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자동차 - 자동차 저널리스트 신동헌의 낭만 자동차 리포트
신동헌 지음 / 세미콜론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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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생애 첫 '차'가 로망이라면, 여자에겐(적어도 나에겐) 나를 데릴러 온 그 '남자의 차'가 로망이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난생 처음 누군가가 차를 몰고 와 나를 기다리고, 나를 태우고, 둘만의 공간 속에서 같은 음악을 들으며 도로를 질주해,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는 그 첫 경험. 그 기억은 그 차가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데릴러 온 그 자체'가 주는 자동차에 대한 여자의 첫 기억이 된다. 그래서 내게 자동차에 대한 추억이란 여고 시절 교문 앞에서 차를 대고 나를 기다리던 동네 오빠의 그 차가, 대학 시절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며 남산에 올라갔던 선배 오빠의 그 차가, 그리고 지금 나를 매일 같이 집 앞에 내려다 주는 S의 차가 된다.

 

어차피 내겐 차가 무엇이냐가 중요하기보다는 누구의 차인지가 중요했기에 작년 이맘즈음 S가 차를 사겠다며 이 차가 어떻고 저 차가 어떻고를 얘기했을 땐 난 솔직한 심정으로 '어떤 차라도 상관없어. 잘 굴러가기만 하면 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자동차는 달랐다. SUV냐 세단이냐, 국산차냐 외제차냐, 어떤 브랜드냐에 어떤 색상이냐 따질 것도 고려해야 할 것도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한 달여의 고민 끝에 차를 산 S는 매일같이 차에 무언가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또 주말이면 세차를 해야 한다며 한 시간은 차를 닦고 한 시간은 광을 냈으며, 내가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문짝을 보며 흠이 났다고 속상해했다.

 

<그 남자의 자동차>를 읽었다는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자동자를 사랑하는 우리 S에게 선물하면 좋겠다고 책을 샀다. 그리고 S에게 책 이야기를 했더니 대번에 ‘조이라이드’의 까진 남자(필명)를 알고 있다고 했다. 아니 대체 얼마나 남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이길래 모두가 알고 있는지 궁금해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저자 소개의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여자가 읽어도 재미있는 자동차 이야기"를 모토로 하고 있다. '어쭈'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하며 계속해 책장을 넘겼고 마지막 챕터에서는 '우아'하며 함성을 질렀다.

 

우리가 자동차를 좀 더 이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즐거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스포츠카를 타야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퇴근용 패밀리 세단이라도 충분하다. 자동차를 단순히 ‘집과 직장을 오가는 데 쓰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이용하는 만큼의 시간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출근길에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스티어링휠을 꺾는 동작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고,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회사로 가는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바꿀 수도 있다. 퇴근길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카페가 되기도 하며,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게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_ 9-10쪽

 

솔직히 이 책에 등장했던 수많은 자동차 용어나, 차 이름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이 들려준 수많은 자동차에 얽힌 스토리, 자동차가 그냥 탈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나의 추억을 품고 있는 공간이 된다는 것만 가슴 속 깊이 남아있을 뿐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의 90퍼센트가 검정, 흰색 아니면 은색차를 선택하는지, 왜 사람들은 국내차가 아닌 외국차를 걸어 놓고 꿈을 꿀 수 밖에 없는지, 왜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컨버터블을 탈 수 밖에 없는지 그것을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욕망과 연결해 풀어 놓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설'만 풀어 놓는 건 아니다. 저자가 경험한 차종에 대한 자세한 설명, 차의 특성 등에 대한 비교분석도 꽤 자세히 썼다. 해치백이 뭔지, 2기통이 어쩌구, 사륜 구동이 어쩌구 용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나와 같은 독자를 위해서는 더 읽을거리를 통해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거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화보같은 자동차 사진은 자동차에 대한 로망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다. 남자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책이고, 여자들에게도 자동차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여자가 읽어도 재미있는 자동차에 관한 책이다.

 

선물해 주려고 산 책이었는데 내가 먼저 다 읽어버렸다. 거기에 (잘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도 자동차를 꿈꾸게 만들었다. 10년 뒤에는 자신의 삶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인생의 목표를 찾게 된다는 포르쉐 스포츠카를, 20년 뒤에는 버튼 하나로 지붕을 걷고 거대한 하늘을 만나며 흰머리 휘날리며 타는 BMW 3시리즈 컨버터블을, 30년 뒤에는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어 '드림 카'로 불린다는 아우디 R8나 BMW 650Ci를 타고 싶어졌다. 그와 함께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나니 내게도 드림 카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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