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긍정의 배신>에서 긍정의 산업화와 긍정을 통해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회의 모습을, <노동의 배신>에서는 뼈빠지게 일해도 여전히 워킹푸어로 밖에 남을 수 없는 블루컬러의 현실을 보여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신작 <희망의 배신>이 나왔다. 전작 두 권을 읽으며 팬이 되었던 터라 이 책의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고, 책이 나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특히 이번 주제는 나와 관심사와 닿아 있어 기대가 컸었다. 바로 몸 바쳐 충성하고 책상 앞에 앉아 죽도록 일하다 버려지는 화이트칼라의 실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7개월 가까이 구직 활동을 하고,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비싼 돈을 들여 이력서를 거듭 수정하고, 4개 도시에서 네트워킹을 위해 애쓴 결과 내게는 Aflac과 메리케이, 2개의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규정한 '일자리'의 기준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급료도, 복지 혜택도, 작업 공간도 제공되지 않았다.

_ 269쪽 중에서

 

 

 

전작 <노동의 배신>에서 웨이트리스, 마트 점원, 청소부 등 직접 노동의 현장에 위장취업해 그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살아보고 그들의 실상을 고발한 저자는 이번에도 역시 실제 취업시장에 뛰어들어 구직활동을 펼친다. 이번에는 고등교육 이상의, 사무직인, 몸이 아닌 머리를 써 일을 한다는 나름 고급인력이라 불린다는 화이트컬라 시장에 포커싱했다. 과연 여기는 블루칼라 노동계보다 나은가, 그들의 꿈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저자는 가상의 이력서를 만들고(기본적으로는 실제 해 온 일이지만 저자 본인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이력서로), 리쿠르팅 회사에 들어가 이력서를 등록하지만 그 누구에도 답변을 받지 못한다. 커리어코치라 불리는 사람들을 찾아가 수십만원의 돈을 내고 강연을 듣고, 적성검사를 받고, 자소서 쓰는 법에 대해 배우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더욱더 밝고, 긍적적이고, 적극적이 되라고 강요만 당할 뿐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그녀만의 언어로 채워졌던 이력서는 열정, 긍정, 비전 등의 기업형 언어로 바뀌어가고,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쌓아뒀던 통장 잔고는 각종 취업 관련 세미나 참가비로 줄어만 간다.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말에 이곳 저곳에서 벌어지는 모임에 쫓아다니지만 네트워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대부분의 구직자인 모임 속에서 패배감과 좌절의 쓴 맛만을 엿볼 뿐이었다.

 

 

결국 저자는 취업에 실패한다. 회사에 들어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착취의 현장을 보여주길 바랐지만 사실 그녀의 취업 실패 일기 그 자체가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구직자들이 경험한 일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이트칼라들은 원대한 꿈을 갖고 취업시장에 뛰어들지만, 종이 쪼가리에 적힌 숫자들로 평가받고, 그들이 원하는 언어로 말해야하고, '나'는 버리고 오로지 '조직'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철저하게 이용만 당하고 씁씁하게 버려지는 것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화이트칼라의 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몸을 써서 일하다 부상을 입고 녹초가 되지만,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똑같이 고통스러운 결과를 맞는다. 어찌보면 화이트칼라가 되기 위한 보편적 필수 요건인 대학 교육의 요체는 가만히 앉아서 눈을 뜨고 있는 훈련인지도 모른다(206쪽 중에서)" 고.

 

 

다시 한번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면서 없는 열정을 과대 포장하고, 일이 돈 벌이의 수단이 아닌 거창한 꿈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더 밝은 척, 즐거운 척, 긍정적인 척을 해야해 힘이 들었다. 그리고 에런라이크의 이 책을 읽으며 비참하지만 비단 그것이 나만의 문제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고 위로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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