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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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봐."

"어제 오후 조지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 무덤에 갔어. 여섯 번째 냉동고를 열고 가야의 시신을 확인했지. 시신은 그대로였어. 그런데 가야 손에 이상한 글씨가 씌어 있는 거야."

"인과응보......"

벨몽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녀석이 사라지기 직전 내게 했던 말이니까."

_ 242쪽 중에서

 

 

사건은 이렇게 시작한다. FBI 요원 사이먼에게 이미 십 년 전에 소인이 찍힌 우편물이 하나 도착한다. 신가야라는 이름의 한국인에게서 온 편지였다. 편지에 의하면 이 편지가 배달된 날부터 5일 동안 한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게 된다고 했다. 그들은 마땅히 죽어야 하는 인물이며 인류 평화를 위해 마땅히 죽어야 하는 인물이지만, 만약 살인을 막고 싶다면 엘리스라는 여자를 찾으라고 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모든 단서가 들어있다고 말이다. 장난이라 여기기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이먼은 엘리스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신가야는 10년 전 죽은 자신의 딸 미셸의 아버지이니깐 말이다.

 

하루하루 죽어나가는 세계 산업을 지배하는 다섯 명의 거물들, 그리고 10년 전 이 살인을 구체적인 방법까지 정확하게 예고한 의문의 한국인 신가야. 알 수 없는 이들의 관계와 정체를 밝혀나가는 것이 이 책의 큰 줄거리이다. 신가야라는 한국인은 그저 가난한 좀도둑 한국인에 불과했지만 어느날 누군가에 의해 미국으로 들어온 뒤 영주권까지 주면서 거대 세력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엘리스라는 여자를 만나 5일 간의 사랑을 나누고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0년 후 벌어질 살인에 대한 예고와 함께 말이다.

 

 

"미래를 본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기억한다는 말은 처음이오."

"왜냐하면 말 그대로 기억하기 때문이오. 그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기억을 갖고 태어나오. 인생 전체를 뇌 속에 저장한 채 세상에 나오는 거지."

_ 304쪽

 

 

 

이 책의 주인공 신가야의 정체이자 소설의 제목인 '궁극의 아이'는 기원전 26세기 고대 이집트 왕 쿠푸의 무덤에서 발견된 또 다른 비밀의 방에서 시작된다. 이 방에서 발견된 건 열일곱 살의 소년 석관이었다. 석판에는 '아누비스의 사자'라는 말과 함께 아이의 놀라운 능력이 적혀 있었는데 바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쿠푸는 이 아이의 능력을 활용해 영토를 확장해 국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었는데 그가 죽으면서 이집트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훗날 이 석상을 도굴한 미국의 고고학자는 이 석상을 발견하고 돌아가던 중 똑같이 생긴 아이를 발견하는데, 그 아이에게도 똑같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음을 발견한다. 궁극의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전 세대가 죽으면 얼마후 똑같은 모습을 하고 태어나는 아이. 모든 인종, 모든 국가를 초월해 무작위로 태어나지만 이들은 똑같은 얼굴은 물론 지문, 심지어 치열까지 똑같다. 미래를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자신이 살아있는 기간 동안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기억한다. 문제는 이 기억을 활용해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들이었다. 국가를 초월해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는 이들은 궁극의 아이의 기억을 활용해 전쟁을 일으키고 피가 뭍은 돈을 벌어들여 절대적인 권력가로 전세계를 지배한다. 그 사이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과 무기력하게 조종당하는 사람들. 이들의 악행을 멈추기 위해 궁극의 아이는 복수를 시작한다. 그 아이가 바로 신가야였다.

 

제목에 끌려 집게 된 이 책 <궁극의 아이>는 놀랍도록 잘 쓰여진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난 스릴러일거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사건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며 그 안에 추악한 인간의 탐욕과 돈에 대한 성찰까지 담아내고자했다. 실제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상상의 날개를 덧붙여 팩션의 느낌을 자아냈고, 궁극의 아이 신가야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과정은 그 어느 추리소설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하게 그렸다. 사건을 쫓는 사이먼의 개인사가 사건과 결합되며 한 인간으로서의 겪는 고뇌도 잘 표현되어 있고, 돈이 권력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담겨 있다. SF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그 덕분에 인간사회의 비극성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다. 10년 전 기억과 현재가 교차하며 사건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역사적 사건과 함께 정체가 밝혀질 때면 쾌감마저 느껴진다. 500쪽이 넘는 책이지만 한번 잡은 순간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배경이 미국이어서 그런지 국내작가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잘 쓴 외국 작가의 번역서를 읽는 것 같았고, 감히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에 견줄만큼 국내작가이지만 내로라 하는 해외 소설가들에도 버금가는 작품이었다. 놀라운 작가였고, 놀라운 소설이었다. 강력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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