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 - 마음의 평정에 이르는 10가지 길
빌헬름 슈미트 지음, 장영태 옮김 / 책세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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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이면 설레고 흥분되던 시절이 있었다. 눈오는 날이면 어디든 가서 누구든 만나야 할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12월31일이 차분해 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때였다. 누구라도 나이를 묻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그 때 즈음이였다.

나이가 들어감을 자각하기 시작하면, 남은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음을 알게 되면 삶의 유한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독일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현재의 삶을 더 수월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정신의 원천을 찾는 과정으로 나이듦을, 늙어감을 이해했다.

나이듦에 부여될 수 있는 문화적 의미는 지금의 삶을 좀 더 수월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정신적 원천을 발견하는 데 있다.
마음의 평정이 그러한 원천 중 하나이다.

빌헬름 슈미트는 나이가 들어감에 때라 마음의 평정에 이르는 10단계를 풀어냈다.

"1. 시기 - 인생의 단계 이해하기
2. 특성 - 삶의 국면이 가지는 특성들에 대한 지식 습득하기
3. 습관 - 삶을 수월하게 살아가게 해주는 것
4. 행복 - 즐거움 누리기
5. 고통 - 불행과 사귀기
6. 접촉 - 친밀함을 느끼개 해주는 것
7. 사랑 - 관계를 맺거나 지속하게 해주는 것
8. 사색 - 마음을 즐겁고 차분하게 해주는 것
9. 준비 - 죽음과 함께 사는 마음
10. 그 후 - 죽음 후에 가능한 삶에 대하여"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끊임없는 자극 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삶을 지배한다면 나이듦은, 늙어감은 고통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삶이 나이듬에 따라 점차 "회고적"으로 변한다고 했다. 미래의 희망과 계획을 말하기 보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10단계 중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접촉과 사색이었다. 우리 삶속에서 일어나는 '접촉'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만원 지하철 속의 접촉부터 사랑하는 사람과의 접촉까지...

"접촉은 일종의 관심이다. 이것이 없다면 인간은 영적으로, 끝내는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고 시들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나이드신 어머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생각했다. 병석에 오래 계셨던 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지 못한 것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생을 재촉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했다.

저자는 '사색'을 통해 지나온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삶 전체를 심사숙고하게 된다.

"그 무엇을 후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금 기억을 떠올려 연관시키고, 무엇이 의미를 제공하는지 발견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기억을 '연관'시킨다는 표현이 내 마음 깊숙히 들어왔다. 파편화되어있는 기억을 서로 연관시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내는 일은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아귀가 맞는 조각이 나타나는 테트리스 게임과 같이 젊은 날에는 삶의 한 조각으로 의미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그런 연유로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해되지 않고, 부정적으로, 또는 너무 성급하게 낙관적으로 오해될 수 있다. 나이듦은 비어있던 조각들을 찾아서 어쩌면 신이 내게 계획했던 일이 오래 전 내 삶에 어떤 모양으로 일어났는지 알게 해준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죽음 이후를 이야기 한다. 나의 생명이 죽음으로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또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죽음도 평안 속에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나의 죽음을 또 다른 생명으로 연결시키는 일 그것이 삶의 마지막 숙제가 될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남긴 무엇을 통해서 또 하나의 생명이 의미를 찾게 되는 일, 그 생각만으로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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