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리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 나무, 동물은 그들의 삶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신을 숭배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지내는 모습은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주었다. 결혼식 하루 전날 부부가 살 집의 부엌 벽에 그려진 벽화는 몇 달 후면 지워져버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 속 파라가타 신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마지막 장 '왈리의 옛날이야기'는 우리의 옛이야기와 비교하며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이다. 가난한 남자에게 언제든 필요한 양만큼의 곡식을 얻게 해 주는 <마술 항아리>가 부잣집에 가서는 온갖 징그러운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부분에서 흥부와 놀부가 박을 타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두운 숲속에서 귀신을 만났지만 농부의 기지로 살아남은 <귀신과 농부>와 친절한 호랑이의 꾀임에 빠져서 잡아먹힐 뻔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목숨을 건진 거북이 이야기 <욕심 많은 호랑이>에서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얘기를 생각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달라도 이야기 속에 숨은 뜻은 같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도 민화 속 사람의 형상은 주인공이라기보다 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한치의 여백을 허용하지 않고 빽빽이 채운 공간 속에서 인간도 하나의 점이나 선, 면이었다. 그림은 대부분 좌우 대칭형으로 안정감과 균형감을 보여준다. 신과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던 삶을 그림으로 마주하니 마음이 평안했다. 현대 인류가 불행한 것은 이런 균형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때 인도 여행이 붐처럼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바쁜 현대인의 삶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동경이 민화를 보며 다시 꿈틀거렸다. 문명이 들어서기 전 온전한 신의 세계와 글자가 사라진 곳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그림의 힘을 인도 민화에서 보았다. 좀 더 많은 옛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문자에 익숙해진 문명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뒷부분에 부록으로 수록된 왈리 그림 따라 그리기도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자유롭게 그려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