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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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는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출간된 시기에 따라 작품에 대한 만족도에 편차가 큰 작가이기도 하다. 읽는 책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국내에 출간된 모든 책을 다 읽었던 시기도 있었고, 읽는 족족 실망해서 아예 읽기를 그만 두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초기 작품을 매우 좋아했고, 중기 작품에 실망했고, 후기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진행형인 작가이긴 하지만)을 그런 대로 즐겁게 읽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후가는 유가]는 후기 작품이기는 하지만 꽤 초기 작품의 느낌이 나는 책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다카스기'라는 방송 제작자가 미스터리한 영상의 주인공인 '도키와 유가'를 찾아와 이에 얽힌 사연을 묻는 것으로 시작되고 유가가 다카스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전개된다. 쌍둥이인 유가와 '후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어머니는 가출을 하며 불운하게 성장한다. 그렇지만 이들 쌍둥이에게는 아주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1년에 딱 하루, 그들의 생일에 두 시간마다 서로의 위치가 바뀐다는 것이다. 일견 불편하기는 해도 별로 좋은 점은 없을 것만 같은 능력이지만 쌍둥이는 자신들의 작은 능력에 점점 익숙해지고 그 능력을 활용하며 힘든 시기를 버텨 나간다. 그러던 중 그들은 자신들이 고물상에서 일하며 주운 백곰 인형을 가출 소녀에게 주게 되고 그 소녀가 그 인형을 가진 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일이 그들에게는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계속 아픔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들은 왕따, 성적인 학대, 납치 등에 자신들의 능력을 활용해서 맞서 싸우게 되는데,,

30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적지 않고, 두 쌍둥이의 말장난도 포함해서 밝은 분위기도 있지만 왕따, 학대, 납치 등 굵직한 사건들이 그들 주변에서 발생하면서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으로 전개가 된다. 후가와 유가는 두 시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이고 일단 유가가 형이지만 사실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도 불분명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생일마다 두 시간 간격으로 위치가 바뀌면서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지만 운동에 취약한 유가와 운동을 잘 하고 공부에 취미가 없는 후가. 쌍둥이지만 마냥 똑같지만은 않은 이 두 사람은 힘든 어린 시절을 함께 버텨온 형제이자 친구이자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쌍둥이와 그런 그들에게 결코 완치되지 않는 상처가 된 소녀의 죽음과 이를 상기시키는 백곰 인형. 과연 유가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으면서 다카스기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사카 고타로를 좋아했던 시기에 그의 작품을 보면 젊은 감성이 묻어나는 재기발랄한 문체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는 확실치 않아도 일단 읽는 것이 즐거운 내용, 그리고 흩뿌려 놓았던 복선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촘촘히 연결되어서 '우왓!!' 하고 탄성을 자아냈던 결말까지 한정된 분량에 부족함 없이 짜맞춰진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였고, 이런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 가장 빛났던 작품이 [골든 슬럼버]였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 이후 다양하게 변화를 시도했던 이사카 고타로는 어쩐지 낯설고, 그만이 가졌던 매력이 점점 사라지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확실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작품마다 다른 소재, 다른 전개로 늘 변화화는 모습으로 성장을 놀라움을 주는 작가도 있고, 이사카 고타로 역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사카 고타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후가는 유가]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초기의 이사카 고타로의 스타일로 돌아가면서 그 동안 자신이 보여줬던 변화된 모습이 아주 약간 양념처럼 가미된, 이사카 고타로 나름의 진화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허수아비 언급 너무 반가워ㅠㅠ)

 

내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이사카 고타로 월드에 입문(?)한 것처럼 [후가는 유가] 역시 이사카 월드의 입문작으로 손색이 없는 즐거운 작품이었다. 자라지 않는 피터팬 같은 소년 감성이 돋보이는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 충분히 발휘됨과 동시에 다루기 어려운 무거운 소재를 일부 가미해 그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라 '그래, 이게 이사카 고타로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해준 어둡고, 슬픔도 있지만 그래도 책장을 덮으면 따스함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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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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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

 

 

'딘 쿤츠'의 소설 <어둠의 눈>은 출간 전부터 이미 특정 부분의 번역본이 인터넷에 나돌 정도로 유명한 책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현재 가장 핫한 화두인 '코로나'를 예견한 소설이라는 데에서 소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이 책에 대해서만큼은 큰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 번역본이 현재 세상과 너무 흡사해서 나 역시도 책이 출간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판사인 '다산책방'에서 대규모의 서평단을 모집하면서 나도 책을 받아서 읽게 되었다.

 

주인공이자 라스베이거스의 쇼 디렉터인 '크리스티나 에번스(이하 티나)'는 1년 전 교통사고로 하나뿐인 아들 '대니'를 잃고 슬픔에 빠져 지내다 겨우 본업에 충실하며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중이었다. 그러나 대니의 방 칠판에 갑작스레 '죽지 않았어' 라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적히는 등 주변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지며 그녀는 대니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된다. 한편 티나가 제작한 쇼의 시사회에서 그녀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전직 요원이자 현직 변호사인 '엘리엇 스트라이커'는 이런 기이한 현상에 대한 티나의 고민을 들어주다 일에 휘말리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아들인 대니가 살아서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 티나는 아들의 사고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고자 하고 그들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 점차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슬픔에 겨우면 사람이 미칠 수도 있다.

어디선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이젠 그 말을 믿는다"

 

 

약 45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영미소설답지 않게(?) 엄청난 가독성을 자랑하는 책이다. 아들의 사고에 대한 비밀을 풀고 아들을 찾으려는 모정도 눈물겹지만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세력이 시시각각 접근하고 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가는 서스펜스적인 스릴 역시 압권이다. 불과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있을 수 있는 일들을 한 권의 책에 꾹꾹 눌러 담아 흥미롭게 전개하는 것도 과연 '딘 쿤츠'라는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의아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책은 450페이지 가량인데 400페이지가 넘도록 '코로나'와 관련된 혹은 '우한'이라는 단어조차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코로나를 예견했다'는 홍보 문구에서 '전염병'을 소재로 한 내용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실제로 그런 내용조차도 아니다.(물론 완전히 무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들은 사실 이 책이 애초에 화제가 된 '부분'에 홍보의 초점을 맞춰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전략적인 선택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이 책이 쓰여진 시기를 생각하면 '우한'이라는 것이 의도적이었다고 할 수 없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아쉬운 점은 특정 부분에 집중된 홍보로 인한 반전(?)이 아니라 책 내용에 있다. 일단 '녹스의 십계' 중 두 번째 였던가,, '초자연적인 부분'이 개입한다는 것인데, 초반에 큰 의문이었던 티나 주변의 기이한 현상들이 초자연적인 어떤 힘이었다는 것에서 대체 어떻게 한 거지? 하고 여러 모로 궁리했던 것이 한 방에 해결된 것이 아쉬웠다. 아니, 사실 여기까지는 그렇게 아쉽지 않았는데 소설 전체에서 초자연적인 힘의 가공할 만한 위력이 아쉬웠다. 사실 이 책은 기-승-전-결 중 '결' 부분이 상당히 짧은데 앞서 티나와 엘리엇을 그렇게 위협했던 가공할 만한 '적'과의 싸움의 승부가 너무 손쉽게 나버린 데서 뭔가 승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흥미롭게 잘 짜여진 판에 비해 결말은 아쉬움을 남긴 것 같다.

 

"죽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잠시의 승리일 뿐이다. 너희 모두는 곧 내 것이 되리라.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것이다. 너희를 기다리고 있으마.""

아마도 그냥 읽었다면 조금 더 만족했을 수도 있겠지만 '40년 전에 코로나19를 예견한 책'이라는 홍보 문구와 인터넷을 떠도는 특정 부분의 번역본을 보고 전체적인 내용에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기대보다는 조금 아쉬운 책이 아니었나 싶다. 코로나와 분리해서 본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코로나와 떼어놓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려서 아쉬움이 남는 책 <어둠의 눈>. 그렇지만 가독성도 좋고 이 책이 쓰여진 시기를 생각하면 확실히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손에 땀을 쥐며 읽을 수 있는 좋은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이왕이면 좋은 평을 받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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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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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는 읽기 전에는 달달한 연애편지에 관한 책인가,, 하는 상상을 했을 정도로 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예뻐서 설마 이런 내용이라고는 단 1%도 생각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그런데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부분만 읽었을 뿐인데도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설 [편지] 속 '편지'는 살인자로부터 매달 오는 편지이다.

'나오키'는 홀로 힘들게 일을 하며 살아가는 청년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나오키를 평범하게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매달 그에게 배달되는 편지 한 통이다.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수감된 나오키의 형 '츠요시'. 자신의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형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나오키였지만 살인자의 동생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 가득한 시선에 점차 형에 대한 원망만이 늘어간다.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도 형의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 그는 달라진 주변의 시선에 점차 좌절하게 된다. 가해자도, 피해자의 가족도 아닌 가해자의 가족의 눈으로 바라본 편견 가득한 세상의 모습은 독자에게도 끊임없이 생각할 이유를 안겨주고 있다.

야쿠마루 가쿠의 [우죄]를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범죄를 저지른 후 죗값을 치르고 나온 사람은 더 이상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범죄자에 대한 비난의 범위는 어디까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등의 고민은 이미 여러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임과 동시에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당연히 죗값을 치른 자는 사회가 감싸안아야 한다고 말할 테고, 범죄자 자신이 아닌 가족들은 죄가 없으니 차별하거나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내 주변 가까운 곳에 '살인을 저지른 자의 가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사실을 모르던 때와 똑같이 대할 자신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소설 [편지]를 읽으면 나오키가 형이 살인자라는 이유로 겪는 아픔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작은 희망의 불씨에도 매달려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 교도소 안에서 자신에게 아주 가끔 오는 동생의 편지만이 낙이고, 자나깨나 동생의 삶을 걱정하는 형의 모습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주변에 받아들여진다든지, '형의 잘못은 형의 잘못일 뿐 너의 잘못은 아냐!' 라고 말하며 무조건적으로 나오키를 감싸안지 않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현실적이고 타당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나오키가 형의 죄로 인해 당하는 차별과 편견, 부당함을 보면 안타깝고 '어떻게 나오키의 죄도 아닌데 이럴 수가 있지?' 라며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자신의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그의 잘못이 아니니 감싸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모순된 감정에 대해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오키가 일하는 회사 사장의 입을 빌려 '살인자의 가족에 대한 차별은 당연한 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떠올려 보면 '차별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고민과 생각이 묻어나는 것 같아 소설의 공정함과 현실적임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오키가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도 완전히 모든 것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작가 역시 명확한 답을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모든 사건이 끝난 이후, 그것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가족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그리고 있어 기승전결에 어떤 예기치 못한 반전이 있다거나 모든 것을 바로잡는 놀라운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을 엿본 것 같아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물론 아예 일조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끊임없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야만 하는 나오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을 반복할 뿐 명확히 답을 내리기 어려운, 참 안타까운 기분이다. [편지]는 명확하지 않아서 작가의 고민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만 같고,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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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전화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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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는 대표적인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이고, <돌이킬 수 없는 약속>으로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이 작가의 책은 만족도에 편차가 좀 있는 편이다. 데뷔작인 <천사의 나이프>나 작년에 읽은 일본 미스터리 중 최고로 꼽았던 <우죄>처럼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굳이 이런 무리한 설정과 전개를,,,' 하는 아쉬운 책들도 있었다. 이번에 읽은 <익명의 전화>는 과연 어느 쪽에 속하는 책이 될지 일단은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아사쿠라'는 원래 형사였지만 3년 전에 어떤 혐의를 받게 되어 경찰을 그만 두고 아내와도 이혼한 채 홀로 지내왔다. 어느 날 이혼 후 연락조차 하지 않던 딸로부터 전화가 와서 의아했던 아사쿠라는 전처인 '나오미'에게 딸의 행방을 묻게 되고 그 과정에서 딸인 '아즈사'가 누군가로부터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도 전직 경찰이면서 아버지 역시 경찰의 고위 간부였던 나오미는 경찰에 알리자고 하지만 왜인지 아사쿠라는 경찰에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하고 스스로 유괴범을 잡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시간이 흐를 수록 아즈사의 유괴의 배경에는 3년 전의 사건이 연관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아사쿠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소설은 전반적으로 아사쿠라가 과거 경찰이던 시절 관계했던 전과자인 '키시타니'의 힘을 빌려 자신의 딸을 납치한 범인의 요구를 수행함과 동시에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부투하는 모습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3년 전에 있었던, 마약 중독자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7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관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아사쿠라가 그 때 비리 경찰이라는 누명을 쓰면서까지 숨겼던 '어떤 사실'이 딸이 납치된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네타 아님)

"난 그 일로 모든 것을 잃었어.

소중한 가족도, 긍지를 가지고 있던 직업도 전부 다 말이야.

하지만 내 행동에 후회하지는 않아."

 

 

일단 전개를 보면 범인이 3년 전의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어서 아사쿠라의 딸을 납치하면서까지 아사쿠라를 움직이게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기 때문에 중반까지 제법 속도감 있게 넘어가는데 중반이 넘어가면 반복되는 전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이 늘어서 그런지 오히려 늘어지는 전개에 속도감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또 각각의 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이 부족해서 '아니,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소설 속에서 밝혀진 그 이유가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 사실 좀 아쉬운 느낌이 있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런 결말을 맞이하기까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했는지, 복선이 충분했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긍정적인 평을 내리기 어렵다. 물론 의외의 범인, 의외의 사연이 놀라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밝혀졌을 때 복선들이 맞아떨어지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면 정말 만족스러운 놀라움을 주는 것에 비해 그런 것이 없이 그저 너무도 의외의 결말이라면 타당성이나 개연성에서 많은 아쉬움을 주는 것 같다. 야쿠마루 가쿠의 <기다렸던 복수의 밤>을 읽었을 때 받았던 '굳이,,,?' 하는 느낌을 이번에도 받아서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야쿠마루 가쿠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것은 <우죄>처럼 사람의 심리를 깊이 다루는 책, 거기에 소년법과 같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재와 함께라면 그 무게감이 배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익명의 전화>는 전직 경찰과 전과자가각자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생동감 있게 범인을 추적한다는 것, 즉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야쿠마루 가쿠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치로 생각한다면 많이 아쉬움을 남긴 책이었다. 그래도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고 한 방이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차기작은 더 좋은 작품으로 출간될 거라고 또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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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도르래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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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조용한 무더위>를 읽고 이 시리즈에 관심이 가게 되어서 <녹슨 도르래>를 읽게 되었다. 사실 <조용한 무더위>는 재미있게 읽긴 했어도 단편집 치고는 속도가 잘 나는 책은 아니었는데 의외로 <녹슨 도르래>는 장편인데도 가독성이 훨씬 높은 책이었다.

 

지난 책에 이어 여전히 '하무라 아키라'는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는 동시에 서점 2층에 자리한 백곰 탐정사의 탐정 역할도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의뢰도 없고 서점의 영업도 줄어들면서 생활고가 오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대형 탐정사의 하청을 받아 일을 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새롭게 받게 된 일은 아들로부터 자신의 어머니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하게만 보이던 의뢰는 조사 대상인 할머니가 누군가와 다투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과거의 교통사고, 그리고 현재의 화재에 이르기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사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은 과연 이 사건을 무사히 해결할 수 있을까?

 

초반에는 전에 읽은 <조용한 무더위>를 떠올리며 좀 가벼운 내용이지 않을까 했는데 초반 분위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로 돌변하게 된다. 조사 대상인 '이사와 우메코'가 '아오누마 미쓰에'와 다툼 끝에 부상을 입히게 되고 하무라는 두 사람 사이의 화해를 담당하게 되는데 예상치 못하게 미쓰에의 집에 들어가 사는 것으로 변하게 된다. 미쓰에의 손자인 '히로토'는 과거 아버지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아버지는 사망하고 자신은 크게 다친 데다 당시의 기억까지 잃게 되어 탐정인 하무라에게 그 날의 진실에 대한 조사를 의뢰를 한다. 그렇지만 그 때의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지 이들에게는 끊임없는 불행이 찾아오게 된다.

            

                

"때로 인생에 찾아오는 멋진 순간......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그들은 내게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현실이고, 현재의 내 쪽이 환상처럼 생각되었다."

 

 

아무리 불행한 탐정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불행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행한 데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마저 불행이 찾아오니 과연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다.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주변에는 진실을 덮기 위해 위해를 가하거나 혹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아니, 코지 미스터리(일상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면서 이렇게까지 하드보일드 해도 되는 걸까?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처럼 전개되는 사건에 책장은 끊임없이 넘어가고 결국 전개와 결말이 궁금해서 금세 다 읽게 되었다. 아니, 혹시 코지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야미스(읽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미스터리) 쪽 아닙니까!? 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안타깝고 우울한 마음은 확실히 들었다.

 

예상치 못한 스토리 흐름과 예기치 못한 결말까지, 그리고 결말로 다다르는 과정의 치밀한 복선과 회수까지 확실히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그 매력이 돋보이는 작가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시리즈물이긴 하지만 스탠드 얼론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 책만 읽어도 스토리 이해에 전혀 지장이 없다. 그렇지만 매력적인 시리즈인 만큼 꾸준히 전후 작품들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과거에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으며 이 작가는 사실 주인공을 미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이 불행의 끝판왕이었는데 와카타케 나나미 역시 주인공을 미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행한 탐정을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고 하무라가 좀 더 행복한 에피소드를 만나게 될 때까지 꾸준히 작품이 출간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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