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한다는 착각 - 멸종에서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반격
프랑크 베스테르만 지음, 정신재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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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의 뜻이 궁금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북극곰들이 서식지를 잃고 멸종되어 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 바로 그 북극곰도 등장한다. 과연 현재 북극곰의 생태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책을 읽으며 해소되긴 했지만, 글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 안에는 총 7종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일각돌고래, 노르웨이레밍, 유럽 뱀장어, 흑기러기, 북극곰, 순록 그리고 왕게. 이 동물들의 공통점이라면,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극해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는 것과 빙하의 콜럼버스라 불리는 탐험가 빌럼 바렌츠가 노바야제믈랴 제도에서 죽기 일주일 전에 남긴 항해일지에 등장한 동물들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빌럼 바렌츠는 네덜란드 탐험가였는데, 이 책의 저자인 프랑크 베르테르만 역시 네덜란드 인이어서 그런지 그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자주 등장한다.(애초에 그가 꼽은 7종의 동물 역시 바렌츠의 일지 속에 등장하는 것부터 그렇지만 말이다.)


 사실 책의 논조가 헷갈렸다. 도대체 이 동물들이 인간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아님 인간들이 벌인 피해에 대해 말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가 첫 장에 등장하는 일각돌고래 뿔로 인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생태에 대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때론 추리소설 같은 느낌도 물씬 풍겨서 장르가 헷갈리기도 했다. 어떻게 사람을 찌르고도 멀쩡하기만 한, 아주 튼튼한 일각돌고래의 뿔이 영국 런던 피시몽거스홀에 소장되어 있었던 걸까?를 찾기 위한 여정은 추리소설 같기도 했다.    





 레밍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레밍 하면 떠오르는 것은 집단자살이다. 근데, 정말 레밍은 집단자살을 한 걸까? 왜 레밍은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는 레밍의 개체 수와 관련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인구 조사로 유명한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과 함께 현 인류의 과잉에 대한 내용도 등장한다. 근데, 우리나라만 해도 인구가 줄어가는 문제로 고민을 하는 중인데, 과연 맬서스의 이론이 과연 현재도 통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본다. 인구가 증가하는 것보다, 기술의 발전으로 식량 생산의 문제는 이미 해소되지 않은 것 아닐까?(너무 내가 지극히 우리나라 위주로의 생각을 하는 걸까?) 레밍의 자살이라 보이는 문제에는, 다분히 먹고사는 문제의 이동의 문제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는 의견이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레밍이 뿌린 질병(레밍은 설치류라서 그런지, 흑사병과 연관되는 내용도 등장한다.) 들과 워낙 많은 개체 수 덕분에 북극권에서는 모든 동물들이 레밍 덕분에 먹고살 수 있다는 사실이 등장하는데, 놀랍기도 했다.


 드디어 북극곰의 등장이다. 10년에 한 명씩 북극곰에 의해 인간이 희생된다. 북극곰에게 인간은 물개를 대체할 수 있는 먹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말에 기가 찼다. 처음에 등장했던 바렌츠의 항해에도 북극곰에 의해 희생당한 선원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몇 년 전에도 야영을 하는 텐트를 덮친 북극곰에 의해 희생된 요프 코터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것은 지극히 인간의 입장에서의 서사다.


지금 누가 누구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있는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빙하가 녹아서 북극곰이 살기가 팍팍해진 것은 맞지만, 북극곰 역시 그 환경에 적응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300km를 수영하는 암컷 북극곰이 확인되기도 하고, 다양한 동물들을 사냥(순록까지도) 해서 먹는 북극곰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이런 곰들을 책에서는 정착형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렇게 정착형이 된 북극곰들은 먹이를 찾아 인간들이 만든 주거지들을 쉽게 침범(?)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북극곰들이 문제를 일으킨 걸까? 북극곰들이 일방적으로 인간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일까?


 유해 종이나 생태계 파괴 종이라고 평가를 내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지극히 인간 중심적으로 내리는 평가가 아닐까?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에게 발언권이 있다면, 동물들은 인간을 지극히 난잡하고 문제가 심각한 완벽한 유해 종이라고 판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


​​

우리가 동물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언어 그 자체에 이미 인간 중심적 해석이 배어 있는 건 아닐까.

과연 우리가 인간의 시선을 벗어날 순 있을까.

어쩌면 동물에 관해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모든 게 마치 우화처럼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고 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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