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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평점 :
연중행사로 찾아온다는 환절기 감기에, 요즘은 좀 과하다 싶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어느날 책 한 권을 받았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피로사회>. "요즘 이상하게 회사에서, 인터넷에서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피곤해져"라고 투정을 부린지 며질 지나지 않아 받은 책이라 모든 책을 젖혀놓고 이 책부터 읽기시작했다. 피곤한 우리들을 위해 분량도 아주 가벼운 128쪽. 나의 피곤함을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에서 찾기위해 밑줄 박박 그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노동사회, 성과사회는 자유로은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오히려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_ 44쪽
저자는 이전과 지금의 사회를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변화로 규정한다. 이전이 푸코가 말한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 등으로 구성된 '~해서는 안 된다'의 부정성이 강한 규율사회였다면 지금의 21세기는 그 모든 것이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등으로 바뀐 성과사회라는 것이다. 이 성과사회에서는 규율사회와는 달리 '할 수 있음'의 긍정 과잉 사회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는 프로젝트, 인센티브, 모티베이션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 각 사회에서 발생되는 부정적 효과인데 규율사회에서는 부정의 과잉이 광인과 범죄자를 낳았다면, 긍정 과잉인 성과사회에서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전사회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심각한 심리적 경색을 야기한다.
열정을 강요하고 가시적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그리고 그렇게 되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자기 스스로를 옭아매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사람들. 지금의 성과사회는 자신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지배 없는 지배사회가 가능해지고 사람들은 끝없는 우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며 '피로사회'를 낳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것들 찾고 목표를 세우며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끼는 사람들. 이 책을 읽는 내내 찌들어있는 우리네 모습이 비쳐지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번뜩이는 몇몇의 문장들 덕분에 큰 위로를 받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탈진한 영혼들이 심심한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