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줄 초등 글쓰기의 기적 - 아이의 마음과 생각이 크게 자라는 하루 3줄
윤희솔 지음 / 청림Life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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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열풍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개인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나'를 잘 표현하는 글 쓰는 능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하루 3줄 초등 글쓰기의 기적>은 다른 글쓰기 책과 다른 매력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책날개에 기재된 저자 이력 중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교육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서로 떨어져 있는 낱말을 체계적인 구조와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작업이다. 교육공학은 교육에 첨단 과학 기술이나 심리학, 경영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 다양한 이론을 접목시켜 교육 환경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현재 교사로 재직 중인 것을 감안하면 실험적인 연구와 경험을 통해 차별화된 글쓰기 노하우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했다.

둘째, 목차와 본문을 훑어보니 본문에 첨부된 아이들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두 아들의 엄마라 소개하는 글을 보면 분명 글을 쓴 아이는 남자아이다. 엄마표를 온전히 수행할 수 없는 직장맘으로 남아들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활동성과 호기심을 길들이는 법이 궁금했다.

셋째, 이 책의 글쓰기 비법은 공감과 느낌 언어를 글쓰기에 접목시킨 방법이었다. 저자는 <아홉 살 마음 사전>과 <아홉 살 느낌 사전>에 나온 감정과 느낌 표현을 글쓰기 활동에 사용했다.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글쓰기로 알게 됨과 동시에 타인의 감정과 느낌까지 알게 되었다. 책 읽기가 문자를 이해하는 수동적인 입장이라면 아이들의 자기중심성을 적극 활용한 '3줄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글을 찾는 능동적인 활동이었다.

다독은 나와 비슷한 상황 속에 놓인 주인공을 통해 자신이 마음 상태가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아이들과 부딪히는 문제의 근원이 마음에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자신의 감정을 알게 하는 심리학적 접근법으로 초등학생 글쓰기 방법을 소개한다. 수많은 아이들과 만나면서 감정 상태를 제대로 알고 표현할 수 있다면 자존감과 창의성 발달, 갈등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념을 아이들과 실제로 글쓰기를 해보며 확신했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만나 이해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 글쓰기이고, 이것이 곧 아이들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p.30라는 말속에서 글쓰기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성적이나 논술이 목적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에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편지를 쓰고 싶어지고 억울한 일이 생기면 탄원서를 쓰게 된다. 아이들도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원망스러운 일이 있을 때 글을 쓰고 싶어한다고 한다.

본격적인 글쓰기 비법은 2장부터 6장까지 1단계부터 5단계로 구분해 서술했다. 입학을 기다리는 예비 학부모가 주의 깊게 볼 내용은 1장과 2장이다. 기본기가 없으면 창의성은 꿈꿀 수 없다. 글쓰기도 운필력과 기본자세가 중요하다. 첫째 아이를 기르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부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하지만 책 읽기에 대한 보상은 보상 자체에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며 득보다 실이 될 수 있으니 아이의 성향에 따르는 것이 좋다. 책 읽기의 가장 큰 보상은 책을 읽는 재미 그 자체에 있다. 7주 습관 달력은 기질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2장은 본격 학교생활에서 등장하는 글쓰기, 받아쓰기와 일기 쓰기에 대한 내용이다. 받아쓰기 문제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는데 모든 지문은 교과서에서 찾는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교과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 디지털 교과서를 참고하여 아이와 함께 문제를 만들어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엄마표라고 나온 책들이 소개하는 활동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편인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받아쓰기 시험을 중 눈에 띄는 부분은 틀린 부분을 아이들과 토의해 보는 점이었다.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함께 고민하며 나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자신감을 지켜주는 좋은 방법이었다. 토의한 후에는 도전 문제 맞히기 활동으로 다시 한번 어려운 부분을 짚어 주는 점도 좋았다. 시험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이유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으로 등수가 매겨지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공감의 당근과 성장의 채찍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일기 쓰기 글감 찾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한 가이드가 제시되어 있다. 가족 게시판이 있다면 인쇄해 붙여두고 가족과 함께 하루 일과를 얘기 나누며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의 부모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4장과 5장이다. 저자는 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느낌 사전으로 먼저 아이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며 글쓰기에 접근했다. 감정 단어를 활용한 글쓰기 방법을 살펴보면 '아이 마음 들여다보기' 가 나온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며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이다. 하지만 평소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부모라면 먼저 아이와 공감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 말하고 싶다. 선생님에게 얘기하는 것과 부모에게 털어놓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썼던 일기 속에 내 감정을 담았던 때는 사춘기 이후였던 것 같다. 어릴 때 일기장에는 좋고 행복한 일만 썼다. 솔직한 감정이 담긴 일기는 누가 볼까 창피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감정 단어를 사용해 토론하며 글을 써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는 법도 배우게 되어 일석이조다.

"가끔 숨이 찰 때면 초등학교 운동회 때 결승선을 향해 달리던 기억이 납니다. 모기 터지라고 응원하면서 두 팔을 벌려 저를 안아줄 준비를 하고 있던 부모님과 할머니가 보이고, 운동장 울타리 밖에서 팔던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납니다. 힘들고 괴롭기만 한 숨이 찬 느낌이 가족과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 저에게 살아갈 힘을 주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의 감각에 사랑을 담아주세요. 아이가 앞으로 살면서 느끼게 될 수많은 느낌이 단순한 감각적 자극이 아니라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선물로 느껴지고, 아이가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가꾸어나갈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168

감각 단어를 활용한 글쓰기에서는 다양한 어휘가 어떻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지 재현해 볼 수 있다. 어휘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휘만 따로 학습하는 것은 문장 이해에만 도움이 될 뿐 글쓰기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위 지문은 느낌이 글에 어떤 힘을 주는지 설명해 준다. 상황에 따른 느낌을 찾고 그 느낌을 다시 글로 표현해 보는 작업이다. 작가들이 글 속에 무엇을 담고 싶어 하는지 머릿속을 잠시 들여다보는 비법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처음 글이 생겨났을 때를 상상해 보면 누군가와 소통을 위해 생겼을 것이다. 내 마음을 알고 표현할 수 있으면 타인의 마음도 잘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글쓰기도 사람과의 관계에 필요한 것이다. '3줄 글쓰기 방법'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타인과의 관계로 물꼬를 트는 적극적인 소통의 방법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누구보다 분명하고 쉽게 이야기한 책이다. 추천 책 목록 기억하기 싫은 분, 아이와 함께 하루 10분 이내 할 수 있는 글쓰기 활동 찾는 분, 아이 마음과 글 쓰는 법까지 알고 싶은 학부모에게 강력 추천한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다크 <소설처럼>

무엇을 어떻게 읽든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열 가지 독서 권리 장전

첫째,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둘째, 건너뛰며 읽을 권리

셋째,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넷째, 책을 다시 읽을 권리

다섯째,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여섯째, 보바리슴(Bovarysme, 마음대로 상상하며 빠져들 권리)을 누릴 권리

일곱째,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여덟째,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아홉째,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열째,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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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이 - 2019 뉴베리 영예상 수상작
캐서린 머독 지음, 이안 숀허 그림, 김영선 옮김 / 다산기획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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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HE BOOK OF BOY <더 보이>

캐서린 길버트 머독 지음, 이얀 숀허 그림. 김영선 옮김

아담과 이브는 탐스러운 사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신의 뜻에 따라 사과를 탐하지 않았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렸을 것이다. 먹음직한 사과의 유혹은 매혹적이다. 하지만 쭈글쭈글한 오래된 사과였다면, 그들이 호기심을 가졌을까. <더 보이>는 쭈글쭈글한 보잘것없는 사과를 먹기 위해 겅중거리는 염소들을 달래며 사과나무에 오르는 곱사등을 가진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사과나무에 오른 소년 ‘보이’에게 보이는 것은 순례자였다. 소년의 모습을 본 순례자 ‘서컨더스’는 소년에게 성-베드로의 계단에서 축일을 위한 순례 여행에 동행할 것을 제의한다. 소년은 주인에게 어렵게 허락을 받고 서컨더스와 동행한다. 소년은 동물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동물들과 서로 말을 주고받는 지문을 읽었을 때는 외로운 소년의 상상놀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앞으로 닥칠 위험 속에서 탈출의 실마리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서컨더스는 순례 중이라 했지만 사실 지옥에서 탈출해 일곱 개의 유물(갈비뼈, 이, 엄지손가락, 정강이, 뼛가루, 두개골, 무덤)을 찾고 있었다. 첫 번째 갈비뼈는 이미 손에 넣었고, 두 번째 유물을 손에 넣기 위해 뭐든 잘 타고 오르는 사람이 필요해서 소년에게 동행을 제의한 것이었다. 서컨더스는 뜨거워 만질 수 없는 유물을 소년은 손쉽게 등에 짊어졌다. 소년은 첫 번째 유물이 담긴 자루를 자신의 곱사등에 올리자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유물이 담긴 자루를 짊어지며 곱사등이 사라지자, 태어나 처음으로 평범한 삶의 행복감을 경험한다.

두 번째 유물을 찾고 돌려보내려던 서컨더스의 계획과는 다르게 소년이 처음 느껴본 행복감은 모험을 떠날 원동력이 된다. 소년은 일곱 개의 유물을 모두 찾아 서컨더스와 함께 로마로 가서 평범한 소년으로의 재탄생을 희망한다. 고생 끝에 일곱 개의 유물을 모두 찾고 서컨더스는 자신의 바람대로 천국으로 사라지지만, 소년은 평범한 소년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현실에 남는다.

사실 괴물처럼 보이는 소년의 곱사등 안에는 천사의 날개가 감추어져 있었다. 그를 처음 발견한 신부님의 말대로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날개의 존재와 가치를 제대로 보지도, 알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드러내지 말라고 했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다.

"처음에 나는 날개를 애써 무시했다. 내가 소년이 되면 날개를 잃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날개는 만져 주면 너무나 좋아했고, 깃털들은 씻어 주면 행복해했다. 새장 속의 새들은 스스로 몸을 단장한다. 붙잡힌 매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도 몸단장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p 278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괴물로 취급받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숨겨진 날개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스스로 드러낼 용기가 있을 때만이 날개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위험한 사람이고 생각했던 서컨더스와 모험을 떠났고, 자신의 쓰임이 다했음에도 모험을 계속하겠다고 선택했으며, 절대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던 신부님 말씀을 조금씩 극복해 나갔다. 천사인 소년은 여전히 날개를 숨겨야 하겠지만, 더 이상 어깨를 움츠리며 걷지는 않을 것이다.

서컨더스는 자신은 마법사가 아니라 그저 '지혜'와 '열쇠'가 있을 뿐이라 했다. 지혜와 열쇠는 서컨더스처럼 어느 순간 내게 주어질 수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은 소년의 용기였다. 소년이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깃털을 조심스럽게 씻었을 때 벅차오르는 행복감과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며 기쁨을 느끼는 모습은 충만한 기쁨을 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유물을 찾는 긴장감보다 소년의 곱사등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날개를 어떻게 감출지 걱정되었다. 꺼내어 빗질을 하고 씻을수록 튼튼해지고 커지는 소년의 날개를 보며 내 안에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담과 이브가 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잃어버린 것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컨더스는 죽은 사람의 유물로 이루는 헛된 희망이 아니라, 소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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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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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공부하다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남긴 그림과 글에는 삶을 관통하는 삶의 진리가 상징처럼 담겨있다. 이야기처럼 그림도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유가 있다. 인도 신화는 널리 읽힌 서양의 그리스 로마신화만큼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같은 아시아에 속해 있는 문명의 발생지 인도 신화를 알게 되면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한국의 민화는 조선 후기 서민층 사이에서 유행하며 일상생활양식과 관습에 바탕을 두고 계승되었다. 반면 인도 민화는 13억 인구 수보다 많은 힌두교의 신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도인들에게 신화는 현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를 인도 민화는 이야기한다. 이 책 <인도 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은 동일한 제목으로 2010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목차를 살펴보면 표지만 바뀐 것 같지만, 문명의 발생지로 과거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현재까지 살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이야기를 민화와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인도 민화 지역 분포도에 따라 분류된 세 가지 민화 양식 중 왈리 부족의 민화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소똥을 발라 바탕을 마련한 천이나 흙벽 위에 흰쌀가루로 그림을 그렸는데 작은 삼각형 두 개로 표현한 인간의 형상이 졸라맨을 연상시켰다. 한 장의 그림에 서사를 표현한 점이 특징이었다. 결혼식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면 결혼식 준비와 진행 과정, 결혼식 후 피로연 모습과 일상의 모습까지 모두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서사가 들어있지만 계획되지 않는 구성은 시작과 끝을 짐작할 수 없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을 연상시킨다.


왈리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 나무, 동물은 그들의 삶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신을 숭배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지내는 모습은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주었다. 결혼식 하루 전날 부부가 살 집의 부엌 벽에 그려진 벽화는 몇 달 후면 지워져버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 속 파라가타 신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마지막 장 '왈리의 옛날이야기'는 우리의 옛이야기와 비교하며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이다. 가난한 남자에게 언제든 필요한 양만큼의 곡식을 얻게 해 주는 <마술 항아리>가 부잣집에 가서는 온갖 징그러운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부분에서 흥부와 놀부가 박을 타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두운 숲속에서 귀신을 만났지만 농부의 기지로 살아남은 <귀신과 농부>와 친절한 호랑이의 꾀임에 빠져서 잡아먹힐 뻔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목숨을 건진 거북이 이야기 <욕심 많은 호랑이>에서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얘기를 생각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달라도 이야기 속에 숨은 뜻은 같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도 민화 속 사람의 형상은 주인공이라기보다 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한치의 여백을 허용하지 않고 빽빽이 채운 공간 속에서 인간도 하나의 점이나 선, 면이었다. 그림은 대부분 좌우 대칭형으로 안정감과 균형감을 보여준다. 신과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던 삶을 그림으로 마주하니 마음이 평안했다. 현대 인류가 불행한 것은 이런 균형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때 인도 여행이 붐처럼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바쁜 현대인의 삶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동경이 민화를 보며 다시 꿈틀거렸다. 문명이 들어서기 전 온전한 신의 세계와 글자가 사라진 곳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그림의 힘을 인도 민화에서 보았다. 좀 더 많은 옛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문자에 익숙해진 문명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뒷부분에 부록으로 수록된 왈리 그림 따라 그리기도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자유롭게 그려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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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드레스메이커 비룡소 그래픽노블
젠 왕 지음, 김지은 옮김 / 비룡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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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꾸는 것은 소중한 거야

하녀처럼 살던 소녀가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다는 신데렐라 이야기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책을 보라.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여장을 하고 드레스를 즐겨 입는 세바스찬 왕자와 드레스를 만드는 소녀 프랜시스, 두 주인공의 만남과 성장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이야기다.

프랜시스는 가난한 재봉사다. 왕자의 눈에 들기 위해 치장하는 파티 따위에 관심 없는 아가씨의 요청으로 프랜시스는 특이한 드레스를 만들었다. 파격적인 드레스는 세바스찬 왕자의 눈에 띄어 그의 전속 재봉사가 된다. 왕자의 본분은 왕에게 나라를 물려받아 다시 왕이 되는 것. 아버지의 아버지, 그 위에 아버지도 모두 장군이었던 집안 계보는 그에게 암묵적으로 똑같은 미래를 강요했다. 그러나 세바스찬 왕자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여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는 시간이었다.

그의 내면 속에 도사리던 욕망은 재봉사 프랜시스를 만난 뒤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그에게 꼭 맞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숨어있던 욕망은 더욱 강해진다. 욕망이 실현된 사람의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에너지는 프랜시스에게도 영향을 준다. 단지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꿈은 왕자의 드레스메이커로 대리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왕자의 조력자만으로는 자신도 세상으로 드러날 수 없음을 깨닫고 안전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왕자의 곁을 떠난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주던 드레스메이커가 사라지자 왕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시기를 맞는다. 그녀를 돕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야 했지만,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왕이라는 지위와 가족들의 시선에 자신을 드러낼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평범한 왕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세바스찬 왕자는 그녀가 만들어준 드레스를 모두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드레스를 입는다. 그러나 결혼하기로 예정된 줄리아나 공주의 오빠와 마주치면서 그의 실체는 만천하에 드러난다. 모든 사실이 드러난 세바스찬 왕자와 자신만의 길을 택한 프랜시스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서로 다시 만난다.

청소년기는 거울 속에 비친 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며 다가서게 되는 시기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내면의 욕망 사이에 갈등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자아정체성 형성과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세바스찬 왕자와 프랜시스는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중성적 이미지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산업화로 새롭게 등장한 신흥 계층에 의해 왕정이 서서히 무너졌듯, 아이들은 세상이 만든 보이지 않는 위계와 질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사랑할 용기를 꿈꿔야 한다. 그들의 선택은 번데기를 탈출한 나비처럼 참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내면에 숨겨진 욕구를 실현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또래 친구들에게도 긍정적인 힘을 준다. 그들의 성장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혼자였으면 이루기 힘든 일들을 거울을 바라보듯 서로를 바라보며 시너지를 만들어 나갔다는 점이다. 작가 젠 왕의 그림은 그들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무한한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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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
얀 드로스트 지음, 유동익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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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 때 가장 행복하다"

‘기대다’라는 뜻은 근거와 이유를 둔다는 것이다. 생각에 온전히 기대려면 모호함이 아닌 분명함이 되도록 생각에 다가서야 한다. 나로 산다는 것은 내 생각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관점과 개성은 생각 속에 드러나며 나로 살 때 인간은 행복하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여러 경계에 부딪혀 생각해야 한다. 모호한 경계를 분명하게 만드는 것은 치열하게 나만의 생각을 분리해 내게 맞는 인생철학을 세우는 것이다. <생각에 기대어 철학 하기>에서는 여섯 갈래로 나누어진 철학자의 삶의 철학과 행복을 들여다보며 생각의 경계를 세우는 연습을 할 수 있다.

534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에 총 6강으로 구성된 책에는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학파,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샤르트르, 푸코의 철학이 소개되어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 주장하면서도 서로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은 곧 쾌락에 있다고 주장한 반면, 스토아학파는 금욕적인 덕의 생활에 행복이 있다고 말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두려움의 이유를 알면 행복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두려움을 없애려 했다. 스토아학파는 일원론을 주장하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 선, 행복, 자연을 따르는 삶은 이성과 동일하다 보았다. 이성을 따르지 않고 감정대로 살아가는 행위는 행복과 멀어지는 행위라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토아학파와 달리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이성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현재 있는 것만을 보지 않고 될 것, 될 수 있을 것을 동시에 보았다. 그는 행복이란 우리의 인간 됨을 바로잡는 것이며, 선한 삶을 위한 근본은 우리 본성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피노자는 삶의 필연을 이해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범신론 일원론을 수립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성이며 정신이며 신이다 생각했으며, 결정된 인생에 대해 고통을 겪는 자세는 현명하지 못하다 보았다. 샤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비정립적 자기의식 상태를 일컫는데, 이는 인간을 진정한 자유의 세계에 눈뜨게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욕망을 쫓아 이루어진 삶인지, 정말 행복한 삶인지 물어보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는 말이 인간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준다. 철학은 곧 생각하는 능력과 의심하는 능력을 키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 준다. 인간만이 자신에게 묻고 답하며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찾아 나설 수 있다. 각각의 철학자들의 생각에 맞닥뜨리면 나의 경계를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철학자들도 모두 삶에 의문과 해답을 찾아가며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었다. 그 대답은 각자가 다르며 누구도 자신의 행복에 대한 기준을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생각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이미 철학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철학이 없다 해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반대로 인생철학을 세운다고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내 생각이 기초가 되지 않은 삶은 공허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가꾸는 데 선택권이 있으며 바람직한 삶이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유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저자의 말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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