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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죄책 -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또다른우주 / 2023년 8월
평점 :
1.
우연히 알라딘을 검색하다 이 책 북 펀드 내용을 보고 참여해 책을 받았다.
이미 일본 전범들에 관한 책으로 김효순 선생의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 일본인 전범을 개조한 푸순의 기적>(서해문집, 2020) 및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최규진 외 옮김,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20)을 통해 일본인 전범들의 행태와 만행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일본인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그들을 심층 인터뷰해 전쟁의 실상과 전범들이 저지른 만행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그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참혹한 행동을 한 것인지 낱낱이 깊이 있게 살피고 있다.
2.
폭염이 지속되는 지난 8월 초 책을 받자마자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초판 후기, 문고판 후기를 먼저 읽었는데 글을 읽자마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서장부터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죄의식을 품고 살아왔을지라도 그들의 기억은 심화되지도, 충분히 분석되지도 않고 반세기가 지났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리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후 일본의 반전 평화운동은, 기본적으로 피해자 의식 위에 서 있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반핵 평화운동에서도, 전쟁 체험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에서도, 전쟁은 적도 아군도 희생자로 만든다는 식의, 죄의식과 상관없는 논조가 지배적이다.”(23쪽)
“언제부턴가 나는, 침략전쟁을 재검토하지 않고, 그 시기에 어떤 전쟁범죄를 저질렀는가를 검증하지 않고, 그 시대를 부인과 망각으로 넘겨버리는 자세가 얼마나 우리의 문화를 빈곤하게 만들어왔는지 고찰하고 싶어졌다......그런 생각으로 나는 귀중한 죄의식을 찾아서 증언 청취작업을 시작했다.”(24쪽)
3.
이 책에는 군의관으로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한 전범, 헌병대원으로 잔혹한 행위를 일삼은 군인 등을 심층 면접하며 당시의 실상을 말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제까지 이렇게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압도적으로 해당 전쟁범죄행위를 묘사한 책은 없었다. 저자는 이들 전범들의 행동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분석하고 있다.
4.
책을 읽으며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악마로 만드는지 그리고 그 악마로 변한 그들이 자신의 고향에서는 또 얼마나 평범한 일상으로 삶을 살아가는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한편, 전쟁범죄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일본에서조차 이러한 높은 수준의 책이 발간되었음에 비해 우리는 베트남전쟁에서 저지른 많은 민간인 학살사건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고 있으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5.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총검으로 찢기고 살육되는 장면을 보며 시종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책의 밀도와 내용과 수준이 어마어마한 책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가 위태로운 현시점에서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다시금 자각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런 귀중한 책을 정성 들여 번역하고 출간한 서혜영님과 출판사 <또다른우주>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