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읽는 기술 -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책 속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이동우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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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라고 했다. 그는 풍요로움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느끼는 결핍감이 불안을 촉발시킨다 했다. 세계는 더 이상 모든 사람이 풍요로울 수 없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이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잠식하고, 지식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극은 나날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차이는 결핍감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궁핍을 안겨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을 떨칠 수 없다.

<미래를 읽는 기술>은 불안한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미래'라고 하면 몇 십 년 후의 '먼'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뇌는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에 대해 회피하거나 도망치는 경향이 강해 지금의 익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강의를 들어도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저자는 지식이 검색어가 된 현재는 뇌의 관성에서 벗어나 기존의 생존 법칙에 따라 생존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모자이크식 독서'로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모자이크는 작은 단편들을 늘어놓아 일정한 형상이나 모양을 표현하는 예술 활동을 말한다. 모자이크식 독서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단서들을 모아 미래라는 큰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독서법을 말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지식산업시대에 생존을 위해 혼자 모든 분야를 공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지식을 '선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저자 이동우는 지독한 독서광으로 3만 권의 책을 보유하고, 6천 권의 책을 읽었으며, 6백여 명의 저자와 인터뷰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그의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한 모자이크식 독서법에 의해 구성되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서 내게 맞는 정보를 선택하고 조합해 하나의 맥락을 만들고, 그 맥락의 서브텍스트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1장은 왜 지금 미래를 읽는 기술이 필요한지에 대해 묻고 있다. 2장은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을 경제학의 역사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머나먼 미래가 아닌 곧 눈앞에 닥칠 시대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현재에 대한 위기감을 직시하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성공하는 미래형 인간에 대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3장부터 5장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미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인간다운 사람'이다. 모든 것을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이성적 판단에 가둬버린 세계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더 뛰어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데이터에 근거한 가장 효율적인 답안이 개개인의 삶에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인문학 열풍이 불고 철학과 자기 내면을 살피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인구 감소로 인해 떨어질 것이라 예측했던 집값은 연일 고공행진하며 부동산 불패신화를 이어 가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늘 성공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미래에 대한 공부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플랫폼, 공유경제 같은 어려운 말보다 유투버들의 성공과 에어비앤비의 사례를 통해 이미 4차 산업혁명이라는 태풍안에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제4차 산업혁명을 '첨단 제조업'이라 부르는 미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 기반이 결국 '제조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미국은 값싼 원가를 위해 제조공장을 아시아나 개발도상국에 만드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먼저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가에 따라 후발주자들은 들러리나 배경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개인도 예외가 없다. 베일을 걷어내고 마주하기 싫었던 현실과 마주하니 미래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어둡게 느껴진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산술적인 수치만으로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에 미래의 희망이 있다. 결국 모든 답은 자신에게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조각을 모으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미래는 분명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미래를 읽는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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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놀기 - 스노우캣 드로잉북
스노우캣(권윤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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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캣 <To Cats>는 본격적으로 고양이에 입덕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좀머 씨 이야기>의 장 자크 상페를 연상시키는 그림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양이 사진이 너무 예뻤다. 이번 책은 직접 그림을 그려보는 책이다. 혼밥, 혼공, 혼자 놀기 열풍으로 그림 그리는 책이 여러 가지 나왔지만, 혼자 놀기를 최초로 유행시키고 '귀차니즘'을 만들어낸 원조는 스노우캣이다.  그리고 역시 스노우캣 그림 그리기는 특별했다.

첫째, 다이어리 크기와 비슷한 아담 사이즈. 내 다이어리와는 똑같은 사이즈다. (13x18) 이제는 빅 백이 부담스러워지는 나이라 책 한 권 넣어 다니는 것조차 어깨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에 적당한 사이즈가 맘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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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의 도크 다이어리 12 - 별로 비밀스럽지 않은 사랑의 위기 도크 다이어리 12
레이첼 르네 러셀 지음, 김은영 옮김 / 미래주니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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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만화 추억 돋는 책. 배경만 달라졌을 뿐.. 모든 아이들의 성장일기는 비슷하다. 이 책을 봤을 때는 어릴 때 즐겨보던 '케빈은 12살'이 생각났다. 처음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설렘과 풋풋함은 시대가 변해도 똑같다. 케빈은 12살 다음에 봤던 '천재 소년 두기'도 머리는 똑똑하지만 인간의 삶을 배워나가는 속도는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두기 옆에서 또래의 삶을 가르쳐주던 친구가 인상 깊었다. 두기가 컴퓨터로 일기를 쓰던 모습은 지금 봐도 너무 신기하다. 두기는 아마 최초의 블로거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배움은 금방 사라진다. 일기는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아이들이 일기 쓰기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니키처럼 즐겁게 일기를 쓰게 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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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81자 바라밀 - 천부경에 숨겨진 천문학의 비밀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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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은 글자 그대로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단군을 교조로 하여 민족 고유의 하느님을 신앙하는 종교인 대종교의 경전으로 우주 만물의 생성 이치를 81자에 담은 우리 민족의 철학서이자 인류 최초의 경전으로 추대 받고 있다.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은 지동설 문명의 정보를 얻기 위해 두 번이나 중앙아시아와 터키 땅으로 들어가 옛 비문과 점토판 기록을 조사하다 천문학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점토판의 글자는 쐬기 문자였고 천부경이 들어있는 <단기고사>도 쐬기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훗날 신라의 최치원에 의해 한자로 번역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천부경이다.

타로카드에 나와 있는 숫자에는 고유의 의미가 있다. 타로를 배우다 수비학에 관심이 생겨 카발라 수비학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세상을 ‘수’로 해석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양철학에서는  0-10까지 11개의 숫자로 세상을 설명하고,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에 수가 있다’라고 했다. 저자는 <천부경> 81자가 우주를 비밀을 숫자로 푼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천문학의 암호로 별자리를 나타내는 숫자라 생각했다. 또한 <천부경>에 우리 조상들이 우주를 바라보던 관점이 담겨 있다고 보고, 81자에 천문학의 기본 원리가 들어있음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하려 했다.

천부경의 시작은 일시무시(一始無始)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다. 이것은 무에서 시작되는 우주의 빅뱅이론과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끝나는 행성의 탄생과 소멸을 떠오르게 한다. '끝'과 '시작'의 상대적인 의미는 양극과 음극이 함께 공존하는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가에서는 해와 쪽달과 새벽별이 나타나는 춘분날 새벽에 새해맞이 굿을 한다고 한다. 저자는 '無'의 이해에서 천부경의 해석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무는 카오스, 혼돈 그 자체이며 새벽별이 양쪽에 해와 쪽달을 거느리고 있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빛과 그림자가 뒤엉켜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지만 새로운 시작이 움 트는 시기인 것이다. 저자는 이를 세 가지 몸을 가진 피라미드 스핑크스로 보았다.

천부경이 우주의 비밀을 가진 경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책에서는 천부경에 등장하는 '천지인'의 개념을 스핑크스에 빗대어 '마고'로 표현하고 있다. 스핑크스는 춘분과 추분 때 정동 방향을 보도록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스핑크스의 날개는 '천'을 뜻하며, 네 발은 '지', 사람의 얼굴을 '인'이라고 보면 '천지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이 되는 동물을 물어보는 수수께끼에서 4+2+3=9라는 공식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세 원을 보고 세 가지 몸을 가진 스핑크스를 떠올리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가 아닐까. 풍물놀이의 상모 돌리는 모습에서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을 떠올린다고 한다면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것처럼.

저자는 석가가 최후의 깨달음을 얻고 7x7=49일 재를 치렀으며, 두 개의 7은 두 번의 북두칠성을 가리 킨다고 했다. 그리고 49의 4는 사계절이고 9는 지구가 돈다는 뜻이라 서술했다. 또한 석가는 새벽별을 통해 9자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이 자전 공전하는 지구라는 돌덩어리에 실려 다니는 하찮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의미로, 또 다른 것은 수비학적 의미인 게마트리아로 해석한다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직 진실에 이르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지식을 탓하고 싶다.

재미로 배웠던 타로에서 점성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우주의 신비를 담았다는 <천부경>의 의미를 배우는 데까지 오게 되었다. 무엇보다 천동설을 믿었던 서양과 달리 일찍부터 지동설을 알고 있었다는 여러 문헌의 사실에 놀랐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공자의 '道'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천부경>의 해석은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저자의 말대로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의 경전일지,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일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다양한 메타포를 통해 관점에 따라 앎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훨씬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하늘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만큼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미신으로만 치부했던 굿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점도 재미있었다. 천문학 공부가 끝나면 주역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려고 했었는데 이 책으로 더욱 흥미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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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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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순간의 시

너희는 동전 두 개를 공중으로 던지면서 그 결과를 놓고 내기하지. 하지만 말이야, 둘 다 세 번 연속 앞면이 나온다 해도, 통계적으로는 그 뒤에 똑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은 두 개 모두 앞면이 나온다에 또 돈을 걸지. 동전을 던질 때마다 처음 던질 때랑 확률이 같아. 정말 멋지지 않아? p.55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죽음의 라인에서 살아남아 전쟁 영웅이 된 외과 의사 도리고 에번스. 그가 처음 교회에서 보았던 눈 부신 빛은 신의 계시처럼 가슴속에 자리해 그를 빛을 따르는 운명으로 이끈다. 그리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태양왕처럼 외과 의사 자리까지 오른다. 끊임없이 빛을 찾아 헤매는 그에게 전쟁은 지속되는 우기와 같았다. 빛나는 태양 대신 쉼 없이 쏟아지는 비와 어두컴컴한 하늘은 새로운 빛을 갈망하게 했다. 삶의 순간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움츠러들었을 때,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속에 그가 발견한 빛은 ‘그녀’였다. 그녀는 모란 속에 갇혀 비틀비틀 나온 벌 한 마리가 처음 본 햇살이었다.

 

도리고 에번스가 일상을 보내는 곳은 죽음의 철도를 만들고 있는 전쟁터였다. 매일 아침 라인에 보낼 포로들의 숫자를 협상하며, 병들고, 아프고, 다친 사람 중에 그나마 오래 버틸만한 사람들을 고르는 것이 그의 임무 중 하나였다. 전쟁의 광기가 아직 그에게 미치지 않았을 때, 애들레이드 서점의 창을 투과한 햇살이 부유하는 먼지와 책들 사이로 그녀에게 쏟아졌다. 오랫동안 빛의 열망을 잊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운명의 소용돌이 앞에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고모부의 집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 강렬한 빛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빠져든다. 에이미, 아미, 아무르. 내일 다시 눈을 떠도 반복되는 똑같은 삶 속에 ‘그녀’라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자리했다. 그에게는 예측할 수 있는 미래보다 변할 수 있는 순간이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망각의 다리였다. 그는 자기가 타들어 가는 줄 모르고 불을 품는 양초처럼 빛을 향해 돌진했다.  

사막 한복판에서 어떤 예언자가 갈증으로 죽어가는 여행자에게 물만 있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물이 없습니다. 여행자가 대답한다. 그렇지. 여행자가 맞장구를 친다. 하기야 물이 있었다면 당신은 갈증에 시달리지 않았을 테고 죽지도 않을 테지요. 그럼 내가 죽는 거군요. 여행자가 말한다. 물만 마시면 괜찮습니다. 예언자가 대답한다. 314

빛을 품고 살았던 그와 달리 거시기라 불리는 작은 천 조각 하나로 가린 몸뚱이와 그 사이에 밥통을 걸고 살았던 전쟁의 포로들. 그들이 매일 죽음을 보며 깨닫게 된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은 식당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에 대한 추억이나 토끼 헨드릭스의 그림처럼 작고, 희미하며, 연약한 것들이었다.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기적인 욕망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산다는 것은 불안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이유를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삶의 목적을 위해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동료애는 함께 살아있다는 안심과 동정심이었다. 그들을 절망에서 살아남게 해 준 것은 자신이 그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라인은 망가졌다.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삶의 확신에 대한 기억도 점차 불투명해졌다. 고향에 살아 돌아가면 삶의 이유가 더욱 분명해져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고향은 예전에 그들이 그리던 고향이 아니었다. 자신을 버티게 해 주었던 모든 이유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의 이유는 사라져 버린다. 삶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죽음의 목전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살았을 때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깨트려 버린 니키타리스의 수조는 더는 의미 없는 확신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투쟁과 함께 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얼굴, 인생, 운명, 행복과 불행이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건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받고, 어떤 놈은 아무것도 못 받고, 사랑도 똑같아요. 맥주잔 크기가 다양한 것과 같습니다. 맥주가 적든 많든 마시고 나면 똑같이 사라져버리죠. 우리는 그걸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고요. 담을 쌓거나 집을 지을 때처럼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감기 같은 거예요. 사랑 때문에 비참해지지만 곧 증세가 사라지죠. 그렇지 않은 척하는 건 곧 지옥으로 이어진 길이에요. P.457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전쟁터에서조차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한이 확실하게 정해진 죽음 앞에 인간이 가장 후회하게 되는 일은 무엇일까. 전쟁이 끝나고 곳곳에 흩어졌던 전범들은 차례대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수로 분류되어 'CD'라는 표시를 단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내게 주어진 의무, 열등감, 자존심이라는 내면의 전쟁터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순간, 자신의 키에 딱 맞는 밧줄은 단번에 목을 조여온다.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무게의 모래주머니는 더는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발버둥 치지 못하게 한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같이 사는 딱 지금의 내 모습처럼. 그래서 먼 북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좁다.

 

무수히 많은 점으로 촘촘히 연결된 선형의 삶에서 태어남과 죽어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마법은 있었다. 점 하나하나가 원형이 되는 찰나의 빛, 그것은 사랑이었다. 지구별 여행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되뇌는 사랑하고 행복했던 순간들. 각자의 기억회로에 저장된 사실이 아닌 진실. 그것은 내가 바라보았던 세상 속의 사랑이었다. 우리는 꽃이 되는 순간의 존재로 죽음의 문 앞에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음에도 걸을 수 있었다.

맨부커상은 2016년 5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리처드 플래너건 장편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2014년 맨부커상을 받은 책이다. 이 책은 이 차 대전 당시 일본이 인도와 미얀마로 진격하기 위해 만든 '죽음의 철도'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 의문을 갖게 한다.

지나간 날은 나의 확신에 대한 결과물이다. 내가 확신했던 인생의 결과물은 진실 앞에 때로는 영예로운 왕관으로, 때로는 한낱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포탄이 날아와 머리가 부서지는 전쟁의 불확실함과 같은 인생과 매일 마주하며 선택한다. 작가가 펼쳐 놓은 다섯 마당의 하이카이 시구는 노래한다. 삶의 진실은 순간에 있으며, 그 진실의 기준은 내 안에 있다고.  파도에 몸을 싣고 운명의 바다에 내리꽂히는 순간, "전진하라 제군들, 창턱으로 돌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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