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드레스메이커 비룡소 그래픽노블
젠 왕 지음, 김지은 옮김 / 비룡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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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꾸는 것은 소중한 거야

하녀처럼 살던 소녀가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다는 신데렐라 이야기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책을 보라.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여장을 하고 드레스를 즐겨 입는 세바스찬 왕자와 드레스를 만드는 소녀 프랜시스, 두 주인공의 만남과 성장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이야기다.

프랜시스는 가난한 재봉사다. 왕자의 눈에 들기 위해 치장하는 파티 따위에 관심 없는 아가씨의 요청으로 프랜시스는 특이한 드레스를 만들었다. 파격적인 드레스는 세바스찬 왕자의 눈에 띄어 그의 전속 재봉사가 된다. 왕자의 본분은 왕에게 나라를 물려받아 다시 왕이 되는 것. 아버지의 아버지, 그 위에 아버지도 모두 장군이었던 집안 계보는 그에게 암묵적으로 똑같은 미래를 강요했다. 그러나 세바스찬 왕자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여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는 시간이었다.

그의 내면 속에 도사리던 욕망은 재봉사 프랜시스를 만난 뒤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그에게 꼭 맞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숨어있던 욕망은 더욱 강해진다. 욕망이 실현된 사람의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에너지는 프랜시스에게도 영향을 준다. 단지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꿈은 왕자의 드레스메이커로 대리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왕자의 조력자만으로는 자신도 세상으로 드러날 수 없음을 깨닫고 안전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왕자의 곁을 떠난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주던 드레스메이커가 사라지자 왕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시기를 맞는다. 그녀를 돕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야 했지만,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왕이라는 지위와 가족들의 시선에 자신을 드러낼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평범한 왕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세바스찬 왕자는 그녀가 만들어준 드레스를 모두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드레스를 입는다. 그러나 결혼하기로 예정된 줄리아나 공주의 오빠와 마주치면서 그의 실체는 만천하에 드러난다. 모든 사실이 드러난 세바스찬 왕자와 자신만의 길을 택한 프랜시스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서로 다시 만난다.

청소년기는 거울 속에 비친 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며 다가서게 되는 시기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내면의 욕망 사이에 갈등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자아정체성 형성과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세바스찬 왕자와 프랜시스는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중성적 이미지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산업화로 새롭게 등장한 신흥 계층에 의해 왕정이 서서히 무너졌듯, 아이들은 세상이 만든 보이지 않는 위계와 질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사랑할 용기를 꿈꿔야 한다. 그들의 선택은 번데기를 탈출한 나비처럼 참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내면에 숨겨진 욕구를 실현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또래 친구들에게도 긍정적인 힘을 준다. 그들의 성장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혼자였으면 이루기 힘든 일들을 거울을 바라보듯 서로를 바라보며 시너지를 만들어 나갔다는 점이다. 작가 젠 왕의 그림은 그들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무한한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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