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려 1,000년간의 시대. 종교에 심취하고, 종교에 심취하여 인간의 이성을 잃어비린 암흑기라는 이미지가 강한 시대가 바로 중세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중세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졌다. 우선 저자는 중세가 이런 박한 평가를 받은 이유는 중세를 지나온 18세기의 근대사상가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물론 다른 시기에 비해 중세가 더 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시기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밤 없는 새벽이 없듯이 중세 없는 근대는 없다는 사실 또한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중세에 대한 기준은 명확히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대략 5세기부터 15세기 말~16세기 초까지의 기간을 중세라고 말한다. 대략 1,000년간의 기간이다. 하지만 이 1,000년 동안 변화가 없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중세라고 이름 붙인 이 시기는 하나의 특징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중세 안에도 당연히 많은 변곡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세를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시간에 대한 의미를 먼저 이야기한다. 지금도 지나고 있는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줄로 이어지는 단선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이 미래는 실제 내가 존재할지조차 모르지만 마치 우리는 그 시간을 살 것으로 생각하고 삶 꾸려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무척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이 시간을 명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사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간은 사실 신의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제대로 된 시계가 없던 시기에 시간은 교회의 종탑 소리로 구분할 수 있었다. 바로 교회의 종탑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여기서 오랜 의문이 하나 해결되었다. 왜 유대인들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죄악시했던 것일까? 바로 시간은 신의 것. 이자는 돈을 빌려주고 시간이 지남에 따른 값을 주는 것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시간은 신의 영역인데 불구하고 그 시간을 따져 값을 청구하는 것 자체가 시간의 주인인 신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단다. 이렇게 궁금하던 부분이 속 시원히 풀렸다.
이 시간에서 파생된 개념 중 하나가 종말에 관한 생각이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의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을 가지고 중세인들은 종말의 시기를 추측했단다. 물론 종말의 해로 계산한 1789년이나 1994년 모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중세인들의 1년은 누구보다 종교적으로, 교회의 제례와 의식에 따라 짜였다고 한다.

자연히 모든 것이 교회 위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중세인들 안에 가졌던 생각 중 하나는 교회로부터 내쳐지는 것, 교회가 말하는 대로 하지 않았을 때 오는 불안감이 컸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각 단계에 교회에서 정한 미사 등의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사후 세상에서 천국에 가지 못하고 겉돈다는 불안감이 그 어떤 시기보다도 컸다.
그렇기에 중세인들은 강박적으로 종말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과 구원에 대한 강박이 그들의 삶을 짓눌렀던 시기였다. 바로 이 틀 안에서 중세인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 둘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십자군도, 순례길도, 이단과 종교재판도 하나하나 퍼즐 조각이 맞춰진 기분이다.
중세인들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거지 뭐!라는 생각 속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제야 그들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마주하면서, 역시 역사도 제대로 된 배경지식과 이해가 있을 때 비로소 시대가 보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