 연쇄적인 죽음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사고인지, 자살인지, 살인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도 보이지 않아 혼란스럽기만 하다. 또한 탐정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모토로이 하야타가 익숙하지 않은 탄광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고 주변의 도움 없이는 어느 것 하나 풀어나갈 수가 없다. 이러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동기와 더불어 그 죽음들이 가지는 의미가 그 당시의 시대 상황과 이어지게 된다. 사실상 강렬한 동기를 생각하면 범인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지만 어떻게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그 장소의 특징을 최대한 살린 트릭도 꽤 인상적이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감탄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미쓰다 신조는 참 지능적이고 치밀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러적인 분위기의 조성과 사회파 미스터리적인 메시지에 이어 소설적인 재미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있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 여운이 떠나지 않는다. 아마 같은 시대 상황을 놓고 한국인 작가가 썼다면 이런 소설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은 일본인 작가가 자신이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일본인의 시점'에서 책을 썼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되었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아주 묵직하게 울림을 주는 좋은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이 시리즈라는 점에서 한 번 더 놀라움과 함께 반가움을 가지게 된다. 또 다른 상황에 놓인 모토로이 하야타를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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