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 윤봉구 2 : 버킷리스트 복제인간 윤봉구 2
임은하 지음, 정용환 그림 / 비룡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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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내가 어릴 때 개미를 가지고 많이 하던 장난이 개미 더듬이를 자르는 일이었다. 집을 향해 열심히 기어가던 개미는 더듬이를 잘리면 갑자기 갈 곳을 잃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걸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 개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갈 곳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집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인 줄 알았다면 나는 그런 장난을 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개미들에게 미안했다. 나는 지금 더듬이 잘린 개미가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개미 말이다. 1권 125

어린이 심사위원 100명이 선택한 제5회 스토리킹 수상작 <복제 인간 윤봉구>다.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일까. 형과 똑같이 생긴 봉구처럼 누군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내 존재는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복제 인간'이라는 참신한 소재도 좋았지만, 읽는 내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는 책이었다. 인간은 어떤 이유를 갖고 태어났든 표면적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결실로 '자연스럽게' 잉태된 것처럼 보인다. 복제 인간 봉구는 뛰어난 과학자였던 어머니의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이라는 '목적으로' 태어난 아이다. 1권에서 봉구는 스스로 삶에 어떤 목적성을 부여하도 전에 타인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방황한다.

개인의 자아 정체감은 행동이나 사고, 느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인가를 일관되게 인식하는 것이다. 봉구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열심히 만드는 것은 그저 형의 유전자가 복사된 '피조물'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일반 청소년들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정체감을 쌓아가던 봉구에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방해꾼은 “나는 네가 복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다름을 인정받기도 전에 정체감이 거세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은 고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봉구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형에게서 도망친다. 사랑하는 형이라도 자신의 심장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봉구는 자신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수련을 하던 식당 '진짜루'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비로소 재채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리게 된다.

1권이 인간의 목적성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2권은 삶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아 정체감이 어느 정도 수립되었으니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촉발시키는 존재는 1권 마지막에서 봉구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편지를 보낸 새로운 인물, 양서준이었다. 그녀는(그렇다. 여성이다. 여성은 늘 생명의 유한성을 남성보다 일찍 깨닫는다. 아이를 낳고 먹이고 기르며 존재에 민감성을 갖기 때문이다) 간신히 자리 잡은 뽀글 머리 봉구의 자아정체성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지근지근 밟아 튼튼하게 다지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엄마 역할인가?) 그리고 보통 양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복제 양 돌리를 예를 들며, 복제 인간인 봉구도 일반 사람보다 수명이 짧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로 봉구의 마음을 다시 수렁에 집어넣는다.

 
“엄마는 신도 아니면서 왜 나를 만들어서는 나에게 이런 운명을 준 걸까. 아니다. 이런 나를 만든 것도 엄마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그 운명은 누가 정한 거지?” 2권 p.47

아이들은 늘 현재를 위해 존재한다. 지금 사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악다구니를 쓰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현재만을 사는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렇지만 천하무적 무한한 삶을 즐기던 아이들에게도 천청 벽력같은 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은 좀 더 나은 삶을 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게 한다. 보통 인간보다 훨씬 빨리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봉구는 죽을 때 죽더라도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된다.
 
서준이는 치매에 걸려 몸이 아픈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아이들에게 돈을 빌린다. 봉구는 서준이와 함께 서울행을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나이 듦과 죽음을 미리 경험해보는 여행이기도 했다. 현재에 살며 꿈을 갖고 미래를 꿈꾸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는 '젊을 때'의 모습이었지 자신들도 나이 들고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진짜루'를 계승하는 것을 그만두고 ‘진짜’ 자신의 일을 찾아 서울로 간 소라의 아버지 덕분에 아이들은 간신히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온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삶의 유한성을 깨닫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유한한 삶은 평범했던 삶의 무게와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깨달음을 준다.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는 버스 안, 칠흑같이 어두운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봉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런데 사장님. 너무 답답해요. 그게 언제일지 몰라서요. 차라리 내일이다, 한 달 뒤다, 열다섯 살까지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넌 진짜 인간들보다 오래 살지는 못해, 그런데 언제인지는 몰라. 이건 너무하잖아요?"

"봉구야. 우린 다 죽어. 너뿐 아니다. 나도 죽고, 회장님도 그렇고, 소라도, 엄마도 마찬가지야. 누구도 언제가 끝인지 모른 채 살아가잖아. 나도 내일 교통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그냥 사라질 수도 있는 거다."
'진짜루'에서 춘장의 맛을 지키려 노력하는 회장님이 만들어 내는 짜장면에는 직접 만든 춘장이 들어간다. 1년산, 2년산, 3년산으로 구별된 춘장은 인간이 성숙해 가는 모습과 같다. 천재 과학자라는 화려한 간판에 가려져 있던 봉구 엄마의 지식에 대한 무한한 열망과 호기심은 봉구의 심장소리에 무너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봉구의 심장소리를 듣고 깨닫는다. 그리고 봉구를 키우는데 전념하는 평범한 엄마로 돌아간다. 봉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복제인간'이라는 특종으로 화려한 복귀를 꿈꾸었던 소라 아빠도 '진짜루'에서 회장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던 것을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던 기자 일을 하러 서울로 올라간다. 모든 인간이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한한 삶 속에서 스스로 찾아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봉구의 버킷리스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봉구는 4번을 제외한 모든 항목을 이룬다. 예상했겠지만 서준이는 봉구에게 인생의 유한함만 가르쳐주려 나타난 존재는 아니었다는 것을 살짝 보여주며 2권은 끝난다. 1권부터 등장한 소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렇다. 먼저 시작했다고 먼저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기도 하는, 모두에게 공평하지도 않고 일반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엄마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다. 3권이 나온다면 ‘복제인간 사랑 쟁탈전’이 아닐까. 인생의 단맛 쓴맛을 알게 되는 봉구의 달콤 쌉싸름한 첫사랑 이야기도 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복제 인간 윤봉구>는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아이들이 한 번쯤 고민해 봤을만한 정체성과 삶의 유한성 문제를 복제인간 봉구를 통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공통된 운명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갈지는 모두 다르다. 복제 인간이었던 봉구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듯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구와 의문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문득 아이들에게 '나는 네가 00임을 알고 있다'라는 편지를 보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호기심을 더해 주고 힘을 주며 위로해주는 역할에 엄마만 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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