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
맨리 P. 홀 지음, 윤민.남기종 옮김 / 마름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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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주말 오후 풍경처럼 두 아이는 거실에서 인형을 갖고 놀고 있었다. 언니는 동생이 갖고 있는 인형 얼굴에 사인펜으로 색칠을 하자고 제안했고, 동생은 머뭇거리다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펜으로 색칠한 인형 얼굴이 생각만큼 예쁘지 않았는지 동생은 울음을 터트렸다. 많이 속상했었는지 울음은 잠드는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잠자리에서 동생은 언니가 화를 낼까 봐 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는데 후회가 된다고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하며 울먹이는 아이를 보며 두려움이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는 미국의 철학자 맨리 P. 홀이 생전에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의 악영향을 주제로 진행한 세 편의 강의를 묶은 책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역자 서문에 보면 돈을 들여 위기를 모면하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거나, 근거 없는 변명을 내세우며 성장을 피해 가려는 충동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했다. 가슴이 뜨끔했다. 문제에 정면으로 마주 서지 않고 이리저리 피해 도망치거나, 남탓으로 일관하며 일단 상황을 모면하고 보자는 식으로 정면승부를 피해왔기 때문이다. 정면승부란 나와 마주 서는 것이다.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사랑 받고 싶은 욕망과 비열함, 천박함, 피해 의식, 낮은 자존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두려운 일은 없다.

두려움의 실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이 이루어지는 순간 드러난다.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책에서 제시한 여러 방법 중에 관점의 변환 또는 가치관의 재확립으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모든 두려움은 상황이 아니라 나의 반응이다. 아이는 언니가 무서워서 두려웠던 것이 아니다. 언니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 언니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두려움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림자처럼 어두운 내면의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페르세우스가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를 자를 수 있었던 것은 거울로 메두사를 보며 싸웠기 때문이다. 페르세우스는 우리에게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라도 시선을 달리해 바라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다. 아이는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온다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주변 상황에 나를 맞추며 어디까지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두려웠다면 자신을 바로 세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다. "소중한 가치를 내 안에서 받아들였을 때 얻어지는 안전만이 진정한 안전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두렵다면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무너진 삶의 질서를 돌봐야 한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더불어 궁극적으로 두려움이 행동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이 올바른 일이기 때문에 행동해야 한다는 말도 기억하자.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 나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건강을 지켜 주는 것. 도덕적으로 내일을 맞을 수 있는 용기와 내면의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올바른 행동이다. 우리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단 한 가지는 삶을 체험하면서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 했다.

삶에서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가장 먼저 상황을 비판했다.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인지 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일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라는 물음을 통해 손해와 이익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관점으로 전환함으로써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내게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신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비로소 삶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된다.

‘함께 안다'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어에서 만들어진 Gewissen은 우리말로 양심으로 번역된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각자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양심일 것이다. 양심은 자신만의 느낌과 직감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주는 일종의 경보장치다. 모든 사람에게 신이 준 보석이 있다면 아마도 '양심'이 아닐까.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살기란 어려워졌다. 그러나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삶이 안전하다 말할 수 없다. 진정한 가르침은 삶의 가치와 진리를 볼 수 있는 밝은 눈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쓸데없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서양의 합리론자들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겪으며 삶의 회의를 느끼고 동양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저자의 말이 전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가치와 진리에 대한 이상에만 사로잡힌 사람이 현실 세계에 발 디뎠을 때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듯 무엇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신에게 맡겨라. 자연의 법칙은 공정하고 냉정하다. 내가 뿌리지 않는 씨앗은 거둘 수 없으며, 내가 뿌린 씨앗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세상을 예측할 수 없어 두렵다면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으면 된다. 세상의 법칙이 공정하다는 사실만 인정해도 두려움의 크기는 줄일 수 있다는 말을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도록 마음에 새겨 넣어 본다.

 

진심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삶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재평가하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라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걱정거리를 해소하기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 문제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게 생각해보고,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재앙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도전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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