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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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공부하다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남긴 그림과 글에는 삶을 관통하는 삶의 진리가 상징처럼 담겨있다. 이야기처럼 그림도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유가 있다. 인도 신화는 널리 읽힌 서양의 그리스 로마신화만큼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같은 아시아에 속해 있는 문명의 발생지 인도 신화를 알게 되면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한국의 민화는 조선 후기 서민층 사이에서 유행하며 일상생활양식과 관습에 바탕을 두고 계승되었다. 반면 인도 민화는 13억 인구 수보다 많은 힌두교의 신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도인들에게 신화는 현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를 인도 민화는 이야기한다. 이 책 <인도 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은 동일한 제목으로 2010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목차를 살펴보면 표지만 바뀐 것 같지만, 문명의 발생지로 과거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현재까지 살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이야기를 민화와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인도 민화 지역 분포도에 따라 분류된 세 가지 민화 양식 중 왈리 부족의 민화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소똥을 발라 바탕을 마련한 천이나 흙벽 위에 흰쌀가루로 그림을 그렸는데 작은 삼각형 두 개로 표현한 인간의 형상이 졸라맨을 연상시켰다. 한 장의 그림에 서사를 표현한 점이 특징이었다. 결혼식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면 결혼식 준비와 진행 과정, 결혼식 후 피로연 모습과 일상의 모습까지 모두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서사가 들어있지만 계획되지 않는 구성은 시작과 끝을 짐작할 수 없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을 연상시킨다.


왈리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 나무, 동물은 그들의 삶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신을 숭배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지내는 모습은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주었다. 결혼식 하루 전날 부부가 살 집의 부엌 벽에 그려진 벽화는 몇 달 후면 지워져버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 속 파라가타 신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마지막 장 '왈리의 옛날이야기'는 우리의 옛이야기와 비교하며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이다. 가난한 남자에게 언제든 필요한 양만큼의 곡식을 얻게 해 주는 <마술 항아리>가 부잣집에 가서는 온갖 징그러운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부분에서 흥부와 놀부가 박을 타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두운 숲속에서 귀신을 만났지만 농부의 기지로 살아남은 <귀신과 농부>와 친절한 호랑이의 꾀임에 빠져서 잡아먹힐 뻔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목숨을 건진 거북이 이야기 <욕심 많은 호랑이>에서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얘기를 생각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달라도 이야기 속에 숨은 뜻은 같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도 민화 속 사람의 형상은 주인공이라기보다 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한치의 여백을 허용하지 않고 빽빽이 채운 공간 속에서 인간도 하나의 점이나 선, 면이었다. 그림은 대부분 좌우 대칭형으로 안정감과 균형감을 보여준다. 신과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던 삶을 그림으로 마주하니 마음이 평안했다. 현대 인류가 불행한 것은 이런 균형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때 인도 여행이 붐처럼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바쁜 현대인의 삶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동경이 민화를 보며 다시 꿈틀거렸다. 문명이 들어서기 전 온전한 신의 세계와 글자가 사라진 곳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그림의 힘을 인도 민화에서 보았다. 좀 더 많은 옛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문자에 익숙해진 문명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뒷부분에 부록으로 수록된 왈리 그림 따라 그리기도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자유롭게 그려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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