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삶을 향하여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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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라고는 학교에서 배웠던 서정주, 조지훈, 이상 등 밖에는 모르던 오래 전 고 김현을 통해 알게된 이름 ‘정 현 종!’

 

처음으로 그의 시선집 ≪이슬≫(문지스펙트럼)을 읽고 시인의 시어들과 같이 내 몸 또한 전율과 떨림이 느껴지던 그 때가 기억난다. 그 이후 그의 <고통의 축제>, <나는 별 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그리고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까지 한 권 한권 그의 시집들을 사고 읽으며 정말 진짜 시인은 다르구나, 우리도 느끼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는 감수성이 정말 남다르구나 하고 느꼈더랬다.

 

이 책 <두터운 삶을 향하여>는 한겨레에 관련 기사가 난 날 아침에 곧바로 신간 시집과 함께 신청하여 읽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부터 읽은게 아니라 여기저기 관심 있는 부분부터 맛나게 야금야금 읽었는데, 읽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 중 “두터운 삶을 향하여”와 도정일에 관한 글인 “이 사람을 보라”는 이 책의 핵심을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정신과 삶을 두텁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신화나 신화의 ‘문명화된’ 변종인 문학 그리고 다른 예술들에서 확인하는 능력인 상상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41~42쪽)

 

“그리고 잘 듣는다는 것은 영혼의 깊이와 넓이를 기약하는 대단히 중요한 능력이며 따라서 삶과 세계를 두텁게 하는 능력이다.”(45쪽)

 

흥미롭고 읽는 맛이 쏠쏠한 글이 제법 많다.

그 중 압권은 “애틋한 마음”(63쪽)과 “그 시절의 삽화”(80쪽)이다. 특히 “그 시절의 삽화”는 김지하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전하며 1970년대 한국의 억압된 풍경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그 외에 함석헌에 관한 글인 “하늘 땅의 바른 숨”(217쪽), 파블로 네루다에 관한 “자연·신명·에로스"(229쪽), 김현에 관한 “좀더 높은 수준의 절박”(245쪽), 김지하에 관한 “전사, 영매, 광대”(253쪽) 등이 읽을 만하다.

 

옥의 티 몇가지!

몇몇 오타가 눈에 띄는데 문지답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25쪽의 시구 마지막의 “참을 청하였으니......”는 “잠을 청하였으니....”의 오기

31쪽의 하단의 괄호안의 한자 “吳當安之”는 “吾當安之”의 오기

103쪽 중간 부분의 1910년은 2010년의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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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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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단순한 전쟁기록이 아닌, 나라를 담당하고 있는 임금이나 정치인, 군인,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여러 가지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임금은 어떠한 통찰력과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정치인은 국민은 위해 어떠한 자세로 위기에 임해야 하는가, 고위 장성들은 나라의 방위를 위해 어떠한 계책과 대비를 하여야 하는가 또는 독자적으로 조국을 지켜낼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등등.......

 

 

굉장히 좋은 번역이고 곳곳에 정성과 땀이 배어있는 책이라는 느낌이다.

 

오래전 다른 번역본으로 읽을 때에도 깊은 인상이 남은 책인데 이번에 서해문집 판 김흥식 번역으로 다시 읽는 동안에도 같은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감동과 탄식과 분노가 일렁이는 감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책 행간 곳곳에서 저자의 탄식과 절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최상부를 점하고 있는 위정자들이나 지방 일선에서 백성들을 다스리던 목민관이나 모두들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가치한 인물들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육지의 장수들 또한 어느 누구 하나 전쟁의 전체 판세를 꿰뚫고 전세역전을 노릴 인재가 없다고 저자는 탄식한다.

 

“우리에게 뛰어난 장수가 하나만 있었어도 길게 이어지던 적의 전선을 끊어 단절시킬 수 있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다면 평양성에서 그들이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계책을 한양 남쪽에서 사용하였더라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본문 229쪽)

 

정사 황윤길과 달리 부사 김성일은 일본사신으로 갔다 귀국한 후 왜의 침략가능성이 없다고 선조에게 보고하는데, 그 후의 변명(백성의 동요방지 등)이나 의병활동에 이은 순국의 공을 감안하더라도 외침에 대비하고 준비해야할 결정적인 1년을 아무 노력 없이 허송세월한 데 대해서는 준엄한 비판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7년간의 전쟁 기간 중 얼마나 많은 조선 민초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살육되었는가.

 

이 책은 정말 많은 곳에 정성과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띈다. 우선 곳곳에 전쟁관련 지도를 선명하게 작성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번역의 질도 매우 높다. 30여년 전에 번역된 한문 대가들인 이재호 선생님 및 남만성 선생님의 번역에 비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느낌이다. 가독성면에서는 훨씬 앞서는 느낌이다. 특히나 곳곳에 대화체로 선명하게 번역된 대목들은 위 번역본들을 크게 앞서는 느낌이다. 물론 선배들의 노고가 밑받침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책 징비록은 저자가 임진왜란을 역사책으로 편찬한 것이 아닌 만큼 별도의 상세한 연표를 두어 전체적으로 임진왜란사를 통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징비록은 정보의 부족 때문이었겠지만, 특히나 해전 관련 부분에서는 소략한 면이 더한 느낌이다.

역자가 또 한번의 개정판을 출간할 기회가 있다면 부탁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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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주공안 - 청조 지방관의 재판기록 이산의 책 49
남정원 지음, 차혜원 옮김,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 이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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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포청천, 청나라의 남정현!

 

이 책 <녹주공안>은 남정현(1680 ~ 1733)이라는 청나라의 관리가, 옹정제 연간의 광동성 보령현과 조양현이라는 지역의 지현(우리 말로 하면 고을 사또에 해당)으로 근무하면서 담당했던 민사, 형사 재판에 대하여 기술한 기록(공안)이다. 녹주(鹿洲)는 그의 호!

 

이 책은 순전히 ‘미야자키 이치사다’라는 이름 때문에 구입한 책인데,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일본의 중국 중세사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이 책 곳곳에 평설을 덧붙여 독자들이 이 책을 더욱 생생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책은 남정현이 직접 경험한 재판내용을 기술한 책인데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저자 자신이 겪은 내용을 시종 차분하게 기술하면서도 중간 중간 당사자들과의 대화내용을 생생하게 그대로 삽입하고 있어 흡사 흥미진진한 재판 관련 사극을 보는 듯하다.

 

이 책을 통해 18세기 초 중국의 가장 밑바닥 민초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 당시에도 선량한 사람들을 상대로 소송사기꾼들이 얼마나 극성스럽게 송사를 벌이고 있었는지 알게된다. 지금의 악덕 소송 브로커라고 할 수 있겠다.

 

남정현은 송나라 시대의 유명한 판관인 포청천 못지않은 통찰력과 혜안으로 사악하고 간특하기 그지없는 악한들에게 준엄하지만 또한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은 법의 심판을 가하고 있어서 독자들은 상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권선징악을 내세우는 여타의 책과 다르다. 남정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거물 악당들이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움과 21세기 지금의 현실을 보는 듯해서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남정현은 옹정제에 의해 지현에서 광동성 광주부 지부로 전격 발탁되지만 부임 한 달만에 아깝게 병사하고 만다. 그의 나이 향년54세 였다.

 

추기 :

전체 중국전도와 이 책의 주요 장소를 알 수 있는 상세지도를 함께 부록으로 실었으면 더욱 생동감이 있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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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의 대가, 수호전을 역사로 읽다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푸른역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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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로운 책이다.

수호전에 흥미가 있거나 어릴 적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니 수호전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 교토학파의 중국사 대가인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1901-1995)가 수호전에 나오는 인물들, 제도, 관직 등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또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호사가적인 취미나 호기심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깊고 넓은 학문을 바탕으로 매우 깊이 있는 설명을 가하고 있음에도 전혀 먹물 냄새가 나지 않게 간결한 문제, 유쾌한 해설이 이어진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양산박의 수령 송강이 나중에 조정에 귀순해서 장군이 되어 방랍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다는 수호전의 내용에 대해 저자는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도적 송강과 장군 송강은 두 명이었다고 고증한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어릴적 수호전을 읽으며 ‘80만 금군의 교두 임충이라는 구절을 황제의 친위부대 80만 대군을 통솔하는 우두머리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저자에 의하면, ‘교두는 금군(황제의 친위부대) 중에서 무술에 능통한 자를 교사로 뽑은 직책으로, 지위로 보면 최하급은 8급 또는 9급 무관에도 못미치는 자로 요즘 군대로 치면 하사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 외에 당시 관료제도 및 중국의 식인풍습 등에 대해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왜 이렇게 깊이 있으면서도 쉽고 흥미있는 책을 저술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실 이러한 책은 어설픈 실력으로는 엄두도 나지 않는, 오랜 기간 내공을 쌓은 진정 대가만이 쓸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예전 이산에서 번역 출간된 저자의 <옹정제>를 매우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는데, <옹정제>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차혜원의  번역이다. 매우 매끄럽고 꼼꼼하게 옮겨진 느낌이다.

 

이러한 책이 절판이라니 안타낍다. 다시 재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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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재 박규수 연구
김명호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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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간은 벌써 오래전 듣고 있었지만, 이제야 구해 읽었다.

10여년 전 저자 김명호의 <열하일기 연구>(1990, 창작과비평사)를 읽게 되었는데 연암의 열하일기를 너무도 재미나게 읽은 뒤라서 전문적인 위 책도 꽤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뒤 김명호는 돌베개에서 연암집(, , )(2007년)을 번역하여 출간한바 있고(출간된 뒤 바로 구입했으나 아직도 두 번째 권 읽는 중 ^^) 2008년 후속 연구 결과로 이 책 <환재 박규수 연구>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려진 박규수를 그의 저술 및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정밀하게 탐구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동안 저자의 각고의 노력에 의한 연구 업적(논문)을 집적한 것이다.

 

그에 따른 단점도 물론 있다.

전문적인 학술논문을 모아 한권의 두툼한 책으로 엮다 보니(800쪽에 육박한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서술이 반복되기도 하여 책의 흐름이 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박규수는 어떤 사림이었을까.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19세기 개화파의 선구로 알려진 자이다. 저자는 박규수를 통해 19세게 구한말의 여러 모습을 탐색하고 있다.

 

출판사의 책소개에 기재된 것처럼 시대의 선각자, 조숙한 천재, 개혁적 관료 등 여러 모습이 있을 수 있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19세기 조선 관료 사회에서 그가 보기드물게 강직하면서도 백성들을 위하는 관료였다는 사실이다.

 

1854년 경상좌도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절친한 친구의 절교를 무릅쓰면서도 부패한 친구의 부친을 처벌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1862년 진주민란’(농민항쟁)이 일어나자 안핵사에 임명되어 사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일반 백성들의 고통을 세밀하게 살피는 목민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박규수의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또한 시대의 사람이었다. 중화에 대한 뼛속 깊은 숭모사상과 문벌의식은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1차 아편전쟁 및 제2차 아편전쟁으로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한 그의 인식과 안목은 선각자의 것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이 책은 철종대까지의 박규수 연구에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박규수를 언급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1866년의 제너럴셔어먼호 사건, 1871년의 신미양요, 1876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에 대한 내용은 간단한 박규수 연보로 대신하고 있다. 저자는 고종대의 박규수 활약에 대하여는 추후 연구를 기약하고 있다. 그의 성실한 연구 성과가 또 한권의 묵직한 책으로 묶이어 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가지 더 독자로서 바란다면,

이러한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추후 정말 매력적인 박규수 평전의 출간을 부탁드리고 싶다.

 

이 책은 성실한 학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진중한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결코 매력적인 독서시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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