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 - 하워드 슐츠가 감탄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1조 매출의 비밀
주홍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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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스타벅스가 생겼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서 얼마 가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어? 큰 길가에도 스타벅스가 있는데 또 생겼네?" 나는 의아했다. 스타벅스가 그렇게 장사가 잘되나 ?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스타벅스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다. 커피 왕국이라 불릴 만큼 커피 전문점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승패가 갈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어떻게 스타벅스는 그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압도적인 선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도서관에서 스타벅스의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스타벅스 코리아 인사팀장을 지낸 지은이, 주홍식이 펴낸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가 눈에 들어왔다. 

 지은이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성공 비결을 아홉가지로 규정했다. 
1. 스타벅스 코리아는 기업의 가치, 즉 스타벅스 사명에 충실했다. - 고객에게 스타벅스 매장을 제3의 공간으로 제공하고, 가장 자유롭고 편안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라. 
2. 고객을 우리의 이웃,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하고 소통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 진동벨 대신 고객의 닉네임을 부르는 '콜 마이 네임' 제도 도입, '스타벅스 리워드'라는 멤버십 도입
3. IT혁신 - O2O서비스인 사이렌 오더 도입, 파트너들을 위한 업무용 앱 개발, 도입 
4.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 적극 구사 - 한국 문화와 사회 환경에 맞게 한국의 옷을 입힌 매장과 상품 개발 (e.g 문경 오피자 피지오, 청양 머그 시리즈)
5. PR 전략 - 우리의 이웃과 함께 한다는 사명을 실천하며 홍보 (e.g 커피 찌꺼기를 전 매장에서 수거해 퇴비로 재생산하는 시스템 도입, 우유 파동 시 우유사랑라테 출시)
6. 정부정책에 적극 동참 -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ASM-T(대졸공채) 도입, 중증 장애인 채용,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리턴맘 제도 
7. 고객 존중 프로그램 시행 - 고객의 요구에 기계적으로 Yes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Just say yes' 시행
8. 인사시스템 혁신 - 매장 인력 표준 모델 구축, 인사관리 업무 시스템화
9. 파트너 - 만 명이 넘는 스타벅스 코리아 파트너의 헌신

 지은이는 아홉가지로 스타벅스 코리아의 성공요인을 꼽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끊임없는 개선 노력과 실행력"이라고 단순화할 수 있겠다. 책에 기록된 모든 활동은 결국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스타벅스를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도출된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과정이었다. 어떤 기업이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성공하지는 않는다. 스타벅스 코리아에는 의견을 쉽게 말할 수 있는 수평적인 문화가 있었고, 모아진 의견을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 이러한 문화와 실행력의 배경에는 물론 다른 식음료 브랜드와는 다른 100% 직영점 체계가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주)이마트와 미국 Starbucks Coffee International 이 각각 5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결국 글로벌 기업과 국내 재벌이 소유한 기업이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내 진출 초기부터 탄탄한 사업기반을 다져왔다. 이러한 자본력과 글로벌 스타벅스의 노하우 위에 유연한 문화가 더해져 오늘의 스타벅스 코리아가 탄생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밝음과 어둠은 공존하게 되는 것으로 스타벅스 코리아의 눈부신 성장 뒤에 가려진 영세 자영업자의 피해와 그로인한 다양성 훼손은 장기간에 걸쳐 어떤 형태로든 소비자 피해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스타벅스가 단순한 업계 1위를 넘어 존경 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될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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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변화되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지하철이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에 지하철은 공동의 공간이었다. 단순한 물리적 공유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많은 것을 공유했다. 가끔 앞자리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흘깃 쳐다보았다. 선반 위에 놓인 오늘 자 신문을 보다가 다음 사람을 위해 그대로 놓고 가기도 했다. 꾸벅 꾸벅 조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지면 강제로 어깨를 빌려줘야 했다. 

 요즘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잠들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하고 있다. 지하철 선반 위에 가득했던 광고도 보이지 않는다. 무가지 신문도 모두 사라졌다. 물리적 공간을 공유할 뿐 잠시 동안의 정서적 공감은 허용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의사소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메신저로 언제든지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 속의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눈 앞에 실존하는 사람과의 공감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 변화가 바람직한가, 우리가 원한 것인가는 고려되지 않는다.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 갈 뿐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위험하지 않은가?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보급되면 또 지하철 안은 어떤 풍경으로 바뀔까? 우리들은 또 어디로 떠 내려갈까? 우리 삶의 주도권을 마냥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많이 얘기하고, 서로 공감하고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논의해야 한다. 자본을 등에 업은 기술이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둘러싸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인간은 기술 종속, 기술 중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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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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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을 읽고나니 내가 얼마나 서울을 모르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참 오래 살았다고, 그래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서울편 1)의 서문이 던지는 물음이었다. "궁궐의 도시". 나는 서울을 궁궐의 도시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학생 시절 사생대회, 백일장 등의 이유로 덕수궁, 경복궁을 적잖이 가봤지만 덕수궁의 석조전과 경복궁의 근정전, 경회루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더욱이 서울에 5대 궁궐(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복궁, 경희궁)이 있다는 사실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하얀 눈으로 덮인 종묘 정전의 모습이 담긴 표지 사진을 보면서 이미 나는 서울 궁궐의 아름다움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 (서울편1)은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다루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대표 궁궐은 아마도 경복궁이나 덕수궁일 것이다. 왜 일반인들과 친숙하지 않은 종묘, 창덕궁, 창경궁일까 ? 책을 읽어나가며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종묘가 서울편의 첫 장을 장식한다. 건축미나 역사적 의미로 볼 때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유적이기 때문이리라. 몇 년 전 가을, 종묘를 처음으로 방문했던 날이 기억난다. 정전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충격과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위엄이었다. 아련했던 그날의 기억이 책을 읽으며 살아났다. 구체화 되고, 단단해 졌다. 파격을 추구하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종묘 감상을 읽으며 종묘를 너무 늦게 깨달은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자기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정전은 가슴 높이의 월대 위에 세워져 있다. 월대는 정전을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구분지어 놓았다. 
종묘에서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종묘제례를 열고 있다. 종묘의 건축미와 어우러지는 엄숙한 의식, 그리고 제례악을 꼭 한번 느껴보고 싶다. 

 종묘에 이어 작가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 (서울편 1)의 대부분을 할애하여 소개하는 궁궐은 바로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낯설다. 덕수궁이나 경복궁은 많이 가보았지만 창덕궁은 가보지 못했다. 경복궁이 조선시대 첫번째 법궁으로 지어졌으나, 태종부터 대부분의 왕들은 창덕궁에서 지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왜 그런 창덕궁을 이제껏 알지 못했을까? 왜 아무도 창덕궁이 조선 궁궐의 심장임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어렸을 때 창덕궁은 이름이 없었다. 일제시대 조선 왕조의 색체를 지우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창경궁과 분리된 창덕궁은 우리에게 "비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창덕궁 후원만을 강조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나마 비원은 정해진 시간에만 관람할 수 있는 제한구역이었다. 저자는 그런 창덕궁의 참모습을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유명 작가나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 그 감흥이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창덕궁의 규모에 놀라게 되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1830년 무렵에 그린 동궐도(국보 제249호)에 나타난 창덕궁의 많은 전각들은 자연과 어우러져 질서 정연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 나라의 대표 궁궐 다웠다. 창덕궁의 진수는 각 전각들과 자연이 어우려져 뿜어내는 분위기에 있음을 깨달았다. 경복궁을 돌아보며 느꼈던 황량함이 창덕궁에는 없을 것 같다. 창덕궁의 전각들은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고, 나무와 어우려져 있으면서 자유롭다. 창덕궁 소개의 끝을 지나며 마치 친절하고 박식한 안내자를 따라 창덕궁을 하루 종일 구경하고 나온 느낌에 마음이 벅찼다. 

 창경원 답사기를 읽으면서 처연한 마음이 앞섰다. 어린시절 어머니와 갔던 창경원이 머리속에 어렴풋이 그려졌다. 창경원에는 동물이 있었고, 놀이 기구가 있었다. 동물원으로 기억되어진 그곳은 조선 왕조의 궁궐이었다. 일제에 의해 동물원으로 변해 버린 창경궁은 1983년 다시 본래의 이름과 모습을 되찾았다. 창경궁은 왕비와 왕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세종 때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을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지은 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시대 사건들의 무대가 바로 창경궁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이 휘령전이며 장희빈이 사사 된 곳도 창경궁 내에 있는 통명전이다. 이렇게 사연많은 궁궐이라니. 넓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창경궁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서울편 1)을 읽는 내내 먹먹함과 놀라움이 교차되었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 삼아 고종을 덕수궁으로 쫓아냈다. 그 아들 순조는 창덕궁에서 생활한 마지막 왕이 되었다. 고종의 딸, 덕혜옹주와 영친왕의 아내 이방자 여사는 창덕궁 내 낙선재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아름다운 궁궐의 전각들이 소개될 때마다 그 시절 임금와 신하들이 한가롭게 거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곧 조선왕조의 슬픈 결말이 떠올랐다. 창덕궁에 지금도 왕이 살았다면, 그랬다면 창덕궁은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 책장을 덮으며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가 몇 일 동안 살다 온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조선 궁궐 답사기는 생생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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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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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 위한 단체 '반올림'의 농성 현장을 자주 지나쳤었다. 그들의 외침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는 못했지만 꽃다운 나이에 무서운 병에 걸려 고통 받아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언론에서는 백혈병의 발병 원인 규명이 매우 어려워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를 쏟아 내었다.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개인의 건강에 관한 문제가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설명한다.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을 전공했다. 매우 낯선 학문이다. 심각한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역학조사를 실시한다. 그 병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후사정을 밝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회역학'은 무엇인가?


"사회역학은 그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입니다."


질병의 발생 원인을 사회적 관계에서 찾는 학문이다. 사회역학에 대한 정의에서 그 학문의 길고 고됨이 느껴졌다.  

 우리는 개인의 문제를 전적으로 그 개인에게 돌리는데 익숙하다. 누군가 사고를 당하면 사고를 당한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먼저 캐묻는다. 그리고 개인의 잘못이 드러나면 모든 책임이 그에게 지워진다. 공장에서 작업 중에 다쳐도 위험한 작업 환경보다는 개인의 부주의를 탓한다. 우리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저자 김승섭 교수는 개인의 건강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규명하고자 노력한다. 오랜 시간에 걸친 자료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책에서 소개되는 연구 사례 중에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건강연구였다.  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노동자 2,646명을 정리해고 했다. 2009년 4월 정리해고 현재까지 14명의 해고자와 가족이 자살하였다. 2009년 공장 점거 파업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은 걸프전에 참가한 군인보다도 높은 비율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과 같이 사회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 실업이란 하루 아침에 삶의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고통을 동시에 겪으며 쇠약해 갔던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의 삶은 개인의 건강한 삶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 외에도 소방공무원, 전공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그리고 세월호 사건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다양한 연구 과제를 통해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연관성을 밝히고 있다. 책에 제시된 연구 과제와 데이터를 보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개인의 질병은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명확하게 그가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관점의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고민이지요."


저자는 1960년대 미국 로세토 마을의 예를 들어 사회적 연대가 건강한 삶의 필수 요건임을 이야기 한다. 로제토 마을은 이탈리아 이민자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로세토 마을에서는 주변 마을들과 달리 유난히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찾던 연구자들은 보고서에서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밝히면서도, 로세토 마을 사람들은 삶을 즐기고, 활기가 넘친다고 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없었다. 이웃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에서 이주해 오는 소수 이민자들에게 그러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이 있으면 서로 도왔고, 부모의 사망으로 남겨진 아이들을 함께 돌봤다. 로제토 마을 사람들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로세토 마을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월이 흘러 로세토 마을의 공동체 의식도 사라졌고, 유난히 낮았던 심장병 사망자의 숫자도 여느 마을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저자는 로세토 마을의 예를 들어 사회적 연대가, 건강한 공동체가 건강한 삶의 요체임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덮기 전에 지은이 김승섭 교수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넉넉치 않은 집에서 자랐다고 밝히고 있는 저자는 경제적 여유가 보장된 의사의 삶을 버리고 사회역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소송, 삼성 반도체 피해자 소송 지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요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다리'라는 모임의 후배들에게 남긴 글을 통해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노라 다짐한다. 
 
 책을 덮으며, 개인의 삶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의 가난, 개인의 질병...그동안 우리가 "너는 왜 더 노력하지 않았니?"라는 말로 잊고 지냈던 사회적 책임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고통 받아 왔음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아픔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 만으로 이 책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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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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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가 죽었다는 편지가 배달되었다. 마음이 울컥했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조르바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이들까지 모두 잠든 깊은 밤, 정신을 반짝이게 하는 책은 많지 않다. 니코스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책을 읽는 순간 나를 깨어있게 했다. 몸으로 현실과 부딪히며 살아온 조르바를 동경하는 화자(니코스카잔차키스)를 보며 나도 같은 마음이 되어 갔다. 

 항구의 어느 카페에서 화자는 조르바를 만난다. 그리고 한 눈에 조르바에게 호감을 갖게된다. 크레타 섬으로 함께 가자는 화자의 제안을 조르바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어떻게 둘은 그렇게 한 순간에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크레타 섬으로 갈 수 있었는지.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쯤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화자는 끊임없이 삶의 해답을 찾고 있었고, 조르바는 살아 움직이는 답안지와 같았다. 둘은 처음 만난 그 날, 서로 꼭 들어맞는 한쌍임을 알았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냉소적이면서도 불길같이 섬뜩한 

그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



크레타 섬으로 간 화자와 조르바는 광산개발 사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둘 다 돈 버는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크레타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연을 만끽하는 하루 하루의 삶이 바로 이들이 크레타 섬에 온 이유 같았다. 화자는 기쁨을, 때론 슬픔까지도 춤으로 표현하는 조르바를 보며, 자신이 그동안 끊임없이 찾아온 진리, 삶의 해답을 찾아 나간다. 그리고 매일 밤 조르바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두 가지 죽음이 등장한다. 조르바로 인해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금 삶의 기쁨을 되찾아가 던 모텔 주인 부블리나. 그리고 한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지탄받는 매혹적인 과부. 부블리나는 조르바의 결혼 약속에 한껏 부플어 있었다. 조르바가 부활절 아침 준비한 절정의 환희를 맛보지 못한 채, 앓아 눕게 되고 얼마 후 죽음을 맞이한다. 부블리나의 죽음은 현실의 비루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죽음을 슬퍼하는 형식적인 울음을 위해 자리한 여인들은 부블리나가 죽으면 어떤 물건을 차지할 지 논쟁을 벌이고, 마당에는 이미 마을 청년들이 부불리나의 가축을 잡아 먹기 위한 물이 끓고 있었다. 조르바가 함께 하긴 했지만, 부블리나가 남긴 물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숨을 거둔다. 화자와 마음을 나누게 된 매력적인 과부는 교회에 가던 중 마을 사람들에 둘러싸인다. 조르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부는 마을 사람의 칼에 죽음을 맞는다. 화자와 조르바는 그렇게 자신들의 여인을 보내고 만다. 
 조르바와 글쓴이, 화자는 슬퍼하지만 슬퍼하지 않는다. 울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통나무 운반용 도르레가 모두 무너져 버렸을 때도 그랬다. 그렇게 크레타 섬에서의 일들이 일그러져 버렸을 때도 조르바는 춤을 추었다. 
 글쓴이는 조르바를 통해 새롭게 세상을 바라본다. 관념 속에 갇혀 있던 세상이 조르바를 통해 현실이 되고 만져지게 되었다. 그래서 조르바는 그 어떤 스승보다 위대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며 어느새 나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단순함, 유쾌함, 치열함은 모두 내가 늘 동경해 왔지만 하루도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이상향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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