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
맨리 P. 홀 지음, 윤민.남기종 옮김 / 마름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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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주말 오후 풍경처럼 두 아이는 거실에서 인형을 갖고 놀고 있었다. 언니는 동생이 갖고 있는 인형 얼굴에 사인펜으로 색칠을 하자고 제안했고, 동생은 머뭇거리다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펜으로 색칠한 인형 얼굴이 생각만큼 예쁘지 않았는지 동생은 울음을 터트렸다. 많이 속상했었는지 울음은 잠드는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잠자리에서 동생은 언니가 화를 낼까 봐 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는데 후회가 된다고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하며 울먹이는 아이를 보며 두려움이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는 미국의 철학자 맨리 P. 홀이 생전에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의 악영향을 주제로 진행한 세 편의 강의를 묶은 책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역자 서문에 보면 돈을 들여 위기를 모면하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거나, 근거 없는 변명을 내세우며 성장을 피해 가려는 충동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했다. 가슴이 뜨끔했다. 문제에 정면으로 마주 서지 않고 이리저리 피해 도망치거나, 남탓으로 일관하며 일단 상황을 모면하고 보자는 식으로 정면승부를 피해왔기 때문이다. 정면승부란 나와 마주 서는 것이다.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사랑 받고 싶은 욕망과 비열함, 천박함, 피해 의식, 낮은 자존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두려운 일은 없다.

두려움의 실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이 이루어지는 순간 드러난다.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책에서 제시한 여러 방법 중에 관점의 변환 또는 가치관의 재확립으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모든 두려움은 상황이 아니라 나의 반응이다. 아이는 언니가 무서워서 두려웠던 것이 아니다. 언니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 언니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두려움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림자처럼 어두운 내면의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페르세우스가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를 자를 수 있었던 것은 거울로 메두사를 보며 싸웠기 때문이다. 페르세우스는 우리에게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라도 시선을 달리해 바라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다. 아이는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온다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주변 상황에 나를 맞추며 어디까지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두려웠다면 자신을 바로 세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다. "소중한 가치를 내 안에서 받아들였을 때 얻어지는 안전만이 진정한 안전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두렵다면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무너진 삶의 질서를 돌봐야 한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더불어 궁극적으로 두려움이 행동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이 올바른 일이기 때문에 행동해야 한다는 말도 기억하자.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 나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건강을 지켜 주는 것. 도덕적으로 내일을 맞을 수 있는 용기와 내면의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올바른 행동이다. 우리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단 한 가지는 삶을 체험하면서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 했다.

삶에서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가장 먼저 상황을 비판했다.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인지 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일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라는 물음을 통해 손해와 이익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관점으로 전환함으로써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내게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신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비로소 삶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된다.

‘함께 안다'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어에서 만들어진 Gewissen은 우리말로 양심으로 번역된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각자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양심일 것이다. 양심은 자신만의 느낌과 직감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주는 일종의 경보장치다. 모든 사람에게 신이 준 보석이 있다면 아마도 '양심'이 아닐까.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살기란 어려워졌다. 그러나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삶이 안전하다 말할 수 없다. 진정한 가르침은 삶의 가치와 진리를 볼 수 있는 밝은 눈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쓸데없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서양의 합리론자들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겪으며 삶의 회의를 느끼고 동양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저자의 말이 전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가치와 진리에 대한 이상에만 사로잡힌 사람이 현실 세계에 발 디뎠을 때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듯 무엇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신에게 맡겨라. 자연의 법칙은 공정하고 냉정하다. 내가 뿌리지 않는 씨앗은 거둘 수 없으며, 내가 뿌린 씨앗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세상을 예측할 수 없어 두렵다면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으면 된다. 세상의 법칙이 공정하다는 사실만 인정해도 두려움의 크기는 줄일 수 있다는 말을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도록 마음에 새겨 넣어 본다.

 

진심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삶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재평가하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라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걱정거리를 해소하기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 문제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게 생각해보고,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재앙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도전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만든 감옥 -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탈출하기>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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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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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열풍의 원조 격인 류시화 시인. 그가 오랜만에 어른들을 위한 우화를 가지고 왔다. 네이버 책 포스트에 일주일 동안 연재되었던 책 내용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어 꼭 읽고 싶었던 책이다. 류시화 시인은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물음을 갖게 해준다. 그의 글 속에 녹아든 삶의 지혜는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하고 서서히 심장을 뛰게 한다. <인생 우화>는 천사의 실수로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에 모여 살게 된 바보들의 이야기다. 신의 우려와는 달리 바보들은 그들만의 지혜로 '현자들의 마을'이라 부르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바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현자들의 마을이라니. 헤움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스스로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 이야기를 읽어보면 지금 하는 걱정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해준다. 라디오가 보급되자 신발 수선공은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이고, 마부는 비 온 뒤 땅이 빨리 굳어지지 않아서 걱정, 어부는 땅이 너무 빨리 굳어 지렁이를 미끼로 쓰지 못한다고 걱정이다. 그래서 최고 현자 하임이 집 안에서 걱정하지 말고 밖에 나가 일상생활에 매진하자고 해도 걱정하지 않으면 좋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고 또 걱정한다. 그래서 매일 한 가지 걱정만 하자고 법률로 정하려 했지만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도 걱정이라는 의견에 헛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그냥 걱정하지 않으면 될걸 그 쉬운 일을 하지 못해 걱정을 대리해주는 사람에게 한 달 동안 걱정을 대신하게 하고서 그에게 줄 돈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공감된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걱정거리를 더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과연 나만의 모습일까.

이번 생에는 빈자, 다음 생에는 부자에서는 가난한 제화공 슈물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했다는 신의 말씀에 의문을 품는 장면이 나온다. 은행가 준델은 부자인 자신은 다음 생에 가난하게 태어나고 가난한 슈물은 부자로 태어날 테니 신은 공평하다 말한다. 슈물은 준델에게 부자가 된 다음 생에 갚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준델은 돈을 빌려주려다 빌려준 돈으로 무엇을 할지 묻는다. 슈물이 고급 가죽을 사서 구두를 판다고 하니 그럼 이번 생에 부자가 될 테니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빌려주려던 돈을 가져간다. 슈물은 결국 영리한 부자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결국 가난한 사람에게는 빌릴 돈이 없으니 스스로의 힘으로 부자가 되지 않는다면 이번 생에 부자가 되기는 힘들다는 결론이다. 부자들은 자신이 가난하게 살 다음 생을 믿지 않는다. 그저 현재 부자인 것에 만족하고 공평하다는 신의 말을 믿고 싶어할 뿐이다.

두 가지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바보들이 사는 마을 헤움은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마을이 다 타는지도 모르고 다른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정치가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정의를 찾아 떠났지만 사온 정의는 이미 썩어 쓸 수 없다며 헤움만의 정의를 찾는 모습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그렇지만 류시화의 인생 우화는 삶의 회의성을 짙게 드리우며 우화가 갖고 있는 풍자와 해악, 교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세상은 발전을 거듭하고 정보는 넘쳐나고 있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도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헤움의 광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이 행운을 가져다주는지 믿는 것도, 내 분수에 걸맞지 않은 단추를 버리는 것도, 정치가의 말을 따르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인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정의를 생각해 보았던 것처럼 작가는 그동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모든 일들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거나,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면 인생 우화에서 던지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내려보는 것이 어떨까. 삶에 정답은 없으니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현명한 자기만의 대답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당신은 믿지 않아요?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당신은 우리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린 모두 믿어요. 그리고 행복한 우리를 보면 알 거 아녜요? 그런데도 여전히 의심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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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 윤봉구 2 : 버킷리스트 복제인간 윤봉구 2
임은하 지음, 정용환 그림 / 비룡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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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내가 어릴 때 개미를 가지고 많이 하던 장난이 개미 더듬이를 자르는 일이었다. 집을 향해 열심히 기어가던 개미는 더듬이를 잘리면 갑자기 갈 곳을 잃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걸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 개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갈 곳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집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인 줄 알았다면 나는 그런 장난을 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개미들에게 미안했다. 나는 지금 더듬이 잘린 개미가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개미 말이다. 1권 125

어린이 심사위원 100명이 선택한 제5회 스토리킹 수상작 <복제 인간 윤봉구>다.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일까. 형과 똑같이 생긴 봉구처럼 누군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내 존재는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복제 인간'이라는 참신한 소재도 좋았지만, 읽는 내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는 책이었다. 인간은 어떤 이유를 갖고 태어났든 표면적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결실로 '자연스럽게' 잉태된 것처럼 보인다. 복제 인간 봉구는 뛰어난 과학자였던 어머니의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이라는 '목적으로' 태어난 아이다. 1권에서 봉구는 스스로 삶에 어떤 목적성을 부여하도 전에 타인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방황한다.

개인의 자아 정체감은 행동이나 사고, 느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인가를 일관되게 인식하는 것이다. 봉구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열심히 만드는 것은 그저 형의 유전자가 복사된 '피조물'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일반 청소년들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정체감을 쌓아가던 봉구에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방해꾼은 “나는 네가 복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다름을 인정받기도 전에 정체감이 거세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은 고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봉구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형에게서 도망친다. 사랑하는 형이라도 자신의 심장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봉구는 자신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수련을 하던 식당 '진짜루'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비로소 재채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리게 된다.

1권이 인간의 목적성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2권은 삶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아 정체감이 어느 정도 수립되었으니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촉발시키는 존재는 1권 마지막에서 봉구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편지를 보낸 새로운 인물, 양서준이었다. 그녀는(그렇다. 여성이다. 여성은 늘 생명의 유한성을 남성보다 일찍 깨닫는다. 아이를 낳고 먹이고 기르며 존재에 민감성을 갖기 때문이다) 간신히 자리 잡은 뽀글 머리 봉구의 자아정체성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지근지근 밟아 튼튼하게 다지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엄마 역할인가?) 그리고 보통 양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복제 양 돌리를 예를 들며, 복제 인간인 봉구도 일반 사람보다 수명이 짧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로 봉구의 마음을 다시 수렁에 집어넣는다.

 
“엄마는 신도 아니면서 왜 나를 만들어서는 나에게 이런 운명을 준 걸까. 아니다. 이런 나를 만든 것도 엄마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그 운명은 누가 정한 거지?” 2권 p.47

아이들은 늘 현재를 위해 존재한다. 지금 사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악다구니를 쓰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현재만을 사는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렇지만 천하무적 무한한 삶을 즐기던 아이들에게도 천청 벽력같은 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은 좀 더 나은 삶을 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게 한다. 보통 인간보다 훨씬 빨리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봉구는 죽을 때 죽더라도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된다.
 
서준이는 치매에 걸려 몸이 아픈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아이들에게 돈을 빌린다. 봉구는 서준이와 함께 서울행을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나이 듦과 죽음을 미리 경험해보는 여행이기도 했다. 현재에 살며 꿈을 갖고 미래를 꿈꾸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는 '젊을 때'의 모습이었지 자신들도 나이 들고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진짜루'를 계승하는 것을 그만두고 ‘진짜’ 자신의 일을 찾아 서울로 간 소라의 아버지 덕분에 아이들은 간신히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온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삶의 유한성을 깨닫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유한한 삶은 평범했던 삶의 무게와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깨달음을 준다.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는 버스 안, 칠흑같이 어두운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봉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런데 사장님. 너무 답답해요. 그게 언제일지 몰라서요. 차라리 내일이다, 한 달 뒤다, 열다섯 살까지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넌 진짜 인간들보다 오래 살지는 못해, 그런데 언제인지는 몰라. 이건 너무하잖아요?"

"봉구야. 우린 다 죽어. 너뿐 아니다. 나도 죽고, 회장님도 그렇고, 소라도, 엄마도 마찬가지야. 누구도 언제가 끝인지 모른 채 살아가잖아. 나도 내일 교통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그냥 사라질 수도 있는 거다."
'진짜루'에서 춘장의 맛을 지키려 노력하는 회장님이 만들어 내는 짜장면에는 직접 만든 춘장이 들어간다. 1년산, 2년산, 3년산으로 구별된 춘장은 인간이 성숙해 가는 모습과 같다. 천재 과학자라는 화려한 간판에 가려져 있던 봉구 엄마의 지식에 대한 무한한 열망과 호기심은 봉구의 심장소리에 무너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봉구의 심장소리를 듣고 깨닫는다. 그리고 봉구를 키우는데 전념하는 평범한 엄마로 돌아간다. 봉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복제인간'이라는 특종으로 화려한 복귀를 꿈꾸었던 소라 아빠도 '진짜루'에서 회장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던 것을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던 기자 일을 하러 서울로 올라간다. 모든 인간이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한한 삶 속에서 스스로 찾아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봉구의 버킷리스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봉구는 4번을 제외한 모든 항목을 이룬다. 예상했겠지만 서준이는 봉구에게 인생의 유한함만 가르쳐주려 나타난 존재는 아니었다는 것을 살짝 보여주며 2권은 끝난다. 1권부터 등장한 소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렇다. 먼저 시작했다고 먼저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기도 하는, 모두에게 공평하지도 않고 일반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엄마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다. 3권이 나온다면 ‘복제인간 사랑 쟁탈전’이 아닐까. 인생의 단맛 쓴맛을 알게 되는 봉구의 달콤 쌉싸름한 첫사랑 이야기도 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복제 인간 윤봉구>는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아이들이 한 번쯤 고민해 봤을만한 정체성과 삶의 유한성 문제를 복제인간 봉구를 통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공통된 운명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갈지는 모두 다르다. 복제 인간이었던 봉구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듯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구와 의문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문득 아이들에게 '나는 네가 00임을 알고 있다'라는 편지를 보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호기심을 더해 주고 힘을 주며 위로해주는 역할에 엄마만 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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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실망시키기 - 터키 소녀의 진짜 진로탐험기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오즈게 사만즈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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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걱정해야 하는 청소년기는 아니지만,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더 이상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나이도 아니고, 기본적인 생계를 위해 '억지로' 직업을 가졌을 때와 다른 선택의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실망시키기>는 터키에서 나고 자란 한 소녀의 진로 탐험기를 만화로 엮은 책이다. 청소년들의 진로 선택을 위해 만들어진 책인데도 터키의 지역적 시대적 특징이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아 전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마흔이 넘은 아줌마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책 속에는 주인공 오즈게의 살아 숨 쉬는 인생의 콜라주가 가득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인생에서 겪게 되는 모든 선택의 어려움과 난관을 꾸밈없이 보여 준다. 오즈게는 언니가 다니던 학교를 동경하다 ‘분홍자’사건이 보여준 집단 체벌을 경험하였고, 그것은 인생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시작이 된다. 나라의 상황과 공무원인 부모의 상황에 따라 묘하게 달라지는 선택의 기준을 보며 처음에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내 의지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떠한 제한된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서 그 끝이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좋지 않은 결과는 외면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이 책은 그녀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찾게 된 이루고 싶었던 일부분이기도 하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가 지나면 이미 성장한 몸의 여기저기에서 고장 신호가 들려온다. 내 몸이 내는 목소리에 처음으로 귀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는데 오즈게는 좀 더 일찍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듯하다. 언니의 시행착오를 보며 성장한 둘째의 장점이기도 하다. 책의 주인공 오즈게 사만즈의 모습은 앞으로 청소년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자신의 진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 때 가장 슬픈 일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즈게 사만즈의 진로탐험기를 읽기 전에 배경이 되는 터키에 대해 알면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다. 터키는 한국전쟁에 UN 군 파병 규모 4위로 참전해 흔히 '형제의 나라'라고 불린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쳐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지정학적인 특성으로 동서양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 터키어는 한국어와 말의 어순이 같고, 터키 역사 책엔 오스만투르크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돌궐 시절 고구려의 우방국에 대한 설명이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의 정치권력은 국민당 당수 케말 파샤(Kemal Pasha)가 이끄는 민족독립운동에 귀속된다.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 케말 파샤의 다른 이름)는 터키 공화국 선포 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종래의 이슬람 전통을 탈피한 개혁을 단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지키다가 연합군에 가담하였으며, 전후에는 소련의 세력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동참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경제 분야의 정부 통제 완화, 사기업과 농업 발전 정책 등을 통해서 집권 초기에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가 심화되고, 정권의 정치적 탄압과 종교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1960년 5월 27일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민간에게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군부의 정치 개입의 전례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끔 아이의 얼굴에서 배시시 웃음이 나오는 때가 있다. 그 순간을 유심히 지켜본다. 내가 잃어버린 순간들. 난 어떤 때 가장 행복했을까. 지금은 사회 속에서 세뇌된 행복들이 많아 헷갈린다. 내가 진짜 원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일들도 많았고, 인정받기 위해 완벽하게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매달리기도 했다. 공부 잘하는 언니처럼 되고 싶었던 모습도, 둘 다 놓칠 수 없어 무리하게 애쓰는 모습도 한 번쯤 해봤던 일들이라 오즈게의 일상에 공감이 되었다. 주변의 기대에 가려진 나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가정이나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미래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청소년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 선택에 책임질 용기만 있다면 누구의 기대에 휘둘리며 살지 않아도 된다. 겹겹이 붙여진 욕망 뒤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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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강민호 지음 / 턴어라운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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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모두 특별하다는 말은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특별함'이란 더 이상 특별함이 될 수 없는,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모두를 위한 선택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의 순간에 더 많은 사람에게 선택받기 위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 책의 첫 번째 깨달음은 자신만의 특별함이 무엇인지 되돌이켜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특별함 외에 지속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두 번째 깨달음은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기계로 측정할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의 정보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마지노선은 '인간성'이었다.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나 목소리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은 내게 득이 될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지식이 아닌 인간성에 기대어 결정한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철학은 거시적으로는 한 나라의 이념과 정책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미시적으로는 기업의 주력 상품의 결정, 더 세분화하면 가정 경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가치와 철학은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제외하고 포기할 것인지 결정하면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래보다 관계, 유행보다 기본, 현상보다 본질이라는 기본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마지막 깨달음은 책 속 한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써 본다. "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하는 대상의 단점이 비교적 적다는 이유로 사랑해보신 적이 있나요? 단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덜 나쁜 상품으로 서비스로 고객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 가지고 있는 강점과 기회에 집중하세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문제가 아니라 기회, 단점이 아니라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던 문장이었다. 잠시 남편과 결혼에 이르게 했던 순간을 기억해 보았다. 수많은 단점 중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던 강점 때문에 그를 선택했었다. 그의 강점은 수많은 단점들보다 단연 돋보였다. 강점은 선택을 쉽게 한다.그리고  놀랍게도 인생의 큰 결정은 늘 강점에 집중하며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세계는 지금도 쉬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 앞에 자신이 다른 것을 포기하면서 지켜야 할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이 책이 남겨준 숙제다. 수요가 공급에 미치지 못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할 때 우리는 내 안에 없는 무엇인가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욕망하는가. 그 질문의 답이 숙제를 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지키고 싶은 (  )을 위해 결정하고 선택한다.  마케팅 책이라기 보다 인문학 책에 가깝다는 평가는 과언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빈칸을 꼭 채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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