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탐정 사무소 -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이락 지음 / 안녕로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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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와 친하지 않다. 아마 수능에 시가 나오지 않았다면, 근처에도 안 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시를 읽어야 할 필수 요소가 사라지고 나니 정말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시집을 펼쳐보지도 않은 터라 몇 년 전부터 1년에 시집 1권 읽기를 목표에 두게 되었다. 내가 시와 친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면, 시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닫는 게 쉽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산문은 그나마 펼쳐서 글을 쓰다 보니, 읽는 데는 시간이 걸려도 결국 의미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되는데, 시는 짧은 문장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아무리 읽어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내게 시는 어렵고 재미없는 장르가 되어버렸다.

이 책의 제목을 읽고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탐정 사무소는 좋은데 앞에 "시"가 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금하긴 했다. 시를 통해 추리를 하는 탐정이라니... 거기에 성인이지만, 시를 어려워하는 초등생들을 위한 책이라는 문구에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주제 자체가 신선했다. 많고 많은 탐정소설을 만났지만, 시를 가지고 사건을 풀어낸다는 사실만 해도 무척 색달랐기 때문이다. 에필로그까지 합치면 총 7 건의 사건 그리고 11편의 시가 등장한다. 이 중 내가 들어 본 시는 1/3 정도 되는 것 같다. 탐정 설록은 원래 경영학을 전공한 투자가였는데, 시의 매력에 빠져서 탐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조수인 성완승은 시를 낭독하고, 커피를 내리는 일을 주로 맡아서 한다. 책 속의 이야기는 누군가가 남기고 간 시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시 하나만 남기고 갑자기 사라지거나, 시를 답장으로 주기도 한다. 그리고 도무지 이게 무슨 뜻인 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바로 시 탐정사무소를 찾는다. 설록은 그들이 남기고 간 시를 읊으며 시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 준다.

"세간에 '설록 앞에서 시를 펼치지 마라.

네 영혼까지 훑어볼 것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설록 탐정은 시어 하나하나를 해석하며 그 시를 남기고 사람의 상황과 마음, 과거의 상태와 그가 하고자 하는 행동 등을 추리해낸다. 짧은 시 속에 이 모든 게 들어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설록의 조수인 성완승 역시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상당한 추리를 해내고, 고3 야구선수가 가지고 온 시 속에 담긴 의미를 탐정처럼 풀어내기도 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사건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의 사건이었다. 사건 속 주인공 권정진이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오경철 형사는 그가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상황을 토대로 그가 자살을 기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권정진의 모친이 사건을 의뢰하면서 설록은 그의 행동에 의문점을 나타낸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권정진이 읽었던 사무원이라는 시와 권정진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땅끝이라는 시를 토대로 말이다. 내가 이 사건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사무원이라는 시 때문이었다. 나 역시 얼마 전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사무원 속 인물 정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점심시간을 쪼개고 화장실을 참으면서 바쁘게 일했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상황 속에 있어서인지, 정진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았다.

그 밖에도 사라진 셋째를 찾는 형제들의 이야기, 재벌그룹의 외동딸을 찾는 사건 등 다양한 사건 속에 시가 대입되며 색다른 추리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사라지기 전 시를 남기고 간다는 상황 자체가 실제적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시와 추리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느낌이 들어서 한결 흥미로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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