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일단 하기 싫다. 땀을 흘리면 끈적이고 냄새도 싫다. 어릴 때는 할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고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몸으로 하는 일은 잘 안돼서 피하게 된다. 그나마 하는 운동이라면 가볍게 걷는 정도다. 추운 날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거나 더운 날은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한가롭게 지내는 게 더 행복하다.

만으로 마흔 살이 되면 생애 전환기 건강 검진을 받게 되어 있다. 삼십 대에서 성장을 멈춰버린 강인한 정신력으로 여전히 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은 서서히 늙고 있었다. 근육량도 부족하고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마른 비만체질로 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다. 이제는 재밌고 좋아서 운동을 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는 운동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 계속 하고 있는 가쿠타 미쓰요의 모습을 보면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읽기 시작했다.

싫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녀의 책을 보면 이랬다가 저랬다가 흔들리는 마음이 꼭 내 맘과 같다. 결론을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 '이거 다이어트에 강추해요, 진짜 좋아요, 저는 운동 없이는 못 살아요.' 이런 가식적인 얘기들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달리는 그녀와 그녀의 머릿속 생각들이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다. 운동 따위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운동하고 있는 그녀, 운동 장려 에세이 따위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묘하게 비슷했다. 특별한 이야기도 없는데 자꾸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이유는 그녀가 달리는 이유와 같았다. 싫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할 수 있는 일!

40대 중반쯤 되면 대개는 자신이 대충 하는 것과 대충 하지 않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청소를 대충 하든 혼자 있을 때 저녁식사를 대충 만들든 그건 이제 일상적인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다. 물건을 살 때 하는 암산도 자동차 운전도 '못한다'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안 한다. 안 하려 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도 비겁한 녀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42

그녀가 네 번째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던 때, 스멀스멀 올라오던 꾀부리고 싶은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된 목표를 세웠을 때였다. 마라톤에서 제대로 된 목표라고 해봐야 기록 단축밖에 없는데 '제대로' 연습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꾀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조금 더 노력할 수 있지만 괴로우니까 노력하지 않을 뿐인, 한계라고 말하는 자신의 비겁함을" 말하는 모습에서 내가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제대로 된 목표를 세워버리니까 시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뭘 그렇게 시작하기도 전에 열심히 하려고 해. 그래서 시작도 못하는 거잖아. 걷지 않는다는 것으로 위안을 받으면서 달리고, 달리다 보면 뛰고 싶은 날이 오기도 하겠지. 뭐, 그런 때 오지 않는다고 해도 걷지 않는 것을 칭찬해 주면 되잖아. 노력할지 말지는 다음에 정해도 된다고.

 

책은 나이트 하이킹과 보르도에서 열린 메독 마라톤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끝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이 흥미진진했던 것일까. 나이트 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랜턴에 의지한 채 한 발자국씩 내딛는 기분은 어떨까. 랜턴을 끄면 곧 휩싸이게 될 어둠과 정적 속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끊임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와인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메독 마라톤은 그야말로 마지막 성찬과도 같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이런 재미가 있는데도 뛰지 않을 거야?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린다. 운동에 관한 고정관념을 날려준 그녀에게 감사를. 이제 슬슬 달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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