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전쟁터에서조차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한이 확실하게 정해진 죽음 앞에 인간이 가장 후회하게 되는 일은 무엇일까. 전쟁이 끝나고 곳곳에 흩어졌던
전범들은 차례대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수로 분류되어 'CD'라는 표시를 단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내게
주어진 의무, 열등감, 자존심이라는 내면의 전쟁터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순간, 자신의 키에 딱 맞는 밧줄은 단번에 목을 조여온다.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무게의 모래주머니는 더는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발버둥 치지 못하게 한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같이 사는 딱 지금의 내 모습처럼. 그래서 먼 북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좁다.
무수히 많은 점으로 촘촘히 연결된 선형의 삶에서 태어남과 죽어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마법은 있었다.
점 하나하나가 원형이 되는 찰나의 빛, 그것은 사랑이었다. 지구별 여행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되뇌는 사랑하고 행복했던 순간들. 각자의
기억회로에 저장된 사실이 아닌 진실. 그것은 내가 바라보았던 세상 속의 사랑이었다. 우리는 꽃이 되는 순간의 존재로 죽음의 문 앞에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음에도 걸을 수 있었다.
맨부커상은 2016년 5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리처드 플래너건 장편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2014년 맨부커상을 받은 책이다. 이 책은
이 차 대전 당시 일본이 인도와 미얀마로 진격하기 위해 만든 '죽음의 철도'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 의문을 갖게
한다.
지나간 날은 나의 확신에 대한 결과물이다. 내가
확신했던 인생의 결과물은 진실 앞에 때로는 영예로운 왕관으로, 때로는 한낱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포탄이 날아와
머리가 부서지는 전쟁의 불확실함과 같은 인생과 매일 마주하며 선택한다. 작가가 펼쳐 놓은 다섯 마당의 하이카이 시구는 노래한다. 삶의 진실은
순간에 있으며, 그 진실의 기준은 내 안에 있다고. 파도에 몸을 싣고 운명의 바다에 내리꽂히는 순간, "전진하라 제군들, 창턱으로
돌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