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실망시키기 - 터키 소녀의 진짜 진로탐험기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오즈게 사만즈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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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걱정해야 하는 청소년기는 아니지만,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더 이상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나이도 아니고, 기본적인 생계를 위해 '억지로' 직업을 가졌을 때와 다른 선택의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실망시키기>는 터키에서 나고 자란 한 소녀의 진로 탐험기를 만화로 엮은 책이다. 청소년들의 진로 선택을 위해 만들어진 책인데도 터키의 지역적 시대적 특징이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아 전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마흔이 넘은 아줌마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책 속에는 주인공 오즈게의 살아 숨 쉬는 인생의 콜라주가 가득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인생에서 겪게 되는 모든 선택의 어려움과 난관을 꾸밈없이 보여 준다. 오즈게는 언니가 다니던 학교를 동경하다 ‘분홍자’사건이 보여준 집단 체벌을 경험하였고, 그것은 인생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시작이 된다. 나라의 상황과 공무원인 부모의 상황에 따라 묘하게 달라지는 선택의 기준을 보며 처음에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내 의지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떠한 제한된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서 그 끝이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좋지 않은 결과는 외면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이 책은 그녀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찾게 된 이루고 싶었던 일부분이기도 하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가 지나면 이미 성장한 몸의 여기저기에서 고장 신호가 들려온다. 내 몸이 내는 목소리에 처음으로 귀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는데 오즈게는 좀 더 일찍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듯하다. 언니의 시행착오를 보며 성장한 둘째의 장점이기도 하다. 책의 주인공 오즈게 사만즈의 모습은 앞으로 청소년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자신의 진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 때 가장 슬픈 일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즈게 사만즈의 진로탐험기를 읽기 전에 배경이 되는 터키에 대해 알면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다. 터키는 한국전쟁에 UN 군 파병 규모 4위로 참전해 흔히 '형제의 나라'라고 불린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쳐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지정학적인 특성으로 동서양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 터키어는 한국어와 말의 어순이 같고, 터키 역사 책엔 오스만투르크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돌궐 시절 고구려의 우방국에 대한 설명이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의 정치권력은 국민당 당수 케말 파샤(Kemal Pasha)가 이끄는 민족독립운동에 귀속된다.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 케말 파샤의 다른 이름)는 터키 공화국 선포 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종래의 이슬람 전통을 탈피한 개혁을 단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지키다가 연합군에 가담하였으며, 전후에는 소련의 세력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동참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경제 분야의 정부 통제 완화, 사기업과 농업 발전 정책 등을 통해서 집권 초기에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가 심화되고, 정권의 정치적 탄압과 종교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1960년 5월 27일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민간에게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군부의 정치 개입의 전례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끔 아이의 얼굴에서 배시시 웃음이 나오는 때가 있다. 그 순간을 유심히 지켜본다. 내가 잃어버린 순간들. 난 어떤 때 가장 행복했을까. 지금은 사회 속에서 세뇌된 행복들이 많아 헷갈린다. 내가 진짜 원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일들도 많았고, 인정받기 위해 완벽하게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매달리기도 했다. 공부 잘하는 언니처럼 되고 싶었던 모습도, 둘 다 놓칠 수 없어 무리하게 애쓰는 모습도 한 번쯤 해봤던 일들이라 오즈게의 일상에 공감이 되었다. 주변의 기대에 가려진 나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가정이나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미래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청소년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 선택에 책임질 용기만 있다면 누구의 기대에 휘둘리며 살지 않아도 된다. 겹겹이 붙여진 욕망 뒤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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