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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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경계의 대치로 인한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두 개의 방 문이 있는 공간에서 문 너머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은 늘 그래왔다는 듯 스스럼없다. 문득 대중목욕탕의 냉탕과 온탕을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어른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이 들어 이미 무감각해져버린 감각 세포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구별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된 나는 그 들락거림을 이해할 수 있다.

제목에서 느꼈던 경계의 대치는 글 속에서도 계속된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침묵의 미래 p.132),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건너편 p.92),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살았다는 안도' (풍경의 쓸모), 배신감이 아닌 안도감(건너편) 등 그녀는 인간의 이중성을 비틀어 그 안에 내재된 연약한 슬픔을 드러낸다.

슬픔의 근원은 무엇일까. 모두가 행복했던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고, 자신이 벗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아담과 하와. 그들은 비로소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의 몸을 가린다.  인간은 살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삶을 지속해야 한다. 인간의 슬픔은 잠결에 흔들리는 실오라기 같은 양심이다. 저자는 그 틈새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 섬뜩한 칼날을 보이며 인간의 원죄를 드러낸다.

글을 읽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암에 걸린 에반의 안락사를 위해 찬성이가 모았던 돈을 조금씩 헐게 만든 휴대 전화는 정작 통화할 상대가 없었으니까. 정착의 사실을 실감하기 위해 매 순간 공들였던 아파트는 주인을 잃고 의미를 상실했으니까. 임용 전화를 기다리는 중에 무시했던 아버지의 전화는 부고 통지를 알려주었고,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던 전화는 내게 가장 필요했던 위로였으니까. 얼마나 많은 순간 삶과 삶 비슷한 것의 경계를 냉탕과 온탕을 들락거리듯 넘나들었을까.

개인적으로 책 편집 디자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책을 펼치면 닫힌 문과 작은 글씨체가 있고 다음 장에 열린 문과 큰 글씨체가 나타난다. 문을 열면 보게 되는 사실 너머 진실. 나는 문을 열고 들여다 볼 자신이 있는지 되묻는다. 각 이야기 제목이 실린 간지 부분에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드넓은 밤 하늘.  작은 구멍은 나의 시야였다. 딱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사는. 

 

인터넷 포털 창에 ‘김애란’을 입력하니 여러 개의 연관 검색어가 뜬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제외하고 모두 낯선 책 들이다. 2017년 소설가들이 뽑았던 올해의 소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둔다. 내 마음을 가리고 싶어질 때, 한 번씩 꺼내어 사그라들었던 양심의 불씨를 당기고 싶어질 때를 위해. 영원히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기를. 바깥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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