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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읽기에도 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지금 내 처지가 그 주제에 공감하고 있지 못한다면 독이 되고, 건질 것 별로 없는 책이라도 단 한 문장이 내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보다 더 좋은 양서가 없다. 이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 그랬다. 늘 내 주변에 있었고, 손만 뻗으면 읽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이 책은 있었건만 단 한번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읽어 본 이들은 한결같이 이 책을 추천해줬지만 육아, 엄마, 아이들 이 모든 단어가 나와는 다른 별천지의 이야기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몇년이 흘러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도 밑줄 박박 그어가면서 말이다.
박혜란. 여성학자이자 세 아들의 엄마, 그리고 이제는 여섯 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이다. 여기에 또 하나 붙는 수식어가 있다. '아들 셋 다 서울대에 보낸 엄마'. 그중 우리가 잘 아는 아들도 있다. 패닉의 이적(이동준). 박혜란의 둘째 아들이다. 그래서 박혜란은 세 아들 모두 서울대에 보내고, 모두가 사회적으로 자리잡은 소위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들 잘 키운 엄마로 불린다. 큰 아들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와 교수로 재직중이고, 둘째는 패닉에서 출발해 전방위적인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며, 셋째는 인류학과를 나와 지금은 MBC PD로 활동중이다. 대체 이 엄마,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던 것일까?
"나는 아이들을 아이들 뜻대로 자라게 하지 않고 부모들이 자신의 뜻대로 키우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건대 과연 얼마만큼의 부모가 자신의 뜻을 세울 만큼 성숙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중략)
그럴 바에야 아이들을 '키울'생각을 하지 말고 아이들이 '커 가는'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여러모로 훨씬 이익일 듯싶었다.
나중에 아이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_ 18쪽 중에서
지금은 여성학자, 육아 권위자(?)이지만 그녀가 세 아이를 낳았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저 대학 졸업하고 기자생활 몇년 한 평범한 여성에 불과했다. 난생 처음 아이를 키워보고, 그것도 아이를 셋이나 낳아 생각만해도 난리 법석일 집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아이를 키운 초보 엄마였다. 그래서 그녀의 육아 과정을 보면 말 그대로 좌충우돌, 시끌법썩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한 가지 소신이 있었다. 나 역시 성숙하지 않은 사람인데 어떻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겠느냐, 아이들은 믿는 만큼 스스로 커가고 아이들이 크는 만큼 엄마도 같이 성숙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 신념 속에서 아이들이 커나간 과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르침의 말 보다는 당시 그녀가 했던 고민들, 아이들이 했던 이야기들 중심으로 꾸려져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 사람 진짜 아들 셋 서울대 보낸 엄마 맞아?라는 생각도 들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책이다.
몇 가지는 인상적이었다. 부모가 둔해야 아이들이 편하다는 것, 그래서 엄마가 취업을 했네 안 했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가가 먼저 중시 되어야 한다는 것. 집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깨끗한 집을 유지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 전업주부인 엄마는 아이들이 자라남에 따라 지식 수준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며 인정하고 아이들이 정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라는 것 등은 새겨들을만 한 조언이었다.
책의 거의 마지막 꼭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 자신도 키워 나가야 하는데, 우리는 자신을 철저하게 소진시켜야만 아이가 큰다고 믿어 왔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는 여성은 이기적인 엄마라고, 모성이 결여된 엄마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어쩌면 어머니 세대의 자녀관을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답습했는지도 모르겠다.(237쪽)" 어떤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자라오면서 우리 엄마에게 어떤 걸 바랐었나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올지도 모른다. 나만 바라보는 엄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를 보면서 '누가 그렇게 살랬어?'라고 외치고 싶었던 순간이 있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믿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절대 걱정말고 믿고 지켜보자. 박혜란 할머니의 그 조언이 내게도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