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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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일상을 의심하기 시작한 여자와 불행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분투하는 두 여자의 삶이 교차하며 변해가는 과정"

 

실로 오랜만에 읽는 한국 미스터리이자 김진영 작가의 데뷔작 [마당이 있는 집]. 워낙에 추천하는 글도 많이 봤고, 서점에 가도 매대에서 유독 눈에 띄는 책이어서, 그리고 일단 얇은 책이라 금방 읽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의사 남편에 부유한 가정, 누가 봐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주란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며 이 곳을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첫 집들이에서 친구들이 마당에서 악취가 난다고 이야기하며 그녀의 이상적인 공간에는 금이 가기 시작하고, 궁금증과 불안에 마당을 파다 그녀가 발견한 여자의 손으로 보이는 것에 그녀가 가진 남편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편 제약회사 영업직인 남편을 둔 상은은 늘 남편에게 맞고 시달리다 이혼을 결심하지만 하필 그 때 임신을 하면서 이혼이 여의치 않아진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작스레 받은 경찰의 연락, '남편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일견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는 두 여자의 삶이 교차하는 점은 공교롭게도 '죽음'이다. 주란의 집 마당에서 시체로 발견된 여자와, 저수지에 낚시를 하러 갔다 시체로 발견된 상은의 남편. 이 두 죽음은 두 여자의 삶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남편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뢰하고, 사소한 것 하나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던 나약한 주란은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그 뒷조사를 하게 되고, 늘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던 상은은 어느새 주란의 남편을 협박하며 자신의 밝은(?) 앞날을 계획하게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여자가 묘하게 닮아 보인다는 것이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자신이 의심을 품는 것에 대해 나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나, 점차 남편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도 비슷하다. 마지막에 가서는 더욱 비슷하게 보인다. 아니, 오히려 역전이라고 해야 하나?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마당이 있는 집 중에서,,)

 

[마당이 있는 집]은 두 여자의 시점이 교차되며 전개되는데, 그 전개 과정이 아주 짜임새 있다거나, 매우 당위성이 있다거나 한 소설은 아니다. 주란의 변모는 언니의 죽음이라는 복선이 있다고는 해도 다소 과격한 면이 없지 않고, 반전도 -그에 이르는 몇몇 복선도-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자의 심리적인 부분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고, 무엇보다 이 책, 페이지터너로써는 부족하지 않다. 이른 부분에서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보이면서도 궁금증을 끝까지 가져가기 위한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다소 거친 느낌은 있지만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에서는 꽤 만족할 수 있었다.

 

평범한 듯 보이는 가정의 이면에 숨은 어두운 사연과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인 '마당'을 통해 흥미롭게 전개한 [마당이 있는 집]. 사실 결말 자체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사실 이런 류의 결말은 정말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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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스 컷 - 살인을 생중계합니다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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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사회파 미스터리같은- 일본 소설책을 읽으면 그 시대의 가장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때때로 그것은 사형제도이기도 하고, 인간 복제이기도 하고, 학교폭력이나 왕따이기도 하다. 최근 읽은 책들로 미루어 요즘 화제가 되는 것은 SNS를 기반으로 한 관계인 듯 하다. 아무래도 전세계적으로 인터넷이 발달하며 자연스레 관계도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이 더 활발해지고,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심지어는 얼굴도 모른 채- 주고받는 대화는 오프라인보다 좀 더 직설적이고 때로는 신랄하다. 또한 언제는 끊을 수 있는 관계이기에 주저함도 없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들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여러 모로 유사한 일본이기에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밀실살인게임] 등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우타노 쇼고의 신작 [디렉터스 컷]을 운 좋게 출간 전 가제본으로 받아서 읽을 수 있었다. 제목과 더불어 부제인 '살인을 생중계합니다.'라는 문구에서도 '방송'과 관련된 내용이겠구나,,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자연스레 최근에 읽은 동 출판사의 [네 번째 피해자]가 생각났다. 유사한 소재를 사용한 만큼 두 소설은 꽤 비슷한 면이 있다. 특종을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주인공, 그리고 방송사 내의 권력 다툼이나 알력 등,,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디렉터스 컷] 쪽은 방송사 내 문제도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는 방송과 SNS 간의 대결구도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한정된 인원으로 취재 및 편집 등을 거쳐 방송을 하는 것과는 달리 유튜브를 위시한 SNS를 통한 개인 방송은 요즘은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는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촬영하여 실시간 업로드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면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만큼 방송사에서도 위기감을 가지고 더 자극적이면서 새로운 소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제서야 본론으로 들어가서, 주인공인 하세미 준야는 TV 방송 제작사의 디렉터이다. 그렇지만 제작사는 주로 방송국의 하청을 받아 일을 하기 때문에 입지도 좁고 보수나 대접에서도 큰 차별이 있으며 직업의 안정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늘 특종에 목마른 하세미 준야는 친한 동생인 고타로에게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도록 시킨 후 이를 마치 자신이 발견한 특종인 양 꾸며 방송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타로가 누군가에게 피습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하세미는 이를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특종으로 보고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편 평범하게 미용실에서 일을 하는 청년으로 보이는 가와시마 모토키는 사실 직장에서는 따돌림 -혹은 괴롭힘- 을 당하고 있고, 집안 환경 역시 그를 옥죄어오듯 어지럽기만 하다. 그는 팔로우도 팔로워도 없는 SNS를 통해 울분을 토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지만, 지하철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며 인생이 180도로 뒤집히게 된다.

 

실제로 이야기는 하세미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어느 모로 보나 주인공이라고 할만 하지만 머릿 속에는 그저 특종에의 욕망밖에 없고, 심지어 타인의 위험한 상황마저 어떻게 하면 특종으로 이어지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주판만 굴리는 이 남자는 도통 긍정적인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공감 역시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반면 고타로를 습격한 범인인 가와시마 모토키는 어느 정도 그가 처한 상황과 그를 그 상황까지 몰고 간 불운에는 동정이 간다.(물론 이어지는 행위에는 조금의 동정도 가질 수 없고 가져서도 안 되겠지만..) 최근에 소네 케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을 읽었는데 그 소설처럼 [디렉터스 컷]에도 '좋은 사람'은 정말이지 찾아볼 수가 없다. 특종에 눈이 먼 디렉터, 화제성있는 사건에 호응하며 부화뇌동하는 누리꾼, 자신의 안위 혹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따돌리며 기분 전환을 하는 직장인 등등,, 사건은 가와시마 모토키로부터 시작되었고, 하세미 준야가 불을 붙였지만 실제로 그 불길을 키운 것은 정말 여러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문제들을 우타노 쇼고는 마지막까지 신랄하게 묘사한다.

 

 

350페이지 남짓의 많지 않은 분량이고, 전개가 스피드해서 정말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간다. 다만 아무래도 [디렉터스 컷]의 소재나 내용의 특성상 다소 산만한 구성은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묵직하게 세태를 비판하거나 깊이있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과 사회적 문제의 균형을 끝까지 유지하는 데는 역시 우타노 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벚꽃~~]과 [밀실살인게임] 이후 우타노 쇼고의 대표작을 떠올리면 다소 아쉬운 느낌이었는데, [디렉터스 컷]을 시작으로 꾸준히 좋은 책이 많이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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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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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로 처음 알게 된 작가 오타 아이의 후속작 [잊혀진 소년]. 전작이 워낙 임팩트도 있었고, 속도감도 있으면서 다 읽은 후 기억에 오래 남았고, 무엇보다 주요 캐릭터들이 꽤나 마음에 들어서 망설이지 않고 후속작도 읽게 되었다.

 

전작에서 반은 한량같은 모습이던 야리미즈는 어엿하게(?) 흥신소를 차리지만 운영이 쉽지 않아 직원의 월급주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이 때 가뭄의 단비같이 찾아온 것은 너무 황당하게도 '23년 전 사라진 아들을 찾아달라'는 어머니의 의뢰. 급한 마음에 받아들였지만 단서도 희박한 23년 전의 실종 사건을 수색하기란 쉽지 않고,, 그 와중에 친구이자 현재 발생한 소녀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 소마가 23년 전 사라진 소년 '나오'와 어린 시절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와 공동전설을 펼치게 된다. 과연 어린 소년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23년 전의 사건과 현재 실종된 소녀의 사건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범죄자] 때도 그랬지만 오타 아이라는 작가는 초반 강력한 궁금증을 던짐으로써 일단 책을 손에 든 독자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사실 그것이 책 전반에 크게 중요한 역할이 아니라고 해도, 일단 강력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부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잊혀진 소년] 역시 23년 전 금요일에 사라진 소년이 왜 토요일 시간표를 챙겼을까,, 소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의문의 표식 '// = ㅣ' 은 무엇이며, 이 표식은 왜 현재 소녀가 실종된 사건에서도 발견되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으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결국 새벽 3시까지 다 읽고야 말았다.

 

기본적으로는 어린이의 연쇄 실종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 근간에는 '원죄'가 깊숙히 박혀있다. 무고한 한 사람이 살인범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목격자도, 증거도, 하다못해 긴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공적에 눈이 멀어 목격자의 증언을 묵살하고, 자신만의 아집에 사로잡혀 무고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데 크고 작게 일조한 사람들은 단 1%의 죄책감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 사람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뒤집힌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죄도 없이, 너무도 쉽게,,,

 

"원죄라는 것이 확인된 후, 누가 언제 어떤 식으로 기자회견을 열 것인가, 경찰서 간부들은 오직 그 몇 가지를 결정하느라 부심했을 것이다."  (잊혀진 소년 중에서,,)

 

원죄로부터 비롯되는 이 소설의 비극은 시작부터 처참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순간이 여러 차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 바로 자신들의 보신만을 위해 원죄의 희생양인 피해자를 외면하다못해 이용하려 했을 때였다. 정말 상황마다 분노하게 만드는 포인트는 많이 있지만 정말 육성으로 '아,,,,'하고 탄식마저 이끌어낸다. 이것은 소설이라고, 비현실이라고 믿고 싶지만 과거의 여러 사건들을 돌이켜 생각하며 읽다보면 정말이지 날카로우리만큼 현실적이다.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 그러나 자네는 정말 세상이 그런 사회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 열 명의 진범을 놓쳐도 상관없는 그런 사회 말일세. 그렇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세상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지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자네도 아주 '드물게'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대개 원죄가 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은 일등으로 복권에 당첨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알고 있어. ~ 그보다는 오히려 놓치고만 진범 열 명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해를 끼칠까 봐 걱정하지.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범인을 체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네"  (잊혀진 소년 중에서,,)

 

이 책의 중심이 되는 생각할 거리이다. 기본적으로 모두 말로는 당연히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 된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현실을 생각해보면 섬뜩하리만치 이러한 의견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형사는 실적에 눈이 멀어 일단 혐의를 두고 스토리를 짜고, 검사는 애매한 사건에는 불기소를, 그렇지만 뻔한 사건에는 기소를 남발한다. 물론 그 중에는 높은 확률로 진범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낮지 않은 확률도 무고한 사람도 섞여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아니라고, 그러니 범인만 잡으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반대로, 심증은 있지만 증거도 부족하고 증인도 없으니 무죄!!라고 단언할 수는 있을까??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만큼이나 이 역시 명쾌하지가 않다.

 

소설은 이러한 의문을 좀 더 강력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전개가 된다. 또 중요한 시점마다 사사건건 엇갈리게 함으로써 더욱더 비극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원죄로 시작되어 한 가정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역시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옳다고 믿고 싶어진다. 결국은 내 생각은 그렇다. '드물게 발생하는 피해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그 피해자를 만든 자들의 비겁한 변명이 아닐까,, 과연 진심으로 사심없이 모두를 위한 마음으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툼한 볼륨만큼이나 재미를 보장하고, 다 읽은 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까지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단 두 권의 책 -범죄자는 상/하권으로 출간되었으니 엄밀히는 세 권일 지도,,- 으로 오타 아이는 믿고 읽는 작가가 된 것 같다. 앞으로도 더 많은 책이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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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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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야쿠마루 가쿠라는 작가에게 받은 느낌은 '첫째,  어느 책이나 평균 이상으로 재미있다.' '둘째, 그렇지만 소년법 혹은 복수를 주된 소재로 삼는 작가라 읽고나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이다. 특히 최근에 읽었던 [기다렸던 복수의 밤]이 너무너무 어둡고 우울했던 탓에 원래는 이어서 읽으려던 [돌이킬 수 없는 약속]도 쉽게 손에 잡지 못했다. 소설에서라도 좀 통쾌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 작가의 책에서는 단 한 번도 통쾌함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ㅠ_ㅠ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읽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책 소개에서부터 어두운 분위기가 풀풀 풍긴다. 15년 전, 주인공 무카이는 한 노인으로부터 15년 후 두 사람을 죽여주는 댓가로 큰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돈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그 약속은 기억 속에서 지워진다. 그러나 15년 후 한 통의 편지가 그의 삶을 뒤바꾼다.


"그들은 지금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무카이는 어두운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자신의 이름도 얼굴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 삶의 기반은 누군가를 죽이기로 약속하면서 받은 돈이었다. 15년 후에는 그 돈을 준 노인도 살아있지 않을 테니 일단은 받아들이고 모른 척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무카이에게 온 편지는 과거의 잘못을 담보로 현재의 삶을 뒤흔든다. 사람을 죽이면 자신의 현재의 삶은 지켜진다.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나의 딸이 위험하다. 하루하루 자신을 죄여오는 압박 속에서 무카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책을 읽는 내내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두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과연 그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전체적인 내용의 볼륨은 크지 않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무카이가 겪는 심리적인 압박과 고민은 결코 적지 않다. 당장 나의 삶과 내 딸의 목숨이 달려있는 상황에서, 또 과거에 이미 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숱한 잘못을 저지른 주인공의 입장에서 단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지금까지처럼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는 살인을 조금씩 정당화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며 읽다보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싶었다. 과거의 잘못이 큰 만큼, 현재의 삶이 행복한 만큼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무카이는 의외로 무척이나 망설이고, 끝도 없이 고민하고, 살인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작가의 다른 책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주제이자 이 책의 소개글에서도 볼 수 있는 '한 번 죄를 저지른 사람은 새 삶을 꿈꿀 수 없는 것인가,,'를 떠오르게 한다.


결말의 반전은 놀라움 반,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이 반인데 그러한 결말에 다다르기까지의 복선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왜?'에 대한 언급이 너무도 부족했던 탓에 결말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데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읽는 내내 가장 범인같은 사람이 사실은 범인이 아니기 위한 장치가 부족해서 그저 반전을 위해 그렇게 만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묵직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면서도, 결말까지 흥미진진하게 끌어가는 작가에게는 늘 감탄하게 된다. 370페이지의 책을 정말로 순식간에 다 읽었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고 읽고난 후에도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 역시 이 작가가 가진 매력인 것 같다. 믿고 읽는 작가가 된 야쿠마루 가쿠의 다음 작품 역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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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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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작가이다. 가장 좋아하는,,,이 아닌 것은 어느 시점부터 이 작가가 더이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기에는 내가 이 작가의 책을 너무 안 읽게 되어서 도저히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처음 이 작가를 알게된 후 [사신 치바], [오듀본의 기도], [골든슬럼버], [종말의 바보] 등 읽는 책마다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더불어 치밀한 복선 회수로 감탄을 자아내던 작가였는데, 어느 시점부터 책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 애쓰는 듯한 느낌과 함께 특유의 재기발랄함도, 복선 회수도 매력을 잃어만 가는 것 같았다. [SOS 원숭이]와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를 읽기 포기하고 그나마 완독을 했던 [마리아 비틀], 이 책을 계기로 이사카 코타로를 더 이상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재미있다'라고 느낀 것이 아마도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였던 것 같다. 그 이후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역시 즐겁게 읽었고, [캡틴 선더볼트]를 한 다섯 번쯤 읽다 말다를 반복하던 중(ㅠ_ㅠ) 새로 손에 잡게 된 책이 바로 이 [화이트 래빗]이다.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다 읽고 나서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 이사카 코타로의 초기 작품들과 참 비슷하다.


 


유괴를 생업으로 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우사기타 다카노리. 본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이 자신의 아내가 회사에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은 회사의 돈과 중요한 문서를 빼돌린 오리오를 찾아오는 것. 우사기타는 오리오의 발신기가 감지되는 가정집에 침입해 그 가족을 인질로 경찰에게 오리오를 찾을 것을 요구하고, 이 사건에 휘말린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두뇌싸움(?)을 벌인다,,,고 해야 하나,, 참으로 줄거리 적기 어려운 소설이다.


이미 일본에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 몇 위였더라,, 아무튼 빵빵한 수상이력을 통해 기대감을 한껏 증폭시킨 상태였다. 읽고난 후의 감상은 '읽는 내내 유쾌하다.'였다. 유괴사건이 이렇게 유쾌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즐거웠다. 또한 이사카 코타로의 초기 여러 작품들 -피쉬스토리,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등-  을 연상시키게 하는 것도 좋았고 또 읽다보면 유독 익숙하게 느껴지는 인물들이 있는 것도 반가웠다. 과거 이사카 코타로의 책들은 소소하게 겹치는 등장인물들이 있어 그의 책을 꾸준히 읽는 독자로하여금 또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그런 부분이 이 책에서 엿보인 것 같다. 또 조금은 예상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깜빡 속아넘어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치 역시 아주 매력적이었다. 주요 인물의 개성적인 모습과 적지 않은 등장인물을 흘려버리지 않고 끌고 가며 사건에 개입시키는 것, 그 흐름과 계속 함께 하는 오리온자리나 장발장(레미제라블) 등도 흥미로웠고,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ㅠ_ㅠ) 읽는 재미가 가득한 책이었다.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아주 오랜만에 이렇게 푹 빠져서 읽는 느낌이라 반갑고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서 이후 이사카 코타로 작품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마무리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정말 감개무량하다,,ㅠ_ㅠ 이사카 코타로는 역시 이사카 코타로구나,, 하고 느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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