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딸아이가 독감에 걸렸다.
평소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튼튼한 녀석인데 어딘가에서 옮은 모양이다.
밥한끼 거르는 법이 없었는데 목이 아프다며 저녁을 마다했다.
아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햐얀 쌀밥으로 죽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쌀죽이었다. 보통 죽이라고해도 각종 채소와 양념이 들어가서 강한 맛을 갖기 마련이다.
아내가 마련한 쌀죽은 말 그대로 하앴다.
나는 저녁을 먹은 뒤라 배가 불렀지만 그 햐얀 모습에 끌렸다.
한 숟갈 입에 넣었다. 깜짝 놀랐다. 아주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고소함과 단맛이었다.
쌀죽 그 자체로 너무나도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하얀 쌀죽에 간장을 조금 넣어 갈색이 퍼지는
모습이 미안할 정도로 쌀죽 그 자체의 맛이 좋았다.
어느새 아내가 준 쌀죽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더해서 밥맛 그 자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구나."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단촐하고 순수한 것들을 '부족함'으로 오해했다.
더하고, 섞고, 꾸며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가득 채워짐으로 인해 세상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고유한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책도, 영화도, 음악도 내가 대하고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어느새 복잡함과 화려함과 꾸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수함을 말하기에 내가 너무 나이들었다고 누군가 말하겠지만 이제부터는
소박하고 단촐하고 순수하다는 말을 내 삶에서 더 많이 떠올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