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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 독자
막스 세크 지음, 한정아 옮김 / 청미래 / 2021년 10월
평점 :
베스트셀러 '마녀 사냥' 시리즈의 작가 '로저 코포넨'은 독자와의 만남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작가님이 쓰신 것이 두려우신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한다. 그리고 얼마 후, 로저는 아내 '마리아'가 자택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검은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웃고 있는 마리아의 시체. 그리고 그 모습은 소설 '마녀 사냥' 속 살해 방법과 동일한 것이었다. 소설 속에는 여러 건의 살인이 발생한다. 누군가 로저의 소설을 모방한 것이라면 이 살인 사건은 한 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범인은 사건 현장과 도처에 증거들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꼼꼼한 살인과 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증거들은 사건을 담당한 '제시카' 경사를 비롯한 형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범인이 만들어 놓은 길로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통 서양권 소설, 콕 집어 영미 또는 북유럽 스릴러를 생각하면 일단 사소한 인물 한 명,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서사를 안겨주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섬세한 작가, 그래서 한도 끝도 없이 두꺼워지는 벽돌같은 책이 떠오른다. 여기에 꼭 과거가, 역시나 콕 집어 과거의 상처가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깊이 파고들면 현재의 사건은 이 주인공의 과거의 상처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한다. [모방 독자] 역시 북유럽 스릴러에 500페이지 가량의 볼륨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특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래서 읽기 전부터 걱정이 좀 되었는데 극초반에 이미 이러한 걱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인공 제시카 경사의 과거가 -과거라는 언급도 없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모방 독자]에는 물론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지는 서사는 소설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였고, 조금 더 길게 서사가 주어지는 인물은 그 서사가 소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그 외의 분량은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시간이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는데도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연이어 발생하는 살인 사건, '마녀 사냥' 소설과의 유사점, 지루할 틈 없이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들, 그리고 그럼에도 끝까지 감추고 있는 진실까지. 이 작가는 어떻게 하면 독자가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지 참 잘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을 써내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냄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죠. (중략) 저는 제 책을 펼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든 상관없이 작가를 존중하고 존경해주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내용이 없는 부분이 나오더라도 계속 읽겠다고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제 이야기에 집중하는 독자를 원합니다. 충실한 독자를요."
등장인물의 서사에 분량을 많이 할애하지 않는 만큼 작가는 다른 곳에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바로 우리에게는 낯선 핀란드의 헬싱키라는 사건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묘사, 소설 속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중세의 마녀 사냥에 대한 묘사, 그리고 실제로 소설 속에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묘사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지명이 생생한 묘사와 함께 조금씩 익숙해지고, 소설 속 헬싱키의 겨울이 현재의 추위와 묘하게 겹치고, 중세의 마녀 사냥과 이를 소재로 한 소설 속 소설 '마녀 사냥', 그리고 이를 모방한 연쇄 살인의 궁금증이 증폭되면 결국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왜 소설을 모방하고 있는지, 그것이 제시카의 과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결말을 향해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강력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도입부와 진실을 예측할 수 없어 그저 책장을 넘기기만 하는 중반부를 지나 맞이한 결말이 생각과 다르기도 하고 분량을 좀 더 할애해서 좀 더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를 만한, 개연성과 반전이 있는 결말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초중반의 복선이 회수되면서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자 후기에 의하면 이 [모방 독자]는 시리즈로 이미 2권이 출간되었고, 작가는 3권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결말을 보고 '이건 시리즈로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 터라 그 사실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그 마음에 드는 책이 시리즈로 이어가는 건 더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모방 독자]는 이미 그 쉽지 않은 두 가지는 넘겼으니(?) 천천히 다음 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