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출퇴근 길에 자주 마주치는 두 사람이 요즘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신도림역과 강남역, 서울에서
가장 번잡한 그곳에 나의 마음과 시선을 잡아 끄는 두 분이 계시다. 신도림역 횡단보도 앞에서 엎드려
구걸을 하시는 분과 강남역 분당선 연결 통로 계단에 늘 앉아서 껌을 파시는 할머니. 신도림역의 그분은
몸이 불편하신 분이다. 무릎아래 다리가 없는 분이다. 검정 고무로 하체를 감싸고 추운 길가를 온 몸으로
밀고 다니시는 그런 분이다. 날씨가 좋았던 여름, 가을에는 그분이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잔뜩 몸을 움추릴만큼 추위가 찾아온 12월이 되어서야 나는 그분을 보았다. 그분을 마주칠 때 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다. 차가운 길 바닥에 온 몸을 붙이고 계신 그분은 얼마나 추울까? 지갑에서 얼마라도 꺼내어 드리고 싶은데....그런데 그분의 돈 통에 돈을 넣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길을 건넌다. 무심하게도.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망설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건너 버린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였을까?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고 다가가서 그분께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번번히 그냥 지나친다.
강남역 할머니는 나이가 꽤 많으시다. 언듯보아도 여든을 넘기신 것 같다. 계단에 앉아, 껌 두개는 손에 들고
나머지는 바닥에 늘어 놓고 졸고 계신다. 오늘은 얼마나 오래 앉아계셨을까?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며 그냥 지나치는 날들 동안 나는 생각했다. 나는 뭐가 신경쓰이는 거지? 그냥 할머니께 다가가서 껌을 사드리자! 그렇게 결심하고 얼마전부터 할머니의 껌을 자주 산다. 껌값을 알 수 없지만 충분히 드린다. 할머니가 껌을 한통 더 주시려고 하면, "괜찮아요 할머니" 하고 말씀드린다. 늘 고맙다고 하시는 할머니.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름진 얼굴이신데, 오늘은 따뜻한 방에서 쉬고 계실런지.
신도림역 그분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보기로 결심한다. 미리 마음도 돈통에 넣어드릴 돈도 준비해야겠다. 이렇게 마음먹고 출근하는 길에 나는 내 머리속에 선명하게 기억될 장면을 보았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로 향하는 길에 그분은 여느때처럼 엎드려 계셨다. 그런데 그분 앞에는 껍질이 벗겨진 귤 두개가 있었고, 그분은 인삼음료로 보이는 것을 빨대로 드시고 계셨다. 그리고 그분 앞에 있던 또 다른 한 사람은 그 분이 잘 드시는지 보고는 멈췄던 차에 올라타고 떠났다. 이건 무슨 장면일까
잠시 생각했다. 구걸을 위해 그분을 신도림역까지 모시고 오는 사람인가? 음식을 놓고 가던 그 사람의 차 뒷유리에는 "아이가 타고 있어요." 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아마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신도림역 횡단보도에 엎드려 구걸을 하는 그분을 보아왔나보다. 그리고 오늘 그분께 음식을 드리리로 결심했을 것이다. 출근 길에 차를 세우고 그분이 드시기 좋게 음식을 놓아 드리고 가는 그 사람의 뒷 모습을 보며 내 소심함을 탓했다. 거창하게 누군가를 돕는 것 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생각을 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 용기가 내게는 필요했다. 강남역 할머니께 처음 껌을 살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번 두번 껌을 사면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앞으로 누군가를 돕는 일이, 비록 그것이 군중 속에서 내가 튀어보이는 일이 될지라도 "용감하게" 행동하는 내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내일은 올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데, 모든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따뜻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