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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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은 한 두 권 접하다 보니 왠지 모를 흥미가 생겼다. 상상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내 머릿속을 누가 살펴볼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느낀 대로 그려본다. 초저예산 영화가 그렇게 한편 머릿속에 재생된다. 일어나지 않은, 언제일지 모를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현재의 감정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SF 소설은 흥미롭다.

잔류 인구. 제목부터 뭔가 의미심장하다.

남겨진, 사람.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지만... SF 소설인데 잔류라니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아프다. 잔류인구라 쓰고 세라 오필리아라고 읽는다. 70대의 할머니 오필리아는 콜로니에 살고 있다. 그녀와 아들 바르톨로메오(바르토) 그리고 며느리 로사라가 그녀의 가족이다. 40년 전 그녀는 남편 움베르토와 자녀들과 함께 이곳 콜로니로 이주했다. 여러 번의 고비 같은 시간을 지나며 남편도 딸도, 아들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에게 남은 자녀는 썩 마음에 품어지지 않는 불평쟁이 바르토 뿐이었다. 그녀의 첫 번째 며느리 앨리스도 대홍수 때 세상을 떠났고, 아들만큼이나 불편한 며느리 로사라와 재혼을 했다. 매일 새벽 토마토 밭을 돌며 점액 대벌레는 부러뜨린다. 갑작스러운 이주 결정에 주민 투표를 위해 아들 내외와 회의에 참여해서 투표권을 행사하지만, 컴퍼니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다. 그저 30일의 기한 안에 이주해야 하니 개인당 29kg의 짐만 허용된다는 이야기만 전할 뿐이다. 40년 전 콜로니로 이주할 때는 짐을 담을 상자를 제공해 줬으나, 이번에는 알아서 찾으란다. 콜로니에서 연장자이자, 첫 이주민 중 하나인 오필리아에게 마을 여자들이 짐을 넣을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털어놓자 오필리아는 천으로 큰 가방을 만들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렇게 큰 가방을 만들기 시작한다. 근데, 오필리아는 사실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 거기에 그녀는 노동력을 제공하기에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이주를 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내야 한다고 한다. 바르토는 오필리아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로사라는 썩 유쾌하지 않다.

 

 

 

30일이라는 시간은 이주 시작의 시간이 아니라, 이주를 끝내는 시간이었다. 바르토와 로사라가 셔틀을 타고 먼저 떠나고, 오필리아는 나중에 탑승키로 한다. 떠날 생각이 없는 오필리아는 간단한 음식과 씨앗만 챙겨 숲으로 숨는다. 컴퍼니 대리인들이 오필리아를 열심히 찾아 나설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강제로 타고 싶지는 않기에 그녀는 아무도 없는 숲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그녀는 자의로 콜로니에 남겨진다. 모두가 떠난 콜로니에서 그녀는 속옷도 겉옷도 입고 싶지 않다. 그때 공적 목소리가 들려온다. 체면을 차리라고. 속옷도 겉옷도, 신발도 신으라고... 공적 목소리는 그녀를 옥죈다. 사적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지만, 공적 목소리가 너무 크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콜로니에서 오필리아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마주치게 되는데...

기력은 다소 없지만, 70대의 오필리아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녀의 지혜와 연륜은 결코 나이 들었다고 폐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인간들은 그녀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하지만, 외계인들은 그녀의 지혜와 연륜을 아주 귀중하게 생각한다. 미래 사회에서도 노인은 필요악이라니... 마냥 씁쓸하다. 오히려 동족(?)이라 할 수 있는 인간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또한 몸에 붙어버린 관습과 사회 분위기는 오필리아를 누른다.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로운 행동을 할 때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든다. 그 목소리로부터 벗어나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굳이 미래로 가지 않아도 사회 속의 잔류 인구는 존재하는 것 같다. 정상이라고, 보통이라고, 평균이라고 만들어 놓은 둘레를 벗어나는 순간 잔류 인구가 된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버려진 존재 말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오필리아가 행복했던 시간은 어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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