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우리는 함께 절룩거린다.
스물다섯 살인 내가 어머니와 걸음을 맞추려 같이 절룩거리고 있다.
내 다리는 그녀의 다리다. 이게 우리가 찾아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명랑한 걸음이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어린아이와 어른이 함께 걷는 방법이고,
어른이 된 자식이 한쪽 팔을 부축받아야 하는
늙은 부모와 함께 걷는 방법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요즘은 친구 같은 모녀도 많고,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또 다른 가족 중에는 애증의 관계도 상당하다. 이 책 속 모녀 로즈와 소피아의 경우도 후자가 아닐까 싶다.
25살의 인류학 전공자 소피아 파파스테르기아디스와 그녀의 어머니 로즈. 학업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석사학위까지 딴 소피아는 박사학위 문턱에서 학업을 포기한다. 어머니 로즈 때문이다. 엄마의 다리가 마비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그녀를 부축하고 도와야 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로즈에게 유일한 가족은 소피아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업을 마치지 못한 소피아는 결국 동네 커피하우스에서 알바를 하게 된다. 겨우 그 돈으로 생활을 해나가는 모녀는 결국 집을 담보로 큰돈을 마련하여 스페인으로 떠난다. 저명한 전문의인 고메스를 만나 로즈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기대에 차 고메스를 만난 소피아 부녀는 어안이 벙벙하다. 로즈가 아픈 곳은 다리가 아니었나? 왜 고메스는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이 사람은 정형외과가 아니라 정신과나 심리치료를 하는 의사였던 걸까? 예상치 못한 치료법이 진행된다. 우선 소피아가 먹던 약 중 3개를 버린다. 치료를 하자고 하고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기도 한다. 유일한 보호자인 소피아에게 바다에 다녀오라고 하며 자리를 비켜주길 원한다. 해산물에 대해 알레르기 증상이 있다는 로즈 앞에서 문어를 시켜 먹기도 한다.
스페인의 바다를 찾은 소피아는 메두사라고 불리는 해파리에게 쏘인다. 치료를 위해 간이 의무실을 찾는다. 이름과 나이 직업과 국적을 쓰라고 준 종이에 직업을 무엇이라고 적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소피아에겐 아버지가 있다. 소피아가 5살 되던 해, 모녀를 떠난 아버지 크리스토스는 소피아 보다 몇 살 많은 여자와 재혼을 했다. 모녀를 떠날 때부터 아버지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소피아는 돌쟁이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부유했다. 하지만 소피아와 로즈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소피아는 아버지를 찾는다. 과연 아버지는 그녀에게 도움을 줄까?
끊임없이 딸에게 의존하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답답하고 싫지만 차마 두고 떠나지 못해 어머니 주변을 맴도는 딸. 스페인에서 만나게 된 동성의 잉글리트 바우어(잉게). 그리고 잉게의 애인 매튜.
부모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라난 자녀는, 성인이 되고 다시 나이 든 부모는 부양을 해야 할 사람이 된다. 자신의 미래를 접어두고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버린 소피아. 엄마에 대한 애증에 대한 불편함과 갈급함을 또 다른 사람 잉게에게서 풀어내는 소피아의 모습을 보며 두 여인 사이에 껴 있는 소피아의 모습이 쉽지 않아 보였다. 엄마를 위한 삶, 엄마를 돕는 삶은 소피아에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아직은 엄마의 입장보다는 딸의 입장에 가깝기에 로즈보다는 소피아에게 자꾸 눈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