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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다른 나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부에 넣는 필러를 녹일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며 피부 조직에 흡수되어 변형된다고 한다. 주입된 필러는 무게 때문에 뼈에 구멍을 만들
수 있다. 문득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며 평생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무게를 가진 필러가 책 속의 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사람들의 생각을
환기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떤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인가. 책을 덮자마자 ‘이게 뭐지?’하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읽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두 가지 이야기는 피부에 삽입된 필러처럼 묘하게
얽히고설키어 어느 것이 주입된 필러이고 실제 피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책은 소설가가 펼쳐 놓은 상상과 허구의 세계가 결코 상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평생토록 무게를 가지고 뼈까지 내려앉게 만드는 필러처럼.
“그게 정말
있는지 없는지 같은 건 당시의 내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우리에게 몹시 의미 있는 장면이 되었다는 점이에요."
p.65
“당신이 무얼
기억하든 그런 사람은 없어. 연구실 같은 건 없어. 당신이 기억하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그냥 그것 모두 다 이 소설일 뿐이잖아. 내가
아니라, 그냥 당신이 그렇다고 믿는 이야기들일 뿐이라고.” p.109
두 이야기는 순서를
두고 교차로 진행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신약개발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을 둔 아내의 독백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남편은 키우지도 않는 개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여행에서 찍은 사진 속 까만 점을 고래라고 말하는 남자와 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믿어
주는 것이, 아니 믿기로 결정한 여자의 모습은 뭔가 부자연스럽다. 인간은 합리성에 따라 논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심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키우지도 않는
개를 찾는 남편을 위해 비슷한 개를 사 온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가 남편의 약이라 말했던 약을 보며 그녀의 약이라 말하며 그녀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 말한다. 뒤늦게 뭔가 놓친 부분이 있었는지 첫 페이지로 돌아가 보았지만, 이야기 속에는 두 등장인물의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할 수 있는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둘 중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일까.
“실은, 당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어.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그건 실수였지. 당신에게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았어……. 내가 말하면,
그게 무엇이 됐든 미양은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미양은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그런 일을 저지를 만큼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세상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양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내 감정이 진짜라는 걸, 내 사랑에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걸, 미양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지금 내가 진짜 나라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지?”p.58
두 번째 이야기는 한
소설가와 그의 아내 미양에 대한 이야기다. 미양은 양산에 사는 선배네 집을 방문한 뒤부터 집안의 가구가 성에 차지 않는다. 함께 가구점에 들러
가구를 살펴보는 동안 가지 않을 여행지와 있지 않는 가구를 들먹이며 점원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피는 소설가와 무심한 아내의 모습은 여느 부부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소설가를 닮은 사람을 남편이라며 찾는 광고가 스치듯 지나간다.
미양은 결혼 전에
도박은 안 된다는 것과 소설 속에 자신을 등장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소설가의 책 속에 주변인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각색되어 들어가게
마련이다. 미양은 소설가의 책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부분들이 모두 자신으로 여겨질까 염려한다. 소설가가 중고서점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독자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묘하게 흘러간다. 그녀는 소설가로서 그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남편으로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도망쳤지만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다.
소설가의 소설인지 실제
상황인지 두 이야기의 접점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소설의 시작은 늘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전해진 이야기의 조각들이 파편처럼 조각난
상태로 있다가 붙여지고 잘라내어 재탄생 되는 것이다. ‘그이의 얼굴이 무척 낯설더라고요.’라는 말이 ‘맹세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의 얼굴’이
되고, 제약회사에 다닌다던 남편은 신용불량자로 탈바꿈되었다. 소설가는 이런저런 살을 붙여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에
등장한 글에서 소설가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쓴 이야기와 비슷했다. 마치 자신이 짜깁기해 생성한 새로운 이야기가 도용된 느낌이 든
것이다. 더구나 남편을 찾는다는 인터넷 게시글 댓글에는 자신의 사진과 자주 가는 중고서점의 주소가 올라와 있었다. 소설가는 급기야 게시글의
전화번호로 연락하게 된다. 소설가는 글이 아닌 진짜 현실 속 사건으로 빠져든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달인이다. 그들이 지어내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의 작품 <엿보는 손>에서는 누군가가 써준 자서전의 글을 자신의
삶이라 믿고 살았던 아버지가 나온다. 한권의 책을 읽은 뒤 달라진 삶은 누가 부담하느냐는 작가의 외침은 끝나지 않고 <당신과 다른
나>를 출판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다시 묻고 있었다. 관심 품목을 클릭할 때마다 소셜 웹 광고창에 뜨는 광고들처럼 내가 읽는 책들이
집계되어 미래의 일상을 결정하게 된다면 소설가의 책무가 조금 무거워질까.
툭. 책표지의 전체
그림이 엽서 크기로 따로 제작되어 끼워져 있었는데 바닥에 떨어졌다. 전체 그림을 보았을 때 생경함. 내가 보고 경험하는 내 현실도 표지로 선택된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부분을 들춰보고 맞춰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현실 앞에 경계는 무의미해 보인다. 소설가는 삶의 부분을
섬세하게 발췌하고 오려내어 극한으로 몰아가 즐기는 사람이다. 독자는 소설가의 장단에 맞춰 진흙탕에 빠지기도 하고 늑대를 만나기도 하며 현실의
극한에 다가가 보는 것으로 족하다. 오늘 내가 열어 볼 상자는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