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 보이 - 2019 뉴베리 영예상 수상작
캐서린 머독 지음, 이안 숀허 그림, 김영선 옮김 / 다산기획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HE BOOK OF
BOY <더 보이>
캐서린 길버트 머독
지음, 이얀 숀허 그림. 김영선 옮김
아담과 이브는 탐스러운
사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신의 뜻에 따라 사과를 탐하지 않았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렸을
것이다. 먹음직한 사과의 유혹은 매혹적이다. 하지만 쭈글쭈글한 오래된 사과였다면, 그들이 호기심을 가졌을까. <더 보이>는 쭈글쭈글한
보잘것없는 사과를 먹기 위해 겅중거리는 염소들을 달래며 사과나무에 오르는 곱사등을 가진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사과나무에 오른 소년
‘보이’에게 보이는 것은 순례자였다. 소년의 모습을 본 순례자 ‘서컨더스’는 소년에게 성-베드로의 계단에서 축일을 위한 순례 여행에 동행할 것을
제의한다. 소년은 주인에게 어렵게 허락을 받고 서컨더스와 동행한다. 소년은 동물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동물들과 서로 말을 주고받는
지문을 읽었을 때는 외로운 소년의 상상놀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앞으로 닥칠 위험 속에서 탈출의 실마리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서컨더스는 순례 중이라
했지만 사실 지옥에서 탈출해 일곱 개의 유물(갈비뼈, 이, 엄지손가락, 정강이, 뼛가루, 두개골, 무덤)을 찾고 있었다. 첫 번째 갈비뼈는 이미
손에 넣었고, 두 번째 유물을 손에 넣기 위해 뭐든 잘 타고 오르는 사람이 필요해서 소년에게 동행을 제의한 것이었다. 서컨더스는 뜨거워 만질 수
없는 유물을 소년은 손쉽게 등에 짊어졌다. 소년은 첫 번째 유물이 담긴 자루를 자신의 곱사등에 올리자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유물이 담긴
자루를 짊어지며 곱사등이 사라지자, 태어나 처음으로 평범한 삶의 행복감을 경험한다.
두 번째 유물을 찾고
돌려보내려던 서컨더스의 계획과는 다르게 소년이 처음 느껴본 행복감은 모험을 떠날 원동력이 된다. 소년은 일곱 개의 유물을 모두 찾아 서컨더스와
함께 로마로 가서 평범한 소년으로의 재탄생을 희망한다. 고생 끝에 일곱 개의 유물을 모두 찾고 서컨더스는 자신의 바람대로 천국으로 사라지지만,
소년은 평범한 소년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현실에 남는다.
사실 괴물처럼 보이는
소년의 곱사등 안에는 천사의 날개가 감추어져 있었다. 그를 처음 발견한 신부님의 말대로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날개의 존재와 가치를 제대로 보지도, 알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드러내지 말라고 했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다.
"처음에 나는
날개를 애써 무시했다. 내가 소년이 되면 날개를 잃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날개는 만져 주면 너무나 좋아했고, 깃털들은 씻어 주면 행복해했다.
새장 속의 새들은 스스로 몸을 단장한다. 붙잡힌 매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도 몸단장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p
278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괴물로 취급받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숨겨진 날개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스스로 드러낼 용기가 있을 때만이 날개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위험한 사람이고 생각했던 서컨더스와 모험을 떠났고, 자신의 쓰임이 다했음에도 모험을 계속하겠다고 선택했으며, 절대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던
신부님 말씀을 조금씩 극복해 나갔다. 천사인 소년은 여전히 날개를 숨겨야 하겠지만, 더 이상 어깨를 움츠리며 걷지는 않을 것이다.
서컨더스는 자신은
마법사가 아니라 그저 '지혜'와 '열쇠'가 있을 뿐이라 했다. 지혜와 열쇠는 서컨더스처럼 어느 순간 내게 주어질 수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은 소년의 용기였다. 소년이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깃털을 조심스럽게 씻었을 때 벅차오르는 행복감과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며 기쁨을 느끼는 모습은 충만한 기쁨을 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유물을
찾는 긴장감보다 소년의 곱사등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날개를 어떻게 감출지 걱정되었다. 꺼내어 빗질을 하고 씻을수록 튼튼해지고 커지는 소년의 날개를
보며 내 안에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담과 이브가 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잃어버린 것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컨더스는 죽은 사람의 유물로 이루는 헛된 희망이 아니라, 소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었던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