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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ㅣ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평점 :
나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플라스의 마녀>. 이공계 출신 작가답게 이번 책은 그의 이과적인 지식을 아낌없이 보여주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작!" 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비해 은근히 평이 좋지 않았던 책이라서 계속 미루고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다 이 책의 프리퀄인 <마력의 태동>이 출간되고 은근히 궁금해져서 손에 들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평이 어느 정도 맞았다는 느낌이다.
이야기는 '우하라 마도카'가 어머니와 같이 할머니댁에 갔다 우연히 발생한 토네이도로 어머니를 잃으며 시작된다. 마도카의 아버지는 그 날 한 소년의 뇌수술 일정이 있어 사고를 피하게 된다. 이윽고 8년 후 시점은 바뀌어 전직 경찰인 '다케오 도오루'는 과거 자신이 경호 일을 할 때 알게 되었던 '기리미야 레이'를 다시 만나 마도카를 경호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즈음 황화수소로 인한 두 건의 사망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이 사건에 대해 알게된 마도카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도주를 감행한다. 한편 이 사건에 무언가 다른 내막이 있다고 여긴 형사 '나카오카 유지'는 사고 검증을 맡은 지구화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아오에 교수는 두 건의 사고 현장에서 우연히 마도카의 모습을 보게 되며 그녀에게 의문을 품게 된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답게 몇 줄의 줄거리로는 그 내용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사실 그 한계가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다소 부정적인 의미인데 소설에 곁가지가 많고 이야기의 결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느낌이 있어 어느 쪽에 중심을 두고 설명해야 할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뒷표지의 소개글만 봐도 '8년 전의 그날로부터 시작된 두 세계의 대결'이라며 8년 전 토네이도로 인한 사건을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언급하지만 과연 이곳을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 맞는지부터 의문이 생긴다. 소설 속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은 '황화수소 중독'인데 이 사건의 시작점은 절대 저 토네이도 사고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사건에서 마도카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는데 비해 그녀에게 무언가 중대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너무 무게중심을 두고 소설을 전개하다보니 메인 사건에 대한 무게감이 오히려 떨어지고 소설의 갈래가 나누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그로 인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 쪽에 무게중심을 온전히 두고 전개가 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쓸데없는 아쉬움도 조금 생겨났다.
또 한 가지,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감정 이입을 하기에는 어딘지 다들 애매한 점이 있다. 그것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성격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개개인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데에서 그들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다. 보통은 이야기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역할을 하는 형사도 자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려 온전히 행동하지 못하고 극초반에 등장해 무언가 한 건 할 것만 같았던 경호원 다케오도 이렇다 할 활약이 없다. 심지어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도 사건을 저지른 데에 대한 타당성을 온전히 찾기 어렵고 하다못해 트릭까지도 문제가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그래도 어딘가 명쾌한 결말이 있겠거니 하고 꿋꿋하게 읽었는데 결말은 실로 아쉬움만을 남겼다. '라플라스'도 가져오고,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도 가져오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는 좋았는데 방정식 자체가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라서 그런지 소설 속에서도 이에 대한 해답은 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써먹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소설 속 트릭에 대한 해답으로는 한없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역자 후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이면서도 태작이 드문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여기에서 '태작'은 '졸작'을 말한다. 어찌 보면 이만큼 히가시노 게이고를 꿰뚫는 말도 없는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진짜 거의 모든 작품이 평균 이상은 한다.(솔직히 이번 작품도 실망하긴 했지만 온전히 재미만을 놓고 보자면 중간 (아주 약간) 이상은 간다) 그렇지만 '태작이 드물다'라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대작이 많다'고 표현하기는 아쉬운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기도 하다. 뭐 모든 작품에서 평균 이상을 하는 작가와 대작과 졸작을 오가는 작가, 평균을 내어보면 전자가 우세할 듯도 한데 (대작과 졸작의 중간이라면 그야말로 평균 수준일 테니까) 독자로써 매력을 느끼는 작가는 어느쪽일까?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아쉬워하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