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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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는 읽기 전에는 달달한 연애편지에 관한 책인가,, 하는 상상을 했을 정도로 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예뻐서 설마 이런 내용이라고는 단 1%도 생각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그런데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부분만 읽었을 뿐인데도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설 [편지] 속 '편지'는 살인자로부터 매달 오는 편지이다.

'나오키'는 홀로 힘들게 일을 하며 살아가는 청년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나오키를 평범하게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매달 그에게 배달되는 편지 한 통이다.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수감된 나오키의 형 '츠요시'. 자신의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형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나오키였지만 살인자의 동생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 가득한 시선에 점차 형에 대한 원망만이 늘어간다.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도 형의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 그는 달라진 주변의 시선에 점차 좌절하게 된다. 가해자도, 피해자의 가족도 아닌 가해자의 가족의 눈으로 바라본 편견 가득한 세상의 모습은 독자에게도 끊임없이 생각할 이유를 안겨주고 있다.

야쿠마루 가쿠의 [우죄]를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범죄를 저지른 후 죗값을 치르고 나온 사람은 더 이상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범죄자에 대한 비난의 범위는 어디까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등의 고민은 이미 여러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임과 동시에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당연히 죗값을 치른 자는 사회가 감싸안아야 한다고 말할 테고, 범죄자 자신이 아닌 가족들은 죄가 없으니 차별하거나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내 주변 가까운 곳에 '살인을 저지른 자의 가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사실을 모르던 때와 똑같이 대할 자신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소설 [편지]를 읽으면 나오키가 형이 살인자라는 이유로 겪는 아픔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작은 희망의 불씨에도 매달려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 교도소 안에서 자신에게 아주 가끔 오는 동생의 편지만이 낙이고, 자나깨나 동생의 삶을 걱정하는 형의 모습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주변에 받아들여진다든지, '형의 잘못은 형의 잘못일 뿐 너의 잘못은 아냐!' 라고 말하며 무조건적으로 나오키를 감싸안지 않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현실적이고 타당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나오키가 형의 죄로 인해 당하는 차별과 편견, 부당함을 보면 안타깝고 '어떻게 나오키의 죄도 아닌데 이럴 수가 있지?' 라며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자신의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그의 잘못이 아니니 감싸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모순된 감정에 대해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오키가 일하는 회사 사장의 입을 빌려 '살인자의 가족에 대한 차별은 당연한 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떠올려 보면 '차별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고민과 생각이 묻어나는 것 같아 소설의 공정함과 현실적임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오키가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도 완전히 모든 것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작가 역시 명확한 답을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모든 사건이 끝난 이후, 그것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가족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그리고 있어 기승전결에 어떤 예기치 못한 반전이 있다거나 모든 것을 바로잡는 놀라운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을 엿본 것 같아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물론 아예 일조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끊임없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야만 하는 나오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을 반복할 뿐 명확히 답을 내리기 어려운, 참 안타까운 기분이다. [편지]는 명확하지 않아서 작가의 고민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만 같고,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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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전화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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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는 대표적인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이고, <돌이킬 수 없는 약속>으로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이 작가의 책은 만족도에 편차가 좀 있는 편이다. 데뷔작인 <천사의 나이프>나 작년에 읽은 일본 미스터리 중 최고로 꼽았던 <우죄>처럼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굳이 이런 무리한 설정과 전개를,,,' 하는 아쉬운 책들도 있었다. 이번에 읽은 <익명의 전화>는 과연 어느 쪽에 속하는 책이 될지 일단은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아사쿠라'는 원래 형사였지만 3년 전에 어떤 혐의를 받게 되어 경찰을 그만 두고 아내와도 이혼한 채 홀로 지내왔다. 어느 날 이혼 후 연락조차 하지 않던 딸로부터 전화가 와서 의아했던 아사쿠라는 전처인 '나오미'에게 딸의 행방을 묻게 되고 그 과정에서 딸인 '아즈사'가 누군가로부터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도 전직 경찰이면서 아버지 역시 경찰의 고위 간부였던 나오미는 경찰에 알리자고 하지만 왜인지 아사쿠라는 경찰에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하고 스스로 유괴범을 잡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시간이 흐를 수록 아즈사의 유괴의 배경에는 3년 전의 사건이 연관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아사쿠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소설은 전반적으로 아사쿠라가 과거 경찰이던 시절 관계했던 전과자인 '키시타니'의 힘을 빌려 자신의 딸을 납치한 범인의 요구를 수행함과 동시에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부투하는 모습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3년 전에 있었던, 마약 중독자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7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관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아사쿠라가 그 때 비리 경찰이라는 누명을 쓰면서까지 숨겼던 '어떤 사실'이 딸이 납치된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네타 아님)

"난 그 일로 모든 것을 잃었어.

소중한 가족도, 긍지를 가지고 있던 직업도 전부 다 말이야.

하지만 내 행동에 후회하지는 않아."

 

 

일단 전개를 보면 범인이 3년 전의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어서 아사쿠라의 딸을 납치하면서까지 아사쿠라를 움직이게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기 때문에 중반까지 제법 속도감 있게 넘어가는데 중반이 넘어가면 반복되는 전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이 늘어서 그런지 오히려 늘어지는 전개에 속도감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또 각각의 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이 부족해서 '아니,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소설 속에서 밝혀진 그 이유가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 사실 좀 아쉬운 느낌이 있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런 결말을 맞이하기까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했는지, 복선이 충분했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긍정적인 평을 내리기 어렵다. 물론 의외의 범인, 의외의 사연이 놀라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밝혀졌을 때 복선들이 맞아떨어지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면 정말 만족스러운 놀라움을 주는 것에 비해 그런 것이 없이 그저 너무도 의외의 결말이라면 타당성이나 개연성에서 많은 아쉬움을 주는 것 같다. 야쿠마루 가쿠의 <기다렸던 복수의 밤>을 읽었을 때 받았던 '굳이,,,?' 하는 느낌을 이번에도 받아서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야쿠마루 가쿠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것은 <우죄>처럼 사람의 심리를 깊이 다루는 책, 거기에 소년법과 같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재와 함께라면 그 무게감이 배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익명의 전화>는 전직 경찰과 전과자가각자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생동감 있게 범인을 추적한다는 것, 즉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야쿠마루 가쿠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치로 생각한다면 많이 아쉬움을 남긴 책이었다. 그래도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고 한 방이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차기작은 더 좋은 작품으로 출간될 거라고 또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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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도르래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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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조용한 무더위>를 읽고 이 시리즈에 관심이 가게 되어서 <녹슨 도르래>를 읽게 되었다. 사실 <조용한 무더위>는 재미있게 읽긴 했어도 단편집 치고는 속도가 잘 나는 책은 아니었는데 의외로 <녹슨 도르래>는 장편인데도 가독성이 훨씬 높은 책이었다.

 

지난 책에 이어 여전히 '하무라 아키라'는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는 동시에 서점 2층에 자리한 백곰 탐정사의 탐정 역할도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의뢰도 없고 서점의 영업도 줄어들면서 생활고가 오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대형 탐정사의 하청을 받아 일을 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새롭게 받게 된 일은 아들로부터 자신의 어머니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하게만 보이던 의뢰는 조사 대상인 할머니가 누군가와 다투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과거의 교통사고, 그리고 현재의 화재에 이르기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사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은 과연 이 사건을 무사히 해결할 수 있을까?

 

초반에는 전에 읽은 <조용한 무더위>를 떠올리며 좀 가벼운 내용이지 않을까 했는데 초반 분위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로 돌변하게 된다. 조사 대상인 '이사와 우메코'가 '아오누마 미쓰에'와 다툼 끝에 부상을 입히게 되고 하무라는 두 사람 사이의 화해를 담당하게 되는데 예상치 못하게 미쓰에의 집에 들어가 사는 것으로 변하게 된다. 미쓰에의 손자인 '히로토'는 과거 아버지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아버지는 사망하고 자신은 크게 다친 데다 당시의 기억까지 잃게 되어 탐정인 하무라에게 그 날의 진실에 대한 조사를 의뢰를 한다. 그렇지만 그 때의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지 이들에게는 끊임없는 불행이 찾아오게 된다.

            

                

"때로 인생에 찾아오는 멋진 순간......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그들은 내게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현실이고, 현재의 내 쪽이 환상처럼 생각되었다."

 

 

아무리 불행한 탐정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불행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행한 데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마저 불행이 찾아오니 과연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다.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주변에는 진실을 덮기 위해 위해를 가하거나 혹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아니, 코지 미스터리(일상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면서 이렇게까지 하드보일드 해도 되는 걸까?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처럼 전개되는 사건에 책장은 끊임없이 넘어가고 결국 전개와 결말이 궁금해서 금세 다 읽게 되었다. 아니, 혹시 코지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야미스(읽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미스터리) 쪽 아닙니까!? 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안타깝고 우울한 마음은 확실히 들었다.

 

예상치 못한 스토리 흐름과 예기치 못한 결말까지, 그리고 결말로 다다르는 과정의 치밀한 복선과 회수까지 확실히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그 매력이 돋보이는 작가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시리즈물이긴 하지만 스탠드 얼론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 책만 읽어도 스토리 이해에 전혀 지장이 없다. 그렇지만 매력적인 시리즈인 만큼 꾸준히 전후 작품들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과거에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으며 이 작가는 사실 주인공을 미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이 불행의 끝판왕이었는데 와카타케 나나미 역시 주인공을 미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행한 탐정을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고 하무라가 좀 더 행복한 에피소드를 만나게 될 때까지 꾸준히 작품이 출간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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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무더위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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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타케 나나미의 책은 국내에 나름 오래 전에 몇 권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는 다 읽은 책도 있고 읽다 만 책도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기억에 크게 남는 작품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코지 미스터리'라고 불리는 일상 미스터리 보다는 좀 더 묵직한 작품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데 -실제로 <어두운 범람>은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읽은 책이었건만ㅠ- 작년에 <조용한 무더위>가 출간되면서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가 올해 <녹슨 도르래>가 출간되면서 오! 계속 시리즈가 나올 모양인데!? 하며 일단 첫 번째 작품을 손에 잡게 되었다...라곤 하지만 실제로 이 시리즈 자체가 <조용한 무더위>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전작을 짐작케 하는 부분들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어차피 일상적인 미스터리이고 본작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책으로 시작해도 무방하다,고 서두를 마치고 본 내용으로 들어가기로..

 

주인공인 '하무라 아키라'는 살인곰 서점의 아르바이트 직원이자 같은 건물 2층에 '백곰 탐정사'라는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탐정이기도 하다.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저마다 더위에 지쳐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를 여름, '터프하고 불운한 명탐정'의 힘겨운 여름 나기가 시작된다.

 

소설은 연작 단편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소설 마지막의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 중 '코지 미스터리' 부분을 읽고 다시 책의 내용을 돌이켜 보면 절로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코지 미스터리는 '폭력 행위가 비교적 적으며, 끝 맛도 깔끔한 미스터리를 이르는 말'인데 이 책은 제법 폭력적이고, 일상 미스터리 치고는 살인 사건도 서슴치 않고 있으며 끝 맛도 제법 불쾌한 단편들이 있다. 그렇지만 사건이 더운 여름날부터 추운 겨울날까지 계절감이 돋보이는 시간적 배경으로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로부터 출발하고, 거기에 작가의 기발한 상상과 독특한 인물이 어우러져 제법 평범하지 않은 형태의 미스터리로 전개되는 것이 제법 흥미진진했다.

 

시작부터 대형 교통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는 단편 '파란 그늘 - 7월'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사망한 피해자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의 가방이 없어졌는데 그 속에 있는 딸이 소중히 여기던 파란 수첩을 찾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불행한 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가방을 들고 유유히 현장을 떠난 범인. 그렇지만 버스가 전복된 사고에 목격자가 집중되어 승용차에 집중한 사람들이 거의 없어 범인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는데,, 과연 하무라는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

 

범인을 발견하는 과정이 다소 운에 의지하는 요소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추적하는 과정 자체도 흥미로웠고 첫 번째 단편 답게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도 참 좋았다. 그렇지만 끝 맛이 아주 찜찜해서 이대로 끝나지 않고 후에 다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그렇지 않아 조금 아쉬움이 남은 단편이기도 했다

 

두 번째 단편은 표제작인 '조용한 무더위 - 8월'인데 그 유명한 코난 도일의 작품 중 한 단편이 떠오르는 이야기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도무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의뢰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하무라의 탐정으로서의 능력도 유감없이(?) 발휘 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것까지 통찰력 있게 밝혀내는 것도 유쾌했다.(사실 너무 통찰력 있다 싶긴 했지만ㅎ) 단편인데 비해 복선도 제법 깔려 있고 회수하는 과정도 억지스럽지 않아서 이 정도 분량에 이 정도 이야기를 참 잘 였어냈구나 하고 감탄했던 단편이다.

 

단편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매 단편마다 각 달이 부제로 달려 있다. 위에 언급한 두 편 외에 다른 네 편의 단편도 비슷하면서 다른 느낌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400페이지 남짓한 한 권의 책에 여섯 편의 단편을 넣은 것 치고는 제법 한 편 한 편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밀도가 낮지 않다. 그런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다 보니 단편의 길이에 비해 속도감이 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단편집 치고는 가독성이 높은 편은 아닌데 그런 만큼 한 편의 단편을 읽은 것 치고는 만족감도 더 컸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살인곰 서점에서 매달 열리는 미스터리 페어인데 우연의 일치(?)로 그 달에 발생하는 사건과 묘하게 연결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규모 개인 서점에서는 이런 식으로 테마 페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월의 주제에 맞는 미스터리들이 대거 등장하고 책의 마지막에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에서 다시 한 번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어 다양한 미스터리를 추천받을 수도 있다.

 

한 권에 책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꼭꼭 눌러 담아 쓴 책 <조용한 무더위>. 기존에 읽었던 와카타케 나나미의 책과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전에는 조금 읽다 포기(?)해버렸는데 이제는 다음 작품도 기대를 하게 되고 과거의 이야기들도 궁금해진다. 일단 얼른 <녹슨 도르래>부터 이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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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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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 최초로 전 세계 동시 출간된 책 <녹나무의 파수꾼>. 제목만 들어서는 도저히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고 줄거리만 봐서는 '판타지인가,,,' 싶은 설정의 책이었는데(히가시노 게이고의 판타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1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잇는 또 하나의 감동 대작'이라는 선전 문구에 혹해서(?) 빠르게 읽게 되었다.

이야기는 주거 침입, 기물 파손, 절도 미수 등의 죄목으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 '레이토'가 그를 구해주는 대신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는 치후네의 요청을 수락하고 그에 따라 '녹나무'의 파수꾼 견습이 되면서 시작된다. 근방에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목으로 유명한 녹나무의 파수꾼의 되었지만 그것이 진실인지도 알 수 없고, 그믐날과 보름날에 유독 '기념(소원을 비는 것)'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알 수 없는 등 모두가 미스터리인 상황이지만 나름대로 성실한 파수꾼 역할을 한다. 하지만 '유미'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기념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약간의 일탈을 겸해 협조하기도 하고 치후네로부터 일을 배우며 녹나무의 비밀에 대해서도 점차 알게 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점점 성장해나간다. 녹나무는 실제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일까? 그리고 그믐과 보름에 찾아오는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파수꾼인 레이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크게는 유미가 자신의 아버지의 기념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치후네가 왜 파수꾼의 역할을 레이토에게 맡겼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가 되고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 레이토는 점차 녹나무의 비밀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실제로 가장 흥미로운 것이 왜 치후네와 레이토의 관계에 대한 부분인데,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전개되는 대신 유미와 유미 아버지,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들이 전개되면서 마치 평행선처럼 함께 풀려나간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답게 여러 사람의 서사를 다루고 있는데 그것이 서로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정말로 신비롭다. 여전히 복선을 장치하는 것도 능숙하고 회수하는 것도 깔끔한 것이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소설의 기본 설정 자체가 흥미로운데 반해 스토리 전개는 제법 예측이 가능한데 - 달리 말하면 조금은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평행 선상에 놓고 전개를 시키는 데다 녹나무의 비밀이라는 큰 수수께끼를 담고 있어서 그런지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러한 미스터리적인 요소들을 제외하고 레이토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맞춘 성장소설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때때로 흐뭇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쑥스러움을 감추고 툭툭 내뱉듯이 하는 말에 담긴 따뜻함이 여과없이 전달되어서 점점 소설이 마음 속에 들어오는 듯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과적인 면모가 강한 작가답게 감정보다는 논리가 앞서는 소설이 많았는데 이렇게 감성적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게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소설이라고!?'

한편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이런 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며 조마조마한 부분이 있었는데 다행히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결말까지 정말 완벽했다, 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녹나무가 가진 신비한 힘을 통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이루려고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긴 저마다의 마음이라는 것이 나지막한 울림처럼 와닿았다.

읽는 내내 시간을 잊을 만큼 즐거웠고, 때때로 미소를 지을 만큼 흐뭇했고, 감동적인 한편 괜히 마음이 울컥했던 소설 <녹나무의 파수꾼>. 여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참 많이 읽었고 재미있게 읽은 작품도 많긴 했지만 막상 '히가시고 게이고의 작품 중 어떤 책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어?' 라고 물으면 멈칫! 하게 되었던 나였는데 이제는 머릿속에 <녹나무의 파수꾼>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진짜 너무 좋고 너무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레이토와 치후네의 캐릭터가 너무너무 매력적이라서 -물론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ㅠ- 언제고 다른 소설에서라도 꼭 다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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