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토마스 에릭손 지음, 김고명 옮김 / 시목(始木)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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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 빠진다. 오늘 정말 힘들었어."

도무지 내 맘 같지 않은, 별별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 속. 서로 몸과 마음을 부딪히며 사는 것은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 이 책 내용의 기반이 된 DISC 성격유형 진단 검사는 세계적인 기업에서 팀워크 강화와 서비스 응대, 교육 관련해서 쓰이고 있다. 성격유형 진단 검사하면 떠오르는 MBTI 기법이 ‘내’ 성격을 알아보는 것이라면, DISC 검사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방법에 가깝다. 독서지도사 공부할 때 성격유형별로 지도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공부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을 펼쳤다면 당신은 이제 관계의 첫 단추 하나를 끼운 것이다.

 

인터넷에서도 손쉽게 자신의 유형을 알 수 있지만 책 속에는 24가지 문항에 대한 답으로 유형을 분류하도록 해 두었다. 그리고 유형별 특징과 잘 맞는 유형과 잘 맞지 않는 유형으로 분류해 살펴보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심리학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각 유형별로 피드백을 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이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특히 저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 코드로 인해 유형별 단점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어쩌면 나는 블루 타입이라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정보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각 유형이 쓰는 이메일 부분에서는 너무 공감되어 웃느라 지하철에서 책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나는 블루 타입이라 별로 웃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 그림은 각 유형별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법을 물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을 그림으로 옮겨 본 것이다. 일단 레드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낸다. 샷 글라스에 스트레스를 담아 마구 엎지르는 양상을 떠올리면 되겠다. 하지만 글라스 잔이 작은 만큼 화는 오래가지 않고 금방 처리할 수 있다. 옐로는 스트레스를 우유 잔에 담는다. 보기에도 레드보다는 엎질렀을 때 수습하고 처리해야 할 양이 많다. 그래도 둘 다 쌓아두는 유형은 아니다. 그런데 그린은 맥주 통에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담아둔다. 그러다 나중에 터지면 수습불가. 블루도 쌓아두는 편인데 다행히 작은 수도꼭지가 있어 매일 조금씩 투덜대며 스트레스를 흘려보낸다. 그래서 그린처럼 폭발의 위험은 없다. 이렇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훌륭한 비유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셀프 테스트 사진을 보내고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예측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예측이 맞았다. 성격은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판단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내 안에 다른 유형이 존재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행동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나의 기질을 대표한다. 가장 극단적이어서 재밌었던 레드를 분석해 둔 글을 읽으며 결혼 생활 십 년 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절대로 하지 못했던 일을 드디어 하게 되었다. 책 속에 레드 타입을 분석해 둔 ‘팩폭’글과 레드 생각을 담은 문장을 읽어주었다.  "이거 '내' 방식대로 할래, 아니면 틀려먹은 방식대로 할래?" 늘 그렇게 얘기하던 남편에게 화내지 않고 고스란히 되돌려 주었더니 정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후련했다. (그는 처음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생각에 잠겼다)
 
유치원 아이들 베스트셀러 중에 <공룡 유치원>시리즈가 있다. 책 속의 공룡들은 제각각 다른 색처럼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룡들의 성격이 설명된 색과 잘 맞아떨어졌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것은 빠른 시간 안에 이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서로 부딪히며 성장한다. 제대로 된 연습 없이 성인이 되면 자아는 더욱 강해져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게 된다. 하지만 직장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한 사람, 내 뱃속에서 나온 사람들도 다 각자 고유의 유형을 갖고 있다. 그 속에서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고 장점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소통의 방법이 또 있을까. 늘 자신의 주변에 모두 꼴통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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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어필하라 - 스피치 3주 완성 프로젝트
정보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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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이야기하는 시대다. 이제 영상은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듣는 소리에 집중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누구나 같은 얼굴을 가진 강남 미인 시대에 나만의 매력으로 어필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아마 목소리가 아닐까. 요즘 같은 1인 미디어 시대에 목소리는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요소다. <목소리로 어필하라>는 전 MBC 아나운서의 자신만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비결을 담은 책이다. 그녀는 현재 정보영 스피치 대표로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해 낭송 인문학 수업을 듣고 꾸준히 낭송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발성 연습을 위한 책을 많이 찾아 보았다. 그러나 책 내용이 좋고 나쁨은 차지하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연습 영상’이 있어야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점이 매우 아쉬웠다. 그래서 낭독 실전 편이 나왔으면 했는데 바로 ‘딱’ 원하던 스타일의 책이다. 큐알코드를 찍으면 나오는 연습 영상을 따라 집에서도 손쉽게 목소리 지도를 받을 수 있다. 더 이상의 이론은 그만! 우리는 실전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갖는다. 그리고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며 내 목소리를 내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 목소리가 진짜 목소리가 아니라면? 내 목소리를 찾고 싶지 않은가. 낭독 인문학 수업에서도 직접 낭독했던 영상을 서로 녹화해서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고치는 연습을 계속했다. 꾸미지 않은 목소리가 가장 듣기 좋고 편안한 목소리다. 그런데 충분히 복식 호흡 연습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울림통이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책 속에는 울림통을 키우고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는 매일 따라 할 수 있는 3주 완성법이 담겨 있다. 연습 영상을 녹화해서 들어보았는데 어떤 점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코스 요리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나중에 나오는 것처럼 3주 완성 프로젝트의 백미는 마지막 주, 목소리에 매력을 더하는 부분이었다. 여자들이 분위기에 따라 다른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것처럼 때로는 청순하게, 시크하게, 지적으로 목소리에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들어있다. 목소리를 꾸며내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만의 스피치는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얹어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타내는 것이다. 유창한 말투가 아니라도 신뢰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은 사람이다. 자신의 말에 확신을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감동적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를 글로 읽고 낭독해 보는 것도 좋았다. 이제 남은 것은 연습, 또 연습. 유튜브에 있는 연습 영상을 따라 연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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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츠와 고양이 책이 좋아 1단계 6
히코 다나카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고향옥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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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 다나카 작가와 요시타케 신스케가 다시 만났다. <아이라서 어른이라서>,<아홉 살 첫사랑>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이다. 요시타케 신스케 작품 속 인물 표정을 좋아한다. 몇 개의 선과 점 만으로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어낸다. 히코 다나카 작가는 아이들의 언어로 글을 쓴다. 그냥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늘어놓는 느낌이다. <레츠와 고양이>는 지금 일곱 살인 레츠가 다섯 살 때를 기억하며 쓴 책이다. 앞으로 6살, 7살 이야기가 차례로 출간 예정이라 점점 자라는 레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곱 살은 좋고 싫음이 분명해지는 나이다. 하루 생활이 익숙해져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자아가 형성된다. 일곱 살의 눈에는 다섯 살이 '아주아주 오래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레츠가 아주 오래오래 전, 다섯 살 때 가장 큰 사건은 고양이가 생긴 일이었다. 엄마는 길에서 고양이를 주워왔다. 레츠가 처음 고양이를 보았을 때 까만 덩어리의 눈이 초록빛으로 빛났다. 엄마는 레츠에게 이 동물은 '고양이'라고 가르쳐준다. 레츠에게 처음 고양이로 인식된 동물을 엄마는 '까망이'라 부르자고 한다. 레츠는 ‘얘는 고양이지 까망이가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레츠의 손가락을 문다. 그런데 그 느낌이 싫지 않다.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을 무는 버릇을 고친다. 고양이는 좋아하는 사람을 무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한다고 오해하면 안 되니까. 그렇지만 좋아한다고 무는 것도 안되는 일이었다. 고양이는 이제 더 이상 깨물지 않고 볼을 핥아준다. 그렇지만 고양이 혀는 아프다. 레츠는 자신의 혀도 아픈지 시험해 보고 아프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좋아하는 친구들을 핥아주기로 한다.

 

다섯 살이었던 레츠는 장난감 방이 자기 방이 될 줄 몰랐다. 장난감이 있는 방은 언제까지나 장난감 방이라고만 생각했다. 그저 장난감 방이었던 방이 내 방이 되었을 때 다른 의미가 되는 것처럼, 고양이도 레츠의 고양이가 되었을 때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큐우리(오이)"라고 이름을 짓는 모습에서 까만 덩어리에 오이 같은 눈빛을 가진 고양이와 첫 만남을 떠올렸다.  "고양이는 오늘부터 고양이를 그만둡니다. 까망이도 그만둡니다. 이제 큐우리입니다."라는 선언은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었다. 반전은 엄마는 '큐우리'가 아니라 '키위'로 들었다는 것!!!  
 
아무리 고양이라 불러도 대답이 없는 고양이를 보고 이름을 떠올리는 레츠의 모습은 존재론적 의미를 떠올리게 했다. 내 이름이 없다면, 타인이 인식하는 나를 표현하는 말이 없다면,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얘, 쟤, 걔가 아닌 키위로 불러주는 순간, 그 고양이는 진짜 ‘레츠의 고양이’가 된다. 김춘수 님의 ‘꽃’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것은 소유격이 아닌 주격이 완성된 후라는 것.
 
레츠가 꿈꾸는 방처럼 레츠의 고양이 키위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높은 캣타워, 그물망, 대롱거리는 쥐 인형이 있는 멋진 공간을. 그 혼자만의 공간에 누군가의 침입을 허용하고, 어울리고 그로 인해 마음 아프고 눈물짓게 되는 것이 인생이겠지. 레츠의 여섯 살, 일곱 살의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요즘에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어린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다섯 살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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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칸의 대단한 모험 탐정 칸
하민석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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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 꿈은 웹툰 작가다. 학교 도서관 사서 봉사를 하면 단연 인기 있는 책은 만화책들이다. 와이 시리즈, 그리스 로마신화, 윔피키드 등 이런 책들은 겉장이 제대로 붙어있는 책이 없을 정도다. 종이책뿐만 아니라 컴퓨터나 휴대 전화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빠르게 인터넷 만화 세계를 접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우리 창작 만화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탐정 칸의 대단한 모험>은 도깨비가 훔쳐 간 옛이야기, 안녕, 전우치?, 정신 차려 맹맹꽁 등을 그린 하민석 작가의 창작 만화다. 그는 <개똥이네 놀이터>에 어린이 창작 만화 '두근두근 탐험대'의 김홍모 작가와 독자 엽서 1,2위를 다투는 인기 작가다. 탐정 칸의 대단한 모험은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 중인 단편을 모아 출판한 책이다.


"어이없는 것 같지만 논리적이네." 단숨에 앉은 자리에서 읽어버린 아이가 책을 덮으며 얘기한 말이다. 키득거리는 아이와 다르게 나는 좀 심심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미 현란한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림의 인상은 고바우 영감의 4컷 만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화가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작가들이 피고름으로 글을 쓰듯 자신들도 뼈를 깎아 그림을 힘들게 그린다고 하는데 정말 쉽게 그린 느낌이다. 게다가 다른 만화를 찾아봤는데 같은 작가의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탐정 칸의 대단한 모험>은 첫째, 자극적인 말투나 그림이 없다. 둘째, 아이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한다. 셋째, 작은 단편들 속에 있는 작은 실마리가 다음 사건과 연결되어 단편이면서도 장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이들이 만화를 꼼꼼히 보면서 앞 뒤 개연성과 맥락을 글처럼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종이 질감과 색감, 그리고 글씨체였다. 옛날 문방구 앞에서 사 먹던 껌 만화책이 생각났다. 그거 모으려고 껌을 샀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그런 재미를 모르겠지? 아이들이 우리 창작 만화를 많이 읽고 우리만의 감성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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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 황선미 선생님이 들려주는 관계 이야기
황선미 지음, 박진아 그림, 이보연 상담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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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말은 이렇게 난처하고 한심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꼼짝도 못 하게. 생각도 없는 애처럼 보이게. 25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장애를 뜻한다. 책 속 진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소연이라는 친구의 도우미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 그저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하고 싶지 않았는데 거절하지 못한 도우미 역할은 진아의 마음을 점점 옭아매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진아.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은 선생님의 말을 지키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진아의 내면을 통해 '착한 아이'라는 꼬리표가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내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황선미 작가는 이미 <나쁜 어린이표>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내면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책의 머리말에는 아이들의 외롭고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오롯이 어른의 몫이라 했다.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에서도 속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알아봐 줘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은 계속된다. 진아가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곁에서 진아를 자세히 바라봐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아는 최대한 조용히 내 할 일만 하는 소심한 학생이다. 열 살 전에 엄마를 여의고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 엄마를 그리워한다. 장난꾸러기 정우가 수돗가에서 장난치는 바람에 웃옷이 젖었을 때, 아무 말없이 수건으로 몸을 가려주었던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을 잊지 못해 진아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진아 반에는 다른 아이들과 약간 다른 소연이라는 친구가 있다. 선생님은 진아에게 소연이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진아는 소연이 '도우미'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소연이의 도우미가 되는 일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잊어버린 준비물을 대신 챙겨주고, 같이 등교하고, 웬만하면 숙제도 같이해야 한다. 스물여덟 명의 친구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도우미'가 된 진아에게 반 아이들은 소연이와 관련된 모든 일을 떠넘긴다. "너 김소연 도우미잖아. 그러니까 네가 해."

그래도 진아가 묵묵히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수건으로 몸을 가려주었던 따뜻한 선생님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훈이가 단지 소연이와 함께 오카리나 연주를 하기 싫다고 했을 때 선생님은 자신이 얼마나 연습했는지, 얼마나 잘하고 싶어 하는지 묻지 않고 소연이와 함께 연주하도록 한다. 그래서 진아는 싫다는 말 대신 가장 소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소연이와 함께 하는 오카리나 연주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부들거리는 모습은 진아의 내면 모습이었다.

내가 이러는 건 나 때문이다. 순전히 나 때문에. 이렇게라도 심통을 부려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아서.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니 벽에 대고 분풀이하는 셈이지만 52

소연이 도우미를 하는 일은 그 무게만큼, 선생님을 실망시키기 싫은 만큼 진아는 점점 삐딱하게 변해 갔다. 그러나 곪았던 상처는 터지기 마련이다. 진아의 억눌린 감정은 결국 도우미를 거절했던 하나가 도우미가 해야 할 일을 운운하자 폭발한다. "싫으니까 거절해 놓고, 말까지 그렇게 하니? 이럴 자격도 없어. 너." 그렇지만 여전히 진아는 거기서 한 발자국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말로 쏟아내는 대신 그런 자신의 감정을 모두 비밀일기장에 기록해 둔다. 그런데 비밀일기장을 새엄마가 보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 무척 화가 난다. 착한 진아는 새엄마에도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긴장하고 억눌린 감정을 집에서도 풀지 못하고 다시 억눌러야 하는. 진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이 되어간다.

그렇게 모든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고서도 고작 소연이네 마당에 있는 꽃을 꺾는 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소심하게 표현한다. 입으로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손으로 가서 소연이를 꼬집고 괴롭히기도 한다. 이게 최선이라고 변명하면서. 그저 누군가 점점 변해가는 자신을 붙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책을 읽는 내내 진아 곁에 있는 엄마, 선생님, 다른 친구들이 진아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했다. 과학실에서 유리가 깨졌을 때 소연이를 위해 달려가는 진아는 여전히 착한 아이였으니까. 원래 진아가 가졌던 아름다운 마음씨까지 잃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아이들도 선생님의 말 앞에서는 쉽게 자신의 감점을 드러내지 못한다. 3학년 부회장을 맡았던 내내 부회장이라는 역할보다 큰 책임으로 힘겨워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참는 게 익숙했기에 아이가 불평할 때마다 선생님을 바꿀 수는 없으니 네가 참아라고 얘기했다. 열심히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는 아이에게 역설적이게도 네 감정을 숨기는데 최선을 다하는 '착한 아이'가 되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눈 밖에 날까 진아 엄마처럼 학교에 찾아가 아이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해결하지 못한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그렇게 대를 이어 연명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편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아이들을 멋대로 판단해도 되니까. 소연이를 부탁할 때 담임 선생님도 내 어깨에 손을 댔다. 착하다면서. 36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애를 쓰고 있다면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언제든지 발병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나답게 살기 위한 책들이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자리매김하는 것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는 엄마가 없었다면, 장난꾸러기이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정우가 없었다면 진아는 여전히 홀로 모든 시간을 견디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아의 상황을 선생님께 편지로 전달해 준 정우의 용기에 박수와 갈채를. 오늘도 현명한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운다.

 
일부러 세게 눌러야 다친 데가 확인될 만큼 살짝 베인 거였다. 상처는 그랬다. 그런데 왜 계속 아픈 기분일까. 아픈 데를 말하라고 하면 어디를 짚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몸뚱이 여기저기가 멍든 것처럼 아프다. 그냥 아프다. 꼭 꾀병처럼.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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