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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 제17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외주 제작사 PD 박상운. 한때는 잘 나가는 방송사 PD였다. 열정도 뻗쳤고, 사회의 어두운 구석들을 파헤쳐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지도 있었다. 여러 다큐를 통해 방송국 내에서도 인정 받았고, 대중들의 호응도 얻었다. 사람들의 칭찬 속에서 어깨가 으쓱해진 박상운은 자신감이 하늘을 뻗치기 시작했다. 방송국을 나왔고 외주 제작사를 차렸다. 하지만 전세는 곧 역전되었다. 방송국에 있을 시절 무시하던 후배는 이제 자신의 기획안의 OK를 맡는 '갑'이 되었고, 사사건건 시청율과 비용의 문제로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권력의 압박도 잊지 않았다.
재래시장 상인 정기섭. 한때는 죽어가는 재리시장을 메스컴에 알리며 되살린 전통시장 내의 에이스였다. 나름 똑똑했던 그는 재래 시장도 차별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며 '벽화 그리는 전통시장'을 표방하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년 전. 벽화가 있는 재래 시장이 늘기 시작하면서 그 차별화 지점도 없어졌고, 인근에 들어올 대형 마트 입점 소식에 손님들의 발길 마저 끊겼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 생각한 정기섭. 다시 한번 매스컴의 힘을 빌어 재래시장을 살려보자 다짐했다.
바보 김일우.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친구들에게 바보로 통한다. 김민구와 오영미의 아들인 일우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일우의 부모들은 생활고에 하루가 멀다하고 싸운다. 집은 딱 시궁창이라는 표현이 맞아 떨어질 정도로 궁상맞고, 일우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덜떨어진 행동을한다. 일우가 잘 하는거라고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청각이 발달했다는 것.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우리가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리들을 구분해내고, 그 소리들을 들으며 행복을 느낀다.
그 어떤 공통점도 없을 것 같은 이 세 사람이 하나의 이해관계로 모여 만든 한편의 거대한 드라마가 바로 이 책 <귀를 기울이면>이다. 재래시장 부활에 사활을 건 정기섭은 '야바위컵 대회'라는 이벤트를 만들어 방송 제안을 하고, 시청률에 쪼들리던 PD 박상운은 그 아이템을 받아 <더 챔피언>이라는 야바위컵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바보 아들이지만 유난히 청각이 발달한 아들 일우를 내세워 인생역전을 하고자 하는 민구와 오영미는 그들의 전 재산인 5천만원 전세금을 걸고 서바이벌 대회에 참가한다. 그렇게 세 사람은 각각의 목적을 가친재 야바위컵 판에서 만난다.
야바위는 컵 안에 구슬을 넣고 이리저리 돌리며 최종적으로 구슬이 들어간 컵을 맞추는 놀이다. 야바위 꾼에 의해 돌아가는 판을 보다가 마지막에 구슬이 있을 것 같은 컵에 돈을 거는, 일종의 도박인 셈이다.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도, 예리한 예측이 필요한 것도, 전략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야바위꾼의 눈속임을 읽어내 돈을 불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아내는 한판 승부다. 어찌보면 지금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다.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그것을 먼저 알아채고 이용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정직한 방법을 쓰는 사람을 필패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삶 말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 이 쓰리컵대회(야바위대회를 있어 보이게 하려고 영어로 쓰리컵이라 바꾼다)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 소설은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조남주 작가의 첫 책인데, 기성 작가들 못지 않게 그 구성력은 매우 뛰어나다. 소설의 3/4까지는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데 그 극정 긴장감도 최고다. 특히 본격적인 서바이벌 오디션 생방송이 시작되고, 최종 결승에 오른 일우가 구슬이 없는 컵(마지막에서는 구슬이 있는 컵이 아닌 여러개의 구슬을 돌리며 없는 컵을 찾아내게 산다)을 맞히는 장면은 마치 TV를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그 모든 한바탕 쇼가 끝나면 극적인 긴장감 뒤에 나른함이 오듯이 소설도 급격하게 무너져내린다. 일우의 뛰어난 청각을 현실에 억지스럽게 끌어오는 부분이라든지, 박PD의 재기를 위한 제작발표회에서의 엔딩은 현실적이었던 소설을 뜬금없는 판타지 소설로 만드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단점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이 책은 읽을만한 소설이긴 했다. 제목만 빼고! 이토록 재미난 소설에 이토록 지루한 제목이라니. 아쉽다.
*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마디!
근데요, 선배. 젊은 사람한테는 막 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직 어리고, 어리니까 경험도 없고, 지위도 낮은 거예요.
지금은 그렇지만요, 시간은 가만히 있지 않잖아요. 시간이 가면 그 한심한 어린놈들도 나이 먹고, 경험도 생기고, 돈도 생기고,
지위도 높아져요. 그럼 예전에 잘나가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늙고 힘이 없어지는 거죠.
그때는 생황 역전이라고요.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한테 막 하시는 거 아니에요.
젊다는 게 그래서 무서운 거예요. 지금 잘나가서가 아니라 잘나갈 가능성이 있어서."
_ 42쪽 중에서