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은 순간의 시

너희는 동전 두 개를 공중으로 던지면서 그 결과를 놓고 내기하지. 하지만 말이야, 둘 다 세 번 연속 앞면이 나온다 해도, 통계적으로는 그 뒤에 똑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은 두 개 모두 앞면이 나온다에 또 돈을 걸지. 동전을 던질 때마다 처음 던질 때랑 확률이 같아. 정말 멋지지 않아? p.55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죽음의 라인에서 살아남아 전쟁 영웅이 된 외과 의사 도리고 에번스. 그가 처음 교회에서 보았던 눈 부신 빛은 신의 계시처럼 가슴속에 자리해 그를 빛을 따르는 운명으로 이끈다. 그리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태양왕처럼 외과 의사 자리까지 오른다. 끊임없이 빛을 찾아 헤매는 그에게 전쟁은 지속되는 우기와 같았다. 빛나는 태양 대신 쉼 없이 쏟아지는 비와 어두컴컴한 하늘은 새로운 빛을 갈망하게 했다. 삶의 순간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움츠러들었을 때,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속에 그가 발견한 빛은 ‘그녀’였다. 그녀는 모란 속에 갇혀 비틀비틀 나온 벌 한 마리가 처음 본 햇살이었다.

 

도리고 에번스가 일상을 보내는 곳은 죽음의 철도를 만들고 있는 전쟁터였다. 매일 아침 라인에 보낼 포로들의 숫자를 협상하며, 병들고, 아프고, 다친 사람 중에 그나마 오래 버틸만한 사람들을 고르는 것이 그의 임무 중 하나였다. 전쟁의 광기가 아직 그에게 미치지 않았을 때, 애들레이드 서점의 창을 투과한 햇살이 부유하는 먼지와 책들 사이로 그녀에게 쏟아졌다. 오랫동안 빛의 열망을 잊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운명의 소용돌이 앞에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고모부의 집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 강렬한 빛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빠져든다. 에이미, 아미, 아무르. 내일 다시 눈을 떠도 반복되는 똑같은 삶 속에 ‘그녀’라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자리했다. 그에게는 예측할 수 있는 미래보다 변할 수 있는 순간이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망각의 다리였다. 그는 자기가 타들어 가는 줄 모르고 불을 품는 양초처럼 빛을 향해 돌진했다.  

사막 한복판에서 어떤 예언자가 갈증으로 죽어가는 여행자에게 물만 있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물이 없습니다. 여행자가 대답한다. 그렇지. 여행자가 맞장구를 친다. 하기야 물이 있었다면 당신은 갈증에 시달리지 않았을 테고 죽지도 않을 테지요. 그럼 내가 죽는 거군요. 여행자가 말한다. 물만 마시면 괜찮습니다. 예언자가 대답한다. 314

빛을 품고 살았던 그와 달리 거시기라 불리는 작은 천 조각 하나로 가린 몸뚱이와 그 사이에 밥통을 걸고 살았던 전쟁의 포로들. 그들이 매일 죽음을 보며 깨닫게 된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은 식당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에 대한 추억이나 토끼 헨드릭스의 그림처럼 작고, 희미하며, 연약한 것들이었다.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기적인 욕망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산다는 것은 불안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이유를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삶의 목적을 위해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동료애는 함께 살아있다는 안심과 동정심이었다. 그들을 절망에서 살아남게 해 준 것은 자신이 그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라인은 망가졌다.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삶의 확신에 대한 기억도 점차 불투명해졌다. 고향에 살아 돌아가면 삶의 이유가 더욱 분명해져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고향은 예전에 그들이 그리던 고향이 아니었다. 자신을 버티게 해 주었던 모든 이유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의 이유는 사라져 버린다. 삶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죽음의 목전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살았을 때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깨트려 버린 니키타리스의 수조는 더는 의미 없는 확신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투쟁과 함께 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얼굴, 인생, 운명, 행복과 불행이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건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받고, 어떤 놈은 아무것도 못 받고, 사랑도 똑같아요. 맥주잔 크기가 다양한 것과 같습니다. 맥주가 적든 많든 마시고 나면 똑같이 사라져버리죠. 우리는 그걸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고요. 담을 쌓거나 집을 지을 때처럼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감기 같은 거예요. 사랑 때문에 비참해지지만 곧 증세가 사라지죠. 그렇지 않은 척하는 건 곧 지옥으로 이어진 길이에요. P.457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전쟁터에서조차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한이 확실하게 정해진 죽음 앞에 인간이 가장 후회하게 되는 일은 무엇일까. 전쟁이 끝나고 곳곳에 흩어졌던 전범들은 차례대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수로 분류되어 'CD'라는 표시를 단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내게 주어진 의무, 열등감, 자존심이라는 내면의 전쟁터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순간, 자신의 키에 딱 맞는 밧줄은 단번에 목을 조여온다.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무게의 모래주머니는 더는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발버둥 치지 못하게 한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같이 사는 딱 지금의 내 모습처럼. 그래서 먼 북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좁다.

 

무수히 많은 점으로 촘촘히 연결된 선형의 삶에서 태어남과 죽어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마법은 있었다. 점 하나하나가 원형이 되는 찰나의 빛, 그것은 사랑이었다. 지구별 여행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되뇌는 사랑하고 행복했던 순간들. 각자의 기억회로에 저장된 사실이 아닌 진실. 그것은 내가 바라보았던 세상 속의 사랑이었다. 우리는 꽃이 되는 순간의 존재로 죽음의 문 앞에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음에도 걸을 수 있었다.

맨부커상은 2016년 5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리처드 플래너건 장편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2014년 맨부커상을 받은 책이다. 이 책은 이 차 대전 당시 일본이 인도와 미얀마로 진격하기 위해 만든 '죽음의 철도'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 의문을 갖게 한다.

지나간 날은 나의 확신에 대한 결과물이다. 내가 확신했던 인생의 결과물은 진실 앞에 때로는 영예로운 왕관으로, 때로는 한낱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포탄이 날아와 머리가 부서지는 전쟁의 불확실함과 같은 인생과 매일 마주하며 선택한다. 작가가 펼쳐 놓은 다섯 마당의 하이카이 시구는 노래한다. 삶의 진실은 순간에 있으며, 그 진실의 기준은 내 안에 있다고.  파도에 몸을 싣고 운명의 바다에 내리꽂히는 순간, "전진하라 제군들, 창턱으로 돌격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