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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평점 :
이 책은 단순한 전쟁기록이 아닌, 나라를 담당하고 있는 임금이나 정치인, 군인,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여러 가지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임금은 어떠한 통찰력과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정치인은 국민은 위해 어떠한 자세로 위기에 임해야 하는가, 고위 장성들은 나라의 방위를 위해 어떠한 계책과 대비를 하여야 하는가 또는 독자적으로 조국을 지켜낼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등등.......
굉장히 좋은 번역이고 곳곳에 정성과 땀이 배어있는 책이라는 느낌이다.
오래전 다른 번역본으로 읽을 때에도 깊은 인상이 남은 책인데 이번에 서해문집 판 김흥식 번역으로 다시 읽는 동안에도 같은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감동과 탄식과 분노가 일렁이는 감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책 행간 곳곳에서 저자의 탄식과 절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최상부를 점하고 있는 위정자들이나 지방 일선에서 백성들을 다스리던 목민관이나 모두들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가치한 인물들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육지의 장수들 또한 어느 누구 하나 전쟁의 전체 판세를 꿰뚫고 전세역전을 노릴 인재가 없다고 저자는 탄식한다.
“우리에게 뛰어난 장수가 하나만 있었어도 길게 이어지던 적의 전선을 끊어 단절시킬 수 있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다면 평양성에서 그들이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계책을 한양 남쪽에서 사용하였더라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본문 229쪽)
정사 황윤길과 달리 부사 김성일은 일본사신으로 갔다 귀국한 후 왜의 침략가능성이 없다고 선조에게 보고하는데, 그 후의 변명(백성의 동요방지 등)이나 의병활동에 이은 순국의 공을 감안하더라도 외침에 대비하고 준비해야할 결정적인 1년을 아무 노력 없이 허송세월한 데 대해서는 준엄한 비판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7년간의 전쟁 기간 중 얼마나 많은 조선 민초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살육되었는가.
이 책은 정말 많은 곳에 정성과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띈다. 우선 곳곳에 전쟁관련 지도를 선명하게 작성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번역의 질도 매우 높다. 30여년 전에 번역된 한문 대가들인 이재호 선생님 및 남만성 선생님의 번역에 비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느낌이다. 가독성면에서는 훨씬 앞서는 느낌이다. 특히나 곳곳에 대화체로 선명하게 번역된 대목들은 위 번역본들을 크게 앞서는 느낌이다. 물론 선배들의 노고가 밑받침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책 징비록은 저자가 임진왜란을 역사책으로 편찬한 것이 아닌 만큼 별도의 상세한 연표를 두어 전체적으로 임진왜란사를 통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징비록은 정보의 부족 때문이었겠지만, 특히나 해전 관련 부분에서는 소략한 면이 더한 느낌이다.
역자가 또 한번의 개정판을 출간할 기회가 있다면 부탁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