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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의 재앙속에서 살다
사사키 다카시 지음, 형진의 옮김 / 돌베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재앙에 맞선 한 개인의 살아있는 비판정신
두주 전 동일본대지진 2주년에 맞춰 출간된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3인의 대담집인 <후쿠시마 이후의 삶>과 사사키 다키시의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두 권을 구입해서 읽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지역의 쓰나미와 핵발전소의 멜트다운 참사를 계기로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원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에 관한 관심의 첫 책은 다카기 진자부로의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녹색평론사, 2011 개정판) 이었고 이어서 히로세 다카시의 <원전을 멈춰라>(이음, 2011. 3. 11. 이후 재출간)를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히로세 다카시의 다른 책 <체르노빌의 아이들>도 가슴 아프게 한 장 한 장 읽었다.
후쿠시마 대참사 이후 벌써 2주년! 신문도 방송도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후쿠시마의 교훈을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이 책 <원전의 재앙속에서 살다>는 전직 스페인 사상사 교수인 저자(1939년생으로 사고당시 73세)가 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 시 하라마치 구에 거주하며 하루하루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정부의 대피 권유를 거부하며 치매로 거동할 수 없는 아내를 간호하며 하루하루 무능하고 어리석은 정부를 상대로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힘겨운 육체적, 정신적 분투를 하고 있다.
저자 사사키 다카시는 위에서 말한 다카기 진자부로나 히로세 다카시 처럼 원전의 전문가는 아니다. 평범(?)한 시민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는 건강한 비판정신을 소유한 무시할 수 없는 ‘시민’이다.
그의 다음 말은 신랄하고 예리하게 원전의 안전신화를 무력화하고 있다.
“만일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고 주장한다면 전력회사 회장, 사장 이하 임원급 사원의 가족들이 원전 주변에 거주할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같은 이유로 원전 추진자는 꼭 원전 주변에 살기 바란다.”(111쪽)
이 책에는 원전대참사를 계기로 저자가 생면부지의 재일한국인인 서경식과의 만남이 인상깊게 그려지는데 저자는 서경식의 주장에 99.9% 동의하면서도 왠지 모를 찜찜한 마음에 걸리는 것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것은 저자가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살 수 밖에 없는 현실때문이리라. 원전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 세계적인 시각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서경식( ‘후쿠시마 이후의 삶’ 참조)과 저자는 이점에서 미묘하게 시각을 달리한다.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엄마와 함게 나온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방사능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맘껏 뛰어놀아라. 너희 엄마는 아마 각오한 것이겠지. 방사능에서 멀리 도망갈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을, 이 계절을, 이 미풍을 즐기자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 - 이 날을 즐겨라)이라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이날을, 이 시간을, 이 찰나를 즐겨라!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279쪽)
한 개인이 벗어날 수 없는 엄청난 재앙 속에서 의지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사뭇 슬프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추기 1.
원전의 문제점에 대하여 알고 싶은 분들은 위에 언급한 다카기 진자부로의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과 히로세 다카시의 <원전을 멈춰라>는 꼭 읽기를 권한다.
추기 2.
책을 편집하며 동일본 지진 및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 현의 지도 등을 함께 넣었다면 일본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좋은 배경자료가 되었을 듯 싶다. 또한 이 책이 한 개인의 시각으로 이루이진 책인 만큼 이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원전사고 2년 동안의 주요 일지를 책 말미에 정리했더라면 원전사고 전체적인 면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개정판을 찍게 된다면 편집진께서 배려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