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은 순간의 시

너희는 동전 두 개를 공중으로 던지면서 그 결과를 놓고 내기하지. 하지만 말이야, 둘 다 세 번 연속 앞면이 나온다 해도, 통계적으로는 그 뒤에 똑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은 두 개 모두 앞면이 나온다에 또 돈을 걸지. 동전을 던질 때마다 처음 던질 때랑 확률이 같아. 정말 멋지지 않아? p.55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죽음의 라인에서 살아남아 전쟁 영웅이 된 외과 의사 도리고 에번스. 그가 처음 교회에서 보았던 눈 부신 빛은 신의 계시처럼 가슴속에 자리해 그를 빛을 따르는 운명으로 이끈다. 그리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태양왕처럼 외과 의사 자리까지 오른다. 끊임없이 빛을 찾아 헤매는 그에게 전쟁은 지속되는 우기와 같았다. 빛나는 태양 대신 쉼 없이 쏟아지는 비와 어두컴컴한 하늘은 새로운 빛을 갈망하게 했다. 삶의 순간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움츠러들었을 때,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속에 그가 발견한 빛은 ‘그녀’였다. 그녀는 모란 속에 갇혀 비틀비틀 나온 벌 한 마리가 처음 본 햇살이었다.

 

도리고 에번스가 일상을 보내는 곳은 죽음의 철도를 만들고 있는 전쟁터였다. 매일 아침 라인에 보낼 포로들의 숫자를 협상하며, 병들고, 아프고, 다친 사람 중에 그나마 오래 버틸만한 사람들을 고르는 것이 그의 임무 중 하나였다. 전쟁의 광기가 아직 그에게 미치지 않았을 때, 애들레이드 서점의 창을 투과한 햇살이 부유하는 먼지와 책들 사이로 그녀에게 쏟아졌다. 오랫동안 빛의 열망을 잊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운명의 소용돌이 앞에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고모부의 집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 강렬한 빛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빠져든다. 에이미, 아미, 아무르. 내일 다시 눈을 떠도 반복되는 똑같은 삶 속에 ‘그녀’라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자리했다. 그에게는 예측할 수 있는 미래보다 변할 수 있는 순간이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망각의 다리였다. 그는 자기가 타들어 가는 줄 모르고 불을 품는 양초처럼 빛을 향해 돌진했다.  

사막 한복판에서 어떤 예언자가 갈증으로 죽어가는 여행자에게 물만 있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물이 없습니다. 여행자가 대답한다. 그렇지. 여행자가 맞장구를 친다. 하기야 물이 있었다면 당신은 갈증에 시달리지 않았을 테고 죽지도 않을 테지요. 그럼 내가 죽는 거군요. 여행자가 말한다. 물만 마시면 괜찮습니다. 예언자가 대답한다. 314

빛을 품고 살았던 그와 달리 거시기라 불리는 작은 천 조각 하나로 가린 몸뚱이와 그 사이에 밥통을 걸고 살았던 전쟁의 포로들. 그들이 매일 죽음을 보며 깨닫게 된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은 식당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에 대한 추억이나 토끼 헨드릭스의 그림처럼 작고, 희미하며, 연약한 것들이었다.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기적인 욕망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산다는 것은 불안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이유를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삶의 목적을 위해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동료애는 함께 살아있다는 안심과 동정심이었다. 그들을 절망에서 살아남게 해 준 것은 자신이 그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라인은 망가졌다.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삶의 확신에 대한 기억도 점차 불투명해졌다. 고향에 살아 돌아가면 삶의 이유가 더욱 분명해져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고향은 예전에 그들이 그리던 고향이 아니었다. 자신을 버티게 해 주었던 모든 이유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의 이유는 사라져 버린다. 삶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죽음의 목전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살았을 때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깨트려 버린 니키타리스의 수조는 더는 의미 없는 확신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투쟁과 함께 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얼굴, 인생, 운명, 행복과 불행이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건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받고, 어떤 놈은 아무것도 못 받고, 사랑도 똑같아요. 맥주잔 크기가 다양한 것과 같습니다. 맥주가 적든 많든 마시고 나면 똑같이 사라져버리죠. 우리는 그걸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고요. 담을 쌓거나 집을 지을 때처럼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감기 같은 거예요. 사랑 때문에 비참해지지만 곧 증세가 사라지죠. 그렇지 않은 척하는 건 곧 지옥으로 이어진 길이에요. P.457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전쟁터에서조차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한이 확실하게 정해진 죽음 앞에 인간이 가장 후회하게 되는 일은 무엇일까. 전쟁이 끝나고 곳곳에 흩어졌던 전범들은 차례대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수로 분류되어 'CD'라는 표시를 단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내게 주어진 의무, 열등감, 자존심이라는 내면의 전쟁터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순간, 자신의 키에 딱 맞는 밧줄은 단번에 목을 조여온다.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무게의 모래주머니는 더는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발버둥 치지 못하게 한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같이 사는 딱 지금의 내 모습처럼. 그래서 먼 북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좁다.

 

무수히 많은 점으로 촘촘히 연결된 선형의 삶에서 태어남과 죽어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마법은 있었다. 점 하나하나가 원형이 되는 찰나의 빛, 그것은 사랑이었다. 지구별 여행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되뇌는 사랑하고 행복했던 순간들. 각자의 기억회로에 저장된 사실이 아닌 진실. 그것은 내가 바라보았던 세상 속의 사랑이었다. 우리는 꽃이 되는 순간의 존재로 죽음의 문 앞에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음에도 걸을 수 있었다.

맨부커상은 2016년 5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리처드 플래너건 장편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2014년 맨부커상을 받은 책이다. 이 책은 이 차 대전 당시 일본이 인도와 미얀마로 진격하기 위해 만든 '죽음의 철도'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 의문을 갖게 한다.

지나간 날은 나의 확신에 대한 결과물이다. 내가 확신했던 인생의 결과물은 진실 앞에 때로는 영예로운 왕관으로, 때로는 한낱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포탄이 날아와 머리가 부서지는 전쟁의 불확실함과 같은 인생과 매일 마주하며 선택한다. 작가가 펼쳐 놓은 다섯 마당의 하이카이 시구는 노래한다. 삶의 진실은 순간에 있으며, 그 진실의 기준은 내 안에 있다고.  파도에 몸을 싣고 운명의 바다에 내리꽂히는 순간, "전진하라 제군들, 창턱으로 돌격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서 참 애썼어요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전경아 옮김 / 유노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나'라는 보물찾기
<혼자서 참 애썼어요>

 
힘들게 돌아 돌아 깨우치게 된 '나'라는 보물을 찾는 비밀이 이 책에 있다. 심리학 이론 따위는 단 한 줄도 없다. <혼자서 참 애썼어요>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자기를 향한 연민이나 동정을 일으키는 달콤한 말도 없다. 하지만 글을 읽는 순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나로 인한 것이었다는걸.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못난 진짜 내 모습을 감추고 싶은 내면의 욕망.  그러나 거짓 없이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나'라는 보물을 찾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당신입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법>, <적당히 사는 법> 등 책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일으키는 이 책의 저자인 고코로야 진노스케는 심리학자가 아니다. 일반 회사를 다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해  지금은 '성격 리폼 카운슬러'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작년에는 <나한테 왜 그래요?>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나'라는 보물 찾기란 어떤 것일까.

"그 사람은 이래."라고 분석만 하지 말고,
"그 사람은 이렇게 해야 돼."라고 비판만 하지 말고
스스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길을 잃지 않도록 늘 생각합시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P.83

 

    <나 답지 않으니까 괴로운 것>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란다. 맏이인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둘째로 태어난 나는 타인의 바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했다. ‘사이’에 있는 것은 자주 ‘무관심’ 속에 방치된다. 그래서 더 돋보여야 주목받는 것을 일찍 터득했다. 사랑받기 위해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받고 싶어서' 했던 의도된 행동들은 '받지 못했을 때'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노력은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라는 결론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나는 나답게 사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온전하게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다시 무관심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 같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고 비난받고 오해받고 사랑받지 못할까 봐 여전히 두렵다. 그런데 힘들게 붙잡고 있는데도 괴롭다면 굳이 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늘 착한 사람은 아니다. 저자는 얘기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 내 문제가 궁금하다면 타인을 대하는 나를 바라봅니다>

겁나서 하던 행동을 관두고
겁나서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됩니다.
그것이 자기답게 사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배운,
안전하게 사는 갑옷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힘껏 싸우는 겁니다.     p.71

지나친 자기 비하는 그만, "아냐, 아냐" 돌이켜 생각해 본다.  상처받았다고 솔직히 얘기해도 괜찮다. 내 마음을 숨기고 토라지지 말자. 때로는 포기하자, 놔주자, 손해 보자, 졌다고 말하자. 딱 부러지게 말하자. 상처받을 용기를 내면 상처받지 않는다. 나중에라도 내 감정을 깨달았다면 감정에 이자가 붙지 않도록 그때라도 숨김없이 말하자. 남들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주지 않으니, 내가 내 마음을 잘 살펴서 정확하게 얘기한다. 오해받는 걸 받아들이면 오해가 풀린다.  이 책 속에는 나를 찾아가는 모험길에 필요한 주문들이 가득하다.  

'나'라는 보물을 꼭 찾아야 할까. 아니, 꼭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사람들과 섞여 살아도 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느낌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찾아야 한다. 거짓 자존감과 결별하기 위해서는 진짜 자존감을 경험하고 느껴봐야 한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온갖 핑계와 합리화로 보물을 찾기로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맞이하는 결혼이나 출산은 내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 모습을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통해 드러나게 한다. 어쩌면 보물은 종착지에 있는 것이 아닐라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알게 된 새로운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기억회로는 생존의 법칙에 따라 불행을 지우고 행복만을 남겨둔다. 그래서 나를 찾으러 떠났던 길을 되돌아보면 모두 행복처럼 느껴질 것이다. "알아줄게요"라는 그의 첫 문장에 나는  완전히 설득당했다.  혼자서 고분분투하고 살아온 내 삶에 대한 값싼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순도 100%의 위로. 이제 나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 행복해져도 된다.  모두 다 괜찮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덟 단어 (기프트 에디션)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삶은 순간의 합이라는 말에 동의하신다면
찬란한 순간을 잡으세요
나의 선택을 옳게 만드세요
여러분의 현재를 믿으세요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하면
내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겁니다.

'책은 도끼다'의 박웅현.  박웅현이라는 이름보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듣고 보았던 광고 카피로 더욱 유명한 사람. 그의 강의를 담은 <여덟 단어 기프트 에디션>이 나왔다.  '책은 도끼다'부터 여덟 강의로 나눈 이유가 궁금했다. 그 후 나온 '여덟 단어'라는 책은 아예 '여덟'이라는 숫자를 제목까지 끌어올린다.  그가 가진 '여덟'이라는 숫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왜 그는 여덟이라는 숫자를 택했을까. 

8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로 알려져 있다. 8은 지속, 반복, 무한대를 의미하며, 제8일은 예수가 부활한 날로 신생, 재생의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주역은 8괘로 이루어져 있고, 불교에서 팔정도는 열반에 이르기 위한 8가지 올바른 길을 말한다. 한반도는 팔도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비율을 팔등신이라 칭한다. 태양계는 8개의 행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의 '여덟 단어'는 박웅현이라는 작은 소우주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 단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반짝이게 만들어준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다.  자존은 중심점을 내 안에 찍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본질은 더하기 보다 빼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는 것이다. 고전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견(見)은 흘려보지 않고 깊이 보는 것이다.  삶은 순간의 합이라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고,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이기는 것을 믿는 것이 권위다. 나만의 언어의 집을 만들고 보편적인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소통이며, 차선에서 최선을 찾아내는 것이 인생이다.

책 속 글들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과자처럼 쉽고 빠르게 사라졌다. 그래도 사람을 향한다는 그의 광고 문구처럼 몇몇 문장은 가슴속에 그대로 남았다. 간단한 화장품과 휴대 전화만 들어가는 여성들의 작은 가방에도 들어갈 수 있을만한 두께의 분리된 책들은 인문학도 주전부리처럼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이쯤 되면 여성과 남성의 장점만을 모아 중성화를 지향한다는 그의 말은 허튼소리가 아닌듯하다.  <여덟 단어 기프트 에디션>은 많은 지식을 아는 것보다 내게 맞는 지식을 찾는 선택지를 준 느낌이다.

나만의 단어를 쓸 수 있는 노트를 펼쳐 나도 한 마디 적어 넣었다. '운명'.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는 것은 삶을 어떻게 바라보게 만들까.  성향이 전혀 다른 두 아이를 보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엄마'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비로소 내 인생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뒤늦게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나선 것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나만의 빛을 찾기를 바란다. 나의 길을 무시하지 않고 나만의 빛을 따라 사는 것이 진짜 행복한 것이다.

삶이 순간의 합이라면 우리는 정해진 내 삶 속에서 매 순간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을 조화롭게 가져가는 법을 스스로 찾고 깨달아야 한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기쁨은 어릴 때는 노란색 한 가지였다. 그러나 주인공의 성장에 따라 기쁨 속에는 노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란색 슬픔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여덟 강의로 독자 스스로 자신의 빛을 찾아 만들어 가는 법을 쉽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그리고 여러 책들에서 그가 인용한 많은 글귀는 삶이라는 배를 이끌어 주는 가장 좋은 나침반은 책이라는 점을 넌지시 드러낸다.  우리가 그의 글을 다시 찾는 이유는 여전히 찾지 못한 나를 찾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책은 늘 강력 추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경계의 대치로 인한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두 개의 방 문이 있는 공간에서 문 너머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은 늘 그래왔다는 듯 스스럼없다. 문득 대중목욕탕의 냉탕과 온탕을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어른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이 들어 이미 무감각해져버린 감각 세포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구별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된 나는 그 들락거림을 이해할 수 있다.

제목에서 느꼈던 경계의 대치는 글 속에서도 계속된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침묵의 미래 p.132),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건너편 p.92),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살았다는 안도' (풍경의 쓸모), 배신감이 아닌 안도감(건너편) 등 그녀는 인간의 이중성을 비틀어 그 안에 내재된 연약한 슬픔을 드러낸다.

슬픔의 근원은 무엇일까. 모두가 행복했던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고, 자신이 벗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아담과 하와. 그들은 비로소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의 몸을 가린다.  인간은 살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삶을 지속해야 한다. 인간의 슬픔은 잠결에 흔들리는 실오라기 같은 양심이다. 저자는 그 틈새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 섬뜩한 칼날을 보이며 인간의 원죄를 드러낸다.

글을 읽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암에 걸린 에반의 안락사를 위해 찬성이가 모았던 돈을 조금씩 헐게 만든 휴대 전화는 정작 통화할 상대가 없었으니까. 정착의 사실을 실감하기 위해 매 순간 공들였던 아파트는 주인을 잃고 의미를 상실했으니까. 임용 전화를 기다리는 중에 무시했던 아버지의 전화는 부고 통지를 알려주었고,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던 전화는 내게 가장 필요했던 위로였으니까. 얼마나 많은 순간 삶과 삶 비슷한 것의 경계를 냉탕과 온탕을 들락거리듯 넘나들었을까.

개인적으로 책 편집 디자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책을 펼치면 닫힌 문과 작은 글씨체가 있고 다음 장에 열린 문과 큰 글씨체가 나타난다. 문을 열면 보게 되는 사실 너머 진실. 나는 문을 열고 들여다 볼 자신이 있는지 되묻는다. 각 이야기 제목이 실린 간지 부분에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드넓은 밤 하늘.  작은 구멍은 나의 시야였다. 딱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사는. 

 

인터넷 포털 창에 ‘김애란’을 입력하니 여러 개의 연관 검색어가 뜬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제외하고 모두 낯선 책 들이다. 2017년 소설가들이 뽑았던 올해의 소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둔다. 내 마음을 가리고 싶어질 때, 한 번씩 꺼내어 사그라들었던 양심의 불씨를 당기고 싶어질 때를 위해. 영원히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기를. 바깥은 여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류시화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망이 없는 인생은 어둠이고,
지식이 없는 열망은 맹목이며,
일하지 않는 지식은 헛된 것이고,
사랑이 없는 일은 무의미하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그가 40세가 되던 1923년 10월에 크노프 출판사에서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처음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20세기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 되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물심양면 지원한 그의 정신적 동반자 메리 해스켈의 안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그의 작품이 후대에 널리 읽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그의 그림과 작품들을 그의 고향 베샤레로 보내 지브란 기념관을 세우게 하고 지금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칼릴 지브란의 글은 어디에선가 한 구절이라도 읽어보았기에 책에서는 그의 그림이 유독 눈에 띄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알았지 미술을 배우고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알몸의 남녀,  날아가는 새, 희뿌연 배경에 무표정 얼굴과 몸들이 뒤엉킨 그림으로 그의 글은 마음속을 유영하며 부유한다. 부드러운 색채와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 속에서 들리는 절규는 작은 울림이 되어 마음을 뒤흔들었다. 광활한 황무지에 깃털 한 오라기 없이 알몸으로 던져진 몸은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영혼의 모습과도 같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27가지 가르침 중에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되새김질해 본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영혼은 하나의 길만을 걷는 것도 아니고, 갈대처럼 자라는 것이 아니라 했다. 무한 잎새의 연꽃처럼 저 자신을 연다고 했다. 연꽃은 꽃잎이 분리되어 있으면서 또한 한 곳에 붙어 있다. 내가 발견한 진리가 전부가 아니며, 내가 발견한 길이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한 몸인 것이다. 연꽃은 꽃을 피움과 동시에 열매를 맺는다.


아이들이 재잘거림이 한 밤의 고운 숨결로 잦아들고, 밀려드는 일들에서 벗어나 작은방 안 구석에 스탠드를 켤  때 나는 자유롭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낮에 근심이 없고 밤에 욕망과 슬픔이 없을 때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한다. 모든 것이 내 삶에 휘감겨도 그것들을 벗어던지고 얽매임 없이 일어설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 한다.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없이 비로소 작은 몸을 누울 시간이 되어도 머릿속은 여전히 근심, 걱정, 두려움, 불안한 미래로 자유롭지 못하다.나의 자유는 그의 말처럼 족쇄에서 벗어나는 순간 더 큰 자유의 족쇄가 되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나'다.

막 태어난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어머니의 젖을 힘차게 빨기 시작한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부모는 희망을 꿈꾼다. 그 꿈속에 영원으로 가는 문이 숨겨져 있다. 침묵의 강물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산꼭대기에서 오르기 시작하고, 대지가 팔다리를 가져갈 때 진정으로 춤추게 된다는 말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의 소중함을 알고 진정 삶을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매 순간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영원으로 갈 수 있는 비법이다.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찾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죽음의 의미.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나는 삶 속으로 더욱 정진해야 한다.  


<예언자>의 성공 뒤에 더 뛰어난 작품을 내지 못해 불안해했다는 그의 인생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리고 그도 나와 같은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진정 인간은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인가. 자유롭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인생의 딜레마.  죽음으로 의식이 소멸되면 그 고통의 짐은 사라질까. 죽음을 꿈꾸지 않아도 죽음의 문으로 하루 하루 가까워지는 인생에 누가 노예를 자처하는가.  망설임 없이 어미의 젖을 빨고 그 품 안에서 안정감을 느꼈을 때 아이는 그것으로 행복했을 것이다. 태어날 때 인생의 모든 지혜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태어날 때 누구나 예언자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