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로그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우희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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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Blog,
Love log,
Novel log.

네가 만나는 건 내가 아닌 나야. 네가 원하는 게 사랑이 아닌 사랑인 것처럼 사랑은 서로 아는 게 많아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성립해.
사람을 알면 사랑을 하지 않을 테니.

모든 것은 주인공의 원고가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지난 일 년 동안 상품성과 유리되고 작품성마저 결여된 글 무덤을 만든 장본인으로 <더 위트>라는 코미디 월간지의 작가다. 경쟁사에 떠밀려 갈수록 어려워지는 회사 형편에 편집장은 10주년 특집호에 글이 실리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작가 수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재계약을 앞둔 7일 전.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희망을 공들여 쓴 원고에 걸지만, 원고는 사라진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자신의 원고를 찾아가는 7일이 여정, 혹은 잠깐의 꿈이 이 책의 이야기다.  

 

속았다. 띠지에 기록된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 작가와 커플이 되지 못하는 커플매니저의 사랑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쯤 나오는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건 내 눈이었음을 소설은 끊임없이 증명한다. 이미 뇌리에 각인된 커플매니저와의 사랑 얘기가 될 실마리를 습관적으로 찾아 헤매었지만 중반을 넘어서도 스토리를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엄습한다. 목적지도, 바로 앞의 상대방도, 내 모습도 그릴 수 없는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더 위트>지에 소속 작가인 주인공의 말장난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B급 코미디와 아재 개그를 연상시킨다는 얘기는 불편했다. 대체 A급과 B급의 기준이 무엇인가. 드립 커피를 마시는 사람만 제대로 된 드립을 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문장의 걸림 아닌 결림을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말장난은 전염성이 대단하다) 작위적인 우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지점을 끊임없이 부유하며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었다. 언어의 마술로 기존 질서는 무너지고 새롭게 재편된 세계에서 꿈과 현실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식상한 것이 상식이라면 신선한 것은 무엇일까. 그의 개인기는 독보적이었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서 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요?
눈을 감고, 눈을 한번 떠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번 찾아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시간 간격의 측정은 그 측정을 행하는 기준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어떤 기준틀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이 기준틀에 대해 움직이는 다른 기준틀에서는 동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원고는 '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일까. 이야기가 사라지면 주인공도 사라진다. 독자들이 읽지 않으면 종이 뭉치가 되듯,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는 현실 속 끝맺음을 위해서라도 원고를 꼭 찾아야만 했다. 현실의 무게를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그녀의 중첩된 궤도는 어느 지점이었을까. 그의 꿈처럼, 그녀의 블로그처럼 그 지점은 한없이 불투명한 안갯속이다. 그의 사랑 찾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랑은 단순한 욕망의 실현을 넘어 어떤 운명적 가치로 그럴듯하게 설명이 되어야만 해. 달에만 존재하는 신념 같은 거지. 사랑을 하는 건지. 사랑한다고 믿는 건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여기에는 없어. 이곳에는 가져갈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 돈과 소유에만 괘념하는 개념 없는 사람도 없지.

쉽게 넘어가지 않는 문장과 문장 사이, 주인공이 찾고 싶었던 원고와 아직 끝맺지 못한 원고 사이에서 찾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였을 것이다. 우연을 가장했다고 해도 운명이라 믿고 싶은. 그러나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교집합은 언제나 누군가 손을 내밀 때 완성된다. 그 누군가는 그일까, 그녀일까. 말장난 같은 어희(語戱)에 얼굴 표정만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심형래의 개그를 떠올렸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는 찰리 채플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소설. "이 소설이 당신의 Novel log가 되겠군요.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당신이 개척한 코미디 문학 장르의 애독자가 되겠어요.” 끝.
   

코미디는 도태되지 않는 태도야. 웃길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슬프거나 힘들 때도 웃음을 잃지 않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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