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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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열풍의 원조 격인 류시화 시인. 그가 오랜만에 어른들을 위한 우화를 가지고 왔다. 네이버 책 포스트에 일주일 동안 연재되었던 책 내용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어 꼭 읽고 싶었던 책이다. 류시화 시인은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물음을 갖게 해준다. 그의 글 속에 녹아든 삶의 지혜는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하고 서서히 심장을 뛰게 한다. <인생 우화>는 천사의 실수로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에 모여 살게 된 바보들의 이야기다. 신의 우려와는 달리 바보들은 그들만의 지혜로 '현자들의 마을'이라 부르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바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현자들의 마을이라니. 헤움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스스로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 이야기를 읽어보면 지금 하는 걱정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해준다. 라디오가 보급되자 신발 수선공은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이고, 마부는 비 온 뒤 땅이 빨리 굳어지지 않아서 걱정, 어부는 땅이 너무 빨리 굳어 지렁이를 미끼로 쓰지 못한다고 걱정이다. 그래서 최고 현자 하임이 집 안에서 걱정하지 말고 밖에 나가 일상생활에 매진하자고 해도 걱정하지 않으면 좋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고 또 걱정한다. 그래서 매일 한 가지 걱정만 하자고 법률로 정하려 했지만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도 걱정이라는 의견에 헛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그냥 걱정하지 않으면 될걸 그 쉬운 일을 하지 못해 걱정을 대리해주는 사람에게 한 달 동안 걱정을 대신하게 하고서 그에게 줄 돈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공감된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걱정거리를 더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과연 나만의 모습일까.

이번 생에는 빈자, 다음 생에는 부자에서는 가난한 제화공 슈물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했다는 신의 말씀에 의문을 품는 장면이 나온다. 은행가 준델은 부자인 자신은 다음 생에 가난하게 태어나고 가난한 슈물은 부자로 태어날 테니 신은 공평하다 말한다. 슈물은 준델에게 부자가 된 다음 생에 갚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준델은 돈을 빌려주려다 빌려준 돈으로 무엇을 할지 묻는다. 슈물이 고급 가죽을 사서 구두를 판다고 하니 그럼 이번 생에 부자가 될 테니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빌려주려던 돈을 가져간다. 슈물은 결국 영리한 부자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결국 가난한 사람에게는 빌릴 돈이 없으니 스스로의 힘으로 부자가 되지 않는다면 이번 생에 부자가 되기는 힘들다는 결론이다. 부자들은 자신이 가난하게 살 다음 생을 믿지 않는다. 그저 현재 부자인 것에 만족하고 공평하다는 신의 말을 믿고 싶어할 뿐이다.

두 가지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바보들이 사는 마을 헤움은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마을이 다 타는지도 모르고 다른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정치가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정의를 찾아 떠났지만 사온 정의는 이미 썩어 쓸 수 없다며 헤움만의 정의를 찾는 모습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그렇지만 류시화의 인생 우화는 삶의 회의성을 짙게 드리우며 우화가 갖고 있는 풍자와 해악, 교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세상은 발전을 거듭하고 정보는 넘쳐나고 있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도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헤움의 광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이 행운을 가져다주는지 믿는 것도, 내 분수에 걸맞지 않은 단추를 버리는 것도, 정치가의 말을 따르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인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정의를 생각해 보았던 것처럼 작가는 그동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모든 일들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거나,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면 인생 우화에서 던지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내려보는 것이 어떨까. 삶에 정답은 없으니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현명한 자기만의 대답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당신은 믿지 않아요?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당신은 우리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린 모두 믿어요. 그리고 행복한 우리를 보면 알 거 아녜요? 그런데도 여전히 의심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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