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 - 떠드는 아이들 2 노란 잠수함 4
송미경 지음, 조미자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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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알아요. 우리 반에는 이상한 아이들만 모였으니까요. p.82

"별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모여서 살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는 지구별"

"엄마, 쟤 좀 이상한 것 같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쟤는 더럽게 코딱지를 파서 먹어. 또 얘는 파는 절대로 먹지 않고."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특별히 이상한 행동이 아닌데도 아이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너도 당근만 빼고 먹잖아? 엄마가 듣기에는 다른 애들이 보기에 너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니 금세 입이 쌜쭉해져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는 자신과 달라서 이상하게 보이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유리'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언니와 자기를 괴롭힐 궁리만 하는 남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리는 이모네 늦둥이 딸 시하와 같은 달에 태어나고 함께 자라 뭐든지 시하와 함께 한다. 그런데 늘 자신만 쫓아다니는 시하 때문에 학교에서 자유롭게 놀지 못하게 되자, 쉬는 시간만 되면 자신의 근처를 맴돌고 껌 종이 구길 때 내는 작은 소리로 웃는 시하를 모른체하고 싶은 때가 점점 많아진다. 또 한가지 고민은 학교 입학식 날 도움을 준 우성이를 좋아하기로 결심했는데, 우성이는 소꿉놀이를 좋아해서 쉬는 시간마다  소꿉놀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학년 때도 우성이와 같은 반이 되었지만 인형놀이를 좋아하는 우성이와 시하 때문에 인형놀이 노예가 된 유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우성이는 다정하게 말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유리는 그렇게 놀기가 싫다. 간신히 우성이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그 순간을 견뎌 보지만 유리는 점점 착하고 잘생긴 우성이가 싫어지고 같이 놀면 놀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하기 싫은 인형놀이를 해야 하는 쉬는 시간보다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유리는 아프다고 보건실에 누워버릴까 하고 생각하거나, 우성이가 전학을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성이 덕분에 훌륭한 배우가 될지도 모른다. 기쁘지도 않은데 상냥한 말투와 표정 짓는 법을 익혀 버렸기 때문이다. p.38"


곤드레 선생님은 유리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줄 알면서도 영어 잘하는 애들을 놔두고 언제나 유리에게 말을 건다.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내뱉는 말은 영어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와 같다. "What's your name?"이라고 말했는데 상대는 "Thank you"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영어 선생님은 언젠가는 말이 통하는 날을 희망한다는 듯 전혀 다른 대답을 하는 유리에게 자꾸 말을 건다. 시하와 우성이 때문에 훌륭한 배우가 되어가는 유리 입장이었으면 차라리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일부러 상대에게 맞추려는 마음을 내기 위해 힘들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은 아이들 세계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유리에게는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죄다 이상하게 보인다. 간섭하기 좋아하는 이현빈, 언제나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영혜. 하지만 선생님이 뒤를 봤다는 이유로 뒤로 나가 서 있으라고 했을 때 영혜가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는 이유를 이해하듯 살짝 비스듬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전학 갔으면 했던 우성이가 실제로 전학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 슬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형 놀이는 싫었지만 우성이는 지우개가 없을 때 선뜻 지우개를 반으로 잘라 빌려주고, 싫어하는 반찬도 먹어주고, 화장실에서 휴지도 가져다준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유리네 교실에는 알 수 없는 일만 일어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개성은 '나눌 수 없는 것(indivisible)'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체로 보았을 때 다른 것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다.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를 보며 유리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이 비단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 씹어 먹는 아이>에서는 다소 무겁고 숨길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개성이 학교생활로 옮겨지면서 가볍고 산뜻한 이야기로 펼쳐진 듯하다. 조금 더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차이가 있을 뿐 어른들 세상도 마찬가지다. 자기답게 웃고, 자기답게 침묵하고, 자기답게 투덜거리는 아이들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나와 만난다. 별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에 더욱 재미있는 지구별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힘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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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춤추고 싶다 - 좋은 리듬을 만드는 춤의 과학
장동선.줄리아 크리스텐슨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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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기어갈 때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기 시작하지만 누워있던 아이가 기어가기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완전한 다리의 흔들림에 따라 머리도 함께 흔들린다는 것이다. 기어갈 때 머리가 규칙적으로 흔들리면서 뇌가 발달하기에 아기에게 기어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뇌는 춤추고 싶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열심히 바닥을 기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기기 시작한 것이 춤을 추기 위한 워밍업 같았다고 할까.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장동선 작가는 디제잉을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알려진 사람이다. 최근에는 안쓸신잡에서 뇌과학자로 얼굴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전작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에서 개개인의 뇌 속에는 타인, 즉 '사회적 뇌'를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연구한다고 했다. 개인의 뇌는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다. <뇌는 춤추고 싶다>라는 책 제목과 표지를 바라본 순간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는 책 제목이 동시에 연상되었다. 서로 다른 색깔로 움직이고 있는 다리는 신경전달 물질을 가진 뉴런의 가지돌기처럼 보였고 그것은 춤으로 융합된 하나의 뇌처럼 보였다.

 
책 내용은 온통 춤에 대한 찬양으로 도배되어 있다. 뇌과학자가 왜 춤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든 뇌의 행복이 '리듬'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 함께 하기를 원하지만 또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수많은 뇌를 가진 사람들의 관계에 윤활유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춤이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지가 중요해져서 부끄러움 속에 감춰버린 숨겨진 내면의 리듬을 찾는 유일한 비법이 바로 '춤'을 추는 것이다. 저자는 삶 속에서 좋은 리듬을 만들고 행복해지기 위해 춤추기를 강력하게 권하고 있었다.

 
호두를 쥐는 사람의 움직임만을 보고도 원숭이의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었다면 움직이는 누군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신경세포는 활성화될 수 있다. "당신의 몸동작은 당신의 기분이 어떤지를 나에게 보여 준다. 나의 뇌가 당신의 상태를 내 몸속에 반영해서 보여 주고, 그 때문에 나는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p.86"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움직이는 상대의 몸을 바라보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뇌의 움직임은 뇌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아이와 엄마의 따뜻한 접촉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신뢰하는 틀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랑이 깃든 모든 신체 접촉은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여러 물질들을 발산하도록 해 준다. 사회적 유대를 촉진하고, 기분을 좋게 해 주고, 면역 기능을 높여주는 물질들은 오직 춤을 통한 신체 접촉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춤은 생명의 묘약이자 생명수인 것이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나섰는데 저자의 춤에 대한 예찬을 읽고 나니 당장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몸 따로 음악 따로라도 춤을 춰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쓸쓸하고 무기력한 일상이라면 당장 춤을 추러 나가라.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줌바댄스를 배웠던 적이 있다. 그야말로 첫 수업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머리에서 생각하고 상상하던 동작들은 무참히 거울 속에서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그렇지만 몸치 중에 몸치도 차차 리듬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슬슬 리듬을 타게 되었다. 리듬에 익숙해지고 음악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게 되었을 때 거울 속 나는 예전의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심장이 일정한 리듬으로 뛰고,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서서히 몸의 감정을 추스르고 다른 사람의 호흡을 주시하는 모든 활동은 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연결 회로를 불러온다고 한다.  독서, 십자말풀이, 카드놀이, 악기 연주와 비교했을 때 오직 춤만이 치매를 효과적으로 막아 주었다고 하니 어찌 춤추지 않을 수 있을까.

"감정을 움직임으로 바꾸는 법을 많이 배울수록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포함된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더 정교하게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p.81"라는 말은 자신의 몸이 감정에 충실해지면 타인의 몸에서 풍기는 감정을 잘 인식할 수 있음을 뜻한다. 책 속의 다양한 사례에서 춤을 추는 것은 몸이 감정에 충실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이 분명하며, 춤을 통해 공감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에는 내게 맞는 춤을 고르는 법부터 다양한 춤의 종류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대로 리듬감을 익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게 맞는 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맞는 춤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고 나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당신! 지금 당장 춤을 추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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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콘서트 (개정증보판) - 우리가 살면서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천문학 이야기
이광식 지음 / 더숲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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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열풍의 주인공 방탄소년단의 <DNA> 뮤직비디오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우주의 초신성 사진이 그룹 멤버의 눈으로 들어가는 인트로가 인상적이었다. 1572년 카시오페이아자리에 출현한 초신성은 항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관념에 충격을 주며 등장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별의 등장과 소멸은 큰 충격이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등장은 새로운 별의 등장, 초신성의 등장과 같은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튀코를 최고의 전문가 반열에 올려놓은 초신성은 신성이 아니었다고 한다. 늙은 별의 암종, 연료를 다 태우고 나면 더 이상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게 되어 내부의 압력과 중력의 균형이 무너짐으로써 급격한 중력 붕괴를 일으켜 대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때 내뿜는 빛은 온 은하가 내는 빛보다 더 밝다고 했다. 새로운 별의 등장인 줄 알았는데 암종이었다니 실망하려는 순간, 책 속의 문장은 우주의 법칙에 따라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대하고 찬란하며 격렬한 별의 여정은 초신성이 최후를 장식하면서 우주공간으로 뿜어낸 별의 잔해는 성간물질이 되어 떠돌다가 다시 같은 경로를 밟아 별로 환생하기를 거듭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 곧, 피 속의 철, 이빨 속의 칼슘, DNA의 질소, 갑상선의 요오드 등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는 모두 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그대로 실화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의 개수는 9475.41 mol이다. 그리고 체중의 10%는 빅뱅 우주에서 만들어진 수소이고, 나머지 90%는 적색거성에서 만들어진 산소, 탄소, 질소, , 철 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버이 별에게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들인 것이다. 우리는 메이드 인 스타인 셈이다." - <천문학 콘서트> 인간은 별의 자녀들이다 p. 270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서롤 불러왔던 것처럼/내 혈관 속 DNA가 말해 줘/내가 찾아 헤매던 너라는 걸/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내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너는 내 꿈의 출처/Take it take it/너에게 내민 내 손은 정해진 숙명/걱정하지 마 love/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우린 완전 달라 baby/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우주가 생긴 그날부터 계속/무한의 세기를 넘어서 계속/우린 전생에도 아마 다음 생에도/영원히 함께니까/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DNA -방탄소년단 <DNA>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은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근대과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무한하고 광활한 우주 속에 티끌 같은 존재로 태어난 개인의 운명은 우주의 법칙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이 세계 안에 우연이란 것은 없었다. 방탄소년단이 노래한 DNA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의 사랑'을 넘어서 나라는 존재 의미를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갈릴레오는 "성경은 하늘에 어떻게 가는지를 말해줄 뿐,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p.111"라고 했다. "뉴턴의 중력 법칙은 우주 어디에서나 성립하는 보편 법칙이다. 뉴턴은 이 법칙 하나로 하늘과 땅을 통합한 것이다. 우주 안의 만물은 이 공식으로 서로 감응한다. ''라는 존재도 온 우주의 만물과 서로 중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집 마당에 사과 한 알이 떨어져도 온 우주가 그 사실을 아로 감응한다는 말이다. p.132"  이처럼 <천문학 콘서트> 속에는 문명사 6천 년 만에 비물질적이며 완전하고 불변하는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주를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 천문학자들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었다.

허셜은 최초로 이 우주가 진화의 한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맨눈으로 바라본 하늘에 지금도 볼 수 있는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 영원히 그 자리에서 빛날 것 같은 별들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소멸하게 된다. 지금의 이 세계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칸트의 성운설에 따르면 공간에 채워진 원소들은 서로를 움직이게 하고 형태를 이루려고 분투하며, 밀도가 가벼운 원소들은 끊임없이 밀도가 높은 원소들 주위로 몰려들어 형태를 짓는다고 했다. 무한할 것 같았던 우주의 한계와 우주공간을 채우고 있는 천체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코스모스(조화)'를 추구하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쫓아 닮아가고 있었다.

우주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는 다차원적인 공간이다. 인간은 성간물질이 되어 떠돌다 생성되는 별처럼 우주의 성분을 그대로 갖고 태어났다. 방탄소년단이 누리는 인기는 그들의 노래 가사처럼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우주의 신비 속에 태어난 소중한 존재들임을 상기시켜주니까. 우리가 우주를 사색하는 것은, 인간이 우주 속에서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가를 깊이 자각하고, 장구한 시간과 광막한 공간 속에서 자아의 위치를 찾아내는 분별력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저자의 서문은 장황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우주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태어난 소중한 존재다. <천문학 콘서트>는 보이지 않는 신의 사랑보다 현실적이며, 실증적이고, 구체적으로 인간과 우주의 상호 연관성을 설명해 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며,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그대로 실화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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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
맨리 P. 홀 지음, 윤민.남기종 옮김 / 마름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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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주말 오후 풍경처럼 두 아이는 거실에서 인형을 갖고 놀고 있었다. 언니는 동생이 갖고 있는 인형 얼굴에 사인펜으로 색칠을 하자고 제안했고, 동생은 머뭇거리다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펜으로 색칠한 인형 얼굴이 생각만큼 예쁘지 않았는지 동생은 울음을 터트렸다. 많이 속상했었는지 울음은 잠드는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잠자리에서 동생은 언니가 화를 낼까 봐 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는데 후회가 된다고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하며 울먹이는 아이를 보며 두려움이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는 미국의 철학자 맨리 P. 홀이 생전에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의 악영향을 주제로 진행한 세 편의 강의를 묶은 책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역자 서문에 보면 돈을 들여 위기를 모면하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거나, 근거 없는 변명을 내세우며 성장을 피해 가려는 충동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했다. 가슴이 뜨끔했다. 문제에 정면으로 마주 서지 않고 이리저리 피해 도망치거나, 남탓으로 일관하며 일단 상황을 모면하고 보자는 식으로 정면승부를 피해왔기 때문이다. 정면승부란 나와 마주 서는 것이다.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사랑 받고 싶은 욕망과 비열함, 천박함, 피해 의식, 낮은 자존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두려운 일은 없다.

두려움의 실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이 이루어지는 순간 드러난다.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책에서 제시한 여러 방법 중에 관점의 변환 또는 가치관의 재확립으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모든 두려움은 상황이 아니라 나의 반응이다. 아이는 언니가 무서워서 두려웠던 것이 아니다. 언니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 언니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두려움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림자처럼 어두운 내면의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페르세우스가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를 자를 수 있었던 것은 거울로 메두사를 보며 싸웠기 때문이다. 페르세우스는 우리에게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라도 시선을 달리해 바라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다. 아이는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온다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주변 상황에 나를 맞추며 어디까지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두려웠다면 자신을 바로 세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다. "소중한 가치를 내 안에서 받아들였을 때 얻어지는 안전만이 진정한 안전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두렵다면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무너진 삶의 질서를 돌봐야 한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더불어 궁극적으로 두려움이 행동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이 올바른 일이기 때문에 행동해야 한다는 말도 기억하자.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 나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건강을 지켜 주는 것. 도덕적으로 내일을 맞을 수 있는 용기와 내면의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올바른 행동이다. 우리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단 한 가지는 삶을 체험하면서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 했다.

삶에서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가장 먼저 상황을 비판했다.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인지 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일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라는 물음을 통해 손해와 이익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관점으로 전환함으로써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내게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신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비로소 삶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된다.

‘함께 안다'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어에서 만들어진 Gewissen은 우리말로 양심으로 번역된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각자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양심일 것이다. 양심은 자신만의 느낌과 직감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주는 일종의 경보장치다. 모든 사람에게 신이 준 보석이 있다면 아마도 '양심'이 아닐까.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살기란 어려워졌다. 그러나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삶이 안전하다 말할 수 없다. 진정한 가르침은 삶의 가치와 진리를 볼 수 있는 밝은 눈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쓸데없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서양의 합리론자들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겪으며 삶의 회의를 느끼고 동양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저자의 말이 전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가치와 진리에 대한 이상에만 사로잡힌 사람이 현실 세계에 발 디뎠을 때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듯 무엇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신에게 맡겨라. 자연의 법칙은 공정하고 냉정하다. 내가 뿌리지 않는 씨앗은 거둘 수 없으며, 내가 뿌린 씨앗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세상을 예측할 수 없어 두렵다면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으면 된다. 세상의 법칙이 공정하다는 사실만 인정해도 두려움의 크기는 줄일 수 있다는 말을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도록 마음에 새겨 넣어 본다.

 

진심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삶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재평가하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라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걱정거리를 해소하기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 문제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게 생각해보고,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재앙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도전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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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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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열풍의 원조 격인 류시화 시인. 그가 오랜만에 어른들을 위한 우화를 가지고 왔다. 네이버 책 포스트에 일주일 동안 연재되었던 책 내용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어 꼭 읽고 싶었던 책이다. 류시화 시인은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물음을 갖게 해준다. 그의 글 속에 녹아든 삶의 지혜는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하고 서서히 심장을 뛰게 한다. <인생 우화>는 천사의 실수로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에 모여 살게 된 바보들의 이야기다. 신의 우려와는 달리 바보들은 그들만의 지혜로 '현자들의 마을'이라 부르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바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현자들의 마을이라니. 헤움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스스로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 이야기를 읽어보면 지금 하는 걱정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해준다. 라디오가 보급되자 신발 수선공은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이고, 마부는 비 온 뒤 땅이 빨리 굳어지지 않아서 걱정, 어부는 땅이 너무 빨리 굳어 지렁이를 미끼로 쓰지 못한다고 걱정이다. 그래서 최고 현자 하임이 집 안에서 걱정하지 말고 밖에 나가 일상생활에 매진하자고 해도 걱정하지 않으면 좋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고 또 걱정한다. 그래서 매일 한 가지 걱정만 하자고 법률로 정하려 했지만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도 걱정이라는 의견에 헛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그냥 걱정하지 않으면 될걸 그 쉬운 일을 하지 못해 걱정을 대리해주는 사람에게 한 달 동안 걱정을 대신하게 하고서 그에게 줄 돈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공감된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걱정거리를 더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과연 나만의 모습일까.

이번 생에는 빈자, 다음 생에는 부자에서는 가난한 제화공 슈물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했다는 신의 말씀에 의문을 품는 장면이 나온다. 은행가 준델은 부자인 자신은 다음 생에 가난하게 태어나고 가난한 슈물은 부자로 태어날 테니 신은 공평하다 말한다. 슈물은 준델에게 부자가 된 다음 생에 갚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준델은 돈을 빌려주려다 빌려준 돈으로 무엇을 할지 묻는다. 슈물이 고급 가죽을 사서 구두를 판다고 하니 그럼 이번 생에 부자가 될 테니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빌려주려던 돈을 가져간다. 슈물은 결국 영리한 부자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결국 가난한 사람에게는 빌릴 돈이 없으니 스스로의 힘으로 부자가 되지 않는다면 이번 생에 부자가 되기는 힘들다는 결론이다. 부자들은 자신이 가난하게 살 다음 생을 믿지 않는다. 그저 현재 부자인 것에 만족하고 공평하다는 신의 말을 믿고 싶어할 뿐이다.

두 가지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바보들이 사는 마을 헤움은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마을이 다 타는지도 모르고 다른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정치가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정의를 찾아 떠났지만 사온 정의는 이미 썩어 쓸 수 없다며 헤움만의 정의를 찾는 모습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그렇지만 류시화의 인생 우화는 삶의 회의성을 짙게 드리우며 우화가 갖고 있는 풍자와 해악, 교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세상은 발전을 거듭하고 정보는 넘쳐나고 있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도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헤움의 광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이 행운을 가져다주는지 믿는 것도, 내 분수에 걸맞지 않은 단추를 버리는 것도, 정치가의 말을 따르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인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정의를 생각해 보았던 것처럼 작가는 그동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모든 일들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거나,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면 인생 우화에서 던지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내려보는 것이 어떨까. 삶에 정답은 없으니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현명한 자기만의 대답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당신은 믿지 않아요?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당신은 우리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린 모두 믿어요. 그리고 행복한 우리를 보면 알 거 아녜요? 그런데도 여전히 의심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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