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원래 용서라는 건 용서받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의 마음을 따르는 거 아닌가요?
용서했다고 해도 어떻게든 살면서 계속 마음으로 갚아야 하는 거고."
참 강렬한 인상을 남긴 소설이 있다. 읽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목도 특이하고 내용도 특이했다. 바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처음 만났던 그 책 조경아 작가의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책이었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의 아들이자 어머니를 잃고, 자신도 죽을 뻔했던 테오는 결국 사제가 된다. 하지만 그에게 얽힌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굴레는 어딜 가든 따라붙었다. 부임한 성당에서 일어난 사고들은 결국 그로 하여금 사제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물론 친우 베드로의 죽음도 한몫을 했지만 말이다.
복수 전자는 그 이후의 이야기다. 테오는 요셉, 도팔과 함께 복수전 자라는 곳을 차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전파사나 A.S 센터, 붕어빵 가게처럼 보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복수 전자를 동명의 게임을 마지막 판까지 클리어한 후 보이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복수 전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상당히 장황한 설문에 성실히 응답하고 복수 전자 직원들(테오 혹은 요셉) 과의 미팅을 거친 후 복수에 대한 계획이 세워진다. 물론 복수에는 10가지 원칙이 있고, 심사를 통해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되면 복수 전자 쪽에서 직권으로 거부할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여러 인물들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이야기는 아들 기성우가 국회의원이자 사학재단 이사장인 아버지 기승만에 대한 복수의 이야기다. 딱 보기에도 비리와 연관되어 있을법한 기승만은 자신의 생각에 걸리 적 거리는 사람들은 무참히 제거한다. 사학재단 이사장 시절 벌인 재단 기금을 횡령한 것을 시작으로 밖에서 낳은 아들 성우가 같은 학교 교사의 아들 현민보다 성적에서 뒤처지자 그를 내쫓는다. 물론 현민의 아버지는 승만이 벌인 일을 다 알고 있고, 그를 폭로하려고 준비 중이었으나 승만에 의해 온 가족이 살해당한다. 성우는 스스로의 힘으로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나, 오히려 역습을 당해 정신병원에 갇힌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성우는 경찰서에서 우연히 만난 보미에 의해 복수 전자를 알게 되고 게임을 클리어한 후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요청하게 되는데...
여러 건의 복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금기하다의 260번 의뢰자 한상현의 이야기였다. 한상현의 딸은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버스 사고로 사망한다. 그 사고에서 유일한 사망자는 딸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상현의 화는 점점 커진다. 처음에 버스기사에게 향했던 화가 버스회사와 같은 버스에 탔지만 살아남은 아이들에게까지 이르렀다. 한상현은 결국 복수 전자로 향한다. 하지만 복수 전자와의 미팅에서 상현은 복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생각하는 복수를 할 대상도, 복수를 할 방법도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화가 난 상현은 자신이 직접 버스회사에 폭탄을 들고 복수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하지만 복수 전자로부터 들은 엄청난 이야기는 복수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데...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피해를 보게 되면 복수를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통쾌한 복수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복수는 성공이라기에는 뭔가 아쉽다. 복수를 한다고 상황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사랑했던 사람이 살아돌아오지도 않으니 말이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복수 전자 사람들. 그들은 그 상처를 서로 보듬아주고, 또 상처받은 누군가의 상처를 위로해 주기 위해 다른 식의 복수를 해나간다. 물론 복수의 결과가 만족스러운지는 어디까지나 의뢰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전 작에 등장한 사이코패스 마 교수 역시 이 책에 등장한다. 덕분에 왠지 모를 불안감과 추리소설 못지않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켜서 전 작만큼이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