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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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부유한, 그래서 모든 걸 가진 걸로 유명한 '리넷'은 가난한 친구 '자클린'의 약혼자 '사이먼'에게 첫 눈에 반하고, 기어이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해야 할 이들의 신혼여행은 어딜 가나 따라와 이들을 바라보는 자클린으로 인해 조금씩 그림자를 드리우고, 나일 강 위를 항해하는 유람선에서의 어느 날 밤 결국 자클린을 총을 손에 들게 된다. 다음 날 리넷의 시체가 발견되고 유람선에 타고 있던, 이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모든 인물이 용의자가 되는데...


 



"저는 달이었어요...... 해가 떠오르자, 사이먼의 눈에는 더 이상 제가 보이지 않았지요...... 눈이 부셨겠죠. 사이먼은 해, 그러니까 리넷밖에 볼 수 없었던 거예요."


 



[나일 강의 죽음]은 분명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매혹적인 책이었다. 영미 미스터리답게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개개인의 서사도 어느 정도 있는 데다, 이 많은 등장인물을 성으로 부르다, 이름으로 부르다, 심지어 별명(?)으로 부르기까지 하고 있다. 초반부터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 결국 관계도까지 그리며 읽었는데 서른 명이 넘어가며 '으아아 다 기억을 못할 것 같아!!!' 싶었고, 심지어 유람선에서 리넷이 살해당하는 것 외에도 부가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며 전체적인 그림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많은 등장인물과 이 복잡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순간도 늘어지는 느낌이 없고, 갈수록 인물은 늘어가고 당연히 서사도 늘어가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복잡하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그저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장담하건대 이 책은 최근에 출간되는 어떤 영미 미스터리보다도 가독성이 좋은, 아니 단순히 가독성만 좋은 것도 아닌 대단한 책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거의 100여 년 전에 쓰여진 책이, 그 이후 출간된 수많은 미스터리를 읽은 내게도 이렇게도 재미있을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최초 출간된 시기(무려 1937년)를 감안해도, 혹은 감안하지 않아도 상당히 매력적인 전개와 결말을 보여준다. 단순히 사건의 진실 만이 매력적인 게 아니라 이 수많은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설정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도, 촘촘하게 복선을 심어두고 아주 효과적으로 회수하는 것도, 무엇보다 그 유명한 걸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연상시킬 만큼 '유람선'이라는 공간을 멋지게 활용한 것도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말 솔직한 감상으로, 멋은 없지만 읽는 내내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는 진짜 천재다 천재.. 美쳤다 美쳤어...' 하는 감탄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발굴하는 동안 무엇인가가 땅에서 나오면, 그 주위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제거해야 한다네. (중략)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게 그런 걸게. 진실, 완전히 드러나 빛나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관련 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추리소설을 많이 읽다보니 언제부턴가 '범인은 이 사람이네', '트릭은 이거네' 하며 초반부터 김이 샐 때도 있고, 이거나 저거나 다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여기에 더해서 가장 큰 문제는 최초로 출간되고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읽은 시기 탓에 더 뻔하고, 그래서 더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점이다.(특히 고전은 더더욱..) 그런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은 아직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조차 모르던 어린 내가 읽었을 때도, 한창 추리소설에 푹 빠져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던 내가 읽었을 때도, 그리고 너무 많이 읽어서 이러다 독서 슬럼프 오겠다 싶은 지금의 내가 읽어도 다 재미있다. 그냥 재미있기만 한게 아니라 그 특유의 분위기도 너무 좋고 -크리스티 여사의 책만큼 '매혹적이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책도 드물 듯..-, 등장인물들도 도저히 그 시대의 사람이 쓴 거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고, 소설의 전개부터 결말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다.(이건 뭐 그냥 추리소설의 교과서 같은 느낌이..) 결국 이 감상을 또 한 번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나일 강의 죽음]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는 애거서 크리스티구나!!!' 싶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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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iller's Wife 킬러스 와이프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1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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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전남편 '에디 칼'이 연쇄 살인 끝에 체포된 후 검사가 된 '제시카 야들리'. 그녀에게 FBI이자 친구인 '케이슨 볼드윈'이 찾아와 최근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도움을 청한다. 에디 칼이 저질렀던 연쇄 살인 사건과 너무도 닮은 사건을.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한 야들리였지만 그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증거가 부족하고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그마한 단서나마 건넬 수 있는 것은 이미 비슷한 살인을 저지른 에디 칼 뿐이다. 모방범과 에디 칼은 관련이 있을까, 모방범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에디 칼이 원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야들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징후들은 있는 거지만 그 모든 건 나중에야 알게 되는 거야. 뒤늦게 깨닫는다는 게 그런 거지. 그 뒤늦은 깨달음 때문에 당신의 뇌는 인생이 예측 가능한 거였다고 속는 거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야."



주인공 야들리는 썩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전남편이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이후 주변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하나 뿐인 딸 '타라'를 어렵게 키우며, 어려운 형편에 장학금으로 대학을 가서 검사까지 된, 어느 모로 보나 주인공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서사를 지닌 사람이다. 여기에 남성 중심 사회로 여자는 '비서'쯤으로 생각하는 검사 집단 속에서 자신의 신념으로 일을 해나가는 진취적인 여성이기도 하다. 전남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렵게 이겨내고 -사실 다 이겨냈다고 하기에는 상처가 너무 크지만- 지내던 그녀는 다시 한 번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 그것도 전남편의 수법을 모방한 듯한 사건에 상처가 되살아난다. 고민 끝에 사건을 맡은 그녀지만 딸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 지고, 사건을 의뢰한 FBI 볼드윈은 그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고,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대학 시절 교수이자 동거남인 '웨슬리'는 그녀가 다시 한 번 과거의 사건을 되새길 위험이 있는 이 사건을 맡는 것을 반대한다. 그녀의 편이 없는 것만 같지만, 또다시 반복될 살인을 생각하면 손을 뗄 수 없는 그녀의 상황이 독자가 봐도 참 막막하게 느껴졌다.




소설은 절반 정도는 야들리와 볼드윈이 힘을 합해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법정에서 치열하게 맞서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아주 강렬했던 시작과 달리 추적 과정은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 등장인물도 워낙에 많고, 하나같이 의심스러운 면이 있는 데다 단서가 부족하고 목격자의 진술마저 신빙성이 부족하다보니 추적이 빠르게 진행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중반 이후 법정 장면으로 넘어가며 긴장감 넘치고, 속도감 있고, 스릴 있고, 무엇보다 짜릿함이 있는 모습으로 확! 바뀐다. 사실 초중반이 더 늘어지게 느껴졌던 것은 야들리가 어떤 단서를 통해 답을 알아내는 과정에 대한 해설이 생략된 부분들이 있어서 였는데 -자기만 알고 얘기는 안 해준다..며 투덜투덜..- 이러한 부분을 중후반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이야기들이 만나는 '그' 한 지점이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한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이 연출을 이 소설보다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 낸 책도 흔치 않을 것 같다.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고 해리성 장애자도 아니야. 내가 그런 일을 했던 이유는...


그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야."



작가가 검사 출신이라는 것을 책을 읽은 후에나 알게 되었고, 긴장감 넘치는 법정 장면이 단번에 이해가 갔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묘사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치열한 법정 다툼. 여기에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후속작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무언가'까지. 한 편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잘 만들어 낸 토대가 아닌가 싶다. 초중반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것 같아 -그래도 영미 스릴러인데 인물들 서사가 별로 없어서 다른 책들에 비해서는 가독성이 좋은 편이었다- 약간 시간을 두고 읽었는데,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앞으로 돌아왔을 때 '헉!' 하고 놀라고 말았다. 이 소설은 정말로 영화화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영화를 안 좋아하는 내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영화화 해주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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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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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설'에서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다. 나는 몇 살이며 언제, 어떻게 이 시설에 들어오게 된 것일까..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방을 뒤적이고 일기장을 읽던 중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감옥'이라고 하는 메시지를. 탈출을 결심한 사부로는 동료를 찾기로 결심하고, 관찰 끝에 믿음직한 세 명의 동료를 만든다. 하지만 탈출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던 중 동료가 연달아 사라지고, 며칠 후 돌아온 동료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탈출은 쉽지 않다. 동료들을 더이상 위험하게 할 수는 없다. 결국 사부로는 홀로 탈출을 감행하는데..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 그게 미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야.



매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오늘 하루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반복되는 하루 중 무언가 느껴지는 위화감.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얼굴과 손, 휠체어가 없으면 1미터 앞을 나아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진 몸, 치매인가.. 싶을 정도로 사라져버린 과거의 기억까지. 소설은 자신을 100세 정도 되었다고 '추정'하는 사부로를 화자로 해서 전개된다. 부족할 것이 없이 편안한 시설에 살고 있지만 직원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고 -정확히는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만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다- TV에서는 자신이 젊었을 때 활약하던 선수들이 여전히 젊은 채 스포츠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시설에 들어온 기억도 없고, 당연히 나갈 기약도 없다. 심지어 시설 밖으로는 나갈 수 없게 굳건히 잠겨 있다. 일기장을 읽고 탐색한 끝에 시설을 나갈 방법은 찾았지만 밖은 숲 속이었고, 일정 거리 이상은 휠체어가 나가주지 않아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시설 밖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누구일까, 여러 가지 궁금증은 사부로와 동료들로 하여금 탈출 계획을 세우도록 만든다.



내가 있는 편안한 이 장소가 사실은 나를 가두고 있는 곳이었다는 것, 그래서 탈출을 계획한다는 설정 자체는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이 100세 노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탈출은 다른 탈출과 상당히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일단 이들은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이 쉽지 않고, 자그마한 충격으로도 신체에 큰 무리가 될 수 있다. 추격자가 따라올 경우 이들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것은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수행이 뒷받침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사부로가 처음 위화감을 느낀 순간부터, 단서를 찾고 동료를 마련해 탈출을 시도하기까지, 모든 과정은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사부로를 포함한 일명 '헌드레즈' 멤버들이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준비하고, 논의하고, 그 과정에서 다투고, 혹은 은밀한 '연심'을 품는 것까지, 읽는 사람까지 두근두근해지는 탈출 드라마(?)의 정석과도 같은 전개.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 뭔가 예상이 가면서도 연출이 참 '세련되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소설 [미래로부터의 탈출]은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미있게도 한 소설 안에서 '장르'를 달리 하고 있다. 일단 첫 번째 장은 앞선 줄거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확연히 '미스터리'이다. 그런데 해결되지 않는 미스터리..라고 해야할 것 같다. 첫 번째 장의 미스터리는 첫 번째 장에서 그 답을 알려주지 않고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장르를 달리한 두 번째 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가 되고, 어느 정도 첫 번째 장의 미스터리를 해결해 주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장에서는... 어떻게 될지는 직접 읽어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전체 분량이 300페이지 정도로 각 장 역시 100페이지 내외의 분량이지만, 그 한정된 분량 안에서 해당하는 장르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하는 것이 정말 놀랍다. '죽이기 시리즈'를 비롯한 작품들이 통통 튀고 색다른 매력이 있고, 어딘가 '젊은' 혹은 '어린' 느낌이 있었다면 [미래로부터의 탈출]은 주인공들은 100세 가량의 노인으로 설정해서일까,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겁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진중하면서도 유쾌하고, 나이듦과 젊음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아, 정말 이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감을 절로 들게 하고, 동시에 이 영리하기 짝이 없는 제목에 대한 감탄까지 빼놓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작가가 투병 생활을 하던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제목의 '미래'가 좀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그 '죽이기 시리즈'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의, 그렇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책 [미래로부터의 탈출]. 그래서일까, 이 책이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이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물론 국내에는 작가의 미출간 작품이 출간될 수도 있겠지만..)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와 유사한, 안전한 길 대신 색다른 매력을 안겨주며 기대감을 자아내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니... 보통 재미있게 읽은 책의 리뷰는 말미에 '작가의 다른 작품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려야겠다'라고 적을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뭐라고 적어야 할지 어렵다. 오로지 책에 대한 감상만을 남기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지 않을까.. 싶은 좋은 책이었습니다...라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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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 독자
막스 세크 지음, 한정아 옮김 / 청미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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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마녀 사냥' 시리즈의 작가 '로저 코포넨'은 독자와의 만남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작가님이 쓰신 것이 두려우신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한다. 그리고 얼마 후, 로저는 아내 '마리아'가 자택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검은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웃고 있는 마리아의 시체. 그리고 그 모습은 소설 '마녀 사냥' 속 살해 방법과 동일한 것이었다. 소설 속에는 여러 건의 살인이 발생한다. 누군가 로저의 소설을 모방한 것이라면 이 살인 사건은 한 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범인은 사건 현장과 도처에 증거들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꼼꼼한 살인과 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증거들은 사건을 담당한 '제시카' 경사를 비롯한 형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범인이 만들어 놓은 길로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통 서양권 소설, 콕 집어 영미 또는 북유럽 스릴러를 생각하면 일단 사소한 인물 한 명,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서사를 안겨주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섬세한 작가, 그래서 한도 끝도 없이 두꺼워지는 벽돌같은 책이 떠오른다. 여기에 꼭 과거가, 역시나 콕 집어 과거의 상처가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깊이 파고들면 현재의 사건은 이 주인공의 과거의 상처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한다. [모방 독자] 역시 북유럽 스릴러에 500페이지 가량의 볼륨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특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래서 읽기 전부터 걱정이 좀 되었는데 극초반에 이미 이러한 걱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인공 제시카 경사의 과거가 -과거라는 언급도 없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모방 독자]에는 물론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지는 서사는 소설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였고, 조금 더 길게 서사가 주어지는 인물은 그 서사가 소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그 외의 분량은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시간이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는데도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연이어 발생하는 살인 사건, '마녀 사냥' 소설과의 유사점, 지루할 틈 없이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들, 그리고 그럼에도 끝까지 감추고 있는 진실까지. 이 작가는 어떻게 하면 독자가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지 참 잘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을 써내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냄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죠. (중략) 저는 제 책을 펼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든 상관없이 작가를 존중하고 존경해주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내용이 없는 부분이 나오더라도 계속 읽겠다고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제 이야기에 집중하는 독자를 원합니다. 충실한 독자를요."



등장인물의 서사에 분량을 많이 할애하지 않는 만큼 작가는 다른 곳에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바로 우리에게는 낯선 핀란드의 헬싱키라는 사건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묘사, 소설 속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중세의 마녀 사냥에 대한 묘사, 그리고 실제로 소설 속에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묘사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지명이 생생한 묘사와 함께 조금씩 익숙해지고, 소설 속 헬싱키의 겨울이 현재의 추위와 묘하게 겹치고, 중세의 마녀 사냥과 이를 소재로 한 소설 속 소설 '마녀 사냥', 그리고 이를 모방한 연쇄 살인의 궁금증이 증폭되면 결국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왜 소설을 모방하고 있는지, 그것이 제시카의 과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결말을 향해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강력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도입부와 진실을 예측할 수 없어 그저 책장을 넘기기만 하는 중반부를 지나 맞이한 결말이 생각과 다르기도 하고 분량을 좀 더 할애해서 좀 더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를 만한, 개연성과 반전이 있는 결말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초중반의 복선이 회수되면서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자 후기에 의하면 이 [모방 독자]는 시리즈로 이미 2권이 출간되었고, 작가는 3권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결말을 보고 '이건 시리즈로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 터라 그 사실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그 마음에 드는 책이 시리즈로 이어가는 건 더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모방 독자]는 이미 그 쉽지 않은 두 가지는 넘겼으니(?) 천천히 다음 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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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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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와 가격을 보고 당연히 양장일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좀 놀랐네요ㅎ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인세가 높아서 다른 작가의 책보다 더 빠르게 가격이 올라가는 것 같긴 합니다만..(더군다나 이건 정말로 신간이니까) ‘재인‘으로부터 시작된 가격이 이제는 일상처럼 보이니 무섭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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