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로그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우희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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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Blog,
Love log,
Novel log.

네가 만나는 건 내가 아닌 나야. 네가 원하는 게 사랑이 아닌 사랑인 것처럼 사랑은 서로 아는 게 많아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성립해.
사람을 알면 사랑을 하지 않을 테니.

모든 것은 주인공의 원고가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지난 일 년 동안 상품성과 유리되고 작품성마저 결여된 글 무덤을 만든 장본인으로 <더 위트>라는 코미디 월간지의 작가다. 경쟁사에 떠밀려 갈수록 어려워지는 회사 형편에 편집장은 10주년 특집호에 글이 실리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작가 수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재계약을 앞둔 7일 전.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희망을 공들여 쓴 원고에 걸지만, 원고는 사라진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자신의 원고를 찾아가는 7일이 여정, 혹은 잠깐의 꿈이 이 책의 이야기다.  

 

속았다. 띠지에 기록된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 작가와 커플이 되지 못하는 커플매니저의 사랑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쯤 나오는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건 내 눈이었음을 소설은 끊임없이 증명한다. 이미 뇌리에 각인된 커플매니저와의 사랑 얘기가 될 실마리를 습관적으로 찾아 헤매었지만 중반을 넘어서도 스토리를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엄습한다. 목적지도, 바로 앞의 상대방도, 내 모습도 그릴 수 없는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더 위트>지에 소속 작가인 주인공의 말장난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B급 코미디와 아재 개그를 연상시킨다는 얘기는 불편했다. 대체 A급과 B급의 기준이 무엇인가. 드립 커피를 마시는 사람만 제대로 된 드립을 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문장의 걸림 아닌 결림을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말장난은 전염성이 대단하다) 작위적인 우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지점을 끊임없이 부유하며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었다. 언어의 마술로 기존 질서는 무너지고 새롭게 재편된 세계에서 꿈과 현실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식상한 것이 상식이라면 신선한 것은 무엇일까. 그의 개인기는 독보적이었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서 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요?
눈을 감고, 눈을 한번 떠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번 찾아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시간 간격의 측정은 그 측정을 행하는 기준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어떤 기준틀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이 기준틀에 대해 움직이는 다른 기준틀에서는 동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원고는 '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일까. 이야기가 사라지면 주인공도 사라진다. 독자들이 읽지 않으면 종이 뭉치가 되듯,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는 현실 속 끝맺음을 위해서라도 원고를 꼭 찾아야만 했다. 현실의 무게를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그녀의 중첩된 궤도는 어느 지점이었을까. 그의 꿈처럼, 그녀의 블로그처럼 그 지점은 한없이 불투명한 안갯속이다. 그의 사랑 찾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랑은 단순한 욕망의 실현을 넘어 어떤 운명적 가치로 그럴듯하게 설명이 되어야만 해. 달에만 존재하는 신념 같은 거지. 사랑을 하는 건지. 사랑한다고 믿는 건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여기에는 없어. 이곳에는 가져갈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 돈과 소유에만 괘념하는 개념 없는 사람도 없지.

쉽게 넘어가지 않는 문장과 문장 사이, 주인공이 찾고 싶었던 원고와 아직 끝맺지 못한 원고 사이에서 찾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였을 것이다. 우연을 가장했다고 해도 운명이라 믿고 싶은. 그러나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교집합은 언제나 누군가 손을 내밀 때 완성된다. 그 누군가는 그일까, 그녀일까. 말장난 같은 어희(語戱)에 얼굴 표정만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심형래의 개그를 떠올렸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는 찰리 채플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소설. "이 소설이 당신의 Novel log가 되겠군요.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당신이 개척한 코미디 문학 장르의 애독자가 되겠어요.” 끝.
   

코미디는 도태되지 않는 태도야. 웃길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슬프거나 힘들 때도 웃음을 잃지 않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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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그림을 이해하는 법 - 교사와 부모를 위한
르네 발디 지음, 강현주 옮김, 끌로드 퐁티 서문 / 머스트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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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완전한 이목구비를 갖춘 사람을 그리게 되는 것일까. 아이들의 그림이 발달되는 과정은 비선형적 사고를 선형적 사고로 이끌어내는 마법 같은 과정이다. 머릿속에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르네 발디는 '사람 그림'을 찾아 연구하는 탐험가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림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달하는지 연구한다. <아이의 그림을 이해하는 법>은 아이의 그림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되짚어 보며 아이마다 각자의 속도로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언어 적령기를 놓치면 말을 못하게 되는 늑대 소년의 일화처럼 그림 역시 주변 환경에 따라 발달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

첫째 아이는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5살 때 이미 옆모습을 그리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책상다리를 그릴 정도로 관찰력이 뛰어났다. 첫째 아이 그림을 보다가 둘째 아이의 그림을 보니 그림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 듯 느껴졌다. 다리가 없는 두족인에서 졸라맨으로 이어지는 그림은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두족인을 시작으로 점차 사람다운 모습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둘째 아이도 5살을 기점으로 두족인에서 벗어나 몸통이 있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아이의 그림이 이상하다고 해서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부모의 독려는 무척 중요하게 작용했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사고 과정이 표상화되는 과정 속에서 나름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목과 몸통이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목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지만 목걸이랑 세트로 등장한 귀걸이 덕분에 귀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은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발전이었다. 이 밖에도 책 속에는 부모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과 조언이 가득하다. 이제 부모는 아이의 그림을 보며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술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선생님께 부족한 부분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미술심리지도사처럼 아이들의 그림 속에 내포되어 있는 감정과 상처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아이들 그림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서로 어울리며 모방을 통해 자신의 속도에 가속도를 내기도 하고, 한동안 같은 그림만 그리는 침체기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아이의 그림은 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조금씩 변하는 그림이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말이 많은 위로를 주었다. 첫째 아이처럼 둘째 아이도 그림 파일을 만들어주어야겠다. 책에 나온 두족인 졸라맨의 모습을 보니 그때 그림들도 모아 놓았으면 좋은 자료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부터 할 일은 아이의 그림을 잘 모아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꾸로 된 그림을 그려본다던지, 역동적인 사진을 그려보는 활동을 통해 아이의 시점을 조절해주고 융통성을 길러 주어야겠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는 참 놀랍고 신기하다. 불안을 내려놓으니 아이의 그림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머릿속 생각을 맘껏 세상에 꺼내놓게 될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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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시작 모방과 본보기 - 일상에서 실천하는 발도르프 교육
김현경 지음 / 무지개다리너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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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하는 일은 특별한 교재를 이용해 글과 말만을 피교육자의 머리에 새겨 이론가나 탁상행정가를 많이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머리와 감정과 의지가 함께 균형 잡힌 통합을 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 내는 일입니다. 34

누군가와 소통을 하면서 부딪히는 순간, 우리는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때 누군가의 지지와 사랑은 나와 타자와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인간의 사랑은 제한적이다. 사랑의 마법은 곧 사라지고 초라한 내면 아이와의 대면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배움의 시작 모방과 본보기>에는 몸은 자랐지만 내면은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들어있다. 모방으로 시작되는 배움이 숙성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교육이 어떻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지 설명했다.

슈타이너는 인간을 사고, 감정, 의지로 구성된 구성체로 보았다. 세 가지 구성요소가 균형 잡힌 전인적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영양가 있는 생각과 소화기관의 의지를 키우면서 배설 기관인 감정을 잘 돌보는 것이다. 배움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도록 좌충우돌하는 과정 속에 부모는 안전한 울타리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배움은 피상적인 생각 단계에만 머무르게 되거나 완벽한 준비 없이는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

 

배움의 첫 번째 단계인 모방하기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무엇이든 모방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모방하여 움직여 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을 깨닫게 되는 두 번째 단계에서는 부끄러움, 좌절감, 성공의 경험을 충분히 해보며 내면의 자신과 만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자유자재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내면화 단계다. 슈타이너는 타인의 인정과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을 익히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표현방식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배움을 통해 내 몸이 좀 더 자유롭고 능숙하게 움직이게 될 때까지 배워야 하며 성숙한 배움은 자신의 것을 나누고 싶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떼쓰고 우기거나 남에게 휘둘리는 그를 균형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경우뿐입니다. 균형을 잃은 사람이 자기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스스로 인정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똑같은 말이라도 그 사람의 말은 다르게 들립니다.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균형을 잡아 주려는 생각은 자만심이며, 결국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나부터 배워야 합니다. 85

돌본다는 것은 타자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없다. 배움의 본보기는 자기 돌보기부터가 시작이다. 자신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정돈하는 일들을 스스로 해야 한다. 가정은 자기 돌보기를 최초로 연습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부모가 해주던 일들을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서서히 늘려주고 자신을 돌보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배우는 동안 실수나 미숙함으로 인한 불안함을 부모는 완충제 역할을 하며 받쳐준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는 현실을 회피하려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부모는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모의 역할의 더하거나 덜해도 아이는 불안감을 느끼고 자신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그 부족함은 사회 속에서 만나는 또 다른 타자에 의해 보충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이는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자긍심을 갖고 자라나야 제대로 독립할 수 있다. 결국 '기술'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사전적 지식만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행동으로 '고맙다'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다. 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를 인간은 따라가지 못한다. 윗세대에 본보기가 없었다면 나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정말로 좋은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는 것. '나'라는 어린아이가 따라 하고 싶은 본보기를 찾아 말이 아닌 몸으로 해 보는 것. 본보기란 나처럼 해 보라고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발견되는 것. 개인 시간은 열심히 일한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것. 쉬어야 할 때 쉬어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자기 돌봄을 잊지 않는 것. 작은 것도 뼛속까지 이해한 사람은 지식 없는 사람에게도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가져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가져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 이 모든 활동은 혼자서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 배움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내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참다운 교육이다. 기술의 발달이 내어 준 시간 동안 유의미하게 움직이며, 내가 먼저 배우고 좋은 본보기가 되어 아이들의 마음에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루고 싶은, 이루어야 할 전부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발도르프 교육법을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방법과 슈타이너 이론을 이 책으로 쉽게 배우고 익혔다. 남은 과제는 지금 읽은 지식이 인식에 머무르지 않도록 몸으로 실천하며, 내재화될 때까지 좌충우돌하면서 자유로워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배움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자라날 때까지 배움을, 자기 돌봄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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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컬렉션 -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단 하나의 보물
KBS 천상의컬렉션 제작팀 지음, 탁현규 해설.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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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없었다면 나는 첨성대의 신비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수학여행 단골 여행지가 경주였는지 납득시켜 주었다면, ‘천상의 컬렉션’은 지금 우리가 왜 문화재를 다시 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견학을 가도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화려한 액자로 만들어진 설명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천상의 컬렉션>은 한국 예술 천오백 년 사, 최고의 작품들을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선조들의 기술과 미학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국가 대표격 문화재를 깊이 보는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책은 회화, 공예, 도자, 조각, 전적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내던 '책가도'에 대한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정조는 화려한 업적만큼이나 영화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졌던 왕이다. 영화배우 현빈이 군 제대 후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 <역린>도 정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화려한 용모를 단숨에 가렸던 책가도의 모습이 이 책 속에 등장한다.

 

책에 따르면 원래 정조가 책가도를 유행시킨 뜻은 검소하게 학문에 정진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책가도의 소재는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건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가게 되었고, 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청나라의 물건을 가질 수 없었던 양반들이 책가도에 책 대신 다양한 물건을 그림으로 그려 욕망을 충족했다고 한다. 서민들의 책가도는 행복, 장수, 출세를 염원하는 상징이 솔직하게 부각되어 있는 점이 양반들의 책가도와 다른 점이었다. 계급에 따른 인간의 모습과 욕망의 표현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침 책장을 넘기다 보니 영화 속에 등장한 책가도의 모습이 보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가도는 장한종의 책가도로 정조의 책가도가 아니라 나중에 궁중을 나와 화려해진 책가도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정조가 화려함을 좋아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처럼 어울리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살아있는 아이를 넣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 문화재를 폄하하려는 일제의 숨은 의도가 있었고, 의자왕이 선물해 일본 황실에 전해 내려오는 백제 바둑판은 오늘날의 기술로 재현하기까지 제작기간만 꼬박 3년이 걸렸다는 비화도 놀라울 뿐이다. 나라의 역사를 알면 애국심이 절로 생긴다더니 일제 시대 때 출토된 금관의 수난기를 읽고 나라 잃은 설움이 북받쳤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와 전쟁의 아픔은 문화재의 수탈과 소실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 민족의 아픔을 느끼게 했다.

<천상의 컬렉션>은 무신들의 권력 과시용이었던 예술의 투자가 고려의 화려한 예술품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새로운 나라 사랑의 불씨를 지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책이다.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보이는 법이다. 동계 올림픽 때 하늘에 쏘아 올린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며 선조들이 얼마나 지혜롭고 위대했는지 느꼈다면 이제는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명품 가방이 사랑받는 이유는 누구나 그것이 명품인지 알고 있어서다. 제대로 아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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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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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일단 하기 싫다. 땀을 흘리면 끈적이고 냄새도 싫다. 어릴 때는 할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고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몸으로 하는 일은 잘 안돼서 피하게 된다. 그나마 하는 운동이라면 가볍게 걷는 정도다. 추운 날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거나 더운 날은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한가롭게 지내는 게 더 행복하다.

만으로 마흔 살이 되면 생애 전환기 건강 검진을 받게 되어 있다. 삼십 대에서 성장을 멈춰버린 강인한 정신력으로 여전히 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은 서서히 늙고 있었다. 근육량도 부족하고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마른 비만체질로 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다. 이제는 재밌고 좋아서 운동을 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는 운동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 계속 하고 있는 가쿠타 미쓰요의 모습을 보면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읽기 시작했다.

싫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녀의 책을 보면 이랬다가 저랬다가 흔들리는 마음이 꼭 내 맘과 같다. 결론을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 '이거 다이어트에 강추해요, 진짜 좋아요, 저는 운동 없이는 못 살아요.' 이런 가식적인 얘기들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달리는 그녀와 그녀의 머릿속 생각들이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다. 운동 따위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운동하고 있는 그녀, 운동 장려 에세이 따위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묘하게 비슷했다. 특별한 이야기도 없는데 자꾸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이유는 그녀가 달리는 이유와 같았다. 싫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할 수 있는 일!

40대 중반쯤 되면 대개는 자신이 대충 하는 것과 대충 하지 않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청소를 대충 하든 혼자 있을 때 저녁식사를 대충 만들든 그건 이제 일상적인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다. 물건을 살 때 하는 암산도 자동차 운전도 '못한다'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안 한다. 안 하려 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도 비겁한 녀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42

그녀가 네 번째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던 때, 스멀스멀 올라오던 꾀부리고 싶은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된 목표를 세웠을 때였다. 마라톤에서 제대로 된 목표라고 해봐야 기록 단축밖에 없는데 '제대로' 연습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꾀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조금 더 노력할 수 있지만 괴로우니까 노력하지 않을 뿐인, 한계라고 말하는 자신의 비겁함을" 말하는 모습에서 내가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제대로 된 목표를 세워버리니까 시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뭘 그렇게 시작하기도 전에 열심히 하려고 해. 그래서 시작도 못하는 거잖아. 걷지 않는다는 것으로 위안을 받으면서 달리고, 달리다 보면 뛰고 싶은 날이 오기도 하겠지. 뭐, 그런 때 오지 않는다고 해도 걷지 않는 것을 칭찬해 주면 되잖아. 노력할지 말지는 다음에 정해도 된다고.

 

책은 나이트 하이킹과 보르도에서 열린 메독 마라톤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끝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이 흥미진진했던 것일까. 나이트 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랜턴에 의지한 채 한 발자국씩 내딛는 기분은 어떨까. 랜턴을 끄면 곧 휩싸이게 될 어둠과 정적 속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끊임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와인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메독 마라톤은 그야말로 마지막 성찬과도 같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이런 재미가 있는데도 뛰지 않을 거야?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린다. 운동에 관한 고정관념을 날려준 그녀에게 감사를. 이제 슬슬 달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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